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화상 치료 반평생, 신임 허준 한강성심병원장... “화상 치료 공공성 인정 절실"

24년 경력 병원장이 주 2일 당직 근무…경영 환경 어렵지만 “일 하는 것 행복해, 소신으로 나아갈 것”

윤지원 기자 2022.06.22 18:30:32

한림대학교한강성심병원 허준 원장이 기자들과 얘기하고 있다. (사진 = 한림대학교의료원)

올해로 개원 51주년을 맞은 한림대학교한강성심병원의 24대 신임 병원장으로 지난 6월 2일 취임한 허준 교수를 지난 20일 만났다.

한강성심병원은 지난해 1월 1일 보건복지부로부터 지정받은 화상전문병원으로, 현재 세계에서 가장 많은 화상 치료 병상(157병상)을 보유한 국내 최대, 최고의 화상 치료 기관이다.

“이 병원 전공의부터 시작해서 직장이라곤 유일하게 여기 한 곳에서만 일했다”는 신임 허준 원장은 1998년에 이 병원 외과 레지던트로 근무를 시작한 이래 화상전문응급의료센터, 화상센터를 거쳐 화상외과 임상과장을 역임하는 등 차근차근 단계를 밟아 올라와 이번에 원장에 취임했다. 국내 최고 화상 치료 기관의 베테랑답게 지난해 12월부터는 대한화상학회 이사장 직도 맡고 있다.

3일마다 밤샘 당직 서는 병원장?

그는 대학병원 교수이자 병원장이며, 25년차 시니어다. 한 병원, 한 분야에서 24년을 근무한 끝에 병원장에 올랐지만, 현실을 보면 축하받을 일만은 아닌지도 모르겠다. 현재 병원이 너무 어려운 시기를 지나고 있기 때문이다.

한강성심병원은 국내 최고 화상전문병원으로 사회적 역할을 다 하고 있으며, 세계적인 의술과 연구성과를 내고 있지만, 의료 수가의 불균형으로 십수 년째 인력난에 시달리고 있고, 수익 면에서 고질적인 적자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속된 말로 인력을 쥐어짜면서 살아야 하는 구조로 운영이 되고, (재단) 이사장님의 지원 없이는 경영 자체가 어려운 상황”이라고 허준 원장은 표현했다.

 

허준 원장(왼쪽)이 화상 환자 수술을 집도하는 모습. (사진 = 한림대학교의료원)

 

허준 원장의 현실은 “집에 못 가고 당직 서는 날이 한 달에 거의 3분의 1”인 처지다. 인력난 때문이다. 단순히 외과만 해도 수가 문제로 인해 전공의 기피 1순위인데, 화상 치료 분야는 의료계에서도 가장 힘든 3D 분야로 꼽히고 있으니 그럴 수밖에. 그런데 화마가 병원 사정을 봐줄까? 화상 환자는 매일 전국 각지에서, 심지어 응급 헬기를 타고서도 이송되어 오니 교수들과 원장 가릴 것 없이 의사라면 누구나 당직을 서는 것이 여기서는 당연한 것으로 여겨진다.

허준 원장은 이렇게 산 지 15년이 넘었다고 한다. 그는 “지금 여기 있는 교수들은 다 자신이 주니어인 줄 알고 산다. 내가 50대가 훨씬 넘어가는데도 주니어라 생각하고 뛰니까 당직 서면서 일하는 게 가능하다”고 말한다.

허준 원장은 인력난 및 병원의 정상 운영을 위해 화상 진료 수가의 정상화 및 공공의료에 대한 정부의 제도적 지원 등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화상은 생후 1일부터 100세까지 전 연령대에 존재하는 것이 특징이다. 따라서 우리 병원은 화상을 중심으로 여러 과를 운영하는 종합병원 형태가 돼야 한다. 하지만 실제로 우리나라의 의료 수가 체계로는 사실상 운영이 불가능하다”라고 꼬집는다.

그는 또 “우리나라의 총 의료 수가 중에서 외과가 차지하는 비중이 매우 적다. 일본도 외과 의료 수가가 낮은 편이라고 하는데 우린 거기보다도 훨씬 적다. 수가 체계가 인력난에 매우 큰 영향을 주고 있다”라고 말했다.
 

한림대학교한강성심병원 화상전문병원. (사진 = 윤지원 기자)

화상 치료 공공성 인정 받고, 의료 수가 정상화 돼야

대표적인 후진국형 질환으로 꼽히는 화상 질환의 특수성도 고려되어야 한다. 허준 원장은 “부자는 화상을 덜 입는다. 실제로 경제 사정 안 좋은 사람들이 화상으로 훨씬 더 많이 다치고, 빈도도 높고 부상 정도도 심하다”라면서 “그런데 어려운 사정의 환자라고 해도 병원 측이 고비용 치료를 무료로 제공할 수는 없는 노릇 아니냐”라며 안타까워 했다.

이에 허준 원장은 “국가가 그런 지원이 필요한 부분· 특수성을 인정해서, 수가 체계도 변경해줘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한 병원 운영, 인력 수급도 정상화를 위해 가장 시급한 근본적인 문제이다.

