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특집: 세계관 전쟁①] LG유플러스, MZ세대 현실 대변하는 ‘생계형 인플루언서’ 홀맨과 무너

2000년대 레트로 × 스마트폰 시대 신문물 조화 … 활동 수익금 1억 원 기부 ‘선한 영향력’

윤지원 기자 2022.05.02 16:40:28

기업이 새로운 마케팅에 주목한다. 세계관 마케팅은 새로운 재미를 추구하는 MZ세대와의 소통을 강화해 브랜드에 대한 팬덤을 형성하는 수단으로 각광 받고 있다. 고객은 알면서도 모르는 척 가상 세계관에 빠져 즐긴다. 브랜드는 숨고 캐릭터가 주인공이 된다. 다양한 업종에서 전쟁처럼 치열하게 벌어지고 있는 세계관 마케팅의 현장을 살펴본다.

 

방전되어 잠들었다가 18년만에 깨어나 동묘역 인근에 살게 된 (오른쪽부터) 홀맨이 반려견 아지, 친구 무너와 함께 대중목욕탕을 다녀온 뒤 동네 슈퍼에서 바나나 맛 우유를 사 마시고 있다. (사진 = LG유플러스)

 

오리지널 캐릭터 및 세계관 마케팅에 관한 한 국내 이동통신업계에서 가장 앞선 기업은 LG유플러스다. 20년 이상 된 LG유플러스의 캐릭터 ‘홀맨’은 그 인기와 지명도 면에서 지금도 이통업계 최고라고 할 수 있고, 홀맨의 친구인 ‘무너’도 홀맨 못지않은 팬덤을 형성하며 활발한 고객 소통에 앞장서고 있다.

지난 2020년 8월, 유튜브 삽입 광고 한 편이 갑자기 화제가 됐다. 지금은 거의 멸종한 2G 피처폰의 문자메시지 화면으로 구성된 애니메이션 뮤직비디오로, 시작하자마자 화면을 가득 채운 ‘홀맨’의 이미지는 2000년대 초에 십대였던 밀레니얼 세대의 시선을 즉시 사로잡았다.

“순간 2002년으로 돌아간 줄”

대표적인 ‘탑골’ 가수 김현정이 부른 노래 제목은 ‘Holeman is back’. LG유플러스가 2001년(당시 LG텔레콤)에 10대 전용의 ‘홀맨 요금제’를 만들면서 선보인 홀맨 캐릭터가 주인공이며, 스마트폰 시대 메신저에는 옛날 ‘문자메시지’의 감성이 사라져 안타깝다는 마음이 담겼다.

김현정의 과거 히트곡을 연상시키는 중독성 있는 노래와 낮은 해상도의 LCD 화면 모티브의 영상은 1980~1990년대와는 구별되는 2000년대 초반 특유의 레트로(Retro, 복고) 감성을 겨냥한 콘텐츠였다.

 

김현정이 노래한 'Holeman is back' 뮤직비디오. (사진 = 뮤직비디오 캡처)​​​​​

 

유튜브 ‘holeman is back’ 채널에 올라온 뮤비 영상에는 댓글이 280여 개 달렸다. “광고 스킵하기 눌러야 되는데, 홀맨 보고 놀라서 다 봤다”, “광고 다 보고, 검색해서 채널 들어옴”, “순간 2000년대로 돌아간 것 같았다. 소름 돋는다”, “나 어린 시절 붉은악마 티 입던 그때로 잠깐 돌아간 것 같았다”, “진짜 홀맨, 오래전에 친했다가 십 년 넘게 오랜만에 만난 친구 같아”, “하이~ 홀맨? 그땐 중딩, 지금은 애 엄마” 등이 그것이다.

 

2000년대 초 이동통신업계는 1020 세대의 경제적 여건을 고려한 전용 서비스를 앞다퉈 내놓고 브랜드 마케팅에 열을 올렸다. 이에 SK텔레콤의 ‘스무살의 TTL’, KT(당시 KTF)의 ‘비기’, ‘알’ 등이 나왔고, LG텔레콤도 20대를 위한 브랜드 ‘카이’에 이어 10대 전용 서비스인 ‘카이홀맨’을 선보였다.

당시 캐릭터 소개에 따르면 홀맨은 “다른 차원에서 온 십대들의 친구인 동시에 새로운 차원을 열어주는 안내인”이다. 또 “눈, 코, 입이 없어 감정에 대한 표현은 땀이나 몸짓 등으로 나타나게 되고 얼굴 부분에 해당하는 홀에서는 끊임없이 무엇인가가 나오기도 하고 들어가기도 하는 등 우리에게 무한한 상상력을 자극”한다. 그리고 홀맨은 “정의감이 넘치고 한없이 선하기는 하지만 그 노력의 결과는 약간은 엉뚱한” 캐릭터다.

