갤러리퍼플이 다음달 3일부터 5월 23일까지 ‘G.P.S(Gallery Purple Studio) 7기 아트 내비게이터(Art Navigator)’전을 연다.
갤러리퍼플 스튜디오(Gallery Purple Studio)는 2013년부터 벤타코리아의 후원으로 운영돼 온 프로그램으로, 유망한 작가들의 안정적인 창작 환경을 지원한다. 입주 작가들은 2년간의 기간 동안 창작·전시 공간 및 다양한 형태의 프로모션 기회를 제공받는다.
또한 갤러리퍼플은 후원자를 모집해 경기문화재단을 통해 개인 및 기업이 입주 작가에게 매월 정기 후원금을 직접 지원하는 ‘G.P.S 네비게이터’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갤러리퍼플은 2013년 1기를 시작으로 현재 7기에 이르렀으며, 올해 1월부터 2년간 총 8명의 작가가 입주해 활동하고 있다. 이번 전시는 7기 입주 작가들의 작품을 한자리에서 선보이며, 각 작가들의 작업 세계를 소개하고 지속적인 창작 활동을 위한 후원 연계를 목적으로 한다. 이번 기수에는 권아람, 김남표, 서상익, 송명진, 원성원, 이동재, 이예은, 진종환 총 8명의 작가가 참여한다.
유명 작가 8명의 작업을 들여다보다
권아람 작가는 가속화하는 현대 문명 속에서 기술, 정치, 인간, 문명이 상호작용하며 변화하는 양상에 주목한다. 특히 미디어가 이러한 관계를 매개하고 재구성하는 방식에 관심을 두고, 복합 매체를 활용한 압축적이고 은유적인 표현을 통해 이를 시각화한다.
작업은 디지털 세계가 구축해 온 신뢰의 구조와 그 이면을 끊임없이 의심하는 데서 출발한다. 초기에는 신체와 언어를 조명하는 미디어 설치를 통해, 인간이 만든 디지털 기술이 역으로 인간의 사고와 행동을 조직하는 방식을 탐색했다. 이후 ‘납작한-(Flat-)’ 연작 구조를 변주한 작업에서는 미디어가 일상 감각과 정서를 매개하는 하나의 환경으로 확장됨을 주목하며, 영상 매체에서 스크린이라는 물리적 실체로 연구 영역을 넓혔다.
이어진 ‘납작한 세계’(2018), ‘프리즈 프레임’(2021-25), ‘피버 아이’(2025) 등의 작업은 평면 스크린을 현실과 가상 세계가 서로를 접고 번역하며 재구성하는 장면을 드러내는 하나의 환경으로 삼는다. 안정적으로 보이는 스크린의 표면 위 그리고 그 너머의 환영과 교란함으로써, 뒤편에 숨겨져 있던 기술적·경제적 구조와 감각적 관성을 노출시킨다. 이러한 개입은 디지털 이미지가 구축해 온 신뢰의 체계에 균열을 만들고, 디지털 매체가 감각·욕망·정보를 조직하는 방식을 돌아보게 한다.
김남표 작가의 회화는 사전 계획 없이 시작된 즉흥성과 연상 작용을 통해 초현실적인 이미지를 형성한다. 이는 끝말잇기처럼 하나의 이미지가 다음 이미지를 불러오는 순환적 구조를 이루며, 표층과 심층 사이의 여백에서 다양한 의미가 확장된다. 이로써 그의 화면은 대상과 작가, 현실과 상상의 경계를 넘나들며 고정되지 않은 해석의 가능성을 열어둔다.
김남표는 스튜디오를 벗어나 자연의 실경 속으로 들어가, 자신의 온몸으로 대상을 감각한 경험을 바탕으로 회화를 전개해 왔다. 그에게 회화란 거울에 비친 대상을 정확히 재현하는 일이 아니라, 대상과의 깊은 교감을 통해 그 ‘참모습’에 다가가는 행위에 가깝다. 이를 위해 그는 대상을 거리 두고 관찰하기보다 그 안에 머무르며 대상이 되어보는(becoming) 방식을 선택한다.
