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이재명의 ‘이랬다 저랬다’로 대중추수주의를 다시 봄

최영태 이사 기자 2021.12.14 10:00:25

(문화경제 = 최영태 이사) ‘말 잘하는’ 이재명 민주당 대선 후보의 행보를 보면서 포퓰리즘에 대한 생각을 가다듬게 된다. 포퓰리즘이란 말은 비하어다. 번역하면 대중추수주의. 옳지 않은 일일지라도, 즉 장기적으로 국가에 해가 되는 일일지라도 당장에 대중이 좋아하기에 투표권을 매수할 수 있다면 나랏돈 등으로 대중의 욕구를 충족시켜주는 정치를 비판할 때 쓰는 말이다.

민주당 대선 후보로 확정된 뒤 이 후보는 △음식점 총량제 도입 → 정식 정책 제안 아니다 △국토보유세를 신설해 기본소득을 준다 → 국민이 원하지 않는다면 당장 안 한다 △전국민 재난지원금 25조 원 지급 →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의 50조 원 소상공인·자영업자 손실 보상안 수용 → 김종인 국민의힘 총괄선대위원장의 100조 원 코로나19 손실 보상안 수용 등으로 발언을 바꿔왔다.

이에 대해 국민의힘 측은 “표가 되면 말하고, 표 안 된다 싶으면 뒤집는다. 주변 색에 따라 몸통 색을 바꾸는 카멜레온이 울고 갈 변신이니, ‘이재명 = 표멜레온’”(원일희 당 중앙선대위 대변인)이라고 비난했다. 보수 언론들은 ‘이재명의 갈지자’ 등을 만화로 조롱했다.

이런 비난에 대해 이 후보는 “정책의 포기가 아니라 국민 동의 없이 강행하지 않겠다는 것”(7일 서울대학교 금융경제세미나 강연회)이라고 밝혔다.

 

이재명 후보(오른쪽)가 7일 ‘주택청약 사각지대’ 간담회를 하며 메모하고 있다. 사진 = 국회 사진기자단

이재명 캠프에 가담한 이헌욱 전 경기주택도시공사(GH) 사장은 8일 유튜브 방송 ‘이이제이’에서 “합의된 것부터 해 나가는 게 민주주의 아닌가? 막 하면 여론도 안 받고 추진한다고 또 공격할 거 아니냐”는 취지로 발언했다.

여기서 민주주의와 엘리트주의를 다시 한번 생각해보게 된다. 민주주의의 요체를 흔히 선거(대의제)로 생각하지만 서구 민주주의가 싹트던 시대를 살았던 프랑스 사상가 몽테스키외(1689~1755년)는 달랐다. 그는 “대의제란 귀족정이나 과두정이고, 민주주의의 본질은 제비뽑기에 있다”고 했다. 선거 후보로 나설 수 있는 사람은 부자거나, 돈을 끌어모을 능력이 있어야 하기 때문에 결국 현대판 귀족 정치와 마찬가지고 민주주의의 본질은 고대 그리스식 제비뽑기에 있다는 것이다.

고대 그리스의 제비뽑기에 대해 일본 철학자 가라타니 고진은 저서 ‘일본 정신의 기원’에서 다음 요지로 썼다.

아테네에서는 시민 전원이 참여한 가운데 제비뽑기로 국가 관리직을 뽑았고, 이들에 대한 감시 역시 제비뽑기로 선출한 탄핵재판소에 맡겼다. 공무원, 검사, 판사를 제비로 뽑은 셈이다. 권력의 고정화를 막기 위해 도입한 시스템이 선거 아닌 제비뽑기였다. 우연성으로 권력의 고정화를 막은 것이다. 아테네의 민주 정치는 걸출한 지도자를 인정하지 않고 끌어내리는 것이었으며, 능력을 지닌 인간이 권력을 가지는 상황을 탄핵 재판으로 억제했다. 단, 아테네에서도 군인은 제비로 뽑지 않았다. 무능자가 지휘하면 지기 때문이다.

