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까지의 글로벌 테크 시장이 거대언어모델(LLM)을 중심으로 한 ‘사유하는 AI’와 이를 뒷받침하기 위한 반도체 인프라 구축에 집중했다면, 2026년은 그 지능이 물리적인 몸체와 결합하는 ‘피지컬 AI(Physical AI)’ 시대의 원년으로 기록될 전망이다.
인간의 형태를 닮아 범용적 노동이 가능한 휴머노이드 로봇은 피지컬 AI 기술이 집약된 결정체로, 단순한 기술적 과시를 넘어 실제 제조 및 서비스 현장에 투입되는 ‘산업화’ 단계에 진입했다.
이러한 패러다임의 전환 속에서 대한민국의 로봇 산업 밸류체인은 글로벌 공급망 재편의 대안이자, 부품부터 완성품, 소프트웨어까지 아우르는 ‘풀스택(Full-stack)’ 파트너로서 전략적 가치를 인정받을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글로벌 공급망에서의 전략적 우위, 정부의 대규모 자금 투입, 그리고 현대차그룹의 실전 배치 로드맵 등이 맞물리며 로봇 밸류체인의 밸류에이션은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글로벌 공급망 재편과 대한민국의 전략적 위상
올해 글로벌 휴머노이드 시장의 가장 큰 변수는 미국의 ‘디리스킹(De-risking)’ 정책에 따른 공급망 재편이다. 미국은 국가 안보와 데이터 보안을 이유로 중국산 휴머노이드 소프트웨어(SW) 및 하드웨어(HW)를 공급망에서 철저히 배제하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이 과정에서 메모리 반도체, 파운드리, 고성능 배터리, 정밀 제조 역량을 두루 갖춘 한국은 서방 국가들에게 매력적인 ‘동맹국 중심 공급망’의 핵심 국가로 급부상했다. 엔비디아(NVIDIA)가 삼성전자, SK하이닉스, 현대차, 네이버 등과 AI 동맹을 결성하고 최신 GPU를 우선 공급하기로 한 배경에는, 한국이 보유한 세계적인 제조 기반과 피지컬 AI를 구현할 하드웨어 인프라가 필수적이었기 때문이다.
이에 발맞춰 산업통상자원부도 인구 감소에 따른 생산가능인구 부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AI 대전환’을 국가 과제로 설정하고, 향후 5년간 약 32조 원을 로봇 산업에 투입하기로 했다. 특히 민관 협력체인 ‘M.AX(Humanoid M.AX) 얼라이언스’를 통해 한국형 휴머노이드 생태계 구축에 속도를 내고 있다.
구글과 손잡은 현대차그룹 보스턴다이나믹스
국내 밸류체인에서 가시적인 휴머노이드 경쟁력을 보여주는 곳은 현대차그룹이다. 자회사인 보스턴다이나믹스(Boston Dynamics, 이하 BD)는 2026년을 기점으로 실험실 모델이 아닌 대량 양산 버전의 휴머노이드 ‘아틀라스(Atlas)’를 공개하며 상용화의 신호탄을 쐈다.
KB증권은 CES 2026 미팅 리포트를 통해 “2026년 BD의 휴머노이드 로봇 상용화가 가시권에 진입했으며, BD와 구글 간의 전략적 협업은 최고의 신체에 최고의 두뇌를 결합하는 구조로서 양사 모두에게 필수적인 선택”이라고 분석했다. 특히 구글은 인터넷상의 텍스트 데이터 학습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실제 물리 환경의 데이터가 절실한 상황이며, BD의 휴머노이드 플랫폼이 이 데이터를 수집하는 창구 역할을 수행하게 된다.
양산 능력에 대한 시장의 의구심도 해소되고 있다. KB증권에 따르면 “BD는 현대모비스와 같은 현대차그룹의 공급망을 활용해 액추에이터 등 핵심 부품의 대량 양산을 시작할 계획이며, 2030년까지 현대차그룹 수요만으로도 연간 3만 대 이상의 판매가 가능할 것”으로 전망된다.
