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데백화점 본점 지하 입구에 들어서자 형형색색의 선이 꼬인 듯 독특한 형태의 작품을 바로 마주했다. 이게 끝이 아니었다. 백화점 층층을 돌아다닐 때마다 마치 보물을 발견하듯 여러 조형, 평면 작품들을 만날 수 있었다. 이 작품들의 주인공은 정그림·이건우 작가로, 올해 롯데백화점의 ‘아트 VM 프로젝트(Art Visual Merchandising Project)’의 본격 시작을 알리는 주역이기도 하다.
아트 VM 프로젝트는 쇼핑이 핵심인 백화점에서 예술의 경험을 동시에 소비하도록 하는 새로운 시도로, 본점이 1호점으로 낙점됐다. 특정 전시 공간을 찾아가야만 볼 수 있는 예술이 아닌, 일상생활의 쇼핑 동선에서 자유롭게 작품을 감상, 경험할 수 있도록 한 것이 핵심이다.
특히 시즌별 마케팅을 전개하는 백화점의 특색에 맞춰 아트 VM 프로젝트 또한 색깔을 맞춘 작품들을 선보인다. 올해 아트 VM 프로젝트의 연간 테마는 ‘MOVE: IN TRANSIT(감각의 여정)’으로, 아트가 새로운 감각을 일깨우듯 쇼핑과 예술을 결합해, 새로운 쇼핑 경험을 제안하겠다는 의지를 담았다. 이에 따라 정그림 작가는 본점이 가진 다양성을 표현한 입체 조형 작품 11점, 이건우 작가는 바람을 주제로 한 ‘바람’ 시리즈 대표작 8점을 선보인다.
이 프로젝트를 담당하고 있는 롯데백화점 디자인부문 김선욱 치프리더를 만났다. 2012년 롯데백화점에 공식 입사한 그는 본사 VMD팀에 몸을 담았다가 점포 근무, 롯데GFR을 거쳐 현재 디자인부문 VMD팀에서 근무하고 있다.
- 현재 소속된 VMD팀과 팀 내에서 어떤 역할을 맡고 있는지 간단히 소개 부탁합니다.
“저는 롯데백화점 디자인부문 VMD팀에서 근무하고 있는 김선욱 치프리더입니다. VMD팀은 백화점에서 상품, 브랜드를 보다 효과적, 매력적으로 보일 수 있도록 시즌별 공간을 기획, 연출합니다. 저를 포함해 12명의 팀원이 구성돼 있고요. 현재는 크리스마스 시즌 준비와 함께 올해 새롭게 시작한 아트 VM 프로젝트의 기획, 운영을 맡고 있습니다.”
- 코로나19 사태 당시 미술 시장이 뜨겁게 달아오르며 백화점 업계에서도 관련해 여러 마케팅이 이어졌었는데요. 팬데믹이 끝나자 이 움직임이 주춤했었죠. 이 가운데 롯데백화점이 올해 새롭게 아트 VM 프로젝트를 시작한 배경은?
“현재 본점에서 진행하고 있는 아트 VM 프로젝트는 백화점 쇼핑 공간의 격을 한 단계 높여 타점과 차별화를 두자는 취지에서 시작됐습니다. 그 일환으로 지난해 백화점 내 쇼핑 동선 곳곳에 유럽 하이엔드 가구와 함께 마네킨을 연출하는 VM 기획을 진행했고요. 이어 가을엔 박홍구 작가와 협업해 작품과 상품을 함께 연출하며 공간을 꾸렸습니다.
이 과정에서 백화점 공간에서도 예술 작품이 충분히 매력적인 연출 요소가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확인했습니다. 이 경험을 계기로 올해부터 본격적으로 작품 자체에 집중하는 아트 VM 프로젝트를 기획, 전개하게 됐습니다.”
- 롯데백화점은 명동을 예술의 물결에 휩싸이게 하는 ‘LTM 아트 페스타’나 내부 갤러리를 활용한 전시 등 다양한 아트 프로젝트를 꾸준히 전개해 왔는데요. 아트 VM 프로젝트의 차별점은?
“갤러리 전시는 백화점 내 아트 부문을 전담하는 아트콘텐츠팀이 도맡아 해왔고요. 지난해 LTM 아트 페스타의 경우 아트콘텐츠팀과 VMD팀이 협업해 전개했어요. 아트콘텐츠팀은 전문 전시 기획 및 작가 섭외 등에 폭넓은 인프라와 전문성을 갖췄고, VMD팀은 백화점 공간의 효과적 연출에 특화돼 있죠. 두 팀의 협업으로 시너지 효과를 내고자 했고, 이 부분이 잘 맞아떨어져 LTM 아트 페스타에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갖고 방문했습니다.
