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랑 넋 나간 사랑에 빠져 보실래요?”

‘사랑에 빠진 바보’ 나탈리 역 뮤지컬 배우 윤공주

이우인 기자 2010.04.12 14:46:58

“왜 하필 그날 공연을 보셨나요? 그날은 몸 상태가 무척 안 좋았거든요. 좋을 때 보셨으면 좋았을 텐데….” 평일 오후 공연을 약 3시간 앞두고 한전아트센터 로비에서 만난 뮤지컬 배우 윤공주(28)는 기자가 이틀 전에 공연을 봤다면서 인사를 건네자 울상을 지었다. 컨디션이 형편없는 상태에서 한 공연을 보여준 데 대한 부끄러움과 미안함이 그녀의 얼굴에서 교차했다. 윤공주는 지난달 27일부터 서울 한전아트센터에서 공연 중인 뮤지컬 <올슉업>(All Shook Up)의 주인공으로 무대에 오르고 있다. <올슉업>은 미국의 로큰롤 가수 엘비스 프레슬리의 음악으로 꾸며진 주크박스 뮤지컬로, 윤공주는 2007년 초연부터 2009년·2010년 공연에 모두 올랐다. 그만큼 <올슉업>은 윤공주에게 매우 특별한 공연이다. ‘all shook up’은 ‘완전히 넋이 나간’이란 의미다. 윤공주가 연기하는 나탈리는, 아버지를 도와 자동차 정비공으로 매일 얼굴에 기름때를 묻히는 모습이 어색하지 않은 털털한 여자지만, 언젠가 자신을 구원해 줄 운명의 남자를 기다리는 모습에서 소녀 같은 순수함이 느껴지는 여인이다. 나탈리는 자신이 좋아하는 채드의 곁에 있기 위해 남장도 서슴지 않는다. 최근 혹독한 실연의 아픔을 겪었다는 윤공주에게 <올슉업>은 그녀의 힘든 시기를 잊게 해주는 효과 만점 약(藥)이다. “나탈리가 를 부르는데 마치 제 노래 같은 거예요. 그래서 더 와 닿고 더 깊게 역할에 다가갈 수 있는 것 같아 요즘 많이 행복해지고 있어요.” 인터뷰는 공연장 지하의 개인 분장실로 자리를 옮겨 계속됐다. 분장실에 도착하기까지 앙상블·주조연 할 것 없이 많은 배우가 ‘윤공주 예쁘다’ ‘원더풀’을 외치며 장난을 걸어왔다. 관객에게 톱스타인 윤공주가 배우들에게도 선망의 대상이라는 사실이 강하게 느껴졌다. 이에 대해 윤공주는 “그냥 장난일 뿐 별거 아니다”라는 퉁명스러운 말로 쑥스러움을 대신했다. 그녀의 좁은 분장실에는 피아노 한 대와 화장대·장롱이 깔끔하게 정돈돼 있었다. 감기 때문에 목소리를 크게 낼 수 없어 미안하다면서 조곤조곤 말하는 그녀에게서 상대에 대한 배려가 느껴졌다. <미녀는 괴로워> <맨 오브 라만차> <그리스> <사랑은 비를 타고> 등 인기 뮤지컬에서 주연을 도맡아온 뮤지컬 톱스타라는 사실을 잊게 할 만큼 겸손했다. -나탈리처럼 첫눈에 반한 사람이 있나요? “인생을 모두 걸 만큼 빠져본 적은 없어요. 저는 소개받아 사귀는 사람보다 원래 알고 지내는 사람을 점점 좋아하는 편이에요. 좋아하는 데 시간이 좀 걸리는 스타일이에요.” -나탈리는 사랑에 매우 적극적인 여성입니다. 윤공주 씨는 어떤가요? “짝사랑하는 사람한테 고백을 못 하는 스타일이에요. 5년 간 혼자 좋아해본 적도 있고요. 좋아하는 사람에겐 고백하지 못하겠더라고요. 그렇지만 나탈리처럼 ‘운명’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으면 어설프게나마 고백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근데 ‘운명이라면 굳이 내가 어떻게 하지 않아도 될 거야’라고 생각하는 사람이라…(웃음). 그러다 여럿 놓쳤지만요.” -5년 동안 좋아한 그분에게는 고백했나요? “아뇨. 그런데 지금 생각해보면 안 하길 잘한 것 같아요. 