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문정 평론가의 더 갤러리 (78) 신건우 개인전 ‘식(蝕)’] “난초화에서 난초 뺀 빈공간을 그려낸다면?”

이문정 미술평론가, 연구소 리포에틱 대표 기자 2021.11.12 09:48:00

(문화경제 = 이문정 미술평론가, 연구소 리포에틱 대표) 더갤러리 이번 호는 갤러리2에서 개인전을 가진 신건우 작가와의 인터뷰를 싣는다.

- 이번 전시의 주제인 ‘식(蝕)’은 ‘존재하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것, 형태가 없는 어떤 것이지만 분명 존재하는 것’을 의미하는 개념이다. ‘서로 반대되는 요소가 공존하는 세상’에 관한 탐구이기도 하다. 동시대 미술에서 양가성은 낯설지 않은 키워드이다. 또한 미술은 물질로 정신이나 감정 같은 비물질적인 영역을 담아낸다. 그러나 무엇보다 ‘식’은 있음과 없음, 현존과 부재 등이 하나의 근원에서 나온 것이라는 동양적 사고와 긴밀해 보인다. 우리가 많이 들어본, ‘천하만물은 모두 유에서 나오고 유는 무에서 나온다(天下萬物生於有, 有生於無) 혹은 여백과도 연결해볼 수 있을 것 같다. 비어 있기에 더 많은 것이 담길 수 있는 것이 여백이다.

일부러 연결할 필요는 없지만, 굳이 말하면 그쪽에 가깝다. 작업과 관련해 서양보다 동양철학적인 내용에 더 감흥을 받았다. 동양철학에 관한 책들을 읽으면 그 순간 맞다고 공감하는 내용이 많다. 삶에서 경험하고 인지해 내재된 행동 양식에 가까운 것들이다. 여백이란 표현도 맞다. 동양화에서 난초 말고 그 주위의 흰 영역을 생각하면 된다. 조각에서는 실공간과 허공간이란 말을 하는데, 작품뿐 아니라 작품을 둘러싼 공간을 생각하며 작업해야 한다. 학부 때부터 배웠던 개념인데 그것과도 연결할 수 있다. 예를 들어 ‘Black Whole’(2021) 역시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 무엇인가 불쑥 나타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멀리서 보면 검은 점이었지만 가까이 가서 보면 구상적인 작품이 된다.
 

신건우 개인전 ‘식(蝕)’ 전시 전경, 2021 ©갤러리2
신건우 개인전 ‘식(蝕)’ 전시 전경, 2021 ©갤러리2

- ‘식’에 대한 작가의 풀이를 듣고 싶다.

‘식’이란 이 세상에 존재하는 우리를 제외한 나머지이자 우리가 모르는 미지의 것들이다. 우리가 느끼지 못하지만 우리 주변에 있는 존재, 있다가도 없을 수 있고 없다가도 어느 순간 생기는 어떤 것, 무형의 것, 그것을 굳이 형상화할 수 있을지 확언할 수는 없지만, 그것을 작품에 담아내고 싶었다. ‘식’을 형태적으로 풀어낸 것이 원형인데, 인간이 만들 수 없는 자연에만 존재하는 형태를 찾다 보니 완벽한 원, 구에 이르게 되었다. 쉽게 설명하면, ‘Avocado’(2021)는 아내의 만삭 배를 보고 만들었다. 그 안에 있는 아기가 있을법한, 동그랗게 파인 부분이 ‘식’이다. 당시에는 알 수 없었다. 초음파로 볼 수 있다고 하지만 나의 상상 속에만 있는 무형의 어떤 것이었다. 사실 부조 작업에서 내가 이야기하고자 했던 것들도 ‘식’이다. 우리가 모르기 때문에 벌어지는 현상을 이야기하기 위한 것이기 때문이다.
 

신건우, ‘식(蝕) - Blue Pagoda’, chrome plated resin, fiber, 110 x 110 x 240(h)cm, 2021 ©갤러리2
신건우, ‘Universe’, urethane paint on resin, glitter, 30 x 30 x 95(h)cm, 2021 ©갤러리2

- ‘식(蝕)-Blue Pagoda’(2021), ‘식(蝕)-Black Pagoda’(2021)와 관련해 ‘어떤 탑인지는 의미 없고 탑의 형태가 눈에 띄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개인적으로 ‘그냥’은 수사적 표현처럼 보인다.

