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전영환 에너지전환포럼 공동대표, “RE100 전략에 우리 산업 미래 달렸다”

SK E&S, 아모레퍼시픽, 현대엘리베이터 등 PPA 계약…“재생에너지, 선택 아닌 필수”

윤지원 기자 2022.05.10 12:58:19

(사)에너지전환포럼의 공동대표 전영환 홍익대학교 전기공학부 교수. (사진 = 윤지원 기자)

인류 생존을 위해 탄소중립이 나날이 강조되는 가운데 국내 기업들도 ESG 경영 기조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탄소중립 원칙 및 재생에너지로의 100% 전환(RE100) 목표 등을 선언하고 있다. 그런데 RE100과 한국형 RE100(K-RE100), PPA, 제3자 PPA 등 여러 가지 제도들이 혼재되어 있고, 재생에너지 정책에 대해서 다양한 의견들이 충돌하다 보니 기업들의 실천과 목표달성이 쉽지만은 않은 상황이다. 이에 문화경제는 (사)에너지전환포럼의 공동대표인 전영환 홍익대학교 전기공학부 교수를 만나 우리나라 기업들을 위한 에너지전환 정책에 관해 이야기를 들어봤다.

에너지전환포럼은 에너지전환이라는 시대적 과제 해결을 위해 지난 2018년 국내 최초로 산·학·연·민·관·정(産·學·硏·民·官·政) 전문가들이 모여 결성한 에너지전환 분야 오픈 플랫폼이다. 포럼은 이들이 중심이 되어 정부 및 국회에 다양한 정책을 제안하고, 시민 참여와 발언이 보장되는 열린 논의의 장을 수시로 마련하고 있다.

국내 최초 대기업간 PPA 계약 체결

지난 3월 22일, SK E&S와 아모레퍼시픽 간에 직접 PPA(전력구매계약)가 맺어졌다. SK E&S가 아모레퍼시픽의 대전 데일리뷰티 사업장에 올해 4분기부터 20년간 연 5MW 규모의 재생에너지 전력을 공급한다는 계약이다. 전기공급사업자와 전기구매가 필요한 기업이 직접 전력을 거래한 사례는 국내에서 이번이 처음이었다. 민간 최대 재생에너지 발전사업자인 SK E&S는 이번 계약을 시작으로 RE100 실천을 추진하는 국내 기업들을 대상으로 PPA를 늘려간다는 계획이다.

이어 지난 4월 11일에는 한전과 현대엘리베이터 간에 제3자 PPA가 맺어졌다. 제3자 PPA는 한전이 운영하는 K-RE100 이행수단 중 하나로, 재생에너지 발전사업자와 전기사용자(기업)간 합의 내용을 기초로 한전이 중개자가 되어 발전사업자와는 구매 계약을, 기업과는 판매 계약을 각각 체결해 재생에너지 전력을 제3자 간에 거래하는 제도다. 지난해 6월 도입된 이 제도의 실제 계약 사례 역시 이번이 국내 최초였다.

5월 현재 K-RE100 이행수단은 녹색프리미엄, 신재생에너지공급인증서(REC) 구매, 제3자 전력구매계약(PPA), 신재생에너지 자체 건설 등 4가지로 제한되어 있다. 그런데 올 하반기 중에 직접 PPA 방식이 추가될 예정이고, 그에 앞서 SK E&S와 아모레퍼시픽 간의 계약이 이루어진 것이다.

 

제3자 간 전력거래계약(PPA) 개념도. (사진 = 한국전력)

 

기업이 RE100을 실천하고자 재생에너지 사업자와 전력구매계약(PPA)을 맺는다는 것은 쉽게 이해가 된다. 그런데 굳이 한전이 사이에 개입하는 제3자 PPA는 뭔가? 언뜻 이해가 되지 않지만 이것은 K-RE100의 중요한 특징이다. 이에 대해 전영환 교수는 재생에너지의 특성과 대한민국의 독특한 전력계통의 특성부터 이해하기 쉽게 설명했다.

전 교수는 “재생에너지의 특성과 기존 발전기의 특성은 다르다. 기존 발전기 시스템에서는 주파수와 전압을 안정적으로 유지하면서 소비되는 전력이 늘어나면 발전기 출력도 올리고, 줄어들면 출력도 떨어뜨리는 식으로 공급이 가능했다. 그런데 발전기 출력에 재생에너지가 추가되면 이 시스템이 마음대로 안 되고, 안정적으로 유지하는 것이 문제가 된다”라고 설명했다.

원하는 만큼 연료를 넣고 빼는 기존 발전과 풍력, 태양광 등을 이용하는 재생에너지 발전은 다르다. 바람이 계속 불면 소비가 없어도 발전이 이뤄지고, 필요할 때 해가 뜨지 않으면 공급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재생에너지의 이런 특성에 더해 우리나라는 지리적 여건이 특별해 유럽과 북미 같은 재생에너지 선진국과 다른 한계가 있다.
 