홀맨은 우리나라 평범한 고등학교의 전학생으로, 친구들과 친해지고자 여러 가지 시도를 한다. 하지만 인간과는 다른 체형(커다랗고 둥근 얼굴의 2등신) 때문에 전학 온 첫날 교실 문에 머리가 끼는 등 황당하고 엉뚱한 상황을 자주 연출했고, 사람들에게 선량한 웃음을 자아내며 친근한 캐릭터로 인기를 끌었다.
 

홀맨은 2G 피처폰 시대의 캐릭터다. (사진 = 뮤직비디오 캡처)
지난해 8월 현대백화점 판교점에서 진행된 홀맨 팝업스토어. (사진 = 홀맨)

 

피처폰 시대 홀맨이 2020년대에 부활한 이유?

하지만 홀맨은 2G 피처폰의 2등신 디자인을 대변하고, 그 당시 서비스를 홍보하기 위한 캐릭터였기에 얼마 후 스마트폰이 대세가 되면서 자연스럽게 대중 매체에서 사라졌다.

그런데 홀맨을 LG유플러스가 2020년에 다시 불러냈다. 만우절의 일회성 이벤트로 잠깐 홀맨을 소환했는데 대중의 반응이 기대 이상으로 좋아서 정식으로 그를 중심으로 한 마케팅을 펼치기로 하고, ‘부활’ 스토리와 세계관을 정립했다. 이 스토리에 따르면 홀맨은 18년간 잠이 들었다가 깨어났다.

홀맨은 광고 모델로 나름 잘 나가던 2000년대 초 어느 날, 소나기를 피하려고 들어간 지하철 역에서 충전을 하며 잠이 들었다가 자기도 모르는 사이 방전이 되고 말았다. 깊은 잠에 빠진 홀맨은 중고 시장이 있는 동묘로 옮겨졌고, 18년이 지난 최근에야 ‘충저니(journey)’라는 이름의 (피처폰 전용) 충전기가 우연히 그를 발견하고 충전해준 덕분에 비로소 깨어났다.

‘냉동인간’ 류의 전형적인 캐릭터와 스토리다. 2002년에 잠들어 2020년에 깨어난 홀맨은 스마트폰 등 세상의 많은 신문물에 놀랐고, 적응하지 못했다. 무엇보다 웬 사자 녀석(카카오톡의 라이언 캐릭터)이 만든(?) 카카오톡 등의 메신저 문화에서는 용량 제한의 문자메시지 시절 감성이 사라진 것을 아쉬워했다.

그 시절에는 문자메시지 한 통도 과금이 되고, 내용도 겨우 80바이트로 제한되어 있어서 사람들은 메시지를 보낼 때마다 장문으로 꽉꽉 채우고, 이모티콘도 한 땀 한 땀 만들어 보내는 정성을 보탰다. 하지만 지금의 메신저는 와이파이나 무제한 데이터 때문에 ‘ㅇㅇ’이나 ‘ㅋㅋ’ 같은 단답형 메시지도 많고, ‘읽씹’도 많아지는 등 정이 없어지고, 감성이 메마른 것 같다는 것이다.

2002년에 하이틴(전학생)이던 홀맨은 밀레니얼 세대 그 자체다. 낯선 신문물에 치여 의기소침해지기도 했지만, 덕분에 그 시절의 감성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는 점은 홀맨의 장점이자 개성이 된다. 이젠 사회인이 되고, 부모가 된 밀레니얼ㅌ세대의 청춘을 떠올리게 하는 역할을 그보다 더 잘 할 사람은 없는 것이다.
 

LG유플러스는 자사 사회공헌 홍보대사 '홀맨'이 올해 기부한 금액이 1억원을 돌파했다고 지난해 12월 13일 밝혔다. (사진 = LG유플러스)
지난해 10월 18일 서울 강남구 '일상비일상의틈'에 홀맨이 방문하자 지나가던 시민들이 그를 반기며 사진을 찍고 있다. (사진 = LG유플러스)

 

‘레트로 감성’에 ‘선한 영향력’으로 인기

홀맨은 스마트폰 세상에 그 시절 감성을 전하는 역할을 하겠다고 결심하고, 다시 유명해지기로 마음먹는다. 그러기 위해 그 시절의 싸이월드 대신 ‘요즘 SNS’인 인스타그램 계정을 만들고, ‘인플루언서’로 거듭나기 위해 다양한 신문물을 체험하며 그 모습을 공유했다. 새 시대의 소통법을 배우기 위해 스마트폰도 장만했다.

비록 처음 해본 중고거래에서 아이폰3GS를 ‘최신폰’으로 오인하고 사는 등 실수 투성이지만, 문자메시지 감성과 특유의 귀여움, 그리고 추억을 공유하는 대표성을 바탕으로 인기를 끌었다. 홀맨의 인스타그램 계정에는 어느덧 14만 명이 넘는 팔로워가 생겼고, 다양한 콜라보 마케팅에 모델로 나서면서 ‘생계형 인플루언서’로 자리잡았다.

