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현대미술관 '코뿔소와 유니콘’… 선과 악, 보상과 처벌의 옛이야기 질서를 오늘의 감각으로

글 없는 그림책, 이야기를 다시 읽게 만드는 전시… 관람객은 주인공 시점에서 이야기를 스스로 구성

안용호 기자 2026.03.21 12:20:51

전시 전경. 사진=문화경제 안용호 기자

부산현대미술관(관장 강승완)은 2026년 3월 21일부터 7월 19일까지 전시실 2, 3과 극장 을숙(지하 1층)에서 어린이 전시 ‘코뿔소와 유니콘(The Rhinoceros and the Unicorn)’을 개최한다.

전시는 한국·일본·인도네시아·유럽권의 옛이야기에서 출발한 7인(팀)의 회화, 드로잉, 영상, 인터랙티브 아트 등 80여 점의 작업을 옴니버스 형식으로 펼쳐 보인다. 전시 공간에는 작가별로 다른 색상이 적용되어 있다.

이번 전시는 선과 악, 진실과 거짓, 보상과 처벌이 비교적 분명한 질서로 제시되던 옛이야기를 오늘의 감각으로 다시 읽는 전시이다. 유니콘은 선과 악, 권선징악의 질서가 분명하게 작동하던 옛이야기의 세계를 상징하고, 코뿔소는 그러한 규칙이 더 이상 그대로 작동하지 않는 오늘의 현실을 가리킨다. 전시는 이 두 존재 사이에 놓인 간극에서 출발한다.

전시 전경(아야카 후카노의 ‘함께 엮는 이야기’). 사진=문화경제 안용호 기자

먼저, 일러스트레이터 아야카 후카노의 ‘함께 엮는 이야기’는 감정을 짧은 문장과 강한 색으로 표현했다. ‘일촌법사’를 바탕을 16개의 장면 + “BE…” 형식의 메시지 구성으로 문장은 설명이 아닌 이미지와 함께 리듬감을 선사한다.

아야카 후카노 작가는 “전통 이야기인 일촌법사를 재해석했어요. 제가 옛날에 할머니나 할아버지한테 고전으로 많이 들었고. 이 기획전을 통해서 새롭게 이 이야기에 대해서 인식하게 되었다. 이를 제 나름대로 재해석해서 16가지로 메시지를 전할 수 있는 형태로 풀었다. 미래의 아이들이 메시지에서 많은 교훈을 얻고 가길 바란다”라고 말했다.

전시 전경(마고즈 작가의 ‘책장 사이에서’). 사진=문화경제 안용호 기자

마고즈 작가의 ‘책장 사이에서’는 단순한 형태의 색으로 하나의 이미지 안에 여러 의미를 겹치는 작업이다. ‘이상한 나라의 엘리스’를 기반으로 규칙이 뒤집히는 세계를 구성했다. 관람자의 개입에 따라 이미지가 변화한다.

작가는 “제목처럼 책의 글귀마다의 사이사이의 간격 그리고 책장 사이에서 공간을 주고 싶었다. 우리가 세상을 굉장히 다양한 방식으로 바라본다는 것을 말하고 싶었다”라고 말했다.

전시 전경(주마디 작가의 ’그대가 강이라면 나는 작은 배이니’). 사진=문화경제 안용호 기자

주마디 작가의 ’그대가 강이라면 나는 작은 배이니’는 인도네시아 전통 그림자극에서 영향을 받았다. 작가는 이야기의 움직임, 리듬, 감각을 중요하게 다룬다. ‘라미야나’ 결말 장면을 바탕으로 대형 회화 + 종이 조각 설치 작업으로 구성해 이야기의 결말보다 감정과 순간의 밀도에 집중한다.

 

주마디 작가는 “제 이야기는 두 가지로 구성이 되어 있는데, 첫 번째 종이를 잘라서 하나의 구성으로 만들었고, 이 작품이 뜻하는 바는 우리 사람들 간의 관계뿐만 아니라 어떤 동물 간의 관계, 숲과의 관계 나아가서 지구와의 관계를 보여주는 그림이다. 또 다른 작품은 이번 전시를 위한 작품으로 ‘라마야나’라는 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작품이다”라고 설명했다.

전시 전경(창작공동체A의 ‘토끼의 간을 구하라’). 사진=문화경제 안용호 기자

창작공동체A의 ‘토끼의 간을 구하라’는 부산기반 그림책 작가 공동체의 작품으로 글과 이미지를 함께 연구하며 작업했다. ‘토끼전’을 하나의 이야기로 재현하지 않고 ‘토끼의 간’이라는 설정을 중심으로 15개의 장면으로 분해해 각 작가가 서로 다른 캐릭터와 시점을 맡아 구성했다.

전시 전경(발린트 자코 작가의 ‘그 꽃을 따도 될까’). 사진=문화경제 안용호 기자
자신의 작품을 설명하는 발린트 자코 작가. 사진=문화경제 안용호 기자

회화, 콜라주, 출판을 넘나들며 글 없는 그림책 작업으로 잘 알려진 발린트 자코 작가의 ‘그 꽃을 따도 될까’는 ‘봉선화’ 설화를 기반으로 전시장 벽에 직접 벽화를 제작했다. “‘만지지 말라”는 금지를 관람자가 선택하고 조합하는 규칙으로 전환한다. 작가는 벽화와 참여형 이미지 배열을 통해 열린 서사를 구성하며 여러 시선을 담은 다성적 그림책으로 변주한다.

