[공간이 브랜드를 만든다②] 현대카드는 어떻게 브랜드를 '문화 플랫폼'으로 확장시키는가

공간·데이터·취향을 중심으로 소비자 인식 구조 재배치…카드를 삶의 일부로 각인시키는 전략

김예은 기자 2025.12.04 14:50:30

현대카드가 서울 압구정에 위치한 ‘현대카드 COOKING LIBRARY’를 리뉴얼해 회원들의 미식 경험 극대화에 나섰다. ‘현대카드 COOKING LIBRARY’는 유명 셰프들의 레시피와 다양한 문화권의 식문화를 담은 1만2000여권의 쿡북(cook book)을 접하는 것은 물론 직접 요리의 가치를 경험할 수 있는 복합 미식 공간으로 2017년 문을 열었다. 리뉴얼한 COOKING LIBRARY는 ‘먹고, 읽고, 요리하는(EAT, READ, COOK) 공간’이라는 테마로 회원이 즐길 수 있는 경험의 깊이를 강화했다. 사진=현대카드

카드회사를 넘어 ‘콘텐츠 기업’으로 이동하는 현대카드의 전략은 데이터와 공간, 취향 기반 큐레이션을 하나로 묶어 브랜드 충성도를 장기 자산으로 전환하는 방식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현대카드는 지난 수년간 단순 결제 인프라 기업에서 벗어나 ‘브랜드 경험을 설계하는 기업’으로 방향을 전환해 왔다.


이러한 변화의 중심에는 ‘라이브러리(Library) & 스토리지(Storage)’라는 독자적 콘텐츠 전략이 자리 잡고 있다. 이는 단순한 홍보 채널이 아니라 현대카드가 기획한 프로젝트, 큐레이션 콘텐츠, 브랜드 철학, 문화적 실험을 체계적으로 저장하는 일종의 브랜드 데이터베이스다. 그러나 그 기능은 기록을 넘어 소비자의 경험을 재설계하는 플랫폼이라는 데 가장 큰 의미가 있다.

현대카드는 톰 삭스와 함께 ‘현대카드 Tom Sachs “Credit Card"'를 공개했다. '현대카드 Tom Sachs “Credit Card"’는 총 4종으로 두랄루민과 브론즈로 만든 ‘Metal’, 합판의 나무 결을 섬세하게 살린 ‘Plywood’, 전면과 후면의 강렬한 대비가 돋보이는 ‘Fluorescent Red’, 톰 삭스의 핸드 라이팅으로 표현한 ‘White’로 구성됐다. 이 중 ‘Metal’은 톰 삭스가 디자인한 ‘핸드 크래프트 박스’ 카드 패키지에 제공된다. 이 패키지는 톰 삭스 특유의 작업 스타일인 ‘브리콜라주’ 기법이 반영돼 그의 예술 세계를 고스란히 경험할 수 있도록 했다. 사진=현대카드

 

현대카드는 융합된 마케팅 전략을 통해 브랜드 이미지가 고객 머릿속에서 어떻게 기억되는지를 장기적으로 관리한다. 예를 들어 새로운 카드 라인업을 출시할 때 단순히 혜택과 기능을 나열하는 방식에서 벗어나, 디자인의 배경과 유형학적 사고, 카드가 제안하는 생활 방식까지 언어화하는 구조로 설명한다. 이러한 방식은 소비자에게 카드를 구매하는 행위를 단순 금융 선택이 아니라 하나의 ‘경험 선택’으로 인식하도록 만든다. 기업은 소비자가 기억할 만한 스토리와 감정적 요소를 제공함으로써 장기 브랜드 충성도를 확보한다.

 

나아가 현대카드가 지난 10여 년 동안 구축해온 라이브러리(Library) 프로젝트는 단순한 프로모션 공간이 아니라 금융업의 기존 마케팅 문법을 새롭게 쓰는 지점으로 평가된다. 신용카드처럼 기능 중심의 무형 상품은 일반적으로 혜택과 숫자로 평가받지만, 현대카드는 이 같은 금융상품을 문화 경험의 영역으로 전환하며 브랜드의 성격과 소비자의 인식 구조를 동시에 바꿔냈다. 젠틀몬스터가 패션을 예술로 확장해 브랜드 세계관을 구축했듯이, 현대카드는 금융을 취향과 문화적 감수성의 영역으로 끌어올리며 금융사를 넘어선 ‘문화적 동반자’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현대카드는 서울 이태원에 컨템포리러 아트(contemporary art)를 주제로 한 다양한 서적과 자료를 한데 모은 '현대카드 아트 라이브러리(ART LIBRARY)'를 선보였다. 사진=현대카드

라이브러리, 소비자의 자전적 기억을 생산하는 브랜드 장치가 되다
현대카드가 운영하는 디자인·아트·뮤직·쿠킹 라이브러리와 ‘바이닐앤플라스틱’은 각기 다른 테마를 가지고 있지만, 이 공간들이 공유하는 핵심 원리는 모든 시설이 현대카드 회원 전용이라는 점이다. 이 제한적 접근성은 소비자의 일상에 특별한 장면을 삽입하는 역할을 하며, 브랜드와 개인의 기억을 자연스럽게 연결한다.