평상시 나라 관리는 아무나 해도 되고, 유능함이 절대적으로 요구되는 군대 시스템은 다른 방식을 취했다는 말이다. “잘난 사람은 위험해!”라며 공직자는 아무나 될 수 있도록 제비뽑기로 결정했다는 이런 시스템, 21세기 한국에서 가능한가?

오리지널 민주(demo)주의, 한국에서 가능한가

제비뽑기의 현대적 위력에 대해 미국의 노동변호사 토마스 게이건은 책 ‘미국에서 태어난 게 잘못이야’에서 독일의 예를 들며 아래 요지로 썼다.

독일 호텔에 앉아 있는데 30분도 안 되는 시간 동안 신문팔이 소년 셋이 왔다 갔다. 독일인이 이렇게 활자만 빽빽한 신문을 잘 읽는 이유는 어느 순간이든 독일 시민 50만 명은 직장평의회에 노동자 대표로 선출되기 때문이다. 당신이 어느 순간 노동자 대표가 돼서 회사의 이사회에 참석해야 한다면 신문을 읽지 않을 재간이 있겠는가. 대학 진학률보다 신문 구독률이 더 중요하다. 고졸자가 신문을 열심히 읽고 투표하면 더 나은 대안을 선택할 수 있다.

 

고대 그리스 민주주의를 완성한 페리클레스의 연설을 그린 그림. 그는 자신이 완성한 ‘시민 탄핵 재판’에 걸려 실각한다. 

일정 규모 이상의 기업 이사회에 노동자 대표를 ‘꼭’ 참여시키는 독일의 시스템이 국민을 똑똑하게 만들었다는 얘기다.

고 김대중 대통령은 “대중보다 반 발만 앞서가라”고 했다. 그런데 반 발 앞서가는 사람은 자칫 짜증이 난다. 도와주려고 내가 반 발을 앞서가는데, ‘어리석은’ 대중은 반 발 뒤를 따라오는 것도 힘들어하거나 때로는 국민에 도움 주려는 정책에 대해서도 “힘들게 그런 걸 왜 하냐?”며 반발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고대 중국부터 현재까지 동양에 이어지는 사상은 ‘위민(爲民: 서민을 위함)’이다. 엘리트가 서민을 위한다는 개념이자 당위론이다. 물론 이 위민 개념에는 “엘리트들이 너희들을 위해 일하는데도 어리석어서 따르지 못한다면 사랑의 매를 드는 수밖에 없다”는 함의가 깔려 있다. 전두환 시절에 관공서마다 설치됐던 위민실(爲民室)의 서슬푸름이 새삼 느껴진다.

한국 정치사를 보면 “국민을 위해 일하는데 왜 이래?”라는 짜증이, 보수는 물론 진보에서도 물씬 풍긴다. 위민이다. 이재명 후보에게는 이런 짜증이 느껴지지 않는다. 신기할 정도다.

이런 대중추수주의는 물론 걱정도 된다. 이 후보는 11월 17일 국회에서 열린 서울권 대학언론연합회 초청 간담회에서 “주택 공급을 대대적으로 늘리는 정책을 준비하고 있다. 집값에 너무 큰 영향을 주면 오히려 반발하지 않을까 지적할 정도로 대량 공급 정책을 준비하고 있다”고 밝혔다. 기본주택 등이 기본 정책이지만 ‘살(buy) 집을 달라’가 국민의 요구라면 집값에 큰 영향을 줄 정도의 대량 공급도 가능하다는 의미로 읽힌다.

살(live) 집을 주는 게 기본 정책이지만 국민 다수가 살(buy) 집을 원한다면 못해줄 것도 없다는 태도인데, 인구 감소 시대에 자칫 이런 정책이 집값 폭락 사태의 단초가 되지는 않을지 걱정도 된다.

느닷없이 만나게 된 최초의 탈(脫)위민 후보에 대해 한국 유권자가 어떤 선택을 할지 자못 흥미진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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