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한책임 리모델링’과 ‘투명 계약’을 앞세워온 한샘이 정작 계약 분쟁 국면에서는 세부 상품명 등 핵심 정보가 비어 있는 전자계약서도 문제가 없다는 입장을 내놨다. 전자계약서를 책임의 기준으로 내세웠던 홍보와 분쟁 이후의 설명 사이에 뚜렷한 괴리가 확인되고 있다.
‘무한책임 리모델링’ 홍보한 한샘, 실제 계약 구조는 달랐다
그간 한샘은 홈 리모델링 시장의 고질적인 문제로 지적돼 온 ▲불투명한 견적 ▲계약 이후 공사비 증액 ▲책임 회피성 하자보수를 구조적으로 해소하겠다며, 이른바 ‘무한책임 리모델링’ 시스템을 전면에 내세워 왔다.
한샘이 설명한 ‘무한책임 리모델링’은 상담·견적·계약·시공·완공·하자보수에 이르는 전 과정을 본사가 책임지는 구조로, △자재 정가제 △전자계약서 △정품 자재 △직접 시공을 핵심 축으로 설계됐다. 불투명한 견적과 책임 회피 관행을 제도적으로 차단하겠다는 약속이었다.
함께 제시된 ‘자재 정가제’ 역시 같은 맥락이다. 리모델링 과정에서 자재 가격을 사전에 공개함으로써, 계약 이후 추가 비용이 발생하는 관행을 차단하겠다는 취지다. 전자계약서와 자재 정가제가 결합돼, 고객이 ‘무엇을 얼마에 계약했는지’를 분쟁의 여지 없이 기록한다는 설명이다.
한샘은 전자계약서를 통해 사용 자재와 시공 범위 등 계약 내용을 명확히 기록해 사후 분쟁을 예방하고, 이를 통해 고객 권리를 보호한다고 홍보해왔다. 즉, 전자계약서는 단순한 절차적 수단이 아니라, 고객이 무엇을 계약했고 누가 어디까지 책임지는지를 특정하기 위한 핵심 문서다.
그러나 최근 불거진 인테리어 계약 분쟁 과정에서 확인된 전자계약서에는 세부 상품명이 기재되지 않은 채 ‘공란’으로 남아 있었다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전자계약서의 실효성 자체를 둘러싼 근본적인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전자계약서에 기재된 자재와 시공 내역은 ‘무한책임 리모델링’으로 보호된다”는 홍보와 달리, 정작 책임의 대상이 특정되지 않은 전자계약서가 실제 계약에 사용되고 있었다는 점에서, 홍보와 운영 현실 사이의 간극이 적나라하게 드러난 셈이다.
이에 대해 한샘 측은 공식 답변에서 “분쟁이 생긴 계약은 상세 품목이 명확히 기록된 지류 계약서가 존재하므로, 고객이 품목을 오인지하거나 발주에 착오가 생길 가능성은 없다”며, 해당 계약을 전자계약 시스템 전체의 구조적 결함으로 확대 해석하는 것에는 단호히 선을 그었다.
또 “상세 품목란을 대리점이 직접 입력하도록 운영한건 고객이 이해하기 어려운 내부 상품 코드 대신, 실제 설치될 상품의 명칭을 고객이 인지할 수 있도록 기재하기 위한 현장 중심의 조치”라며, 이를 시스템의 허술함이 아닌 고객 가독성을 높이기 위한 ‘운영상의 선택’이라 주장했다.
한샘은 전자계약서를 전제로 한 ‘무한책임 리모델링’을 강조해왔지만, 실제 분쟁이 발생하자 “지류 계약서에 기재돼 있으니 문제 없다”는 논리로 전자계약서의 필요성 자체를 부정했다.
‘무한책임 리모델링’의 또 다른 축으로 제시된 자재 정가제 역시 마찬가지다. 전자계약서에 세부 상품명이 기재되지 않아도 된다면, ‘무엇을 얼마에 계약했는지’는 계약서상에서 확인될 수 없다.