 

발란트 자코 작가는 "부산에 열흘간 머물면서 벽화 작업을 했다. 아래의 꽃 패널들은 만질 수도 있고 옮길 수 있어 서사를 관람객이 바꿀 수 있다"라고 말했다.:.

전시 전경(추미림 작가의 ‘헨젤과 그레텔; 쿠키 조각을 따라서’). 사진=문화경제 안용호 기자

추미림 작가의 ‘헨젤과 그레텔; 쿠키 조각을 따라서’는 ‘헨젤과 그레텔’의 빵 부스러기를 디지털 흔적(쿠키, 캐시)로 치환했다. 디지털 픽셀, 그리드, 인터페이스 구조를 작업으로 다루는 작가는 거울 설치, 영상, 인터렉티브 게임으로 구성해 오늘의 디지털 환경을 드러냈다.

추미림 작가는 “도시나 스크린이 인터페이스라고 생각헤요. 사용해야 되고 할 수 있을 것 같은 어떤 예감 같은 것들인데 전류가 흐르지 않는 설치를 함으로써 마치 작동될 것 같지만 또 작동되지 않는, 어딘가에 언제나 충전을 해야 이 기기를 사용할 수 있는 현대인의 스트레스 같은 걸 표현해 보고 싶었다”고 전했다.

전시 전경(이정윤 작가의 ‘바리와 무니’). 사진=문화경제 안용호 기자

이정윤 작가의 ‘바리와 무니’는 한국 설화 ‘바리공주’를 바탕으로 ‘버려짐→돌봄→귀환’의 서사를 공간 장면으로 풀어냈다. 바리를 ‘씨앗 같은 존재’로 설정, 이동과 변화를 따라가는 이야기 구성을 보여준다. 이정윤 작가는 공기 조형, 설치, 드로잉을 통해 작품이 공간에서 작동하는 방법을 탐구한다.

이야기 실험실, 사진=문화경제 안용호 기자

전시 후반부에는 ‘이야기 실험실’을 마련하여 '코뿔소와 유니콘'의 관람 경험을 전시장 밖으로 확장한다. 이곳에서 관람객은 작가별 책과 아카이브 자료, 각 작업의 원천 서사를 함께 만나며 전시에서 이미지로 먼저 경험한 이야기를 읽고 작가의 생각과 작업의 맥락을 보다 천천히 살펴볼 수 있다.

 

옛이야기가 오랫동안 입에서 입으로 전해져 왔듯, 작가별 서사를 배우 김재욱과 카사마츠 쇼, 가수 브로콜리너마저, 국악인 안정아와 성우 겸 싱어송라이터 씨씨킴 등이 들려주는 낭독 영상 콘텐츠도 마련했다. 이들의 다양한 목소리를 통해 관람객은 이미지로 읽은 장면을 듣기의 방식으로 다시 접하게 된다.

극장 을숙 상영 프로그램 현장, 사진=문화경제 안용호 기자

이와 함께 극장 을숙에서는 한국독립애니메이션협회 ‘씨앗’과 협력한 상영 프로그램도 운영된다. 전시의 주제와 맞닿은 독립 애니메이션을 통해 관람객은 전시에서 만난 이야기의 정서를 또 다른 이미지와 장면으로 이어 만나볼 수 있다.

관람객의 참여와 창작으로 이어지는 전시 연계 프로그램도 운영한다. 참여 작가와 함께하는 프로그램과 수어 해설 등을 마련해 다양한 관람객이 전시에 보다 폭넓게 접근할 수 있도록 했다.


발린트 자코, 주마디, 마고즈 등 전시 참여 작가들이 직접 진행하는 워크숍을 중심으로 관람객은 전시에서 만난 장면과 이야기를 새로운 상상과 만들기로 이어보게 된다. 이러한 프로그램은 전시 감상을 넘어 관람객이 이야기를 능동적으로 재구성하는 과정으로 이어진다.


이와 함께 청각장애인을 위한 수어 해설 프로그램도 마련해 더 많은 관람객이 전시를 감상할 수 있도록 했다. 이번 전시는 보기에서 출발해 만들기와 참여로 이어지며, 이야기가 각자의 손과 감각 안에서 다시 펼쳐지도록 한다.

 

한편, 부산현대미술관은 관람객 편의 증진을 위해 미술관 옥상에 도심 속 교외형 입지를 활용한 레스토랑을 새롭게 조성하였다.

 

강승완 부산현대미술관 관장은 “'코뿔소와 유니콘' 전은 서로 다른 시대와 지역의 다양한 문화와 서사를 통해 일상에 뿌리박힌 전통, 신념, 가치를 현재에 새롭게 재해석하는 전시”라며, “동화와 설화가 현대 디지털 사회와 만나는 현실과 상상의 세계 그 어느 중간 지점에서, 관람객들은 인간과 동식물이 주인공이 되어 펼치는 옛이야기의 이미지를 따라가면서 각자의 방식으로 새로운 장면들을 만들어 보기를 기대한다”고 전했다.

 

<문화경제 안용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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