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지원 기자의 와린이 칼럼] 사랑의 와인 ‘샤또 깔롱-세귀르’와 빈대떡 신사

유통업계 상반기 와인 장터를 살피다 “장터라면 역시 빈대떡”

윤지원 기자 2022.05.04 19:45:22

샤또 깔롱-세귀르 와인. (사진 = www.calon-segur.fr)

■ 오늘의 와인
샤또 깔롱-세귀르 2017
Chateau Calon-Segur 2017

타입: 레드 / 포도품종: 카베르네 소비뇽, 메를로, 카베르네 프랑, 쁘띠 베르도 / 지역: 프랑스>보르도>생떼스테프 / 와이너리(생산자): 샤또 깔롱 세귀르 / 수입사: 극동와인㈜ / 평가: 와인 인슈지애스트 96점


4월 말과 5월 초, 주류업계와 유통업계는 ‘상반기 와인장터’라는 이름으로 대규모 할인 이벤트를 연다. 와인 전문 스토어나 대형 마트 와인 코너에는 평소보다 큰폭으로 할인된 와인들이 잔뜩 진열된다. 와인 소비자에게는 평소에 즐겨 마시는 와인을 싸게 사재기하거나, 아니면 기존에는 쉽게 엄두를 낼 수 없던 고가의 고급 와인을 구매하기에 좋은 기회다.

다만, 와인 수입사와 유통업체간 도매 거래에서 책정되는 가격이 매번 다르기 때문에 같은 와인이라도 장터마다, 마트마다 다른 가격으로 판매되고, 할인율도 다 다르다. 주로 박리다매가 가능한 대형마트에서 더 싸게 살 수 있는데, 업체마다 다른 재고 현황을 반영해 의외의 업체에서 훨씬 싼 가격에 살 수 있는 경우도 많다.

그래서 정보가 매우 중요하다. 장터 시즌 와인 애호가들의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이마트 트레이더스 와인장터 할인 리스트’, ‘홈플러스 와인장터 할인리스트’ 등 서로 다른 유통업체의 할인가격 리스트가 회람되고, 특히 매장마다 다른 재고 현황에 관한 정보 공유가 활발해진다.

특히 와인 장터 시즌에는 평소 백 수십만 원을 호가하던 ‘5대 샤또’라는 보르도 1등급 그랑 크뤼(Grand Cru, 가장 뛰어난 포도밭) 와인은 물론이고 수십만 원대 고급 와인들이 30~40%씩 할인되어 나오기도 하니, 수집가들에게 절호의 찬스다. 다만 이런 와인은 각 매장에 입고되는 물량이 아주 소량에 불과한 미끼상품으로, 개점시간 전부터 기다리는 사람만 살 수 있다고 하여 ‘줄서기 와인’이라고 부른다.

홈플러스 월드컵점 주류코너에서 진행된 2022년 상반기 홈플러스 와인장터. (사진 = 윤지원 기자)

 

최소 비용 최대 효용을 노려보자구!

와린이 부부는 이번 장터 시즌에도 대략 4~5개 업장의 리스트에 나온 수천 개 와인의 할인가격을 꼼꼼히 살펴봤다. 쥐꼬리를 위해 매일 성실히 출근해야 하기에, 감히 최고급 와인을 사겠다고 줄을 설 수는 없는 노릇이지만, 그래도 이런 ‘장터’의 기회를 잘 이용해서 나름 고가의 와인을 싸게 살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가 컸다.

기자는 10만 원대 중반부터 30만 원 미만 가격대에서 제법 등급이 높은 보르도 그랑 크뤼 와인 위주로 몇 개의 후보를 추린 후, 그중 가장 사고 싶은 와인으로 ‘샤또 깔롱-세귀르 2017’를 꼽았다. 5월 말 결혼기념일에 ‘사랑의 와인’으로 유명한 깔롱-세귀르를 마셔 보자는 것이 한가지 (사소한) 이유였고, 홈플러스 와인 장터에서 책정한 할인가가 해외 직구 가격보다도 쌌다는 것이 다른 (중요한) 이유였다.

보르도 그랑크뤼 와인은 이름에도 ‘샤또’(성)가 많이 들어가고, 그래서 대개 ‘전통’과 ‘가문’ 같은 키워드처럼 엄숙하고 무게감 있는 이미지가 지배적인데, 샤또 깔롱-세귀르는 레이블에 그려진 통통한 하트 모양 때문에 사랑, 연인, 로맨스 같은 이미지가 뚜렷하고, 그래서 ‘프로포즈 와인’, ‘발렌타인 데이 와인’ 등으로 유명세가 높다.