결과적으로 전자계약서는 있으나 마나 한 절차적 장치에 불과하다는 점을 한샘 스스로 사실상 인정한 것과 다르지 않다. ‘무한책임’을 떠받쳐야 할 기본 전제들을 한샘이 스스로 무너뜨리면서, ‘무한책임’이라는 약속이 실체 없는 선언에 그쳤다는 점이 드러난 셈이다.
문제의 핵심은 책임의 범위가 특정되지 않아도 되는 전자계약서 시스템을 전제로 ‘무한책임’을 약속해 왔다는 구조적 모순이다. 전자계약서에 책임질 대상이 명시되지 않아도 문제가 없다면, ‘무한책임’이라는 표현은 소비자를 기망한 허위·과장 광고라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업계에서는 전자계약서의 본래 목적이 계약 내용의 표준화와 분쟁 예방에 있는 만큼, 핵심 정보가 비어 있는 전자계약서를 ‘문제없다’고 보는 시각 자체가 전자계약서 도입 취지와 어긋난다는 지적도 나온다.
‘무한책임’ 약속할 땐 언제고, 이제 와서 대리점법 ‘탓’
이 같은 계약 구조는 김유진 한샘 대표가 취임 이후 강조해온 경영 철학과 선명하게 충돌한다.
김 대표는 2023년 취임 당시 “장기적으로 수익이 동반된 성장”을 강조하며, 단기적인 비용 절감이나 수익성 개선 없는 외형 성장, 무리한 매출 확대를 지양하겠다고 선언한 바 있다. 이는 책임 있는 구조 개선을 통해 고객 신뢰를 축적해 나가겠다는 의미로 해석됐다.
그러나 이번 소비자 분쟁은 한샘이 ‘무한책임’과 ‘투명 계약’을 전면에 내세워 매출을 확대해온 동시에, 계약 분쟁 국면에서는 책임을 최소화하는 논리와 구조로 대응해 왔다는 이중적 면모를 그대로 드러냈다.
실제 한샘은 “본사가 대리점의 계약 내용을 실시간으로 전수 검수하거나 특정 값의 입력을 강제하는 것은 대리점법(영업간섭 금지) 및 공정위 지침에 따라 엄격히 제한된다”며, 법적 테두리 내에서 대리점의 자율성을 존중하며 시스템을 운영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대리점법이 금지하는 것은 대리점의 가격 결정이나 영업 방식에 대한 부당한 개입이지, 소비자와 체결되는 전자계약서에 세부 상품명 등 핵심 계약 정보가 입력되지 않으면 계약 자체가 성립되지 않도록 하는 ‘계약 요건 설정’까지 제한하는 규정은 아니다.
특히 전자계약서를 소비자 보호와 분쟁 예방을 위한 제도라고 홍보해 온 상황에서, 핵심 계약 정보가 공란인 상태로도 계약이 체결될 수 있는 구조를 ‘대리점 자율성 존중’으로 설명하는 것은 이번 사안과 무관한 법리를 방패로 삼은 해명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오히려 현재 구조는 본사가 계약 시스템을 설계·운영하면서도, 분쟁이 발생하면 “대리점 자율성”과 “법적 제한”을 내세워 책임을 대리점과 소비자에게 떠넘길 수 있도록 짜여 있었던 것 아니냐는 비판으로 이어진다.
결국 ‘무한책임 리모델링’을 앞세워 계약을 확대해온 한샘은 분쟁이 발생하자 “대리점법 때문에 어쩔 수 없다”는 설명으로 스스로 한발 물러섰다. 책임을 약속할 때와 책임을 져야 할 때의 기준이 달랐다는 점이 계약 구조를 통해 확인된 셈이다.
그 결과 김유진 대표가 강조했던 ‘책임 있는 성장’은 계약의 출발점인 문서 단계에서부터 책임을 특정하지 못한 채 작동해 온 홍보성 구호에 불과했다는 사실이 분명해졌다.
이에 대해 한샘은 “공란 상태로 계약이 체결될 수 있다는 점은 개선 여지가 있어, 일정 분량 이상의 글자가 입력돼야 계약 체결이 가능하도록 하는 방안 등을 검토 중”이라며 “대리점에 대한 지속적인 안내와 독려를 이어가겠다”고 밝혔다.
<문화경제 박소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