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뜬구름 같은’ 무형자산 잘 다뤄야 흥한다고?

최영태 이사 기자 2021.10.14 09:56:54

(문화경제 = 최영태 이사) 이번 주 ‘문화경제’ 기사 중 재미있는 것으로 75년 역사의 식품기업 샘표 이야기(30~31쪽)가 있습니다. 간장 전문기업으로 이름을 날리는 샘표는 한때 커피 제품을 내놓았으나 “커피의 검은 색이 간장을 연상시킨다”는 소비자의 반응 탓에 고배를 마셨답니다. ‘샘표 커피’의 맛이, 즉 형체가 있는 유형자산의 내용물이 아무리 훌륭해도, 샘표라는 브랜드가 갖고 있는 뜬구름 같은 이미지인 무형자산을 확보하지 못한다면 실패하기 쉽다는 하나의 사례로 거론할 만한 얘기 아닌가 싶습니다.

과거 물건이 중요했던 시절, 즉 물건은 아무나 못 만들기에 물건만 잘 만들면 소비자가 쓸 수밖에 없었던 산업사회 시절에는 기업의 이미지가 좀 안 좋아도 물건만 훌륭하면 성공할 수 있었습니다.

사람에 대해서도 “그 집 사장이 사람은 못 됐지만 돈은 잘 벌어” 하는 시절이 있었지만, SNS가 발달한 요즘엔 반대로 “그 사장은 물건은 잘 만들지만, 사람이 못 됐기에 나는 그 집 물건은 절대 안 사”가 되기 쉽습니다. 물건 만들기가 과거보다 훨씬 쉬워졌고, 대체제 찾기가 수월해졌다는 사정 때문입니다.
 

영국 음식 전문지 ‘디쉬(Dish)’에 소개된 샘표 연두. 

팬데믹과 한국의 제조업, 그리고 무형자산

코로나19 팬데믹을 계기로 한국에 대한 지구인들의 이미지는 깜짝 놀랄 정도로 바뀌었습니다. 최근 프랑스 파리를 다녀온 정봉주 전 의원은 자신의 유튜브 방송에서 이런 얘기를 했습니다. “파리에서 프랑스 식당을 갔는데 한국인이 왔다고 하니 그 집 셰프가 나와 말 걸기를 ‘내가 요즘 돈을 모으는데 왜 모으는지 아나? 값비싼 한식당에 가기 위해서’라 하더라”는 것이었습니다.

정 전 의원은 이런 얘기도 했습니다. “과거 최고 인기였던 일식집 중 값비싼 스시집은 거의 사라지고 값싼 일본식 라면-우동 가게만 남았더라”라고. 90년대 필자가 파리를 방문했을 때 쉽게 찾을 수 있는 일식집과 중식당에서 주로 끼니를 해결했고, 몇 개 없는 한식당을 찾아갔지만 그 초라한 모양새에 놀랐던 수준을 되돌이켜본다면 참으로 대단한 변화가 아닐 수 없습니다.

한국에 대한 이미지가 확 바뀐 데는 한국이 코로나19 방역에 성공했던 점도 있지만, 한국은 중국과 마찬가지로 거의 모든 물건을 생산할 수 있는 나라였기에, 마스크 생산도 못해 절절매던 구미 선진국들 입장에서는 경이롭게 쳐다볼 수밖에 없었던 사정도 있었습니다.

한 경제 전문가는 이런 얘기를 했습니다. “선진 경제는 더럽고 힘든 제조업에서 탈출해 서비스 경제로 거의 완전하게 전환했기에 코로나19 팬데믹을 맞아 곤욕을 치렀지만, 제조업 위주에서 탈출 못했던 한국 경제는 오히려 팬데믹으로 호기를 운 좋게 맞았다”는 해석입니다. ‘모든 것을 만들 수 있는 나라’는 운 좋게 자랑거리가 됐지만 사실은 산업전환 실패의 증거이기도 하다는 진단입니다.

ESG 시대가 코앞으로 다가왔습니다. 이제 탄소를 많이 발생시키는 나라의 상품은 유럽에 거의 수출할 수 없는 시기가 4~5년 앞으로 다가왔습니다. 물건을 많이 만들려면 에너지 사용도 많아야 하기에 탄소 배출 대국(大國)이 되기 쉽습니다. 친환경-신재생에너지 분야에서 유럽에 뒤처졌던 미국도 바이든 대통령이 천문학적 예산을 투자해 ESG 시대를 앞서가겠다는 결의를 보이고 있습니다.

이제 치료제까지 나오면서 팬데믹 시대가 저물고 있습니다. ‘모든 것(물건)을 생산할 수 있어 자랑스러웠던 한국’은 2020~2021년의 추억으로 남고, 2022년부터는 무형자산으로 승부를 가르는 ‘보통의 21세기 경제’로 돌아갈 것입니다. 모든 물건을 만들 줄 안다는 것에 대한 자랑은 이제 좀 접어두고 “한국은 모든 것을 잘 만들어” 할 때의 ‘것’에는 무형자산을 듬뿍 넣어야 할 때입니다.

 

한 현지 여성이 프랑스 파리에 문을 연 ‘오징어 게임 편집 숍’에서 설탕뽑기 놀이에 몰두하고 있다. 사진 = 넷플릭스

이런 와중에 ‘오징어 게임’이란 한국의 무형(서비스) 상품이 전세계를 강타하고 있습니다. “도대체 (무형자산까지 포함해) 한국인이 못 만드는 게 뭔가?”라는 한탄을 포스트-팬데믹 시대에 내뿜게 만드는 쾌거지요.

이번 호 ‘문화경제’에 실린 기사 중 △해외 판매량이 국내 판매량을 처음으로 앞섰다는 농심 신라면 이야기(32~33쪽) △게임 지적재산권을 활용해 아시아의 디즈니를 꿈꾼다는 게입업체 넥슨(42~43쪽) △넷플릭스와 디즈니플러스라는 양대 온라인 비디오 서비스(OTT) 업체의 한국 소비자+생산자(영상물 제작 전문 그룹) 쟁탈전을 다룬 기사(48~55쪽) 등이 향상된 한국의 이미지 또는 영상물(무형자산) 생산능력에 대한 내용들입니다.

개인이건 회사건, 과거엔 물건을 잘 만들어야 성공했지만 앞으로는 무형물을 잘 만들거나 다룰 줄 알아야 성공한다는 공식이 더욱더 퍼져나가기를 기대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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