아트 VM 프로젝트의 경우 백화점 공간에 대한 이해를 기반으로, 백화점의 연간 시즌 키워드에 보다 특화된 연출을 선보이고자 했습니다. 또 LTM 아트 페스타가 여러 작가의 작품을 층별로 다양하게 소개하는 장이었다면, 아트 VM 프로젝트는 백화점의 시즌 테마를 기반으로 두 작가의 작품 세계에 집중했습니다. 이를 통해 통일감 있는 공간을 연출하는 데 주안점을 뒀습니다. 즉, 단순한 작품 전시를 넘어 백화점 공간 안에서 시즌 메시지와 작가의 작품 세계가 함께 어우러지는 프로젝트라는 점이 차별점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 아트 VM 프로젝트의 첫 시작으로 정그림, 이건우 작가를 섭외한 배경은?
“올해 롯데백화점의 연간 시즌 키워드는 ‘MOVE(무브)’입니다. 봄 시즌은 그 중에서도 ‘Fresh Move(프레시 무브)’가 테마로, 겨울을 지나 따뜻한 봄, 즉 새로운 계절로 깨어나는 도약과 움직임의 에너지를 담고 있죠.
이러한 맥락에서 전시명도 ‘Emerging Movement(움직임의 기척)’로 기획했고, 이에 맞는 작가들을 섭외하려 했어요. 특별히 작가 연령대나 작업 장르에 제한을 두진 않았습니다. 전시 현장도 돌아다니고, SNS도 탐색하고, 여러 인터넷 사이트도 찾아봤죠. 이 과정에서 정그림, 이건우 작가의 작업을 발견했어요.
이건우 작가는 평면, 정그림 작가는 조형 작업으로 각자의 작업 방식은 다르지만 두 작가 모두 밝은 색감과 긍정적인 에너지를 담고 있는 작업 세계를 펼치는 점이 인상적이었습니다. 봄이 시작될 때 느껴지는 조용한 변화와 움직임의 분위기를 전달할 수 있는 작업이라는 생각도 들었고요. 이러한 색감과 분위기가 롯데백화점이 봄 시즌에 보여주고자 하는 이미지와도 잘 어울린다고 판단했습니다. 또한 작품을 바라보는 관객의 상상에 따라 각기 다른 ‘움직임’이 연상된다는 점도 흥미로운 요소라고 생각했습니다.”
- 참여 작가들의 반응은 어땠나요?
“프로젝트 특성상 많은 고객이 다니는 백화점 동선에 작품이 설치되다보니 작품 손상에 대한 부분에 대한 우려가 있을 수 있는 환경이었습니다. 또 하나의 공간에 작품이 모두 설치되는 게 아니라, 층마다 배치되기에 전시에 오롯이 집중하기 어려운 환경이기도 하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꺼이 함께해준 작가들에게 매우 감사합니다.
이것이 가능했던 건 두 작가의 열린 마음에 있습니다. 특히 롯데백화점 본점이 수많은 고객이 방문하는 공간인 만큼 작품이 많은 사람들에게 자연스럽게 노출, 소개될 수 있다는 점에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습니다. 또한 전문 전시를 찾는 관람객을 비롯해, 백화점을 찾은 일반 고객층까지 더 다양한 사람들이 일상 속에서 편하게 작품을 만날 수 있다는 점에서도 의미 있는 전시 경험이라는 반응을 보였습니다.”
- 고객의 반응도 궁금합니다.
“상업적인 연출이 아닌 작품 중심의 전시이다 보니 부담 없이 자연스럽게 작품을 감상하는 모습이 눈에 띄어 인상적이었습니다. 인증샷을 찍는 고객도 많고요. 백화점을 찾는 외국인 고객도 고려해 전시 서문과 캡션의 영문 버전도 함께 기입해뒀습니다. 기획자로서는 이처럼 공간에 잠시라도 머물러 작품을 바라봐주는 고객의 모습을 볼 때 가장 큰 보람을 느낍니다.”
- 백화점 내부에 설치한 작품 선정 기준은?
“이번 아트 VM 프로젝트엔 총 19점의 작품을 선보이는데요. 백화점의 특성에 맞춰 너무 가벼워 보이지 않고 무게감을 잡아주면서 고급스러운 작품 이미지에 집중했습니다. 또 시각적인 포인트가 될 수 있는 작품을 중심으로 전시를 기획했고요. 장르에 크게 제한을 둔 건 아니지만, 백화점 공간의 특성상 보다 효과적인 연출이 가능한 평면, 조형 작업에 주목했습니다.”
- 작품 배치 시 특별히 신경을 기울인 점은?
“현재 백화점 지하 1층과 지상 2~6층에 작품이 설치됐는데요. 고객 동선을 가장 우선적으로 고려했습니다. 일단 지하철과 연결된 출입구, 그리고 에스컬레이터를 통해 각 층에 도착했을 때 고객의 시선이 가장 먼저 닿는 공간에 작품을 배치했습니다. 그리고 쇼핑 동선의 끝 지점에서 시선이 닿는 벽면 등 고객이 자연스럽게 지나가며 작품을 마주할 수 있는 위치를 중심으로 작품을 배치했고요.
