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움미술관, 야외 데크에 ‘가브리엘 오로즈코 정원’ 공개

“자연, 건축, 공공의 경험이 공존하는 장으로 전환”

김금영 기자 2026.03.30 12:14:09

‘가브리엘 오로즈코 정원’, 2026, 서측 전경. ©가브리엘 오로즈코. 이미지 제공=리움미술관, 사진=정희승 Gabriel Orozco Garden, 2026, View from the west © Gabriel Orozco. Courtesy of Leeum Museum of Art Photo: Chung Heeseung

삼성문화재단이 운영하는 리움미술관이 야외 데크에 가브리엘 오로즈코 작가가 구상한 장소특정적 설치 작품 ‘가브리엘 오로즈코 정원’을 다음달 3일부터 공개한다고 30일 밝혔다.

리움이 2004년 개관 이래 처음 시도하는 커미션 정원 프로젝트로, 미술관 개관 시간 동안 누구에게나 무료로 개방된다. 이를 통해 리움은 기존의 야외 조각 정원의 형식을 넘어 건축과 자연, 그리고 공공의 경험이 공존하는 장소 특정적 환경으로 데크의 의미를 새롭게 확장한다는 계획이다.

리움 야외 데크는 지난 20여 년 간 알렉산더 칼더의 ‘거대한 주름’(2004–2005), 루이즈 부르주아의 ‘엄마’(2005–2012), 아니쉬 카푸어의 ‘큰 나무와 눈’(2012–2023) 등 세계적 작가의 대형 조각이 차례로 자리를 지키며 ‘야외 조각 정원’으로 기능해왔다. 세 작가 모두 관람객의 시선을 위로 끌어올리는 기념비적 조형물로 공간을 채워왔다.

가브리엘 오로즈코 정원은 이 수직적 전통을 의도적으로 바꾼다. 오로즈코의 정원은 시선을 발밑과 수평으로 낮추며, ‘무엇이 놓이는 전시 공간’이 아니라 ‘관람객이 걷고 머무르며 시간을 직접 경험하는 수평적 환경’으로의 전환에 주안점을 둔다.

가브리엘 오로즈코는 1993년 베니스 비엔날레에서 바닥 위에 빈 신발 상자 하나를 놓고, 같은 해 시트로엥 DS를 세로로 절단해 3분의 1을 제거한 ‘La DS’를 발표하며 국제 미술계에 등장했다. 고정된 작업실 없이 멕시코시티, 뉴욕, 도쿄, 파리를 오가며 각 장소에서 발견한 사물에 최소한의 변형을 가해 그 안에 잠재된 질서를 드러내는 것이 그의 방법론이다.

이번 프로젝트는 오로즈코가 10년간 전개해온 정원-조각 프로젝트의 세 번째이자 가장 종합적인 장이다. 2016년 사우스 런던 갤러리(SLG)에서 방치된 부지를 교차하는 원형 패턴의 영구 정원으로 변환한 것이 출발점이었다. 2019년부터는 6년간 멕시코시티 차풀테펙 공원(800헥타르, 약 242만 평)의 환경·문화 마스터플랜을 총괄하며 도시적 스케일의 공공 조각을 완성했다. 리움에서 오로즈코는 이 두 경험의 축적 위에 세 번째 정원을 세운다.

오로즈코는 이번 정원에서 그간의 궤적 위에 처음으로 동아시아 전통의 개념적 층위, 즉 ‘세한삼우(歲寒三友, Three Friends of Winter)’를 더한다. 겨울에 절제된 방식으로 정원을 지탱하는 소나무, 대나무, 매화는 가브리엘 오로즈코 정원의 식물학적 골격이자 개념적 뼈대다. 화려함보다 지속성, 스펙터클보다 인내가 이 정원의 원리다. 삼우(三友)의 ‘우(友)’, 즉 ‘벗’이라는 의미처럼, 이 정원은 홀로 올려다보는 장소가 아니라 함께 머무는 공적 공간으로 설계됐다.

가브리엘 오로즈코 정원은 사람들이 직접 걷고 머물며 경험하는 것을 조각의 가치로 삼는다. 돌 바닥의 원형 패턴을 따라 걷고, 대나무 숲 사이에서 잠시 쉬고, 계절마다 피고 지는 매화를 바라보는 것, 이 모든 것이 ‘공간 안에서 시간을 조직하는 장치’인 조경을 통해 정원이 만들어내는 조각적 경험이다.

정원의 구조는 오로즈코 작업을 관통하는 ‘원의 배열’ 모티프에 기반한다. 하나의 원에서 출발한 기하학적 패턴이 약 500평 데크 전체로 확장되며, 크고 작은 원들이 연결돼 ‘플라자 1~10’이라는 열 개의 연속된 공간을 만들어낸다. 각 플라자는 바닥, 패턴, 식재, 벤치의 조합이 다르다.

바닥은 충청남도 보령에서 채석한 보령석을 맞춤 규격으로 가공해 원형 패턴대로 시공했다. 기존 데크 바닥의 자라목 목재는 건물 외벽 마감으로 재활용했다. 소나무 17주, 매화나무 11주, 대나무 약 1500주를 심었고, 백당나무, 설유화, 찔레나무, 물매화 등 흰 꽃 중심의 식물들이 세한의 절제된 색채를 이룬다.

김성원 리움미술관 부관장은 “화려한 모뉴멘트가 아니라 지속되는 시간, 스펙터클이 아니라 인내가 가브리엘 오로즈코 정원-조각의 핵심”이라며 “세한삼우가 매서운 겨울에도 푸른 생명을 지켜내듯, 이 정원은 가장 혹독한 계절에도 천천히, 그러나 멈추지 않고 변화하는 예술의 시간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 문화경제 김금영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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