라이브러리를 경험한 소비자는 그 순간을 자신의 삶 속 의미 있는 장면으로 저장하게 된다. 예컨대 조용한 서가에서 오랜만에 마음에 드는 책을 발견한 경험, 디제이의 감각으로 큐레이션된 LP를 직접 골라 듣는 순간, 혹은 여행 정보를 탐색하며 스스로의 시야가 넓어지는 감각이 모두 자전적 기억으로 전환된다. 이는 브랜드가 단순한 금융상품 제공자가 아니라 소비자의 ‘삶의 조각’을 만들어주는 존재로 자리 잡도록 돕는다.


라이브러리가 단순한 문화 시설을 넘어서는 이유는 콘텐츠의 희소성과 전문적 큐레이션에서 비롯된다. 디자인·예술·여행·음악·요리 등 전문 분야의 자료가 엄선된 방식으로 제공되기 때문에 방문자는 자신만을 위한 공간과 콘텐츠를 경험하고 있다고 느낀다. 이러한 감각은 방문 경험을 개인의 문화적 에피소드로 만든다.


소비자는 그날 읽은 책, 음악 라이브러리에서 발견한 LP, 혹은 쿠킹 라이브러리에서 접한 새로운 요리 지식을 자신의 성장의 순간으로 기억한다. 그 결과 소비자의 심리 안에서 현대카드는 ‘경험을 가능하게 해준 매개 브랜드’로 자리 잡는다. 이는 단순한 혜택 비교로는 설명되지 않는 브랜드 애착의 기반이 된다.

현대카드는 전 세계 최초의 뉴욕현대미술관(MoMA) 전문 서점인 ‘MoMA Bookstore at Hyundai Card'를 서울 압구정에 열었다. MoMA Bookstore at Hyundai Card는 뉴욕현대미술관이 직접 출판한 전시 도록을 비롯해 아트·디자인·건축 관련 약 200종 1100여권의 도서와 디자인 상품을 선보이는 전 세계 최초이자 유일한 MoMA 발간 도서 전문 매장이다. 사진=현대카드

인지적 부담을 감성으로 우회시키는 현대카드의 심리 구조
신용카드를 선택할 때 소비자는 본래 적립률, 연회비, 부가 혜택 등 복잡한 정보를 비교해야 한다. 이러한 과정은 인지적 부담을 요구하며 종종 피로감을 준다. 현대카드는 라이브러리 경험을 통해 이 부담을 감성으로 우회시키는 전략을 선택했다.


라이브러리에서 경험하는 감정과 분위기, 그리고 기억의 축적은 숫자와 조건보다 더 강하게 소비자의 판단을 이끌어낸다. 소비자는 카드 상품을 금융 도구로 인식하기보다 자신의 취향을 이해하는 브랜드이자 문화적 소속감의 일부로 받아들이게 된다. 이 결과, 혜택이나 조건보다 정서적 만족이 소비자의 선택을 주도하는 구조가 완성된다.


현대카드의 공간 디자인과 카드 디자인은 모두 시각적 은유를 활용하는 방식으로 구성되어 있다. 하버드 대학교 Zaltman 교수의 ZMET 이론이 설명하듯, 이미지는 소비자의 무의식 속 의미 구조에 강하게 침투한다.


라이브러리의 건축적 방식, 절제된 조명, 정돈된 가구 배치, 선별된 오브제들은 현대카드가 높은 안목과 선별된 가치를 이해하는 브랜드라는 인식을 강화한다. 미니멀한 카드 플레이트의 질감과 패턴은 이러한 세계관을 이동식 오브제 형태로 소비자의 손 안에 전달한다. 이 과정에서 카드는 단순한 금융 상품이 아니라 사용자 정체성을 설명하는 상징적 사물이 된다.


사람은 눈에 보이는 완성도를 통해 눈에 보이지 않는 품질까지 추론하는 경향이 있다. 라이브러리의 건축 자재, 조명 배치, 음향 설계, 서가 구성 등은 모두 높은 완성도를 유지하고 있으며, 이 디테일은 소비자에게 “이 정도로 정교한 공간을 만드는 브랜드라면 서비스도 세심할 것”이라는 신뢰를 만든다.