백화점은 기본적으로 쇼핑이 이뤄지는 공간이기에 고객의 동선이 방해받지 않도록 충분한 공간을 확보하는 데에도 신경 썼습니다. 그래서 공간을 과하게 점유하지 않는 스케일의 작품을 전시했고요. 평소 익숙한 공간이지만, 프로젝트를 기획하며 다시 여러 번 해당 공간들을 직접 걸어보며 동선을 다시금 확인했습니다.
또 전시장과는 다른 백화점 조명 밝기와 한정된 공간에서 어떻게 하면 작품과 이미지 캡션이 잘 보일지도 고려했어요. 그 결과 캔버스 월을 따로 제작, 작품을 설치하며 백화점 공간에 작품이 자연스럽게 어우러지는 동시에 눈에 띌 수 있도록 노력했습니다.”
- 아트 VM 프로젝트를 통해 올해 몇 차례의 전시가 열릴 예정인가요?
“일단 현재 봄 시즌을 맞아 열리고 있는 정그림 작가의 전시는 4월 20일, 이건우 작가의 전시는 3월 31일까지 이어지고요. 이후 본점에서 5월 ‘Super Happy(슈퍼해피)’, 여름, 가을, 크리스마스 시즌까지 총 5회의 전시를 계획하고 있습니다.
여름엔 더위를 물리칠 수 있는 시원한 작품들을 선보이려 하고요. 사람들의 관심이 가장 많이 쏠리는 크리스마스 시즌의 경우 아직 확정된 것은 없지만, 지난해 프랑스 일러스트레이터 나탈리 레테와의 작업처럼 IP(지식재산권) 컬래버레이션을 해도 흥미로울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롯데백화점이 만들어 가는 시즌의 흐름에 맞춰 각 시즌의 메시지와 분위기와 어울리는 작품을 소개하는 기조는 꾸준히 중심에 둘 예정입니다.”
- 본점 이후 잠실점에서도 아트 VM 프로젝트 적용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본점과 잠실점에 선보일 전시 및 작가 기준에 차이가 있나요?
“현재 잠실점의 경우 백화점 공간보다는 에비뉴엘 공간 내에서 전시를 검토하고 있습니다. 특히 에비뉴엘이 지향하는 고급스러운 미감을 반영할 수 있는 조형 작품 중심의 전시를 고려하고 있습니다. 본점이 시즌 키워드를 중심으로 한 전시를 선보인다면, 잠실은 이런 시즌 무드보다는 전체적인 공간에 자연스럽게 녹아드는 전시를 순차적으로 선보일 계획입니다.”
- 아트 VM 프로젝트 첫 시작은 국내 작가들을 선정했는데, 추후 외국 작가들을 소개할 계획도 있나요?
“이번 프로젝트가 처음부터 작가를 국내 아티스트로 제한해 시작된 것은 아닙니다. 다만 롯데백화점 본점이 현재 전 세계에서 사랑받는 K-콘텐츠에 관심을 갖고 한국을 찾는 외국 관광객의 발걸음이 많이 이어지는 공간이다 보니, 결과적으로 국내 작가들의 작품을 자연스럽게 소개할 수 있는 ‘K-콘텐츠 홍보의 무대’가 된 측면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앞으로도 기획 의도와 잘 맞는다면 국내 작가뿐 아니라 해외 작가들과의 협업 가능성도 열어두고 있습니다.”
- 롯데백화점이 아트 VM 프로젝트를 통해 기대하는 시너지 효과는?
“아트 VM 프로젝트를 통해 백화점 공간이 단순히 쇼핑만을 위한 리테일 공간이 아니라, 문화적 경험을 함께 제공하는 공간으로 확장되기를 기대합니다.
고객에게는 쇼핑 여정 속 자연스럽게 작품을 마주하며 일상 속 우연히 예술을 경험하는 기회가 되길 바랍니다. 롯데백화점에서 다음엔 어떤 작품이 전시될지 고객이 먼저 궁금해 하고 찾아오는 프로젝트로 성장하기를 기대하고 있습니다. 또한 단순 작품 전시에 그치지 않고, 고객이 참여할 수 있는 다양한 아트 프로그램도 함께 만들어가며 소통하고 싶습니다.
작가들에게는 많은 고객이 방문하는 공간에서 자신의 작품 세계를 소개하고 알릴 수 있는 새로운 무대가 되기를 바랍니다. 실제로 SNS 등에서 작가들의 행보를 보면 백화점의 다양한 전시 시도를 인지하고, 이에 대한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는 단계라고 느끼고 있습니다. 더 많은 작가들이 롯데백화점 공간을 하나의 ‘전시 플랫폼’으로 인식하고,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프로젝트로 발전하기를 기대하고 있습니다. 이를 바탕으로 한 걸음 더 나아가 아트 VM 프로젝트가 K-작가를 세계에 알리는 플랫폼으로 성장하면 정말 좋을 것 같네요.”
< 문화경제 김금영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