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의 비평가 롤랑 바르트는 사진의 본질을 ‘그것은 존재했었다’로 정의했다. 카메라 셔터를 누르는 찰나, 살아 움직이던 대상은 박제된 것처럼 고정된다. 그렇다면 부재와 존재는 어떻게 증명될까. 사진은 ‘이 대상이 한때 여기에 있었다’는 것을 증명하지만, 동시에 ‘지금은 여기에 없다’라는 결핍과 부재를 동시에 드러낸다. 니키타 게일은 꿈에서 본 장면을 전시장으로 현현시킴으써 부재와 존재를, 김주원은 외할아버지의 칠순 홈비디오와 외할머니의 묘지 이장 장면을 나란히 배치해 탄생과 죽음을 중첩시킨다.
니키타 게일: 99 DREAMS(니키타 게일: 99개의 꿈)
바라캇컨템포러리에서 열리는 ‘니키타 게일: 99개의 꿈(99 Dreams)’(2025년 11월 5일〜 2026년 1월 4일) 1층 전시장에 들어서면 깜짝 놀랄 수 있다. 미술관이나 갤러리에 들어서면 펼쳐질 그림이나 사진 혹은 영상, 설치를 기대했을 수 있지만 공간은 텅 비었다. 어둠에 적응할 무렵 서서히 드러나는 흰 벽면이 보일 것이다. 마치 사진암실에서 서서히 형상이 드러나듯이. 지하 계단에서 분홍과 주황이 섞인 빛이 아래로 내려오라 권유한다.
계단을 내려가면 노을 지는 풍경처럼 바닥과 벽면 영상을 배경으로 찻주전자 96개가 여기 저기 놓여있다. 찻주전자는 작가가 직접 전부 수집한 것들이다. 찻주전자에 꽂힌 쑥내음과 찻주전자의 물 끓는 소리가 들린다. 작가는 이 소리를 ‘섬세하게 우리의 촉각을 자극하는 매체’라고 설명했다. 소리는 붉게 물든 공간을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우리에게 쉴 수 있는 공간을 내어준다.
이 독특한 설치 작품은 니키타 게일의 국내 첫 개인전이자 신작 커미션 작품으로 게일이 꿈 속에서 본 비전을 현실의 공간으로 구현해 낸 것이다. 꿈 속 상상 속 이미지가 손에 잡히는 레디메이드 오브제를 통해 물질로 드러낸 공간은 작가의 오랜 협업자이자 조명 디자이너인 조세핀 왕과 협력한 결과물이기도 하다.
전시와 함께 동시에 선보이는 출판물에는 게일이 여러 해에 걸쳐 기록해 놓은 꿈의 일기(dream journal)에서 발췌한 99개의 문장이 실려 있다. 이 문장들은 꿈의 논리와 깨어 있는 삶 속에서 그것을 이해하려는 충동 사이의 긴장을 서사적으로 드러낸다. 지하층은 이렇듯 소리와 침묵, 존재와 부재의 경계를 무대 장치라는 형식을 통해 풀어내고 있다.
전시 제목 ‘99개의 꿈’이자 동명의 신작 설치 작품 ‘99개의 꿈’(2025)은 ‘완결과 질서’를 상징하는 숫자 100에서 벗어난 ‘99’의 상태를 가리킨다. ‘99’는 경계가 고정되지 않은 열린 공간, 즉 의식의 질서로 포섭되지 않는 무의식의 지점을 상징한다.
니키타 게일의 설치작품은 꿈에서 튀어나온 ‘현실의 연장선’으로 관람객도 함께 객석이 아닌 무대로 끌어들임으로써 각자의 연극을 완성하게 만든다. 이렇게 꿈과 현실의 경계를 자유자재로 넘나드는 점은 동양 철학, 특히 한국을 포함한 동아시아의 사유 체계에서 매우 중요한 뿌리를 갖고 있다. 중국의 사상가 장자의 물아일체(物我一體) 일화가 대표적이다.
