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지원 기자의 와린이 칼럼] 매콤한 한식과 김치에 어울리는 와인

비빔냉면‧김치전에 결국 소주나 막걸리라고? 이젠 레드와인을 찾게 될 것!

윤지원 기자 2022.07.04 13:50:11

만화 ‘신의 물방울’의 한 에피소드에서 주인공인 칸자키 시즈쿠는 한식, 그중에도 김치와 어울리는 레드와인을 그라벨로라고 결론 내린다(기사와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 사진). 사진 = Portuguese-Gravity, Unsplash

■ 오늘의 와인
리브란디 그라벨로 2017 Librandi Gravello 2017

타입: 레드 / 포도품종 : 갈리오포 60% + 카베르네 소비뇽 40% / 지역 : 이탈리아>칼라브리아 / 등급 : IGT / 와이너리(생산자) : 리브란디(LIBRANDI) / 수입사 : 자스페로 인터내셔널


많은 사람이 와인을 마실 때 함께 먹는 안주를 고민한다. 또는 반대로 음식을 먹을 때 함께 마실 와인을 고민한다. 페어링이니, 마리아쥬니 하는 용어를 잘 몰라도 소고기나 돼지고기 같은 육류에는 레드 와인이, 생선이나 새우, 조개 같은 해산물에는 화이트 와인이 잘 어울리며, 반대의 경우엔 비리거나 텁텁해서 맛이 없다는 정도는 상식으로 아는 사람들이 많다.

그래서 오늘이 ‘특별한 날’인 경우 사람들은 좋은 소고기를 ‘스테이크’로 준비하고, 샴페인(또는 스파클링 와인)과 레드와인을 곁들인다.

또는 좋은 생선회나 비싼 게 요리를 먹기로 한다면 화이트 와인을 곁들인다.

그렇지 않더라도, 오늘 ‘와인을 먹자’고 하는 날이라면 안주나 식사 메뉴는 파스타, 치즈, 햄 소시지 류와 빵 등 서양 음식을 먼저 떠올린다.

 

매콤한 비빔국수와 어울리는 와인이 있을까?(기사와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 사진) 사진 = Dionysius-Samuel, Unsplash

 

그런데 와린이를 비롯해 이 칼럼을 읽는 대부분의 사람은 한국사람일 것이고, 대부분의 끼니에 한식을 먹을 것이다. 그래서 한국 사람으로서 와인을 좋아하게 된 사람들은 누구나 한 번씩 하는 고민이 있다. 한식에는 어떤 와인이 어울릴까?

특히 한식의 특징 중 하나인 매운 음식, 고추가 양념으로 쓰인 김치, 김치전, 김치찌개, 매운 볶음 요리, 탕, 비빔냉면 등 매운 요리가 메인 메뉴일 때는 어떤 와인이 어울릴까?

한국인 애주가라면 이럴 때 와인을 아예 포기하고 소주나 막걸리를 택한다. 한국 음식엔 한국 술이 정답이라며. 하지만 와인 중에도 이런 매운 음식과 잘 어울리는 와인이 있다. 시도해본 애주가로서, 매우 만족스러웠다.

피망 향미 나는 보르도계 레드와인, 한식과 궁합 좋은 이유

일단은 레드와인이다. 레드와인 중에서도 탄닌(떫은 질감)이 풍부하고, 바디(body)가 농후한 보르도계 레드와인이 좋다. 품종으로는 카베르네 소비뇽, 멜롯, 카르미네르, 카베르네 프랑 등의 품종이다. 더 구체적으로 하나만 꼽으라면 카베르네 소비뇽 와인을 꼽겠다. 카베르네 소비뇽은 매운 탕이나 김치 요리 등 고추 양념이 들어간 매운 한식과 잘 어울린다.

언급한 포도 품종들에는 ‘메톡시피라진’(methoxypyrazin), 또는 줄여서 피라진이라고 하는 화합물이 공통적으로 들어있다. 이 화합물은 가열시 향기 성분으로 두드러지는 경향이 있고, 와인에서는 여러 허브 향기, 열매 향기, 꽃 향기, 또는 어린 잔디를 갓 깎은 듯한 냄새 등 와인이 품은 몇몇 향미를 내는 원천이다.