이러한 작업 방식은 ‘회화적 리얼리티(Painterly Reality)’를 형성하는 토대가 되며, 제주 바다와 안나푸르나 산을 다룬 작업에서 구체화된다. 거칠게 남겨진 표면의 질감과 완결을 거부한 흔적들은 자연의 압도적인 생명력과 더불어, 이를 온전히 인식할 수 없는 인간의 한계를 동시에 암시한다. 특히 안나푸르나 연작에서 두드러지는 ‘거칠음’은 자연을 완성된 이미지로 포섭하려는 태도를 거부하며, 대상 앞에 선 작가의 감각과 노동, 그리고 경외의 태도 자체를 회화의 일부로 드러낸다.
서상익 작가는 내러티브가 강조된 연극적인 공간 구성과 비현실적인 장면을 통해, 자신이 마주한 현실과 내면의 고민을 회화적으로 풀어낸다. 그의 작업은 개인의 경험에서 출발하지만, 시선은 늘 동시대 사회의 풍경과 맞닿아 있다. 익숙한 일상, 도시, 미술관과 같은 공간 속에서 현대인의 태도와 사회가 품은 아이러니를 포착하며, 우리가 당연하게 받아들인 현실을 낯설게 드러낸다. 작가에게 가장 익숙한 언어인 ‘회화’를 매개로 삶을 비판적으로 응시하고, 그 과정 속에서 자신이 속한 세계와 존재의 위치를 성찰한다.
작가는 특정 형식이나 주제에 자신을 가두지 않고, 매 작업마다 회화의 가능성과 표현 방식을 실험하며 “예술이란 무엇인가”, “왜 그려야 하는가” 와 같은 근원적인 질문을 끊임없이 던진다. 과거 그는 ‘그린다는 행위’가 자신의 선택인지, 운명인지, 혹은 시간의 관성에 따른 결과인지 고민했지만, 이제 그는 그림을 그리는 행위가 자신에게 가장 평온과 희열을 주는 순간임을 깨달았다.
화면 속 대상들의 시선, 위치, 크기 등의 관계를 면밀하게 탐구하며, 대상의 의미는 독립적인 대상이 아니라 관계 속에서 만들어진다는 통찰을 드러낸다. 동시에 붓질과 물감의 질감, 점도, 그리고 색상이 만들어내는 예측불허의 변수를 감각하고 화면을 조율하며, 매 순간의 선택이 맞닿은 화면을 통해 현대 회화의 존재 이유와 가능성을 재차 질문하게 만든다.
각자의 시선으로 풀어낸 서사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 흰 배경 속에 매끄러운 양감을 가진 대상들이 등장하고, 둥근 구멍 사이로 평면 너머 새로운 공간을 열어 보이는 송명진 작가의 화면에는, 사람 신체의 일부를 연상시키는 기묘한 형체들이 생명력을 얻어 이리저리 뛰고 춤추듯 움직인다. 이 존재들은 물질적 실체로서의 몸과 그 존재가 지닌 근원적 불안함, 즉 ‘실존’의 문제를 동시에 담아내며, 하나의 목표나 대상에 홀린 듯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그 행위를 통해 인간 존재의 긴장과 불확실성을 은유한다.
송명진 작가는 자신과 회화, 그리고 삶과의 관계를 깊이 고민하며 이를 미학적·철학적 사유로 끌어올린 독창적인 회화 세계를 구축해 왔다. 그의 작업은 삶에서 우리가 자주 놓치는 현재의 순간을 주목하게 한다. 맹목적으로 미래의 목표만을 좇는 삶에 대한 회의와 동시에 그러한 삶의 태도를 인정하고 긍정하는 시선이 공존한다.