하지만 여기에 큰 벽이 존재한다. 수가 체계를 개선하고 환자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해서는 보건복지부, 건강보험심사평가원, 근로복지공단, 식약처 등 의료 관련 기관들이 총괄해서 복지 정책을 잘 짜고, 체계화시키고, 더 합리적인 운영을 할 수 있어야 하는데 현재 우리나라 시스템에서는 이 기관들을 총괄하는 컨트롤 타워가 따로 없다는 것이다.

허준 원장은 “식약처가 허가한 약재와 치료재료, 장비가 있는데도 정작 심사평가원에서는 분류가 바뀌는 일이 생긴다”라면서 “그러면 의료 파행이 일어나고, 실질적인 진료 수가가 정상화되지 않으면 환자 부담이 늘어나고 만다”라고 지적했다.

이어 그는 “그러므로 공공성이 강한 분야에서는 진료비가 보전이 되어야 정상적인 진료를 할 수 있고, 그런 다음 환자가 원하는 일부 비급여 진료를 제공할 수 있어야 한다”면서 “이런 것들을 체계화하고 싶은 바람이 늘 있었다. 작년 말 대한화상학회 이사장이 되었는데, 보험료에 관해 체제 개선을 본격적으로 추진하려고 한다”고 덧붙였다.

 

한림대학교한강성심병원 허준 원장. (사진 = 한림대학교의료원)

 

화상 치료 분야의 공공성을 인정받고 지원 강화가 이뤄지는 것은 한강성심병원의 십수 년 숙원이다. 이에 대한 공무원들의 기존 입장은 “지금 잘 돌아가는데, 왜 건드리려 하는가?”, 또는 “잘못된 줄은 알지만 그래도 어쩔 수 없다”는 식이었다고 한다.

허준 원장은 이에 대해 “만약, 틀린 줄 알면 한 번에 다 바꾸지 않더라도 한 발, 한 발씩 가면 된다. 과거에도 힘들었던 시기가 많았는데, 그럴 때마다 우리 의료진은 ‘지금 이걸 요구해야 할 때가 아니냐’라며 안타까워하곤 했다. 그런데 나는 아직 공감대가 충분히 형성되지 않았다고 봤기 때문에 ‘아직 때가 안 됐다’고 대답하곤 했는데, 이번에 내가 원장이 되면서 드디어 때가 됐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우리는 힘을 모아 움직일 것이고, 할 수 있다고 생각되는 것은 될 때까지 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화상에 대한 대중 인식 개선 필요…홍보 활동도 지속할 것

한강성심병원의 경영난이 지속되는 원인으로 화상 환자의 절대 발생 수가 줄어든 것을 언급하는 사람들도 있다. 화상이 후진국형 질환인 만큼, 우리나라가 선진국으로 발돋움하면서 예전보다 화상 발생 빈도가 줄어든 것도 사실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에 대해 허준 원장은 다른 관점에서 접근한다.

허준 원장은 “실제로 중화상 환자는 아주 많이 줄었다. 하지만 일상에서 발생하는 화상은 우리나라의 불을 앞에 두고 요리하며 식사를 즐기는 문화 때문에 계속 발생한다. 이런 일상 화상이 일부 환자에서는 매우 심각한 후유증을 발생시키기도 한다”라고 지적했다.

이어 그는 “의료기관으로서 우리의 역할은 그 예후를 최상의 결과가 나오게 도와주는 것이다. 국민들이 다치기 전엔 잘 인지를 못하는 경우가 많다.심지어 화상을 어디서 치료 받아야 되는지조차 몰라 화상 초기 과정이 아주 부적절하게 이뤄지는 경우가 꽤 있다. 초기 진료가 적절하게 이뤄지면 예후는 좋아지고, 사회적으로도 삶의 질이 올라간다”라며 공공성을 담보한 화상 전문 치료기관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관련해 허 원장은 “우리는 중심 병원이기 때문에 초기 적절한 진료가 될 수 있도록 홍보를 강화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즉, 화상의 위험성, 적절한 화상 치료의 필요성 등에 대해 국민적 공감대를 형성하도록 노력해야 한다는 것이다.

 

한 화상환자가 한강성심병원 로봇재활치료실에서 화상으로 오그라든 하체 관절을 정상으로 회복하는 로봇 재활 치료를 받고 있다. (사진 = 윤지원 기자)

 

그는 “소 잃고 외양간 고친다는 말처럼 소를 잃기 전에 외양간 고칠 생각을 할 수 있는 사람이 거의 없듯이, 화상으로 다쳐보지 않은 사람은 일반적으로 그 위험도를 굉장히 못 느낀다. 그리고 대부분 화상이라면 중화상만 생각하는데, 경화상이 얼마나 무서운지를 모르는 경향이 있다. 집에서 다치는 것이 단지 뜨거운 물에 데었을 뿐이라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그 화상이 손가락을 오그라들게 만들 수도 있는 문제라는 걸 모른다. 또, 방송에서 폭발 사고가 보도되면 사람들은 그 피해자가 현장에서 즉사했을 거라고 상상하겠지만, 사실 그 환자는 우리 병원에서 아프다고 소리를 지르다가 24시간, 72시간을 못 이겨내고 고통스럽게 사망한다. 우리가 국민적인 공감대를 형성하려면 예방을 강조하면서 지속적인 홍보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를 위해 허준 원장은 현재의 기술적인 흐름에 맞춰 메타버스 가상병원 활성화를 통한 디지털 의료원 가속화를 중점 추진 과제의 하나로 선정했다.