장자는 꿈에서 나비가 되어 날아다니다 깨어난 후, ‘내가 나비가 된 꿈을 꾼 것인가, 나비가 내가 된 꿈을 꾸고 있는 것인가’라고 자문한다. 여기서 인생은 고정된 실체가 아닌 역할 수행자와 같다. 나비라는 배역과 장자라는 배역 사이에는 본질적인 차이가 없으며, 삶 자체가 커다란 꿈(대몽, 大夢)일수도 있다는 것이다.
마치 꿈에서 깨어나듯 지하의 계단을 하나하나 올라와 1층에 이르면 게일의 포토그램 ‘꿈 5, 꿈 7(DREAM 5, DREAM 7)’(2025)을 만난다. 벽면 귀퉁이에 설치된 이 작품은 사물이 빛에 노출되는 순간을 포착한 작업이다. 포토그램 속 찻주전자는 지하에 설치된 오브제로 카메라로 직접 찍은 게 아니다. 오로지 빛으로 그린 이미지는 몽환적 색채와 깊이로 누군가의 기억·일상·신체·노동·도피·치유·회복의 순간이었음을 짐작케 한다.
포토그램 속의 찻주전자는 입체적인 양감이나 디테일이 사라진 채, 오직 평면적인 실루엣(그림자)으로만 존재한다. 실체는 사라지고 그 자리에 남은 ‘빈 공간’이 형상을 이룬다. 물체가 인화지에 닿아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정작 이미지는 그 물체가 ‘없었던’ 주변부의 빛을 통해 완성된다. 즉, 형상은 물체가 점유했던 공간의 ‘비어있음’을 통해 드러난다.
꿈은 실재하지 않지만 잔상으로 남는다는 면에서 포토그램의 작업 방식과도 유사하다. 뚜렷하지 않은 경계를 통해 실제하는 어떤 대상을 떠올리지만 명확하지 않다. 어쩌면 사라질지도 모를 ‘유령 같은 흔적’이다.
김주원 ‘솔로몬 그런디의 죽음: 일요일’
김주원은 사진, 영상, 설치 등 다양한 매체를 넘나들며 기억과 기록이 중첩되는 지층을 탐구해왔다. 사진을 주 매체로 우연한 사건과 서사적 구조를 결합해 현실과 상상이 교차하는 경계를 드러내는 작업을 이어왔다.
제25회 송은미술대상전(2025년 12월 12일∼2026년 2월 14일)에 출품된 ‘솔로몬 그런디의 죽음: 일요일’(2025)은 ‘솔로몬 그런디의 죽음’ 연작의 일부다. 이 작업은 ‘발견된 이미지(Found Footage)’와 생성 이미지를 기반으로 삶과 죽음을 병치한 영상 작업이다. 1983년 외할아버지의 칠순 홈비디오와 2023년 외할머니의 묘지 이장 장면을 나란히 배치해 탄생과 죽음, 기념과 이별이 서로 교차하고 중첩되는 과정을 보여준다.
생일과 장례 의식에서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의례는 가부장적 질서 속 사회적 제의와 감정의 구조를 드러내는 장치다. 작가는 버려지거나 잊힌 기록을 통해 죽음은 저항할 수 없는 지속되는 현상임을 드러낸다. 기억과 상실, 관계의 변주 속에서 삶과 죽음이 하나의 타임라인 안에 공존하는 모습을 드러낸다. ‘솔로몬 그런디의 죽음: 일요일’에서 다루는 생성된 이미지의 병치는 시간의 덧없음을 시각화하는 방법이다. 특히 1983년의 축제와 2023년의 이별(이장)이 교차한다는 지점에서 사진과 영상이 가진 본질적인 ‘죽음의 속성’이 선명하게 드러난다.
송은 전시장의 지하층에 설치된 검정색 박스 형태로 지은 설치작업 바깥쪽은 사진 이미지와 가톨릭계 다양한 성상들(작가가 오랜 기간 직접 수집한)이 놓여있고, 안쪽으로 들어가면 영상을 볼 수 있는 구조이다. 마치 고대 이집트인이 생전 자신이 살았던 기록을 남겨놓듯이.