풍력발전단지의 모습(기사와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 사진). (사진 = Pixabay)

 

‘고립된’ 전력 계통의 한계

전 교수는 “유럽과 북미는 땅이 넓고, 그 넓은 지역의 전력 계통이 국가나 주(州) 구분 없이 모두 이어진 ‘연계 계통’이어서 공급이 남으면 부족한 곳에 보내주고, 모자라면 멀리서라도 받아올 수 있어 계통 유지가 쉽다. 반면 우리나라의 전력 계통은 국토의 삼면이 바다고 위로는 북한과 단절된 ‘독립 계통’으로, 수요 공급 불균형의 모든 문제를 계통 내에서 자체적으로 해결해야 하므로 어렵다”라고 설명했다.

그는 "고립계통에서는 안정적인 계통의 운영을 위해서도 전력시장의 개선이 중요하다"라며 "전력의 안정적인 운영을 위해서는 발전원의 유연성의 확보, 에너지저장, 그리고 수요의 유연성 세 가지 모두 확보하여야 한다. 수요의 유연성을 위해서는 전력 가격 시그널이 필요하고, 가격에 따라 열 저장, 수소 저장뿐 아니라 다양한 새로운 서비스를 제공하는 스타트업 기업들의 진출을 위한 판매 개방도 필요하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전 교수는 “우리나라에서는 발전 사업자가 소비자에게 전기를 직접 공급할 수 없다. 수요와 공급의 법칙에 따라 전력 시장에도 가격 경쟁이 생긴다. 먼저 발전 사업자들이 경쟁에 노출되어 있다. 똑같은 전기를 만들어도 싼 발전기가 있고 비싼 발전기가 있으니까 전기 가격 경쟁이란 곧 연료비 코스트 경쟁”이라면서 “그런데 사는 사람(수요)도 여럿이 있어야 가격 경쟁이 되는데, 우리나라의 전기 ‘도매시장’에서 사는 사람은 한전이 유일하다. 전기의 소매시장에는 우리 소비자들이 있는데, 역시 한전이 공급을 독점한다. 도매시장에서는 한전이 구매 독점, 소매시장에선 한전이 판매 독점을 하고 있다”라고 설명했다.

이어 “단, 대기업, 제조업 등 일정량 이상의 전기를 쓰는 일부 큰손 소비자들은 한전을 통하지 않고 ‘전력거래소’에서 전기를 직접 살 수 있는 제도가 갖춰져 있긴 하다”라면서도 “하지만 한전은 도매시장 구매 가격보다 더 싼 가격(전기요금)으로 소매시장에 팔고 있다. 한전 적자가 계속 쌓이고, 전기요금 정상화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오는 근본적인 이유다. 그리고 전력거래소를 통한 직접 거래보다 한전 요금이 싸니 ‘직접 거래’가 성립이 안 되는 구조”라고 덧붙였다.

RE100을 실천하려는 기업들이 안고 있는 가장 현실적인 문제 역시 ‘가격’에 있다. 전 교수는 “RE100 실천 기업들이 안고 있는 현실적인 문제는 첫째, 재생에너지를 쓸 수 있는가? 둘째, 필요한 만큼의 재생에너지를 국내에서 공급받을 수 있는가? 셋째, 그 재생에너지를 싸게 쓸 수 있는가?”라고 제시했다.

전영환 교수는 RE100을 실천하려는 기업들이 안고 있는 가장 현실적인 문제는 ‘가격’에 있다고 설명한다. (사진 = 윤지원 기자)

 

“RE100, 무역 장벽 되면 우리 산업에 타격”

먼저 공급의 문제. 우리나라는 전체 에너지 가운데 재생에너지 비율이 2020년 말 기준 7.43%에 불과하다. 반면 재생에너지 선진국인 유럽 일부 국가는 40%에 육박하고 일본은 18%, 미국은 17%이다.

전 교수는 “유럽을 재생에너지 선진국이라고 한다. 유럽이 재생에너지로 화석 연료를 대체하는 데 본격적으로 나선 것이 약 20년 전이다. 지금 영국, 독일 등은 전체 전기 에너지 중에 재생에너지 비율이 40%에 육박하는 상태까지 갔다”며 우리나라 재생에너지 정책이 뒤쳐져 있음을 지적했다.

이처럼 재생에너지 공급이 부족한 실정에서 국내 기업들은 RE100을 실천하는 데 어려움이 있다. 각 나라 실정에 맞게 RE100 실천 속도나 제도를 다르게 운영하면 되는 것 아닌가? 그렇지가 않다. 전 교수는 재생에너지에서 뒤처져 있는 것이 우리나라 수출 기업들에게 큰 무역장벽이 될 것을 우려했다.

우선 RE100은 기업이 기업 활동에 사용하는 전력 100%를 재생에너지(Renewable Energy)로 전환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국제 캠페인으로, 2022년 5월 10일 기준 세계에서 369개사가 가입했으며 애플, 구글, 메타, 마이크로소프트 등 글로벌 시총 톱10 기업도 대다수 포함되어 있다. 국내 기업으로는 현대자동차그룹과 SK그룹의 주요 계열사들, LG에너지솔루션 등을 포함해 19개 사가 가입해 있다.

