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트 뉴스] 확장하는 평면: 3차원-1은 평면?

회화에서 타이포그래피까지…미술 작가들의 평면활용기

윤하나 기자 기자 2016.01.14 08:58:32

▲타이포잔치, ‘Why Not Associates & Gordon Young’ 전경. 사진 = 한국공예·디자인문화진흥원

CNB저널, CNBJOURNAL, 씨앤비저널

(CNB저널 = 윤하나 기자) 그림은 이제 고리타분하다고? 납작한 캔버스의 2차원 세계는 어느새 전통이라 불리게 됐고, 페인팅(painting, 회화)에 주력하는 미대생 및 작가들조차 회화라는 매체가 과연 동시대적인 매체인지 염려하곤 한다. 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술 시장에서 가장 활발하게 거래되는 미술 작품은 언제나 평면 작품이다. 캔버스나 종이 위에 물감을 이용한 회화 방식은 대부분의 작가들이 미술 교육을 처음 받을 때부터 익히는 과정이기 때문에 그들에게 가장 익숙한 동시에 향수를 자극하는 매체이기도 하다. 

현대미술의 발명 이후 회화는 더 이상 전통적인 양식에만 안주하지 않고 형식적, 내용적 변주를 거치면서 매체의 영역을 확장해 왔다. 회화, 즉 선이나 색채로 평면 위에 형상을 그려 내는 조형 미술은 캔버스에 물감으로 그린 그림은 물론, 평면을 벗어나 입체, 영상, 텍스트, 퍼포먼스 등을 끌어들이며 매체의 경계를 지워나갔다. 

평면, 회화의 연장선에 서 있는 작품들이 최근 전시를 통해 선보였다. 회화의 형식 혹은 내재적 신화를 현대적 관점에서 탐구하거나, 작가의 최종 작품이 되기 이전의 리서치 및 B컷을 재활용한다. 혹은 문자라는 또 다른 개념의 평면을 유입시키는 등 다양한 시도가 잇따랐다. 최근 전시들에 등장한 각 작가들의 평면 이용 방법을 살펴봤다.  


평면은 작가를 어떻게 움직이나
일민미술관 ‘평면탐구: 유닛, 레이어, 노스탤지어’

일민미술관의 전시 ‘평면탐구’는 현대 작가들이 형식으로서의 회화에서 새로운 돌파구를 찾는 시도를 보여준다. 회화의 평면성을 바탕으로 작가 10인이 각기 다른 방식으로 조형 언어를 실험했다. 모두 3층의 전시실에서 진행되는 이번 전시는, 각각 유닛, 레이어, 노스탤지어라는 부제로 나뉘었다. 

1층 전시실 ‘유닛(단위)’은 평면을 특정 단위의 기준으로 삼아 잘게 쪼개고 증식시키는 방법을 실천했다. 분절된 단위의 반복을 통해 그것의 불규칙한 패턴보다 평면의 구성요소 단위 그 자체에 집중하게 만든다. 강서경 작가의 ‘Jeong 井’은 회화의 평면성을 담당하는 캔버스와 철제 프레임에 단위를 부여하고 그 단위들을 쌓고 배열한다. 회화가 평면일 수 있는 토대를 이용해 입체 공간을 구성하는 작가는 작품의 입체성보다 확장하는 회화의 가능성에 더 관심을 가진다.

박정혜 작가는 종이접기, 즉 2차원 평면(종이)에서 출발한 3차원 구조물(접힌 종이)을 다시 캔버스로 옮겨 얇게 중첩시키는 방법을 이용했다. 특정 조형 단위를 임의로 증식시키며 공간을 무한히 만드는 작가 성낙희도 1층 전시에 참여했다.