삶은 멀리서 보면 희극처럼, 가까이서 보면 비극처럼 다가오지만, 작가는 이 양가적 특성을 감각적 표현으로 조망하며 삶에 대한 독특한 통찰을 보여준다. 내면에 얽힌 실타래를 조심스레 풀어내듯, 그의 그림은 자신도 몰랐던 속내를 드러내는 최초의 목격자가 되어, 마치 무대 위 댄서처럼 관람객과 무언의 대화를 나눈다.
원성원 작가는 자신의 주변에서 보고, 듣고, 겪은 이야기와 현실의 이미지를 토대로, 현실과 허구의 경계에 놓인 세계를 만들어낸다. 그는 주제에 맞는 대상과 장소를 탐색하고, 계절과 날씨, 서로 다른 장소와 풍경을 오가며 촬영한 수천 장의 사진을 정교하게 결합해 하나의 화면으로 재구성한다. 이 과정에서 작가는 사진 속 요소를 가위질하듯 하나씩 잘라내고 이어 붙이는 손의 노동을 고집한다. 마우스로 이미지를 쉽게 추출하고 배치할 수 있는 디지털 편집 기능을 의도적으로 배제함으로써, 작업에는 밀도 높은 세밀함과 아날로그적인 감각이 더해진다.
작가는 열등감과 우월감 사이를 오가는 우리의 모습을 얼음 조각으로 형상화하거나, 겉으로는 번듯해 보이지만 각자의 고단한 일상을 살아가는 친구들의 모습을 동물과 자연 풍경에 빗대어 보여준다. 관람자는 화면 곳곳에 배치된 은유적인 상징들을 따라가며, 작가의 내면이 어떻게 이미지로 구성되는지, 그리고 그것이 어떤 방식으로 우리의 삶을 비추는지를 발견하게 된다.
아주 작고 사소한 마음들, 기민하게 포착된 아이러니한 순간들, 마음속 깊이 눌러 담아 온 속내가 하나의 장면으로 엮이면서, 작품은 인간 사회의 풍경을 사실적으로 드러낸다. 관람자는 그 서사가 공허하거나 괴롭지 않고, 오히려 아름답다는 점에서 오는 위안에 공감하게 된다.
이동재 작가는 쌀과 곡물 같은 오브제를 활용해, 언어와 이미지의 유기적 관계를 탐구하는 회화 작업을 선보여 왔다. 이후 크리스탈, 단추, 별, 알약, 직접 제작한 알파벳 유닛 등 일정한 크기와 형태를 지닌 오브제를 활용한 평면 회화를 발표하며, 오브제와 이미지 간의 관계를 지속적으로 확장했다. 2023년 이후에는 조각과 회화, 평면과 입체의 경계를 해체하고자, 캔버스 천을 다루었다. 캔버스를 앞뒤로 채색한 뒤 일정한 간격으로 잘라 비틀어 재조합하며, 리듬감과 구조적인 형태를 실험했다.
최근에는 닥 섬유를 두드려 지판 형태로 제작하고, 천연염료인 오배자를 수십에서 수백 차례 덧칠해 견고한 표면과 자연스러운 발색을 만들어낸다. 닥 섬유의 주름과 질감은 두드리는 행위의 흔적과 겹쳐져, 마치 생명체의 피부나 껍질처럼 표현된다. 재료 자체가 지닌 물질적 특성이 작품 속에서 생생하게 드러나며, 그 자체로의 서사를 눈여겨보게 한다.
이 밖에도 작가는 커피, 녹차, 먹, 치자, 홍화, 소목 등 자연에서 얻은 다양한 재료들을 사용해, 재료 고유의 물성과 색채를 섬세하게 살린다. 이러한 작업은 작가가 추구해 온 생태주의와 자연주의라는 미적 지향점에 자연스럽게 닿아 있다. 평면 회화뿐만 아니라 닥 섬유로 감싼 오브제와 지완(종이 그릇) 작업 등 입체적인 형식으로도 확장되며, 재료가 가진 고유한 질감과 시간의 흔적을 통해 작가만의 이야기를 펼쳐낸다.