탑을 선택한 것은 그 형태가 특이해서였다. 일반적이지 않았다는 뜻이다. 우리가 보통 생각하는 것과는 전혀 다른 형태를 가진 탑이었다. 그중 하나는 너무 많은 풍화작용으로 소실되어 있었다. ‘식-Blue Pagoda’의 출처가 된 탑은 더 이상 탑의 기능을 하지 않는, 종교적 의미가 사라진 돌 같은 느낌이었다. 한국의 석탑은 화강암으로 만들어지는데 돌이 닳고 떨어져 나가 생긴 거친 질감 등을 일종의 데페이즈망처럼 털 같은 재질로 바꾸고 색도 넣어 나의 이야기를 추가했다. 결국 탑이 ‘식’을 상징하는 비구상적인 형태인 원과 만나는 순간의 캡처와 같은 작품을 만들었다. 달이 쓱 지나가다 탑에 부딪혔을 때의 형상, 달이 탑과 만나 이지러지는 순간을 만들고 싶었다. 여기에 종교적 함의는 없다. 나의 다른 작품들에 등장하는 종교적 도상들 역시 이미지적 차용에 가깝다.
 

신건우, ‘Hole in Palm Leaves’, bronze, wood, 53 x 80 x 82(h)cm, 2021 ©갤러리2
신건우, ‘Virupaksa’, acrylic and oil painted resin on canvas, 120 x 90cm, 2021 ©갤러리2

- ‘Universe’(2021)에 대한 설명을 부탁한다. 개인적으로 전시 주제와 연결해 ‘정중동(靜中動)인가?’란 생각을 했다.

별이 지구의 자전 때문에 움직인다고 하는데, 밤하늘을 한 30분 정도 바라보니 정말 움직이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런데 거대한 자연의 법칙을 보여주는 그 움직임이 감성적으로 다가왔다. 그 순간 소녀가 돌고 있는 이미지를 만들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우주가 확산하듯 펼쳐져 있다면, 돌고 있는 소녀의 이미지를 통해 하나의 중심으로 뭉쳐져 있는 형상을 만들어보고 싶었다.
 

신건우, ‘Dawned’, pigment on resin, neon, wood, 150 x 50 x 50(h)cm, 2021 ©갤러리2

- 정확한 이유는 잘 모르겠는데, 신건우의 부조 작품을 보며 프랑수아 뤼드(François Rude)의 ‘라 마르세예즈(La Marseillaise)’를 떠올린 적이 있다. 작품의 서사성이 강하게 느껴져서인 것 같다. 부조 작업을 처음 시작하게 된 계기가 궁금하다.

내 작업 중에 테이블 위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테이블 아랫면에 형상으로 표현한 ‘Cold Table’(2004)이란 작품이 있다. 유학을 가기 전 작업실을 청소하다 테이블의 아랫면이 보이도록 기대어 세워놓았는데 그 모습이 강하게 다가왔다. 의도하지 않은 방향에서 작품을 바라보니 전혀 다른 이야기를 하는 것처럼 보였다. 예상하지 못한 계기로 이미지가 벽에서부터 나오는 것 같은 형상을 제작해봐야겠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처음에는 드로잉에서 살짝 발전된 것처럼 물체를 입체적 형태로 만들었고, 이후 인물들이 등장하게 되면서 내러티브가 만들어졌다. 그리고 어느 순간부터 메시지를 전달하고 싶어졌다. 사회적 변화들이 많았던 시기였기 때문에 내가 생각하는 세상이 왜 이렇게 되었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과거의 도상들을 끌고 들어와 현대적으로 재해석하는 작업을 하게 되었다.
 