홀맨은 활동 재개 후 약 반년간 벌어들인 수익금 4800만 원을 전액 기부하며 요즘 셀럽이나 인플루언서의 필수 덕목인 ‘선한 영향력’도 갖췄다. 이에 지난해 4월 LG유플러스는 홀맨을 사회공헌홍보대사로 위촉하여 더욱 본격적인 ‘선한 영향력’ 활동을 시작하게 했고, 지난해 12월, 홀맨의 누적 기부금은 1억 원을 돌파했다.

이처럼 다른 차원의 외계인이라는 초현실적인 유래나 외모와 달리 홀맨의 세계관은 매우 현실과 밀접하고, 그래서 디테일도 남다르다. 홀맨은 부활(재충전) 후 동묘를 거점으로 살고 있으며, 18년 만에 만난 낯선 세계에서 적응하는 데 도움을 준 친구 충저니와 유기견이던 반려동물 아지, 친구이자 라이벌인 무너 등 ‘홀맨 크루’라고 하는 주변 캐릭터들과 교류하며 살아가고 있다. 이 세계관은 현실 안에서 확장되며 또 다른 스타를 낳았다,
 

LG유플러스가 '무너' 캐릭터를 앞세워 진행한 '무너지지마' 캠페인 영상. (사진 = LG유플러스)
일상비일상의틈에서 진행된 무너지지마 2022 팝업스토어. (사진 = LG유플러스)

 

홀맨 뛰어넘는 ‘슈스’ 되겠다는 ‘무너’의 야망

홀맨 크루 가운데 무너는 해양 생물인 ‘문어’를 의인화한 캐릭터로, 직장생활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는 사회초년생이자 1인 가구 청년이다. 노란 몸뚱아리에 빨간 모자(사실은 초고추장)를 쓰고 있는 단순하고 귀여운 외모로 다양하게 변신하며 인기를 끌고 있다.

무너는 문어다. 여덟 개의 다리와 유연한 몸을 가졌기에 비보잉에 재능이 있고, 머리가 좋은 것으로 알려진 생물답게 좋은 아이디어도 많다. 특히 다양한 환경에 따라 자유자재로 변하며 적응력이 뛰어난 문어처럼 무너 역시 일터에서도, 개인의 삶에서도 개성과 열정이 넘치는 모습을 보인다.

무너는 직장에서는 매일 새로운 아이디어를 제출하는 열혈 사원이기도 하지만, 퇴근 후엔 홀맨을 넘어서는 ‘슈스’(슈퍼스타)가 되겠다는 야심 아래 개인 유튜브 콘텐츠를 통해 대중과 소통하는 데 열정을 쏟는다. 이는 많은 Z세대 청년들이 살아가는 실제 모습과도 매우 흡사하다. 그리고 이런 캐릭터 덕분에 무너는 지난해 LG유플러스의 ‘무너지지마’(문어지지마) 캠페인의 단독 주인공을 꿰차기도 했다.

LG유플러스의 ‘무너지지마’ 캠페인은 취업한 지 얼마 되지 않은 미숙함으로 일터에서 좌충우돌 힘든 시간을 보내고, 퇴근 후 자신만의 시간을 보내며 힐링하는 사회초년생들을 대변하고 응원하는 캠페인이다. 자신만의 시간을 소중히 지키고 싶어 하는 사회초년생들의 ‘온(일터에서의 삶)&오프(개인의 삶)가 있는 삶’을 지지한다는 내용이다.

LG유플러스에 따르면 캠페인 관련 유튜브 영상들은 누적 조회수 1200만 회를 넘겼고, 인스타그램, 틱톡 등에서 무너송(song) 따라 부르기 챌린지를 통해 자발적인 고객 참여 횟수도 4만여 회를 넘기는 등 성공을 거뒀다. 그리고 이런 성과를 기반으로 지난해 한국디지털광고협회가 주관한 ‘2021 대한민국 디지털애드어워즈’에서 최고상인 대상을 수상했다.

무너는 이런 인기 덕분에 홀맨의 영향력으로부터 독립(?)해 단독 팝업 스토어를 일상비일상의틈에서 열기도 하고, 홀맨의 인스타그램 계정을 물려받아 새로운 주인공이 되기도 했다. 또 최근엔 ‘틱톡’에도 계정을 열고 스트릿 댄서의 재능을 과시하고 있으며, 서울 마포구 LG유플러스 대리점을 리뉴얼한 ‘무너 매장’을 내기도 하는 등 ‘슈스’의 꿈에 점점 다가가는 동시에 Z세대의 롤모델이 되고 있다.

< 문화경제 윤지원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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