사진과 영상은 본질적으로 ‘죽음의 속성’을 내재하고 있다. 1983년 홈비디오 속 외할아버지의 모습은 생생한 삶의 시간을 쫒아가는 흔적이자 죽음의 흔적이기도 하다. 영화 이론가 앙드레 바쟁은 사진을 시간을 방부처리하는 것에 비유했다. 고대 이집트인이 육신을 보존해 죽음을 극복하려 했던 것처럼 사진도 부패하지 않는 속성을 갖고 있는 것이다.
마더 구스의 노래 ‘솔로몬 그런디(Solomon Grundy)’는 한 인간의 일생을 월요일부터 일요일까지 단 일주일이라는 압축적인 시간 속으로 밀어 넣는다. ‘솔로몬 그런디’의 가사는 탄생(월요일)에서 시작해 결혼(목요일)을 거쳐 죽음(토요일)과 매장(일요일)으로 끝난다. 노래의 마지막은 ‘그것이 솔로몬 그런디의 끝이었다’로 맺는다. 작업 속 이장은 일요일에 이루어진다. ‘솔로몬 그런디의 죽음: 일요일’에서 칠순 잔치의 기쁨과 이장의 슬픔 앞에 선 우리는 이미지 속 대상이 겪게 될 필멸을 알고 있다. 사진은 그 부재의 방식을 증명한다.
<작가 소개>
니키타 게일은 미국 알래스카주 앵커리지에서 태어나 현재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에서 활동하고 있다. 2006년 예일대학교에서 인류학(고고학 연구) 학사 학위를, 2016년 캘리포니아 대학교 로스앤젤레스(UCLA)에서 뉴 장르 전공으로 미술 석사 학위를 취득했으며, 2019년 메인주 매디슨의 스코히건 회화·조각 학교에 참여하며 작업 세계를 확장했다. 2024년 게일은 휘트니 비엔날레에서 ‘TEMPO RUBATO(STOLEN TIME)’로 벅스바움상을 수상했다. 하와이 트리엔날레(하와이, 2025), 베르겐 현대미술관(베르겐, 2025), 휘트니 비엔날레(뉴욕, 2024), 타이페이 비엔날레(타이페이, 2023), 퍼포마 비엔날레(뉴욕, 2023)를 비롯해, ICA 필라델피아(2023, 필라델피아), ICA 카네기 멜론(피츠버그) 등 전 세계 유수의 미술관 및 기관에서 개인전과 단체전에 참여해왔다. 게일의 작품은 에이커로이드 컬렉션, LA 해머 미술관, 카디스트 아트 재단, 마리엘루이제 헤셀 컬렉션, LACMA 모언 아트 콜렉티브 등 세계 유수의 기관 및 컬렉션에 소장돼 있다.
김주원은 서울예술대학교 사진과와 한국예술종합학교 미술원(전문사 조형예술과)을 졸업했다. 사진 아카이브를 텍스트, 사운드와 결합해 시간의 흐름과 이미지의 기능을 탐구해 왔다. 아티스트 듀오 ‘압축과 팽창(CO/EX)’의 멤 사진 공유 플랫폼 ‘더 스크랩(The Scrap)’의 공동 기획자로 활동하고 있다. 2019년 제10회 두산연강예술상을 수상했다. ‘과거가 과거를 부르는 밤 ’(두산갤러리 뉴욕, 2021), ‘84번 토치카에서 보낸 1년’(두산갤러리 서울, 2020), ‘허니 앤 팁’(아카이브 봄, 2017 압축과 팽창) 등 개인전과 ‘색맹의 섬’, 아트선재센터, 서울, ‘PRO-TEST’, SeMA 벙커, 서울 ‘유령팔’, 서울시립 북서울미술관, 서울(압축과 팽창), ‘서울사진축제 특별전: 멋진 신세계.’ 단체전에 참여했다.
글: 천수림
이미지 제공: 바라캇 컨템포러리, 송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