신건우, ‘Thousand Hands’, oil painted resin on canvas, 140 x 95cm, 2021 ©갤러리2

- 신건우의 부조와 환조를 보면, 초현실적인 상황에 놓인 인물이라 하더라도 그 형태와 색채는 현실 세계에 근거한 것으로 보인다. 결과적으로 전통적인 미술의 재현, 조각이라는 장르의 정체성, 동시대적인 작업 방법이나 이슈들을 아우르는 작업이라 할 수 있다. 조각을 탐구한다는 측면에서 전통적인 조각에서부터 모더니즘, 동시대까지 아우르려는 의도가 있었는가?

내러티브에 집중하다 보니, 작품을 더 잘 설명하기 위해 색도 적극적으로 쓰게 되는 것 같다. 색채가 주는 확실한 효과가 있다. 예를 들어 ‘Hunt’(2017)에서 연평도 포격의 이미지를 사용했다. 포격 장면을 구체적으로 보여주는 게 아니라 포격으로 인한 연기를 표현했는데 신문 1면에서 봤던 이미지에 근거했다. 그런데 화질의 문제였는지, 인쇄의 문제였는지 사진이 보랏빛이었고, 내 작품에 그대로 표현했다. 나는 그런 색이 사람들에게 주는 메시지가 더 강하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입체나 부조가 아닌 평면적인 모습을 투영시킨다면 내러티브를 설명하는 수단으로 색을 쓰는 게 맞는 것 같다. 인물에 칠해진 색도 그 인물을 설명하기 위한 요소로 선택한 것이다. 채색의 경우 일반적인 회화 작업에서처럼 사용된다. 다만 차이가 있다면 유학 시절 관련 수업을 통해 습득한 목조각 채색법을 이용한다.

- 작가가 무엇에 영향을 받았고 참조했는지 작품에 직접적으로 보여주는 것 같다.

나는 누구나 쉽게 알아들을 수 있을 정도로 이해도가 좋은 작품을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아무리 깊은 생각이 담겼어도 ‘이런 내용을 담고 있어, 이 사람은 이런 행동을 하고 있어’라고 쉽게 말할 수 있는 작업을 하고 있다. 작가가 자기 세계에 숨어서 이야기하는 것은 내 스타일에 맞지 않는다. 나는 사람들이 미술을 너무 어렵게 생각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과거에는 작품 속에 여러 장치를 만들어 숨겨놓고, 그것을 발견하는 사람들이나 찾으려는 사람들을 보며 쾌를 느끼기도 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니 별 의미가 없었다. 그런 장치는 모두 속임수일 뿐이고 궁극적으로 하고자 하는 말은 단순한 하나였다. 그래서 작품은 단순하게 읽히는 것이 맞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이번 전시를 준비하면서도 ‘그렇게 많이 고민하지 않아도 되었던 거구나, 원래 자연스럽게 나올 수 있는 것들인데 나의 욕망이나 주변 상황들이 투영되어 어렵게 작업했었구나’라는 생각을 했다.

 

신건우 개인전 ‘식(蝕)’ 전시 전경, 2021 ©갤러리2
신건우 개인전 ‘식(蝕)’ 전시 전경, 2021 ©갤러리2

- 이번 전시에서 그동안의 작업과 다른 형식의 작품을 선보였다. 앞으로 본인의 작업이 어떻게 전개될 것이라 예상하는가?

영국에서 유학하면서 부조 작업을 본격적으로 시작했고, 한국에서 활동하면서 부조 속 인물들이 떨어져 나온 환조를 제작했다. 부조 작품을 하나의 연극 무대라고 했을 때 인물들에게 스포트라이트를 비춘 게 환조이고, 개인전 ‘SURFACE’(2018)에서 보여줬던 평면(회화) 작업은 배우들이 빠져나간 연극 무대, 거기에서만 느낄 수 있는 오라(aura)에 관한 것이었다. 이번엔 부조라는 틀과는 상관없이 내 생각을 단순하게 보여줄 수 있는 형태로 작업했다. 작업의 방식이 다양해졌다. 현재는 조각 쪽으로 치우쳐져 있고 할 이야기도 많아 앞으로 1~2년 정도는 이 이야기를 조금 더 할 것 같지만, 한편으로 다른 것을 하고 싶다는 마음도 있다. 하나의 방향으로 가기보다는 여태까지의 작업과 연결되는 영역 안에서 펼쳐 놓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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