지금까지도 친구로 잘 지내고 있거든요.” -나탈리는 사랑을 위해 남장까지 했는데요, 공주 씨는 사랑을 위해 어떤 일까지 해봤습니까? “최근에 한 사랑에는 너무 빠졌는데요, 내가 좋아하는 배우일도 포기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1년을 지냈어요. 배우라는 타이틀은 제 인생의 반을 차지하는데, 그 사람만 있으면 배우 일을 저버려도 된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사랑에 실패한 다음에 슬픔에서 헤어 나오기가 무척 힘들었습니다.” -나탈리는 자신이 살아온 정반대의 삶을 산 남자에게 호감을 느끼는데요, 공주 씨는 어느 쪽인가요? “그동안 사귄 사람들의 스타일은 다 제각각이었지만, 저와 닮은 점이 있는 사람을 좋아한 것 같네요. 특별히 그런 점을 신경 쓰진 않지만요.” -중간 휴식 때는 주로 뭘 하면서 그 짧은 시간을 활용하나요? “별거 안 해요. 목이 많이 아플 때는 그저 가만히 있어요. 그런데 <웨딩 싱어>를 할 땐 전쟁이었어요. 1막 마지막 신에서 물을 맞고 나서 2막 첫 신에 등장해야 했거든요.” -<웨딩 싱어> 때 김소향 씨와 더블 캐스팅으로 홀리를 연기했는데, 소향 씨의 연기는 봤습니까? “물론 봤죠. 언니는 정말 홀리의 느낌이 나는 사람이었어요. 저는 홀리를 연기해야 하는 사람이었고요.” -<맨 오브 라만차> <그리스>에서 두 번 같은 역으로 출연했는데, 같은 역할을 또 할 때는 처음 할 때와 어떻게 다른가요? “처음에 할 때는 멋도 모르고 무작정 열심히 하고 내가 하는 연기만 보게 돼요. 그런데 두 번째, 세 번째 할 때는 그만큼 시간도 흘렀고 삶의 경험도 쌓였기 때문에 멀리 전체를 볼 수 있게 돼요. 그래서 여유도 생기고 더 폭넓고 깊이 있게 연기할 수 있죠.” -지금까지 해온 작품 중 또 해보고 싶은 역할을 꼽는다면요? “<맨 오브 라만차>는 서른이 넘어서 다시 해보고 싶어요. 20대 때는 ‘알돈자’처럼 하려고 발악을 했었거든요.”

-가장 좋아하는 뮤지컬 곡을 꼽는다면요. “너무 많아서 꼽을 수가 없어요. 뮤지컬 넘버는 좋은 곡이 너무 많아요.” -이름 때문에 놀림을 많이 받았다고 들었습니다. 어째서 부모님이 공주란 특이한 이름을 지으셨는지 궁금하군요. “제가 늦둥이거든요. ‘예쁘게 잘 자라라’란 의미로 지으셨대요. 다른 형제들은 모두 평범한 이름이거든요.” -몸매 관리는 평소에 어떻게 하나요? “공연을 보시면 아실 거예요. 굳이 관리하지 않아도 이렇게 무대에서 뛰어다니는데 살이 찔 틈이 없죠. 물론 쉬면 살이 찌는데, 그땐 많이 걷고 스트레칭을 자주 해요. 헬스장에 가거나 운동에 돈 쓰는 건 아깝더라고요.” -관객의 반응이 좋을 땐 쾌감을 느낀다고 하셨습니다. 반대로 반응이 안 좋을 땐 어떤가요? “관객은 정말 솔직한 것 같아요. 배우가 뭔가 100% 집중하지 않을 땐 반응이 없으니까요. 열심히 하는데도 반응이 없다 싶으면 더 열심히 합니다.” -관객의 반응이 연기에 영향을 끼치진 않나요? “두렵진 않습니다. 오히려 더 집중해서 관객이 더 빠져들게 하고 싶은 욕심이 생기는 걸요. <올슉업>은 관객이 신나야 하는데 조용할 수도 있어요. 그러나 그들이 재미없게 본다고 생각하지 않고 표현을 못 할 뿐이라고 받아들입니다.” -깨고 싶은 윤공주에 대한 편견이 있다면요. “예전에는 워낙 예쁜 스타일의 연기를 많이 해서 (예쁜 이미지를 깨고 싶은 편견이) 있었는데, 알돈자와 홀리를 해보니 점점 더 부족한 부분을 채워 나가고 싶은 생각뿐이에요. 