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문화회관 세종미술관에서 성황리에 개최 중인 ‘르네상스에서 인상주의까지: 샌디에이고 미술관 특별전’이 단순한 감상을 넘어 거장들의 작품 속 ‘숨겨진 비화’를 전격 공개하며 관람객들 사이에서 이른바 ‘N차 관람’ 열풍을 일으키고 있다.
이번 전시는 최첨단 과학 기술인 X선 촬영과 적외선 분석을 통해 캔버스 아래 수세기 동안 잠들어 있던 비밀을 통해 예술가의 고뇌와 시대 상황을 생생하게 증언한다. 대표작 5점에 숨겨진 ‘미술 탐정’ 스토리는 한 편의 추리 소설을 보는 듯한 지적 유희를 선사한다.
캔버스 아래 숨겨진 거장들의 비밀 (Best 5)
페르메르의 실내 풍경화에 영감을 준 선구자 프렐의 이 작품에는 서글픈 비밀이 있다. 1928년 실시된 분석 결과, 배경의 어두운 공간은 원래 병든 여인의 임종을 연상시키는 장면이 그려져 있었으나(사진 참조) 20세기 초 미술 시장에서 ‘판매에 불리하다’는 상업적 이유로 인위적으로 덧칠되어 가려졌음이 밝혀졌다. 작품 손상의 우려로 원화는 복원하지 않고 검은 공간은 그대로 남게 되었는데, 깊은 어둠 속의 비화가 고요한 슬픔의 깊이를 더한다. 검은 공간 속으로 사라져 버린 여인의 모습을 상상하며 감상의 묘미를 즐겨보자
아메데오 모딜리아니(Amedeo Modigliani)의 ‘파란 눈의 소년’에서 모딜리아니는 붓 대신 손가락으로 직접 물감을 문질러 질감을 다듬는 독특한 기법을 사용했다. 이 과정에서 그의 손끝은 캔버스에 고스란히 남았고, 미세한 지문의 흔적 또한 이 작품의 일부가 되었다. 화면 좌측 하단의 이 지문은 오늘날 어떤 첨단 위조 기술로도 흉내 낼 수 없는 모딜리아니만의 ‘생체 서명’이 되어 진품의 가치를 확고히 하고 있다.
X선 촬영 결과, 이 작품에서는 성 베드로의 눈의 각도와 손의 위치를 여러 번 수정한 ‘펜티멘티(Pentimenti, 화가의 수정 흔적)’가 다수 발견되었다. 이는 거장이 완벽한 구도와 베드로의 극한 감정 그리고 종교적 숭고함을 표현하기 위해 치열하게 고민했음을 증명한다. 특히 복원 과정에서 400년 된 바니시 층 아래 숨겨져 있던 작은 ‘막달라 마리아’ 형상이 발견되어 세계적인 화제를 모은 바 있다.
한때 안토니오 디 벨리스(Antonio di Bellis)의 ‘골리앗의 머리를 든 다윗’은 작품의 하단 4분의 1이 검은 물감으로 덮여 있었다. 골리앗의 참수 장면이 지나치게 참혹하다는 이유로 이를 가려버린 것이다. 1980년대 X선 촬영을 통해 가려졌던 골리앗의 머리와 검이 복원되면서, 비로소 승리 뒤에 찾아온 젊은 다윗의 복잡미묘한 긴장감이 온전히 완성되었다.
나폴레옹 전쟁 시기, 값비싼 캔버스를 구하기 어려웠던 고야는 정치적 격변에 따라 ‘지워져야 했던’ 인물의 초상화 위에 새로운 인물을 덧그리곤 했다. 정밀 스캔 결과, 화려한 군복 아래에는 이전 시대 관리의 훈장과 복식 등 ‘유령’ 같은 형상들이 숨겨져 있는데, 이는 당시 스페인의 불안정했던 정세를 드라마틱하게 보여준다.
과학적 분석으로 드러난 이 뒷이야기들은 관람객들에게 한 편의 추리 소설을 읽는 듯한 지적 유희를 제공하는 동시에, 고전 미술에 대한 심리적 장벽을 허문다.
전시기획사인 가우디움 관계자는 ‘이번 전시는 단순히 완성된 결과물을 감상하는 것이 아니라, 수백 년 전 캔버스 앞에 섰던 화가의 숨소리와 시대의 공기를 생생하게 체험하는 과정’이라며, ‘과학의 힘으로 발견된 거장들의 의도와 붓놀림을 접하는 순간, 관람객들은 예술이 가진 영원한 생명력과 인문학적 깊이를 다시금 발견하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번 전시는 거장들이 숨겨둔 비밀 코드를 직접 확인하며 예술을 입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단 한 번의 기회가 될 것이다.
<문화경제 안용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