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절없는 연극의 세계, 다시 한번 관객 곁에 서는 불사의 고전... 국립극단 '삼매경'

한국 연극계의 이단아 이철희가 그리는 미완의 인간 숙명론... 지난해 초연 연이은 매진, 올해의 연극 베스트3 수상

안용호 기자 2026.02.04 10:45:36

2025년 초연 공연사진. 사진 제공=국립극장

관객이 부르고 평단이 사랑한 그 이름, 연극 <삼매경>이 다시 한번 무대에 오른다. 국립극단(단장 겸 예술감독 박정희)은 내달 12일 명동예술극장에서 함세덕 원작, 이철희 재창작·연출의 <삼매경>을 개막한다.

<삼매경>의 재공연은 한국 희곡이 가진 불사의 힘과 한국 연극의 진가를 다시 무대 위에 새기는 작업이다. 국립극단은 대한민국 최대 연극 제작단체로서 민족 문화 창달이라는 사명 아래 ‘한국적 고전’을 탄생시키고자 지난해 <삼매경>을 초연했다. 한국 연극사에 전설적인 고전으로 기록된 작품에 현대적 감각을 더해 소생하는 동시에, 과거 원작 <동승>(1991, 박원근 연출)으로 연극계 일약 스타덤에 올랐던 지춘성 배우가 주역으로 나서며 혼신을 다한 연기에 연일 객석을 채운 관객과 평단의 호평이 쏟아졌다.

<삼매경>은 한국 연극의 태동기라 할 수 있는 근현대사가 발아한 우리 희곡에 현대적 감각을 입혀 무대에서 영원히 숨 쉬는 ‘대한민국 창작극’의 표본이 되고자 다시 한번 관객을 만난다. 특히 2026년을 새로운 레퍼토리 발굴에 원년의 해로 삼은 국립극단은 레퍼토리 검증에 나서는 첫 공연으로 <삼매경>을 꼽았다. 희곡 원작에서부터 재창작을 거쳐 무대화까지, 그야말로 우리 예술가들이 만든 고유한 창작극으로서 한국 연극의 저력이 여실히 드러나는 작품이라는 이유에서다.

2025년 초연 공연사진. 사진 제공=국립극장

<삼매경>은 한국 낭만주의 희곡의 시작이자 완성으로 평가받는 함세덕 극작의 『동승』을 연출가 이철희가 재창작했다. 한국 연극사를 대표하는 문인 함세덕의 대표작으로 일컬어지는 <동승>은 1939년 유치진 연출로 초연해, 그해 동아일보 주최 제2회 연극대회 극연좌상(현 동아연극상의 전신)을 수상했다. 전통 연극의 미학적 가치를 현대적 맥락에서 재조명하는데 탁월한 연출력으로 벽산희곡상, 서울예술상, 백상예술대상을 석권한 이철희는 원작 『동승』의 뼈대 위에 새살을 입혀 <삼매경>의 새 생명을 부여했다.

이철희 연출은 한국 근현대사의 휘모는 태동력을 무대에 고스란히 풀어놓으면서도 “고전에 대한 저항”을 사조로 원작 『동승』의 심상을 새롭게 표현하고, 분절하거나 파열하기도 하면서 시대의 연극예술을 그려냈다. 평단 역시 “원작의 확장, 증폭과 재창조의 모범”이라는 심사평에 이어 “한국 연극에 유의미한 방향성을 제시한 작품”이라는 논평을 덧붙이며 2025년 한국연극평론가협회 올해의 연극 베스트3에 <삼매경>을 선정했다.

 

올해 새롭게 만나는 <삼매경>은 단순한 재연에 그치지 않고 작품의 철학적 주제와 예술적 형식을 관객의 감각 속에서 다시 새롭게 확인한다. 시대의 정서와 무대의 호흡을 불어넣는 방식으로 작품의 생명력을 이어가겠다는 창·제작진의 의지다. 정적인 미학 속에 진정성과 감정의 진폭을 만들어 내는 극의 흐름은 그대로 유지하되 무대의 구성과 리듬, 조명과 음향, 배우의 움직임을 더욱 정교하게 가다듬는다. 절제된 움직임과 시적 언어, 반복과 변주의 구조 속에서 마치 명상에 드는 것처럼 관객이 작품의 호흡에 완전히 동화될 수 있도록 완성도를 높이는 데에 공을 들일 계획이다.

<삼매경>은 연극적 상황에 극단적으로 몰입하는 배우의 의식과 비로소 황홀한 경지에 이르는 물아일체의 여정적 서사 구조를 앞세워, 관객에게 고뇌하는 인간으로서 스스로를 구원하고자 하는 의지를 묻는다. 35년 전 자신의 역할을 실패라고 여기며 연극의 시공간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는 배우는 결국 오른 저승길에서 삼도천으로 뛰어들어 과거와 현재, 연극과 현실이 혼재된 기묘한 ‘삼매경’을 경험한다.