그런데 이 피라진에서 나오는 향미 중 독특하고 유별난 향 하나가 ‘피망’의 향미이다. 많은 와인 애호가들이 이 피망 향이 나는 와인을 싫어하고, 피라진 농도가 가장 높은 편인 카르미네르와 카베르네 프랑 품종의 와인은 호불호가 강하게 나뉘는 것으로 유명하다.

그래서 보르도계 레드 와인은 대부분 메를로, 카베르네 소비뇽을 주 품종으로 쓰고 블렌딩 할 때만 카르미네르나 카베르네 프랑을 적은 비율로 섞는다. 메를로와 카베르네 소비뇽도 카르미네르, 카베르네 프랑 다음으로 피라진 농도가 높은 품종이긴 하지만 숙성 잠재력이나 다른 풍미가 좋아 피라진에서 나는 ‘불호’의 피망 향을 보완해주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피라진 특유의 향으로 언급되는 피망은 한식에 들어가는 고추와 같은 종, 즉 가지과 고추종의 단고추 채소다. 사실 피망은 고추에서 매운 맛을 줄이거나 없앤 개량 품종이다. 바로 이 점이 ‘피망 맛’이 나는 보르도계 레드와인과 ‘고추’ 기반 양념으로 요리한 한식의 궁합이 괜찮은 이유다.

김치와 잘 어울린다는 리브란디 그라벨로. 사진 = Librandi
리브란디 그라벨로의 주요 재료인 갈리오포 품종의 포도를 재배하는 칼라브리아의 포도밭. 이 일대는 옛부터 고추 농사를 주로 짓는 지역이어서 매운 맛 음식과 어울리는 와인 양조가 발달했다. 사진 = Librandi

 

김치와 어울리는 와인이 이탈리아에?

김치나 김치가 들어간 요리는 어떤가? 김치는 발효 식품, 구체적으로는 유산발효 식품이다. 그런데 레드와인은 모두 유산발효의 과정을 거치며, 이를 통해 1차 발효에서 나타난 과한 산미가 부드러워지면서 치즈나 버터 같은 고소한 풍미도 생겨난다.

즉, 김치와 레드와인은 둘 다 유산발효를 통해 만드는 음식으로, 비슷한 특성을 나타내는 산미와 풍미를 지니기 때문에 서로 어울릴 수 있는 것이다. 여기에 카베르네 소비뇽 와인은 풍부한 탄닌과 농후한 특유의 질감 때문에 더더욱 숙성 잠재력이 높고, 충분히 숙성됐을 때 더욱 풍부한 유산 특유의 맛과 향을 낸다.

와인 관련 콘텐츠 중 가장 대중적으로 인기를 끈 만화 ‘신의 물방울’의 한 에피소드에서도 이와 비슷한 궁합을 찾아볼 수 있다. 주인공인 칸자키 시즈쿠가 한식, 그중에도 김치와 어울리는 레드와인을 찾아야 하는 에피소드다. 여기서 시즈쿠는 이탈리아의 포도 품종인 ‘갈리오포’를 주재료로 한 레드와인 ‘그라벨로’를 김치 요리와 가장 잘 어울리는 레드 와인이라고 결론 내린다.

만화에서는 그라벨로를 만든 포도가 원래 붉은 고추밭을 많이 재배하는 칼라브리아라는 지역에서 기른 것이고, 그 포도밭도 원래 고추밭이었던 곳이어서, 고추 및 마늘 특유의 매콤한 뒷맛을 돋보이게 하는 토양이라며 김치와의 궁합이 좋은 이유를 설명한다. 고추 농사에 종사하는 사람이 많은 지역의 식생활에는 매운 음식이 많이 포함되어 있으며, 현지에서도 그에 맞춰 어울리는 와인을 만들어 마시는 것이다.

‘그라벨로’는 갈리오포 60%에 카베르네 소비뇽 40%를 섞어 만든 와인이다. 앞서 얘기한 피라진의 역할 때문에 더욱 한식과 잘 어울린다.

< 문화경제 윤지원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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