새로운 모습에 계속 도전하고 싶어요.” -이번엔 상 욕심이 없나요? “상 받을 만한 작품을 한 게 있나 싶어요. <웨딩 싱어>로 여우조연상?(웃음). 상은 받으면 좋은데, 사실 받으면 부담만 커지고 그래요. 저는 가늘고 길게 가고 싶거든요.” -원초적인 질문인데요, 연극영화과에 입학한 뒤에야 무대의 희열을 실감했다는데, 그렇다면 무엇이 되기 위해 연극영화과에 들어간 거죠? “그냥 막연하게 배우가 하고 싶었어요. 부모님도 반대하지 않으셨죠. 그저 ‘하고 싶은 거 해라’라고 말씀하셨어요. 대학에도 들어가니까 너무 좋아하셨고요.” -앙상블들에게 ‘제2의 윤공주’를 꿈꾸는 모델이 돼 있는 걸로 알려져 있습니다. 앙상블일 때와 주인공일 때의 마음가짐은 어떻게 다른가요? “앙상블을 했을 때는 어릴 때고, 그때나 지금이나 열심히 하는 마음은 똑같아요. 위치는 많이 달라졌지만요. 주인공일 땐 책임이 무겁거든요. 무대 위의 열정과 순수함은 앞으로도 변하고 싶지 않습니다.” -그토록 하고 싶다던 <미스 사이공>이 최근 개막해 공연 중인데요, 오디션을 보지 않았나요? “봤었죠. 그런데 안 시켜주더라고요. 대부분의 배우가 <미스사이공> 오디션을 봤을 거예요.” -큰 좌절을 안겨 준 <아이다> 오디션은 3월 29일부터 4월 10일까지 진행되고 있는데, 도전하지 않았나요? “하면 좋겠지만, 도전하진 않았어요. 제가 한다면 ‘아이다’보다는 ‘암네리스’ 쪽이겠죠? 저는 아이다처럼 흑인 필(feel)이 나지 않으니까요.” -영화나 드라마 진출은 생각하지 않았나요? “생각을 안 한 건 아닌데요, 뮤지컬도 할 게 많은데 굳이 뮤지컬을 제치고 영화나 드라마를 할 필요가 있나 싶어요. 물론 기회가 있으면 더 좋겠죠.” -뮤지컬 배우로 자리를 잡았는데요, 죽기 전에 꼭 해보고 싶은 작품이나 역할이 있나요? “예전엔 있었지만, 지금은 없어요. 그저 좋은 작품을 만나 꾸준히 했으면 좋겠어요. 죽을 때까지 발전하는 모습을 보여 드리고 싶어요.” -데뷔 10년차인데요, 지나온 활동을 자평해주세요. “제가 저를 평가하는 일은 참 어려워요. 그냥 열심히 달려왔습니다. 지금까지는 앞만 보고 달렸다면, 이젠 서른이니까 천천히 모든 걸 봐가면서 갈 생각입니다.” -끝으로, 독자들과 관객들에게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올슉업>은 하는 사람, 보는 사람이 모두가 행복해지는 너무 좋은 작품입니다. 재미만 있는 게 아니라 깊이가 있어서, 사춘기 소녀가 와서 보든, 중년 부부가 와서 보든, 누가 봐도 공감할 수 있어요. 음악 또한 낯설지 않은, 너무나도 많이 들었던 음악들이 드라마와 절묘하게 조화를 이루죠. 티켓 가격은 좀 비싸지만, 그 돈이 아깝지 않은 작품이라고 자신합니다. 그래서 꼭 보러 와주셨으면 해요. 그리고 저 윤공주는 무대에서 순수한 배우가 되고 싶고 진정성을 갖고 연기하고 싶습니다. 그런 척이 아니라 그 마음 변치 않도록 열심히 하겠습니다. 지켜봐주세요.” 윤공주 = 출생 1981년 5월 20일. 학력 : 단국대학교 연극영화학과 졸업. 공연 뮤지컬 : <웨딩 싱어>(2009), <나쁜 녀석들>(2008), <미녀는 괴로워>(2008), <맨 오브 라만차>(2007, 2008), <그리스>(2005, 2007), <사랑은 비를 타고>(2004) 외. 수상 : 2007년 제13회 한국뮤지컬대상 인기스타상, 2006년 제12회 한국뮤지컬대상 여우신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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