또한 KB증권은 “보안 이슈로 인해 중국산 공급망을 철저히 배제한다는 원칙 하에 현대차, 기아, 현대모비스, 현대오토에버 등 그룹사 전반이 휴머노이드 상용화의 최대 수혜를 입을 것”이라는 분석을 내놨다.
피지컬 AI의 핵심, ‘물리 데이터’ 파이프라인의 구축
휴머노이드가 범용 노동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자율이동, 정밀제어, 언어소통이라는 세 가지 역량이 필수적이다. 메리츠증권 김준성 연구원은 현대차그룹이 이번 CES에서 이 세 가지 중 정밀제어 개발 측면에서 보스턴다이나믹스의 방향을 구체화했다고 분석했다.
김 연구원은 “현대차그룹은 아틀라스의 제조 현장 투입을 위해 대규모 데이터 학습 시설인 ‘현대 로보틱스 메타 플랜트 애플리케이션 센터(RMAC)’를 구축했다”며, 이는 “물리 AI 개발을 위한 일종의 ‘데이터 팩토리(Data Factory)’”라고 정의했다. 2026년 8월 가동 예정인 RMAC는 로봇이 실제 공장(SDF, Software Defined Factory)에서 마주할 다양한 물리적 상호작용 데이터를 수집하고 학습시키는 중추 역할을 한다.
김 연구원은 “전 세계 계열사 양산 거점을 확보한 현대차는 스케일링 법칙(Scaling Law)에 따라 더 많은 양산 거점을 SFA로 전환해 더 많은 데이터를 확보할 것”이라며, “이를 바탕으로 RMAC에서 훈련시켜 로봇의 지능을 고도화하며 아틀라스의 상업성 강화를 추진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어 “투자자 입장에서 누가 ‘진짜’인지를 구분하는 기준은 단 하나, 누가 더 많은 물리 데이터 파이프라인을 갖고 있는지 여부”라고 짚었다.
결국 2026년 이후의 로봇 투자는 ‘누가 실제 현장에 배치 가능한 수준의 하드웨어를 생산하는가’와 ‘누가 그 기기를 운영할 양질의 물리 데이터를 확보했는가’에 달려 있다. 국내 산업이 이 두 가지 질문에 대해 얼마나 명확한 답을 제시할 수 있을지, 그 여부가 곧 ‘K-휴머노이드 밸류체인’의 지속 가능한 가치로 이어질 전망이다.
국내 휴머노이드 3대 핵심 밸류체인 투자처, 부상하는 국내 기업들
2026년 휴머노이드 산업의 급격한 성장이 예고됨에 따라 자본시장에서도 이를 효율적으로 담아내기 위한 투자 상품이 등장했다.
2026년 1월 6일 상장한 ‘TIGER 코리아휴머노이드로봇산업 ETF’는 국내 휴머노이드 ‘풀스택’ 밸류체인에 집중 투자하는 패시브 ETF다. 기존의 광범위한 IT·플랫폼 기업들을 과감히 배제하거나 비중을 최소화하고, 휴머노이드 판매에 따라 즉각적인 매출이 발생하는 ‘Pure’한 로봇 기업 15개를 엄선한 상품이라는 점에서 차별화를 뒀다.
휴머노이드 산업의 밸류체인은 크게 세 가지 영역으로 분산되어 있으며, 국내 산업은 각 영역마다 경쟁력 있는 기업군을 보유하고 있다.
먼저, 원가의 60~70%를 차지하는 핵심 부품은 로봇의 관절 역할을 하는 액추에이터와 감속기 분야다. 이 분야는 국내에서 에스피지, SBB테크 등 정밀 감속기 제조사와 하이젠알앤엠, 로보티즈, 삼현 같은 모터 및 액추에이터 전문 기업들이 주축을 이루고 있다.