▲일민미술관 1층 전시실의 강서경 설치전경. 사진 = 나씽스튜디오

제2 전시실의 ‘레이어(겹)’전은 겹이라는 핵심어 아래, 보다 실험적인 작업들을 선보인다. ‘평평한 것은 동시에 생긴다’를 주제로 작업하는 곽이브 작가의 ‘면대면’ 시리즈는 작가가 준비한 다량의 인쇄물을 전시장에 배치해 놓아 관람자가 직접 접거나 잘라 배열해보게 한다. 작가와 다수의 관람자가 인쇄 종이를 통해 언제든 편집 · 재배열할 수 있는 이 공간은 그 자체로 인간이 군집해 살아가는 도시 구조와 닮았다. 커다란 벽면 위에 정렬 배치된 다수의 인쇄물과 관람자가 만드는 크고 작은 인쇄물 조각들이 장관을 이룬다. 평평한 종이를 이용해 전시 공간의 성격을 탈바꿈시키며 은유적 풍경을 만들어 낸다.

반면 박아람 작가의 ‘사면 위의 구성’은, 포토샵의 ‘자석 올가미’ 툴을 이용해 본래 이미지의 어떤 구간을 선택하고 그 임의로 꺾인 다양한 선을 3차원으로 도출한다. 레이저 커팅 된 아크릴 조각들은 본래 이미지의 흔적을 찾아볼 수 없이 파편화된 채 기울어진 거대한 좌대 위에 전시된다. 이는 개념적 평면, 즉 작가가 택한 임의의 디지털 이미지에서 측량한 선이 색과 면이 존재하는 입체(아크릴 조각)로 전환되고 그것이 다시 평면을 이루는 단위로 전환된다.

3전시실의 ‘노스탤지어(향수)’는 평면을 토대로 하는 미술 그 자체를 향수한다. 홍승혜 작가는 컴퓨터 그래픽의 최소단위, 즉 픽셀이라는 기하학적 요소가 영화 ‘모던 타임즈(1936)’의 주제곡 “Smile”에 맞춰 움직이는 영상 ‘Sentimental Smile’를 선보였다. 

이와 함께 차승언이 직접 베틀에 실을 넣고 직조한 ‘Offset Plain Line7 and Line4 and’는 전통 공예 방식을 이용한 작품이지만 캔버스 프레임에 올려지는 순간 20세기 초 추상회화를 보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준비된 캔버스 위에 색을 칠하는 과정을 전복시키고 직조의 과정으로 색과 형태를 만드는 작가는, 이전의 작가들과 전혀 다른 지점에서 회화의 가능성을 실험한다.

전시는 일민미술관에서 1월 31일까지.


회화 밖과 안의 모호한 경계 
챕터투 ‘보스 사이드 나우(Both Sides Now)’

챕터투(CHAPTER Ⅱ)는 김미영 작가의 개인전 ‘Both Sides Now’를 연다. 페인팅을 전공한 김미영은 이번 전시에서 회화 작품인 동시에 장소 특징적(site specific)인 작품을 선보인다. 장소 특징적이란, 작품이 특정 장소에 위치(설치)해야 비로소 작품이 완성되는 형태다. 페인팅은 전통적으로 벽에 걸렸고, 그 지점에 작가는 집중한다. 

▲김미영, ‘GB_A Freeze Frame’. 캔버스에 유채, 130 x 97cm, 2015. 사진 = 챕터투

캔버스가 아무것도 칠해지지 않은 텅 빈 상태로 흰 벽에 걸리게 되면, 캔버스가 가린 벽이 시야에서 사라지며 동시에 벽은 사각 구멍을 갖게 되는 셈이라고 작가 김미영은 인식한다. 이후 작가는 붓의 속도를 조절하며 ‘얇게 · 두껍게 · 빽빽하게 · 느슨하게’ 또는 ‘긋기도 · 펴기도 · 흘리기도 · 누르기도 · 긁어내기도’ 하는 과정으로 생성과 소멸을 반복하다가 작가가 판단한, 캔버스가 ‘벽에 있을만한 존재’가 되는 순간에 정지한다. 

