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버스 체험기 ①] 어린이 화상환자에 꼭 필요한 심리치료에 새 지평 연다

50주년 맞은 한림대의료원 어린이화상병원, 비대면 ‘공감과 소통’으로 희망 이어가

윤지원 기자 2021.12.30 13:32:39

문화경제 기자(우측 아래 사진)가 게더타운 내 한림대학교의료원 메타버스 어린이화상병원에서 진행된 온라인 기자간담회에 참석하고 있다. (사진 = 윤지원 기자)

12월 28일 오후 1시. 기자는 한림대학교의료원의 어린이화상병원을 찾았다. 널찍한 병원 부지 한켠에 조성된 공원이 모임 장소라고 안내 받아 그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화단에 는‘한림대학교의료원’이 새겨진 커다란 바위와, 학원 설립자인 일송(一松) 윤덕선 선생을 의미하는 커다란 소나무 한 그루가 서 있었다. 옆에 설치된 야외 스크린에서는 41% 전신 화상을 이겨내고 새로운 삶과 희망을 찾은 한 화상 환자의 인터뷰 영상이 방영되고 있었다.

공원 한쪽, 여러 개의 벤치 주변에 한림대의료원 관계자들과 다른 매체의 여러 기자들이 모여 있었다. 한림대의료원 홍보팀의 김모 주임도 있었다. 김 주임은 사람들 사이에서 신나게 ‘춤을 추며’ 안내를 하고 있었다. 반가운 마음에 기자도 그 옆으로 다가가 똑같은 동작으로 ‘춤을 추었다’.

이곳은 한림대의료원이 최근 메타버스 서비스 플랫폼인 게더타운에 오픈한 ‘메타버스’ 어린이화상병원이다. 건물과 바위와 소나무는 2D 그래픽이고, 야외 스크린은 한림대의료원 유튜브 채널이 링크된 화면이며, 공공장소에서 인파에 둘러싸여 낯 두껍게 춤추는 저들은 기자와 김모 주임의 아바타다. 같은 시간 기자와 김 주임은 각각 서울 서대문구와 영등포구에 있는 각자 회사 사무실 책상 노트북 앞에 앉아 있었다.
 

한림대의료원 메타버스 어린이화상병원 앞뜰에 마련된 '오징어 게임' 관련 무대(위)와, 해당 무대에서 실행하면 나오는 '오징어 게임' 스크린샷. (사진 = 웹페이지 캡처)

 

메타버스 가상병원과 ‘오징어 게임’

한림대의료원은 28일 매체들을 대상으로 초청 링크를 보내고, 접속한 기자들에게 메타버스 어린이화상병원을 소개했다.

한림대의료원 메타버스 공간에는 다양한 크기와 모양의 건물들과 화단, 벤치, 야외무대 등의 공원이 배치되어 있다. 건물 중에는 현재 ‘일송 윤덕선 선생 탄생 100주년 및 한림대의료원 개원 50주년 기념관’과 이번에 새로 오픈한 ‘한림대의료원 메타버스 어린이화상병원’이 구축되어 활용되고 있다.

두 건물 사이에 설치된 야외무대와 그 주변의 캐릭터들이 먼저 눈에 들어온다. ‘△□○’ 도형이 각각 그려진 검은 가면 위로 뒤집어쓴 핫핑크 후드가 익숙하다 했더니, 바로 넷플릭스 ‘오징어 게임’의 일꾼들이다. ‘오징어 게임’ 2화에는 한림대학교한강성심병원 앞에서 찍은 장면이 나오는데, 드라마가 전 세계를 상대로 빅히트를 기록하면서 한림대한강성심병원도 전 세계에 그 이름이 알려지게 됐다며 해당 스크린샷 이미지를 게시해 둔 것이다.

기념관 안으로 들어가면 일송 선생에 관한 기념물과 한림대의료원의 연혁 및 활동에 관련된 온라인 전시물들이 배치되어 있다. 관련 웹페이지로 이동하거나, 이미지나 동영상 등의 콘텐츠 각각을 확대해서 감상할 수 있다.

 

한림대의료원 메타버스 어린이화상병원 내에 구축된 교실 공간(위)과 플레이룸 공간. (사진 = 한림대학교의료원)

 

기념관에서 나온 뒤 오늘의 메인 코스인 한림대의료원 메타버스 어린이화상병원 건물로 들어가면 우선 로비에 도착한다. 로비에서 대강당과 상담실, 전시장, 플레이룸 등 각각 다른 역할로 구성된 공간들로 들어갈 수 있다. 각 공간에 대한 안내 정보는 키오스크 형태의 설치물을 통해 얻을 수 있다.

마침 같은 시간대에 이곳 대강당에서는 서울 영등포구 어린이집 교사 등을 대상으로 화상 안전 교육이 실시간으로 진행되고 있었다. 초청 강사가 실시간으로 화상 예방과 발생 시 응급 처치 방법 등을 교육하고, 질의응답을 했으며 아바타들이 단체로 OX 퀴즈를 진행하기도 했다.