"내 유일한 직장" 화상 치료에 반 평생 매진

허준 원장은 종종 한강성심병원 화상병동 의료진을 두고 ‘미친 사람들이 모인 곳’이라고 스스로 표현해 왔다. 화상 치료 자체가 힘든 과정이고, 15년 넘게 주 2~3일 당직을 서야 할 정도로 열악하고 힘든 여건임에도 그는 이 직장에서 만 24년을 보냈다. 이것은 사명감이나 도전 정신으로 설명할 수 있는 차원이 아닌 것 같아, 그 이유를 물어봤다.

허준 원장은 특별히 화상 병동이어야 하는 계기 같은 건 없었다면서 의대 입학, 전공의, 한강성심병원 근무 등의 과정이 단지 자신의 성향과 상황에 맞춰 그때그때 선택한 결과라고 설명했다.

그는 “난 보이는 것을 중시하기 때문에 법의학이나 해부학을 하려고 했다. 그런데 법의학을 하자니 현미경 쓰는 것에 취약했고, 해부학은 할 만큼 해본 것 같아 임상을 택했다. 그리고 임상을 하는 김에 칼을 잡고 싶었기에 외과를 택했고, 하다보니 화상이라는 분야가 있었다”라고 말했다.

허 원장은 “그냥 마음이 가고, 타당했다. 딱히 배척당하지도 않아서 여기 있었고, 그 자리를 계속 걷다 보니 여기까지 왔다”라면서 “솔직히 말해서 창피한 수준으로는 일하기 싫었고, 남들보다 못하고 싶지 않았다. 그런 마음으로 일하다보니 남들이 날 알아주기 시작했고, 그래서 여기까지 온 거다. 50대가 훨씬 넘어가는 나이에도 주니어라고 생각하면서 당직 서면서 뛰는 것도, 이게 특별한 사명감이나 소신보다, 그냥 지금 하고있는 이 직업이 나를 행복하게 해주니까 하는 거다. 그리고 나로 인해 환자가 덜 힘들어 할 때, 제일 기분이 좋다. 그런 것이 그냥 우리가 걸어온 길의 어떤 힘이었던 것 같다”라고 덧붙였다.

 

한림대학교한강성심병원 복도에 의료진을 소개하는 패널이 걸려 있다. (사진 = 윤지원 기자)

 

인력난을 극복하는 것은 허준 원장의 최우선 과제 중 하나지만, 화상 병동은 말도 못 하게 힘든 곳이다. 자본주의 국가에서는 힘든 만큼 충분한 금전적 보상을 해줄 수 있는 게 아니라면 억지로 데려다가 일하게 할 수 없다. 결국 인재 충원을 위해서는 ‘내재된 소신’, ‘일하는 행복’ 등 보이지 않는 요인을 무시할 수 없다. 그리고 허준 원장은 그 요인을 자신의 경험에서 찾는다.

허준 원장은 “직장은 놀이터 같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려면 돈보다는 내가 행복해야 한다”라면서 “그런데 나는 사실 여기가 내 고향 같다. 고향 같은 곳이고, 오랫동안 걸어왔다. 그랬더니 내가 여기서 해야 하는 일을 너무 많이 찾았다”라고 말했다.

이어 “후배들에게도 재미를 느끼는 일 여럿 중에 선택해야 한다면, 남들이 덜 하는 것을 해보라고 권한다. 남들이 덜 하는 곳에서는 내가 할 일, 해볼 수 있는 일이 매우 많기 때문이다. 그리고 내 신념이 그릇되지만 않는다면 그 일들을 소신껏 해나갈 수도 있다. 화상 분야가 그렇다”라고 밝혔다.

허준 원장은 “2002년 무렵 우리 병원은 겨우 인공 진피를 쓰는 초기 단계였지만, 지금은 전 세계에 우리의 기술을 전수하는 단계까지 발전했다. 앞으로 화상으로 사지를 제대로 쓸 수 없게 된 환자가 어떻게 정상적인 움직임을 되찾을 수 있을지를 연구, 발전시키면 된다. 의료 수준이 거의 최선진국화 됐다고는 하지만, 우리가 아직 도마뱀처럼 잘린 꼬리가 다시 자라나게 하는 단계에는 못 미치지 않나?”라며 비록 지금은 정체됐어도 소신껏 일하면서 화상 치료 분야를 미답의 경지까지 끌고 가고자 하는 의지를 가진 인재들이 화상 병동에 많이 나타나기를 바랐다.

< 문화경제 윤지원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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