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냉장고로 보는 경제사 … 다시 ‘모두의 냉장고’ 시대?

최영태 이사 기자 2021.08.13 09:45:43

(문화경제 = 최영태 이사) 이번 호에 실린 ‘돌아다니는 냉장고가 신선식품을 30분 안 배달’(38~39쪽) 기사는 아주 흥미롭습니다. 택배 경쟁이 심화되다보니 결국 냉장고 트럭이 거리를 배회하다가 주문이 들어오면 30분 안에 가져다 준다는 현대백화점의 구상과, 이를 뒷받침하는 현대자동차의 ‘냉장고 트럭’의 결합이 시대의 양상을 그대로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이런 배송 시스템은 냉장고와 얽힌 우리 인생사를 돌아보게 합니다. 거리를 배회하는 냉장고 기사를 읽으니 경제 전문가인 이원재 LAB2050 대표가 2010년대 초 라디오 인터뷰에서 했던 말이 생각납니다. 당시 그는 “예전에는 냉장고가 동네 구멍가게에만 있었다. 그래서 내가 먹을 두부 등 신선식품의 보관 임무를 동네 가게가 맡았고, 어머니들은 식사 때가 되면 아이들에게 ‘가게 가서 두부 한 모 사와라’고 시키곤 했다. 이랬던 냉장고가 집안으로 들어오더니 그 용량이 점점 커지고 이제는 과거 가게가 맡아왔던 신선식품의 보관 임무를 각 가정이 떠맡고 있는 모양새가 됐다. 과연 이런 형태가 바람직한가?”라는 요지의 말을 했습니다.

삼성과 LG라는 한국의 양대 가전 업체가 2012년 냉장고 용량 경쟁을 벌이다 못해 100억대 소송전까지 벌인 때가 바로 2012년이었지요.

“양문형 냉장고에 꽉꽉”이 소망이었던 시대

냉장고 용량 경쟁 소송이 벌어질 때의 우리 삶을 돌아보면 ‘대형마트에 가서 일주일치 식량을 최대한 많이 사들여 집안의 대형 냉장고에 꽉꽉 재워두고 먹는’ 형태였습니다. 마트의 큰 카트가 미어터질 정도로 식품을 가득 채운 사람이 ‘부자인가봐’라는 부러운 시선을 받았던 시대입니다.

왜 그리 많은 음식을 쟁여놓고, 시설비(냉장고 값)와 보관비(냉장고 전기료)를 개인이 다 부담하면서, 많이 먹어대고, 다 먹지 못해서 유통기한이 지난 식품들을 솎아내는 일을 각 가정이 해온 모습을 지금 돌이켜보면 우스울 뿐입니다.

 

냉장고 용량이 누가 더 큰가를 놓고 100억대 소송까지 벌인 삼성전자(위)와 LG전자의 2012년 광고 대결 영상들.  

냉장고의 변천사를 뒤돌아보면, △‘가게만의 냉장고’라는 가난한 시대를 지나 △이른바 백색 가전 3종(냉장고, 세탁기, 전자레인지 등 흰색 가전제품들)이라는 신문물을 각 가정이 마련하느라 애썼던 경제 발전 초기 △생활이 윤택해지면서 사람 키보다 작은 기존의 아래위 2단 냉장고(위쪽은 냉동, 아래쪽은 냉장 기능을 가진)에 만족 못하고, 사람 키보다 큰 우람한 양문형 냉장고 시대를 거쳐, 이제 패션 감각까지 갖춘 우아한 냉장고까지 발전해 왔음을 알 수 있습니다.

양문형 냉장고가 등장하면서 “2단 냉장고가 멀쩡한데 왜 새 냉장고를 사야 하느냐?”는 남편과 “양문형 냉장고를 들여놓는 게 내 꿈이야!”라던 아내의 부부싸움 장면이 새삼 떠오릅니다. ‘나만의 냉장고’가 극성을 부리던 시대의 풍경입니다.

이제 30분 배송 시대가 열리면서, 그리고 자율주행차와 배송로봇이 등판을 앞두고 워밍업을 하는 시점에서 냉장고史를 되돌아보면, ‘업체가 책임졌다가 개인이 떠맡았던 냉장 기능을 다시 업체가 가져가는’ 시대로 돌아간다는 생각을 해보게 됩니다.
 

1988년 삼성전자의 최신형 2도어 냉장고 광고. 

배송-물류 전쟁에서 마지막 웃을 자는 누구?

현재 국내 물류-유통 업체 사이에 그야말로 생사를 건 대혈투가 벌어지고 있습니다. 배송-물류 경쟁에 쿠팡, 네이버 같은 플랫폼 업체는 물론 백화점, 대형마트, 편의점 등 거의 모든 소매업체들이 마지막에 웃을 최종 승자 겨루기에 나서고 있기 때문입니다.

‘네카쿠배 경제학’이란 재밌는 책을 펴낸 김철민 비욘드X 대표는 최근 유튜브 채널 ‘이효석 아카데미’와의 인터뷰에서 “네이버, 카카오, 쿠팡, 배달의민족이 물류-배송 경쟁을 치열하게 벌이고 있다”며 “여기에다가 자율운전-로봇 기술을 확보한 현대기아차 같은 업체가 물류 + 운송차의 결합으로 시장을 차지하면 80%의 시장을 가져갈지도 모른다”면서 그야말로 춘추전국 시대 같은 양상을 전했습니다.

반도체-배터리를 들고 세계를 향해 호령하는 한국 기업들이 바짝 다가온 ‘모두를 위한 냉장고 시대’에 어떻게 경쟁하고 또는 협력할지 자못 흥미진진한 시대가 아닐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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