대강당 옆 상담실에서는 진료과목, 진료시간표, 진료예약, 병원 위치, 주차 등등 실제 병원 진료에 필요한 다양한 정보를 얻을 수 있다.

한림대의료원 관계자에 따르면 특히 진료 의뢰 및 간단한 진료 상담 정도를 이곳 상담실에서 할 수 있고, 전문상담사와 1:1 실시간 상담을 진행할 수도 있다.

클래스룸 공간에는 20개의 교실이 있고, 각 교실에 긴 책상과 의자, 메모 보드 등이 마련되어 있다. 이곳에서는 정상적인 등하교가 곤란한 어린이·청소년 화상 환자의 학업을 지원하는 화상병원학교의 온라인 클래스가 진행될 예정이며, 각 교실은 소규모 화상 회의나 모임 장소로도 이용할 수 있다.
 

지난 12월 24일 한림대의료원 메타버스 어린이화상병원 대강당에서 진행된 '화상경험 아동 엄마 일기 전시회 & 콘서트' 행사. 화면 상단에는 행사에 참석한 한림대의료원 관계자 및 화상경험 아동의 보호자들이 화상캠으로 실시간 소통하는 모습. (사진 = 한림대학교의료원)

 

어린이화상병원 "소통·상담·교육 역할 무엇보다 중요"

상담실과 클래스룸은 한림대의료원 메타버스 어린이화상병원에서 가장 주목되는 공간이다.

화상은 치사율도 높고 고통스러운 데다 치료하기가 까다롭고 어려우며 오래 걸린다. 환자 뿐 아니라 의료진도 스트레스가 극심하며, 치료에 성공해 생명을 구한들 영구 장애와 흉터 등으로 인해 환자의 여생에 큰 영향을 끼치게 된다. 적지 않은 경우, 화상 환자는 치료 후에도 일상의 삶으로 복귀하기 쉽지 않고, 흉터에 대한 세상의 편견과 차별의 벽에 부딪혀 상처받기도 한다.

따라서 화상 치료에서는 심리적인 부분에 대한 치료도 중요하게 여겨지며, 오랜 치료 기간 학업을 정상적으로 수행할 수 없는 어린이, 청소년 환자의 교육 또한 해결되어야 할 과제다.

한림대의료원은 한강성심병원이 1986년 국내 최초로 화상치료센터를 개설하고, 2006년 보건복지부로부터 국내 유일의 화상 전문 응급의료센터로 지정된 데 이어 2015년에는 화상전문병원으로 지정되는 등 화상 특성화 의료 기관으로는 국내에서 가장 역사가 깊다.

한림대의료원은 화상 치료 외에도 흉터를 줄일 수 없는 성형 치료 및 심리 치료 등 비용이 많이 드는 치료, 그리고 치료 후 사회로의 복귀에 필요한 여러 가지 도움 등등 화상 환자에 폭넓은 지원을 지속해 왔다.

한림대의료원은 또 2013년에는 사우디아라비아 국영기업인 아람코의 후원을 받아 국내 최초의 화상병원학교를 개원했다. 초중고생 화상 환자들이 교육청에 신고하고 화상병원학교에서 사이버교육을 이수하면 특수교육진흥법에 따라 출석을 인정받을 수 있다. 한림대의료원에 따르면 2018년까지 첫 5년간 화상병원학교가 운영한 심리 및 놀이 지원 프로그램은 1831회에 달하고, 전체 이용자 수는 1만 2755명이나 됐다.

한림대의료원 관계자는 “화상 경험 어린이가 치료를 받고 성인으로 성장할 때까지, 계속 치료와 회복이 필요한 긴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이 부모님들이다. 오랜 치료와 회복의 과정 및 흉터와 관련된 수많은 정보들, 사회적인 시선 및 관계와 그에 따른 어려움 등을 화상 환자 혼자 또는 그 가족만의 몫으로 맡겨두는 것이 아니라 병원이 함께, 그리고 같은 경험을 가진 지지 그룹 안에서 함께 이겨내기 위한 프로그램들이 있다”라고 설명했다.
 

게더타운의 가장 큰 장점은 메타버스 내에서 아바타가 자유롭게 활동하다가도 화상회의 및 화상 강의를 편리하게 사용할 수 있다는 점이다. 28일 한림대의료원 메타버스 어린이화상병원 내 대강당에서 기자간담회와 별도로 진행된 화상안전교육에 많은 참가자들의 아바타가 모여 있고(맨 위 사진), 강사가 '스크린 공유' 기능으로 자료화면을 모두에게 보여주면서 강의할 수 있으며(가운데), 참가자들의 캠화면만 모아 화상회의를 진행할 수도 있다. (사진 = 웹페이지 화면 캡처)

 

‘비대면 시대’ 지지 그룹 소통 지속 위한 메타버스 활용

이처럼 화상 환자들은 지속적인 치료 외에도 환자 본인과 가족들의 상담, 비슷한 경험을 가진 다른 환자 가족들의 지지 그룹(caregiver support group) 모임, 정보 제공 및 공유, 교육 등등 다양한 대면 서비스와 소통의 자리를 필요로 하고, 한림대의료원은 이런 자조 모임 활동을 꾸준히 지원해 왔다.