작가는 텅 빈 평면의 캔버스가 회화 작품인 동시에 장소 특징적 존재가 되는 과정을 탐구한다. 전시 제목 ‘Both Sides Now’가 암시하듯, 김미영의 작업은 (3차원적) 현실과 (2차원적) 회화라는 각기 다른 차원을 경계 지으면서도 서로를 매개하는 통로가 된다. 원근과 음영 등 3차원적 요소를 배제해 지극히 평면적인 캔버스 자체는 스스로 벽으로 ‘이행(transition)’하는 통로가 된다. 이 과정으로 현실 세계와 회화 안의 세계는 서로를 정면으로 바라봄과 동시에 구별된다고 작가는 말한다. 현실과 회화 사이에 위치한 벽이 이 경우에는 빈 캔버스가 회화로 이행하게 만드는 필요조건으로 뒤바뀐다. 전시는 챕터투에서 1월 29일까지.


작업이란 다시 읽고 쓰기? 
케이크 갤러리 ‘분석적 목차’

케이크 갤러리에서 열리는 ‘분석적 목차’는 다양한 매체를 활용하는 작가 6명(팀)에게 그들의 이전 작업 과정을 참조하고 그것을 새로 쓰는 방법을 제시한다. 일련의 과정으로 작가들은 자신들의 작업 구조를 텍스트(문장)로 인식하고 이전의 작업을 다시 읽고 쓰는 과정을 주목한다. 

▲박아람X\김정태, ‘100, 1000, 10000’. 종이에 잉크젯 인쇄, A4용지 1만 장, 2015 제작과정에서 도출된 이미지.

작가 박아람X김정태의 협업에서, 박아람은 작업 ‘운석들’의 3D 오브젝트 파일들을 캡처해 100장의 파일로 추출한 뒤 김정태에게 넘긴다. 김정태는 구글에서 검색한 단어 ‘운석들(meteorites)’의 이미지를 박아람의 이미지와 합해 1000초 길이의 글리치(glitch, 주로 디지털 영상 등의 의도치 않은 오류로 인한 왜곡 현상 혹은 효과) 영상으로 제작했다. 박아람과 김정태는 이 영상을 1초에 10프레임으로 나누어 총 10000 프레임을 종이에 출력하고 쌓았다. 둘의 협업은 일련의 과정으로서 서로의 작업 구조를 읽고 병합하며 새로운 쓰기를 시도한다. 다시 말해 3차원 오브젝트 파일이 2차원 이미지 파일로 변환된 후 다른 이질적 이미지와 섞여 4차원 영상이 된다. 마지막으로 우리는 2차원 이미지가 출력된 종이가 쌓인 형태(3차원)를 보게 된다. 전시는 케이크 갤러리에서 1월 17일까지.


문자를 만난 도시 속 작가들
서울문화역사 ‘타이포잔치 2015’

타이포그래피는 뚜렷한 도판으로서의 기능을 가진 2차원적 표현이다. 도시 속에서 만나는 문자에 대한 담론을 전시로 풀어낸 ‘타이포잔치2015 - 도시와 문자’가 지난해 12월 27일까지 열렸다. 올해로 4회째를 맞는 국제 타이포그래피 비엔날레 행사로서, 다양한 국·내외 디자이너와 작가들이 만나 문자라는 2차원 영역이 도시 환경 안에서 어떻게 작동하고 활용되는지를 새롭게 해석했다. 단순히 디자인 전시 혹은 미술 전시라고 규정지을 수 없이 광활한 영역을 탐색한 이번 타이포그래피 비엔날레는 메인 전시, 특별 전시 그리고 10개의 전시 프로젝트들로 이뤄졌다. 

▲타이포잔치, ‘( ) on the Walls’ 전경. 사진 = 한국공예·디자인문화진흥원

이 중 도시 언어유희 프로젝트는 SNS를 바탕으로 파생된 요즘의 신조어, 유행어들이 만들어진 배경, 즉 언어가 생겨나고 변하는 과정으로서의 언어유희를 탐구해 현재의 인간이 어떤 텍스트로 자기 존재를 정의하는지를 살핀다. ‘타이포그래피적 인간이 밀집 거주하는 도시라는 커다란 대화방 안을 탐구’하기 위해 도시의 인간 주변 사물들, 이를테면 비닐봉투, 재떨이, 아파트 열쇠 등을 재료를 선정해 언어적 유희를 덧입혔다. 이밖에도 다른 전시장들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타이포그래피와 미술 매체 영역의 만남이 이루어졌다. 

맨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