이 신뢰는 혜택 구조를 꼼꼼히 비교하지 않아도 프리미엄 브랜드라는 인식이 유지되도록 돕는다. 다시 말해, 공간이 지닌 완성도가 금융상품에 대한 신뢰로 자연스럽게 전이되는 것이다.


라이브러리 경험이 카드와 직접적으로 연결되지 않음에도 강력한 이유는 ‘주의 전환 효과’에 있다. 소비자는 라이브러리에서 독서, 음악 감상, 여행 정보 수집 등 카드 기능과 무관한 활동에 몰입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금융상품의 기능적 단점은 자연스럽게 배경으로 밀려나고 브랜드가 제공하는 감성적·문화적 경험이 전면으로 떠오른다.


이 주의 전환은 브랜드가 금융사의 딱딱한 이미지를 벗고 삶의 동반자로 인식되도록 만드는 핵심 장치로 작용한다.


현대카드의 라이브러리 전략은 무형의 금융상품을 유형의 문화 경험으로 변환해 브랜드 가치를 재정의한 대표적 사례다. 이 전략은 소비자의 자전적 기억을 형성하고, 디자인과 큐레이션을 통해 시각적 은유를 축적하며, 금융상품에 대한 판단 기준을 감성 중심으로 재배치하는 방식으로 작동한다.


그 결과 소비자는 현대카드를 단순한 결제 수단이 아니라 자신의 취향과 안목을 설명해주는 ‘정체성 브랜드’로 인식하게 된다. 현대카드가 금융사 이상의 의미를 가지게 된 이유는 바로 이 지점에 있다. 이는 향후 무형 상품 산업이 참고해야 할 새로운 경험 기반 마케팅 패러다임으로 평가되고 있다.

 

현대카드는 현대미술의 거장 '데이비드 살레(David Salle)'의 예술 세계를 아우르는 회고전 'Davide Salle: Under One Roof'를 개최했다. 2025년 5월 10일부터 9월 7일까지 서울 이태원에 위치한 전시·문화 공간 현대카드 스토리지(Storage)에서 진행된 전시는 데이비드 살레의 생애에 걸친 작품을 총 망라한 국내 첫 종합 회고전으로 지금까지 국내에서 전시된 데이비드 살레 전시 중 최대 규모로 총 40여점의 작품을 선보였다. 사진=현대카드

회사는 수 년간 음악, 디자인, 요리, 건축 분야의 세계적 인물을 초청하는 라이브러리 프로젝트를 통해 브랜드의 미적 취향을 명확히 제시해왔다. 나아가 현대카드가 운영하는 스토리지는 현대카드가 오랜 기간 유지해 온 ‘취향 기반 마케팅’의 확장판이다.


현대카드는 이 같은 마케팅 전략을 통해 일종의 장기적 브랜드 자산을 구축하고 있다. 이는 단기 캠페인 중심의 마케팅이 빠르게 소모되는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이기도 하다. 소비자에게 단기간 관심을 끄는 광고보다 브랜드의 철학, 취향, 경험을 장기적으로 저장하고 재활용하는 구조가 지속 가능한 브랜드 가치를 만든다는 판단이 작용한 것이다. 소비자의 삶과 맞닿아있는 문화적 소비는 소비자가 브랜드와 정서적으로 연결되는 방식을 깊이 있게 설계함으로써 고객 생애 가치 향상에도 기여한다.


결국 현대카드가 운영하는 모든 공간과 마케팅 자산들은 금융업의 경계를 넘어 경험과 문화를 기반으로 하는 브랜드로 성장하기 위한 핵심 도구이다. 카드 발급 경쟁이 치열해지고 디지털 전환으로 금융 상품의 차별성이 줄어드는 시장 환경에서, 브랜드 자체가 소비자에게 기억될 만한 가치를 제공해야 한다는 현대카드의 전략적 판단이 이 구조의 출발점이 된 것이다.

 

현대카드는 앞으로도 독자적 공간을 중심으로 문화 자산과 디지털 콘텐츠를 확장해 고객과의 장기적 관계를 강화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는 현대카드가 단순 금융 플랫폼이 아니라 ‘경험을 제공하는 기업’으로 자리잡기 위한 장기 전략의 일환이며, 비물리적 행위가 강화되는 디지털 시대에도 역설적으로 브랜드의 미래 경쟁력을 결정짓는 핵심 요소가 되고 있다.

<문화경제 김예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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