화상 환자들의 자조 모임인 ‘한울회’와 화상 절단 환자의 재활 모임 ‘디딤돌’ 등 환자의 모임을 20년 넘게 지원해 왔고, 2008년 설립된 사회복지법인 한림화상재단의 전신인 화상환자후원회는 지난 2003년 한강성심병원 직원들이 병원 사회사업과에 사무실을 마련하고 자발적으로 활동을 시작한 조직이다.

그런데 지난해 초 시작된 코로나19의 세계적인 확산으로 인해서 지지 그룹 모임을 비롯해 다양한 대면 소통 프로그램의 진행이 어려워졌다. 이에 한림대의료원은 새로운 비대면 집단프로그램을 기획해 운영했다. 화상 경험 어린이를 간병하는 가족 17명이 ‘세줄일기’라는 앱(애플리케이션)을 통해 5개월간 각자의 경험을 일기로 작성하고, 공유했다.

그리고 크리스마스 이브였던 지난 24일, 메타버스 어린이화상병원 대강당에서 ‘화상경험아동엄마 일기 전시회 & 콘서트’ 행사를 열고 다른 화상 경험 어린이 가족들과 공유했다.

한림대의료원 관계자는 “이날 행사에 많은 가족분들이 참여했고, 소통하면서 서로 공감과 위로를 주고받으며 ‘매우 만족스러웠다, 이런 행사들이 지속되면 좋겠다’고 말해주었다”라고 밝혔다.

메타버스 어린이화상병원 내 방명록에는 “이렇게 비대면으로 행사하는 것도 새롭고 좋은 방법인 것 같다. 모두 힘들겠지만 힘내서 나아가 보자”, “다양한 공간 속에 촘촘히 생성된 플랫폼에서 만날 수 있게 되어서 설레고 기다려진다”, “많은 지역사회와 소통하고, 화상으로 힘들어하는 사람들에게 희망이 되어주는 한강성심병원이 되어 주심에 감사한다”, “코로나19가 빨리 종식되어 대면으로 만나면 더 좋겠지만 지금 시국에 맞춰 온라인으로나마 만날 수 있게 되어 좋다”라는 사용자들의 만족스러운 반응이 다수 눈에 띈다.
 

한림대의료원 메타버스 어린이화상병원 링크를 통해 게더타운에 접속하면 가장 먼저 아바타 편집 및 설정 화면이 나온다. 따로 회원 가입이나 로그인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점이 장점이지만, 아직 한글 지원이 완벽하지 않아 많은 메뉴가 영어로 나온다는 것은 단점이다. (사진 = 웹페이지 화면 캡처)

 

국산 제페토·이프랜드 아닌 美 게더타운?

한편, 한림대의료원이 메타버스 공간을 구축한 플랫폼인 게더타운도 주목된다.

미국의 스타트업 ‘게더’(Gahter)가 운영하는 게더타운(Gather Town)은 같은 공간에 있는 사용자들끼리 소통할 수 있는 실시간 동영상 채팅, 문자 채팅, 스크린 공유 등의 커뮤니케이션 툴을 제공하기에, 메타버스 공간에서는 아바타로 자유롭게 돌아다니다가도 필요할 때마다 같은 공간에 모인 사용자들끼리 ‘줌’(Zoom)과 같은 화상회의나 강의 등을 곧바로 진행할 수 있는 것이 특징이다. 이날도 한림대의료원 관계자가 실시간 동영상 카메라를 통해 얼굴을 보인 채로 메타버스 공간을 직접 안내했다.

다만, 게더타운은 아바타 이름을 한글로 쓸 수 있고, 한글 채팅도 가능하지만 프로그램 메뉴 및 시스템 설정 등에서는 아직 한글 지원이 되지 않아 폭넓은 사용자의 접근에 오히려 걸림돌이 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무엇보다 국내에도 ‘제페토’(Jepheto)나 ‘이프랜드’(ifland) 같은 메타버스 플랫폼이 있는데 미국 기업의 플랫폼을 선택한 것도 낯설다.

특히 네이버의 제페토는 글로벌 이용자만 2억 5000만 명에 달하는 초대형 유명 플랫폼이고, 이프랜드는 국내 대표 ICT 대기업인 SK텔레콤이 야심차게 선보이는 플랫폼인데도 불구하고 한림대의료원은 미국의, 그것도 미국 대표 메타버스 플랫폼이자 세계에서 가장 사용자가 많은 ‘로블록스’가 아닌, 갓 출범한 스타트업의 서비스를 선택한 것이다.

이에 대해 한림대의료원 관계자는 “게더타운이 타 플랫폼 대비 직관적인 움직임이 가능하고 별도 앱 설치, 회원가입 등의 절차 없이 링크만 있으면 즉시 접속 및 이용할 수 있다는 강점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또 “의료 기관은 다양한 연령대 및 질환자가 이용하는 곳으로, 편리성과 직관성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한다”며 “(게더타운의) 이와 같은 강점은 이용객의 범위를 확장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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