우리나라는 글로벌 RE100과 별도로 한국형 RE100, 즉 K-RE100제도를 지난해 도입해 시행하고 있는데, 5월 10일 기준 66개 기업이 참여하고 있다.

전 교수는 “RE100은 클라이미트 그룹이라는 영국의 한 단체가 제안한 제도인데, 기업들이 앞장서서 이런 선언을 해야 한다고 권장한 것이다. 즉 RE100은 원래 자발적인 가이드지, 강제적인 것이 아니었다”라면서 “그런데 어느덧 RE100 선언 기업은 세계에서 300곳이 넘었고 그 목록은 하루가 다르게 늘어간다. 특히 세계의 여러 주요 기업들이 대부분 선언했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글로벌 주요 기업이 RE100을 선언했다는 게 어떤 의미인가? 우리나라가 글로벌 기업에 부품을 많이 공급하는데, 부품도 RE100 기준에 맞아야 하니 우리 기업이 부품 생산에 쓰는 전기도 RE100 기준에 맞춰야 한다는 얘기”라면서 “클라이미트 그룹이 제시한 가이드라인은 2030년까지 사용 전기의 최소 60%, 2040년까지 90%를 대체하는 것이다. 즉 부품 기업이 쓰는 전기 역시 2030년까지는 재생에너지 비율 60%를 달성해야 한다는 뜻이고, 이는 우리의 산업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우리도 RE100을 충족시켜야만 하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다시 국내 RE100 실천기업들의 현실적 문제로 돌아오면, 기업 입장에서는 재생에너지를 얼마나 싸게 구매해 쓸 수 있는지가 중요하다. 그런데 전 교수는 우리나라의 재생에너지 공급이 부족하여 가격이 비싼 점을 우려했다.
 

전 교수가 공동대표를 맡고 있는 에너지전환포럼은 재생에너지 확대의 필요성과 이를 위한 제도 점검을 해야 한다는 주장을 꾸준히 해 왔다. (사진 = 윤지원 기자)

 

“뒤처진 재생에너지 정책, 반도체 경쟁력 낮아질까 우려”

전 교수는 “재생에너지는 과거 가격이 비쌌지만 초기 설비 투자 비용이 들어간 이후에는 연료비에서 자유롭기때문에 재생에너지 가격은 갈수록 저렴해지는 경향을 띈다”면서 “미국과 유럽에서는 재생에너지 가격이 그리 비싸지 않은 단계로 이미 내려왔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아직 비싸다”라고 지적했다.

그는 “해외는 재생에너지 가격이 내려갔으니 기업들은 그 재생에너지로 생산 활동을 해 나고 재생에너지 시설도 계속 새로 짓는다. 그런데 우리나라 기업들은 RE100은 충족해야 하는데 재생에너지 비용은 상대적으로 많이 드니 경쟁력이 줄어들게 된다는 게 문제다”라면서 “예컨대 우리 주력 수출 품목인 반도체는 중국도, 일본도 만드는데 앞으로 재생에너지 비용 차이 때문에 우리 기업이 가격 경쟁력을 잃게 된다면 대단히 큰 문제가 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PPA 제도가 중요한 이유도 여기에서 찾을 수 있다.

전 교수는 “PPA는 ‘장기 계약’이라는 점이 중요하다”라면서 “재생에너지 가격은 처음엔 높지만 갈수록 낮아진다. 발전사업자나 구매자 모두 가격이 장차 어떻게 될지 예측할 수 없는데, 이럴 땐 장기 계약이 서로 이익이다. 기업은 에너지 비용이 조금 비싸더라도 20년 동안 고정해둘 수 있고, 공급자는 지금 당장은 이익이 조금 적더라도 장기적으로 안정적인 수익이 보장되니. 이것이 PPA의 필요성이라고 할 수 있다”라고 덧붙였다.

이어 전 교수는 “그런데 재생에너지를 한전만 공급할 수 있도록 규제하기보다 공급자와 구매자가 원하는 방식을 택할 수 있게 하는 게 좋다”라며 “과거 우리나라가 자원도, 돈도 없을 때는 한전이 전력 사업에 집중해서, 필요한 돈을 빌려서 필요한 인프라를 대거 건설하는 등 지금까지 대단히 큰 역할을 해 왔다. 하지만 앞으로도 한전이 그런 역할 및 기능을 할 수 있을까? 시대와 시장의 요구가 과거와 많이 달라졌고, 그렇다면 전기 시장도 규제를 풀고 개방하고, 재생에너지 PPA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것이 낫다는 방향으로 가고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전 교수는 “에너지전환포럼은 이처럼 우리 산업을 위해서 재생에너지 확대가 필요하며, 이를 위해 제도를 점검해야 한다는 주장을 꾸준히 해 왔다”면서 “또 사회적 인식 개선을 위해 에너지 정책 등을 알기 쉽게 설명하는 영상을 제작해 유튜브 같은 최신 매체로 홍보하는 노력도 기울였다”고 밝혔다.

< 문화경제 윤지원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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