로봇 제조는 휴머노이드 본체를 설계하고 조립하는 영역이다. 삼성전자의 지분 투자로 주목받은 레인보우로보틱스, 협동 로봇 강자 두산로보틱스, 그리고 LG전자의 파트너사인 로보스타 등이 포진해 있다.
이 밖에도 소프트웨어와 관제 영역은 로봇의 두뇌와 운영 시스템을 담당한다. 현대차그룹의 소프트웨어 중심인 현대오토에버와 네이버의 로봇 제어 기술 등이 이 영역의 핵심 가치를 형성한다.
미래에셋은 각 기업의 핵심 부품 분야에서 국내 기업들의 약진이 두드러진다고 짚었다.
로보티즈는 모터, 감속기, 제어기를 통합한 ‘다이나믹셀’ 액추에이터를 통해 부품부터 완제품까지 이어지는 수직 계열화를 완성했다. 2025년 OpenAI에 ‘AI 워커’를 공급한 데 이어 CJ대한통운에 휴머노이드를 실전 배치하며 기술력을 입증했다.
하이젠알앤엠은 국내 유일의 액추에이터 솔루션 제공업체로서 대기업들과 9개의 프로젝트를 동시 진행 중이다. 협동 로봇과 휴머노이드를 아우르는 42종의 맞춤형 액추에이터 포트폴리오를 확보했다.
에스피지는 일본산 대비 가격 경쟁력(20~50% 저렴)과 압도적인 납기 대응력을 바탕으로 레인보우로보틱스에 감속기를 100% 독점 공급하고 있다. 중국 경쟁사 대비 정밀도를 2배 높이며 글로벌 공급망 재편의 핵심 수혜주로 꼽힌다.
삼성전자가 지분 투자한 레인보우로보틱스는 삼성그룹의 자동화 전략을 수행하는 핵심 병기로 거듭났다. 주력 모델인 ‘RB-Y1’은 삼성전자와 토요타 등에 공급되며 올해 100대 이상의 판매고를 기록할 전망이다. 특히 삼성그룹 내 누적 매출이 2024년 3분기 14.5억 원에서 2025년 3분기 68.8억 원으로 4배 이상 급증하며 가시적인 성과를 내고 있다. 삼성디스플레이의 공정 특화 로봇 개발, 삼성중공업과의 조선 자동화 MOU, 삼성웰스토리의 급식 로봇 도입 등 그룹 전반이 레인보우로보틱스의 거대한 테스트베드이자 시장이 되고 있다.
현대오토에버는 로봇과 공장을 연결하는 ‘디지털 뇌’를 공급한다. 하드웨어의 확산은 필연적으로 이를 관리할 소프트웨어 인프라의 가치를 높인다. 현대오토에버는 현대차그룹 메타플랜트(HMGMA)를 중심으로 로봇 관리, 데이터센터, 스마트팩토리 최적화를 전담하며, 공장과 로봇, 클라우드를 연결하는 디지털 운영체제(OS)를 구축하고 있다.
이 ETF는 이 같은 기업들 가운데 LLM 기반의 유사도 평가 모델을 통해 종목을 선정하며, 레인보우로보틱스, 로보티즈, 두산로보틱스, 에스피지 등을 핵심 비중으로 편입하고 있다. 특히 개별 종목의 비중 제한(15% Cap)과 소프트웨어 업종에 대한 별도 캡 적용을 통해 포트폴리오의 안정성과 산업 본연의 성장성을 동시에 추구한다.
정의현 미래에셋자산운용 ETF운용본부장은 “피지컬 AI 시대에 휴머노이드 로봇은 AI 기술이 물리적 실체와 결합하는 핵심 산업”이라며, “한국은 부품부터 소프트웨어까지 풀스택 경쟁력을 갖춘 만큼, 이 ETF가 K-로봇 산업 성장의 수혜를 직접적으로 담는 수단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문화경제 김예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