깔롱-세귀르에 하트가 그려진 배경은 18세기 보르도에서 유명했던 와인 메이커인 ‘세귀르 후작’이 깔롱 와인을 특히 사랑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세귀르 후작은 당시 프랑스 국왕이 “포도나무의 왕자”라고 불렀을 정도의 와인 업계 거물이었고, 보르도에 세 곳의 그랑 크뤼 샤또를 소유하고 있었다. 샤또 라피트, 샤또 라뚜르, 샤또 깔롱-세귀르가 그것인데 훗날 샤또 라피트와 샤또 라뚜르는 현재 ‘5대 샤또’라고 불리는 1등급 보르도 와인의 지위를 갖게 됐고, 샤또 깔롱-세귀르는 3등급으로 선정됐다.

 

통통한 하트가 인상적인 샤또 깔롱-세귀르 레이블 디자인. (사진 = wine-searcher.com)

 

그만큼 라피트와 라뚜르는 깔롱-세귀르보다 크게 인정받는 와인이었다. 그런데도 후작은 “나는 라피트와 라뚜르에서 와인을 만들지만, 마음은 늘 깔롱에 있다”는 말을 남겼을 정도로 깔롱에 더 많은 애정을 쏟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 이유로는, 1등급 샤또 두 곳은 후작이 선대로부터 상속받은 곳이었던 반면 깔롱은 그가 직접 좋은 와이너리를 발굴하러 다니면서 발견하고, 그 맛을 높이 평가해서 매입한 곳이라는 차이 때문인 것으로 전해진다. 부와 명성은 라피트와 라뚜르에서 쌓여갔음에도 세귀르 후작은 죽는 날까지 깔롱을 손수 가꾸며 애착했다고 한다.

사랑과 낭만은 뒷전, 중요한 건 세일

아름다운 스토리도 좋지만, 와린이 부부에게 정말로 중요한 건 가격이었다. 권장 소비자가 32만 원에 할인가도 대개 22만 원에서 26만 원 정도 되는 깔롱-세귀르의 2017년 빈티지를 18만 원 정도로 팔고 있으니 이건 큰 이득임에 분명해 보였다.

문제는 홈플러스 모든 매장에 이 와인이 들어오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었다. 이런 특별한 와인은 매장 내 와인 코너의 매출 규모에 따라 A급으로 분류된 일부 매장에만 우선 입고되고, 그것도 겨우 12병~24병 정도 소량으로만 입고된다. 즉, 평소였다면 ‘줄서기’ 대상으로 분류됐을 와인이다.

 

보르도 '5대 샤또' 중 샤또 오브리옹, 샤또 라피트 로칠드, 샤또 무똥 로칠드 등이 진열되어 있다. (사진 = 윤지원 기자)

 

그런데 이번에 홈플러스는 아주 소수의 줄서기 와인을 제외하고는 각 매장별로 예약 판매 시스템을 운영했다. 해당 매장에 입고 예정인 와인을 미리 선결제로 예약하면 굳이 줄을 서지 않아도 살 수 있게 한 것이다. 여러 줄서기 와인들을 모두 포기한 와린이 부부에게 예약 시스템은 희소식이었다. 다만 더 일찍 알게 됐다면 좋았을 것을, 와인 장터 개시 바로 전날에서야 이런 중요한 정보를 알게 된 것이 안타까웠다.

너무 늦지 않았기를 바라면서 와린이 부부는 집 주변과 직장 주변의 홈플러스 매장에 한곳씩 전화를 걸어봤다. 대부분의 매장은 아예 ‘깔롱-세귀르 17빈’ 입고 예정이 없다고 대답했다. 아주 일부 매장에서만 “1차 입고 리스트에는 없고, 2차 입고는 예정되어 있다”라고 했다. 다만 2차 입고는 가격이 2만 원 더 비싸게 책정됐고, 그나마도 이미 예약이 꽉 차 있는 지점이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와린이는 포기하지 않고, 2차 입고 물량을 노리며 점점 먼 곳의 지점에 전화를 해 봤다. 드디어 회사에서 차로 1시간 반, 집에서도 1시간 반 정도 걸리는 매장의 와인 담당 매니저로부터 “2차 입고 예정 물량이 12병”이라는 대답을 들었다. 참 잘된 일이다.

