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어림짐작 아닌, 차가운 ‘시스템 2 투표’ 안 되나요 ①

최영태 이사 기자 2021.08.30 10:47:42

(문화경제 = 최영태 이사) 초저금리 시대에 한 푼이라도 더 벌기 위한 개인들의 투자 경쟁이 지구 규모로 벌어지고 있습니다. 이번 호 ‘문화경제’가 다룬 ‘커지는 TDF 시장’ 기사(10~15쪽)도 이런 노력의 한 모습입니다.

금리라는 게 현재의 경제 사정은 물론, 장래의 경제까지도 미리 반영한다는 게 경제학자들의 해석입니다. 즉 현재의 금리가 낮다는 것은 집단지성이 미래의 경제를 암울하게 보고 있다는 증거라는 겁니다. 현재 금리가 낮기에 저금해 놓아봐야 이득이 안 되고, 미래 경제까지 암울하다니,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코로나19까지 겹치면서 지구적 규모의 양적완화로 시중에 넘쳐흐르는 돈들이 투자처를 찾아 지구촌을 배회하는 양상입니다.

지난해부터 시작된 이른바 ‘동학개미운동’도 이러한 투자처 찾기 노력의 한 측면입니다. 이렇게 한 푼이라도 더 벌기가 사회의 큰 화두로 등장한 가운데, 이제 대선이 다가오면서 정치적 화두 역시 맹렬한 기세로 떠오르고 있습니다.

앞에서 언급한 TDF(Target Date Fund)는, 평생주기에 맞춰 돈을 불려주겠다는 펀드입니다. 은퇴 시기를 미리 정해놓고 젊을 때는 더 과감한 투자로 돈을 불리고, 은퇴 시기가 다가오면 안전한 투자 비중을 늘려 확실하게 불어난 돈을 은퇴 고객에게 돌려주겠다는 기획입니다.

 

예년을 훌쩍 뛰어넘는 자금이 몰리면서 등락을 거듭하고 있는 한국 증시. 사진 = 연합뉴스

이렇게 투자 전문가들이 미리 정해진 프로그램에 따라 운용하는 펀드들은 대개 냉철하게 미리 정해놓은 기준-원칙에 따라서 자금을 운용합니다. 증시 뉴스를 보면 ‘프로그램 매매’라는 말이 나오는데, 이는 펀드 운용자 개인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미리 정해진 기준에 따라, 컴퓨터가 특정 주식을 무조건 팔도록 하는 것을 말합니다.

프로그램 매도가 중요한 이유는, 주식 매입-매도는 운용자 개인의 감정과 분리될수록 좋기 때문입니다. 흔히 주식 전문가들은 “인간의 심리는 주식 투자에 불리하게 돼 있다”고 말합니다. 남들이 살 때 나도 사고 싶어지고(지금 안 사면 영원히 못 살 것 같아서), 남들이 팔 때 나도 팔고 싶어지는 게(지금 안 팔면 더욱 떨어질 것 같아서) 인간 심리인데, 이게 바로 상투를 잡고, 패닉 셀링(공포에 질려서 헐값에 매각)에 빠지는 원리입니다.

이런 인간 심리의 취약점을 차단하기 위해서는 맨정신으로 미리 마련해 놓은 기준-원칙에 따르는 것이 절대적으로 필요하고, 그래서 국민연금 같은 대형 연기금들이나 투자운용사들은 절대 원칙으로서의 ‘프로그램’을 정해놓고 실행하는 것이지요.

개인도 이러한 ‘냉철 프로그램’을 마련해 놓는 게 유익합니다. 물론 인간인지라 쉽지는 않습니다. 주식투자에서는 개인도 이러한 ‘냉철 프로그램’을 마련하고 실행할 수 있지만, 정치-투표에서는 그러기가 쉽지 않습니다. 숫자로 지배시킬 수 있는 경제와 달린 정치에서는 숫자만으로 모든 결정을 내리기가 쉽지 않기 때문입니다.

 

더불어민주당 대선경선 후보들이 28일 1차 TV토론회 준비를 하고 있다. 사진 = 연합뉴스

정치에서는 이른바 ‘프로그램 투표’가 불가능하기에 한국인들은 거의 항상 “내가 뽑은 대통령을 내가 저주하고”, “저런 대통령을 뽑은 이 내 손가락을 원망하는” 고질병을 아직도 떨쳐내지 못하고 있습니다.

2002년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행동심리학자 대니얼 카너먼(미국 프린스턴대 명예교수)은 자신의 평생 연구 결과를 집약한 ‘생각에 관한 생각’(원제 ‘Thinking, Fast and Slow’, 2013년 발간)에서 인간의 심리 작용을 ‘시스템 1’과 ‘시스템 2’로 나눴습니다.

인간 심리의 시스템 1과 2의 차이

시스템 1은 0.1초 내로 일어나는 인간의 자동적인 심리 작용을 말하며, 시스템 2는 시간을 들여 합리적으로 계산하고 분석해 결론을 내리는 심리 작용을 말합니다. 간단히 비유하자면, 시스템 1은 아무 생각 없어도 그냥 일어나는 심리 현상입니다. 반대로 시스템 2는 “좀 생각해볼까”라면서 펜을 꺼내들고 종이에 끄적거리기 시작해야 겨우 작동되는 심리 현상입니다.

현재 한국의 정치 관련 언론보도와, 그에 따른 유권자들의 행동을 보면 시스템 1적인 특성이 강하다고 필자는 판단합니다. 그래서 다음 회 칼럼에서는 우리보다 선거 역사가 긴 서구 나라들에서 ‘시스템 2적인 투표’를 하기 위해 어떤 제도, 즉 프로그램을 마련해 놓았는지를 검토해보겠습니다. 좋은 건 우리도 따라해야 하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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