동시대 미술의 다양한 흐름 조망
이예은 작가의 작업은 작가가 가까이에서 마주해 온 사람들의 삶과 이야기에서 출발한다. 야간 물류창고와 냉동 창고, 학교 행정 업무와 여러 예술계의 아르바이트를 전전해 온 그는 일의 현장에서 수많은 사람들을 만났다. 그곳에는 ‘티백 하나로 바다를 우려내 듯 희망을 놓지 않는 이들’이 있었고, ‘온몸으로 차가운 건물을 껴안아 실내 온도를 높이려는 듯’ 하루하루를 간절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었다.
작가는 노동과 삶이 뒤섞인 순간들을 카메라로 기록한다. 무모해 보일 만큼 불확실한 조건 속에서도 버텨내는 하루, 작은 희망에 몸을 싣는 태도는 사진 속에 고스란히 남는다. 평범한 장면처럼 보이지만, 그 안에는 쉽게 무너지지 않으려는 시간과 감정이 차곡차곡 쌓여 있다.
이러한 시선은 산에서 마주한 돌탑의 이미지로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누가 언제부터 쌓았는지 알 수 없는 돌들은 여러 사람의 손을 거치며 균형을 이루고, 그 자체로 의미 있는 형상이 된다. 이예은 작가는 일터에서 관계를 맺어온 사람들의 모습 또한 이 돌탑과 닮아 있다고 느꼈다. 작가는 만났던 사람들에게 의미 있는 물건들을 여러 개 받아, 이를 돌탑처럼 하나씩 쌓아 올려 각기 다른 염원과 사연을 담아낸다. 그렇게 함께 기대고, 하루를 견디는 삶의 형상을 조용히 드러낸다.
어린 시절 산과 바다를 오가며 자연 속에서 성장한 진종환 작가는, 순환하는 자연의 크고 작은 변화들을 예민하고 섬세하게 감각해 왔다. 봄, 여름, 가을, 겨울—시작과 끝을 명확히 가를 수 없는 계절 속에서, 그는 일출과 일몰, 바람의 흐름처럼 매일 반복되지만 결코 동일하지 않은 순간들, 고정된 형태 없이 흩어지고 사라지는 감각들을 기억해 캔버스 위에 하나의 인상으로 붙잡는다. 또한 전국 곳곳에서 계절감을 뚜렷하게 느낄 수 있는 장소를 찾아 자연과 마주하며, 그 안에서 몸이 반응하는 미세한 변화를 경험해 왔다.
진종환 작가의 회화는 특정한 대상이나 구체적인 장면을 의도적으로 지워내며 장소성을 배제한다. 대신 그는 자연을 마주한 신체의 반응과 회화적 행위를 통해 화면을 구성한다. 이는 개인적인 경험에 머무르지 않고 누구에게나 열려 있는 보편적인 풍경으로 감각을 확장하기 위함이다.
그의 화면에 쌓인 색과 붓질은 자연의 생동감과 감수성을 직접적으로 재현하기보다는, 수풀의 습도와 공기의 온도, 바람에 섞인 냄새처럼 시각 너머에 존재하는 감각들을 회화적 제스처로 치환하며 시각의 범위 안으로 끌어들인다. 그렇게 완성된 풍경은 평면인 동시에 기억과 감각이 공존하는 공간이 된다.
갤러리퍼플 측은 “이번 전시 참여 작가들은 회화, 설치, 미디어, 사진 등 다양한 현대미술 장르에서 국내외를 무대로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며 “향후 행보가 더욱 기대되는 이들의 작업을 통해 동시대 미술의 다양한 흐름을 조망하고, 지속 가능한 예술 지원 구조에 대한 가능성을 함께 살펴보길 바란다”고 밝혔다.
< 문화경제 김금영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