문제는 선결제다. 이번 장터에서는 카드로 결제하면 추가 할인도 받을 수 있으니 어쨌든 매장에 직접 가서 결제하는 것이 이익이다. 하지만 퇴근하자마자 달려가도 저녁 여덟 시. 그 시간까지 과연 재고가 남아있을 것인가?

 

와인 칼럼에 어울리지 않는 빈대떡과 소주 사진. (사진 = 윤지원 기자)

 

언젠가 '5대 샤또'를 마셔볼 수 있을까?

“12병이나 입고되니, 남아있을 것 같은데요?” 매니저의 카톡 메시지에는 희망이 느껴졌지만 와린이는 여전히 불안했다. 그 매장에 나보다 가깝게 살면서 깔롱-세귀르 가격을 찾아본 사람이 12명은 훨씬 넘을 것 같았다.

초조함을 읽었는지 매니저는 “불안하시면 현금 송금하면 대신 선결제를 해 주겠다”고 제안했다. 빠르고 확실한 방법이긴 했다. 다만, 일면식도 없는 사람에게 함부로 돈을 보내는 것이 좀 찜찜했고, 카드 할인을 받지 못하면 장터라는 메리트가 사라지는 것 같아서 결정을 망설였다. 물론 카드 할인이 없더라도 직구 가격보다 싸다는 데는 변함이 없지만 와린이의 쥐꼬리를 고려하면 가볍게 포기할 액수는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주 잠깐 더, 마지막 고민을 했다. 그리고 결심했다. 과감히 카드 할인을 포기하기로. 그러자 쥐꼬리의 한계를 극복한 기분이 들었고, 뿌듯해졌다. 매니저에게 “송금은 카카오페이로 보내면 될까요?”라는 메시지를 작성하는 도중, 매니저가 먼저 메시지 한 통을 보냈다. “고객님!! 12시 2분에 깔롱-세귀르 품절됐습니다 ㅜㅜㅜㅜ”

12시 2분. 매니저가 송금 얘기를 제안한 게 11시 35분이었다. 그 말을 듣고 바로 질렀으면 충분히 깔롱 한 병을 확보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카드 결제 할인 몇 푼 때문에 망설인 27분이 운명을 가른 것이다. 쥐꼬리의 설움이 다시 크게 다가왔다.

 

이날 홈플러스 월드컵점에서 판매하던 샤또 깔롱-세귀르는 와인 평론가 로버트 파커로부터 상당히 높은 점수를 받은 2000년 빈티지 뿐이었고, 2017년 빈티지보다 20만 원이나 더 비쌌다. (사진 = 윤지원 기자)

 

그날 밤 와린이 부부는 굳이 한 시간 반 거리의 홈플러스 매장을 가는 대신, 애초에 깔롱-세귀르 2017이 없다고 한 동네 홈플러스에 들렀다. 그곳엔 깔롱-세귀르 말고도 수많은 와인이 진열되어 있었지만, 쉽게 손이 가는 녀석이 없었다. 다른 와인은 대부분 다른 업체의 장터에서 조금 더 싸게 판 적이 있기 때문이었다. 십 원에 울고 웃는 서민의 마음이란 그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날 유독 우리의 시선을 끄는 것은 5대 샤또였다. 세귀르 후작이 소유했던 샤또 라피트 2017은 약 120만 원이었고, 5대 샤또 중 그나마 저렴한 샤또 오브리옹 2017은 약 90만 원이었다. 카드 할인을 받으면 88만 원 정도. “이 정도면 진짜 괜찮은 가격 아니야?”, “당연히 괜찮지”라는 말을 수십 번 주고받으면서 와린이 부부는 그 앞을 좀처럼 떠날 수 없었다. 괜찮은 가격인 걸 알아도 과감히 지르지 못하고, 살 수 없는 걸 알아도 미련을 버리지 못한 채 지박령처럼 오도가도 못하고 묶여 있었다.

“돈 없으면 집에 가서 빈대떡이나 부쳐 먹지”라는 ‘빈대떡 신사’의 노래 가사가 유난히 절절하게 와 닿았다. 그리고 정말로 그 주 ‘불금’은 와인 대신 소주로 장식했다. 물론 집에서 빈대떡과.

< 문화경제 윤지원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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