이철희 연출은 “<삼매경>은 누군가의 특정한 이야기가 아니다. 삶을 수행하듯 견디고 버텨 온 모든 사람의 내적 기록”이라며 “지속적으로 무엇인가 이뤄내기를 요구받는 사회에서 우리는 끊임없이 자신을 단련하고 증명해야 하는 존재로 살아간다. 그 과정에 겪는 실패는 결코 사라지지 않고 개인의 내면 깊숙한 곳에서 반복적으로 호출되는데, <삼매경>은 이 고통을 극복하려는 영웅 서사가 아니라 그럼에도 자신의 존재를 끝내 감당하려는 우리 모두의 윤리적인 태도”라고 작품의 보편성을 말했다.

<삼매경>은 불완전한 인간이, 미완의 인생을 견디게 하는 힘과 다시 살아가는 존재의 의지를 탐구하는 ‘동시대 사유극’을 표방한다. 연극과 배우의 업(業)을 주요 제재로 삼지만, 방황과 좌절을 경험한, 삶의 어느 한 시절을 치열하게 살아낸 사람이라면 누구나 공감과 동요가 이는 인간의 실존 의지를 담아냈다.

이를 위해 작품은 극적인 사건이나 외형적 서사를 부각하기보다 배우의 몸과 호흡에 무게를 두고 관객에게 내면 깊은 곳, 심연의 세계로 이동하는 연극적 경험을 제시한다. 특히 배우의 신체성이 극대화된 방식의 연극적 언어가 무대에서 풀어진다. 실제로 배우들은 각자의 역할 이외에도 극이 아스러지는 사계절과 ‘언 땅에 부는 초록’, ‘고군분투하며 흐르는 시냇물’, ‘바람의 울리는 풍경’, ‘겨울의 딱새’ 등 자연물을 온몸으로 표현한다.

스물여섯에 만난 <동승>의 어린 불자 ‘도념’을 세월을 건너 다시 이순의 나이에 연기하는 지춘성을 비롯해, 14명의 배우가 연극의 무아지경을 선사한다. 지춘성 배우는 1991년 박원근이 연출한 <동승>으로 당해 제15회 서울연극제 남우주연상을 수상하고 이듬해 제28회 백상예술대상 연극 부문 인기상을 받았다. <삼매경>은 극중극 형태로 연극과 현실의 경계를 넘나들며, 실제로 “영원한 동승”이라 불리었던 그 수식어를 배우의 인생에 평생의 꼬리표이자 숙명적 굴레로 비춰낸다.

2025년 한국연극평론가협회 올해의 연극 베스트3 시상식 지춘성 배우 및 이철희 연출. 사진 제공=국립극장

지난 시즌 한 언론 인터뷰에서 “배우는 천형(天刑)”이라 밝혔던 지춘성은 욕망이 들끓고 과거의 실패에 묶여 신음하는 캐릭터에 그 자신을 그대로 투영하면서, <삼매경>을 시대의 흐름을 고스란히 품은 한 편의 연극 연대기이자 자전적 기억의 편린으로 탄생시켰다.

배우 지춘성의 기억 속에 조각의 틈을 내고, 주마등을 거쳐 삶은 아름다운 미완성이라는 진리에 함께 도달하는 고용선, 곽성은, 서유덕, 이강민, 정주호, 조성윤, 조의진, 홍지인이 초연에 이어 이번에도 관객에게 깊은 사유와 몰입의 순간을 선사한다. 새롭게 합류한 박경주, 박성민, 유재연, 이원희, 이창현은 배우로서 각자가 지닌 여신한 감각과 작품해석으로 무대에 또 다른 온도를 부여하며 극의 정서적 밀도와 긴장감을 더할 계획이다.

관객의 성원에 힘입어 다시 만나는 공연인 만큼 관객을 위한 행사도 준비돼 있다. 2월 19일과 20일에는 <삼매경>의 연출과 배우가 관객과 직접 만나 함께하는 <삼매경> 희곡 읽기를 진행한다. 3월 28일부터 30일까지는 한국수어통역을 비롯해 한글자막, 음성해설, 무대모형 터치투어, 이동지원을 운영하는 접근성 회차가 진행된다. 3월 15일과 29일 공연 종료 후에는 이철희 연출과 지춘성 배우 등이 참석하는 예술가와의 대화가 예정되어 있다. 행사 참여 방법과 공연 운영에 대한 상세 내용은 추후 국립극단 홈페이지 또는 인스타그램(@ntckall) 등 공식 SNS에서 확인할 수 있다.

다시 돌아온 <삼매경>은 4월 5일까지 이어진다. <삼매경>의 유료 티켓 2장을 소지한 관객에게는 50%의 ‘세 번 봐서 삼매경’의 할인을 제공하며, 지난해 초연과 올해 재연을 기념해 2025~2026년 연극을 포함한 뮤지컬, 무용, 연주회 등 모든 공연 유료 티켓 소지자에게는 ‘올해도 공연 삼매경’의 30% 할인도 준비돼 있다. 국립극단의 제작 공연이 아니어도 ‘올해도 공연 삼매경’의 할인 적용은 가능하다.

 

<문화경제 안용호 기자>

맨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