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아모레퍼시픽 그루밍 브랜드팀 허도윤 팀장 “쿠션이 낯설지 않은 MZ 남성이 타깃”

남성 메이크업에 다양한 선택지 제공, 니치(niche)한 시장부터 명확히 타기팅 해 남성 메이크업 인식 변화 주도

김예은 기자 2022.11.16 17:12:47

여성들이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행위를 뷰티(beauty)라고 한다면, 남성의 경우 그루밍(grooming)이라고 칭한다. 사진=아모레퍼시픽

인간의 외적 아름다움을 증진하기 위한 외모 가꾸기와 화장은 더 이상 여성의 전유물로 여겨지지 않는다. MZ세대 남성들 사이에서 외모 가꾸기와 화장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면서 패션과 미용에 아낌없이 투자하는 남자들을 가리키는 ‘그루밍(grooming)족’이 증가하고 있다.


국내 대표 뷰티 기업 아모레퍼시픽에는 이 그루밍족을 타기팅 해 남성 메이크업의 인식과 저변을 넓히는 것에 집중하는 팀이 있다. 12명의 MZ 팀원들로 구성된 그루밍 브랜드팀이 그 주인공. 팀을 이끄는 리더 허도윤 팀장을 만나 그루밍족의 특성과 남성 화장품시장 특화 전략을 물었다.

아모레퍼시픽 그루밍 브랜드팀 허도윤 팀장. 사진=김예은 기자

- 남성 화장품 전담 부서라 더 호기심이 생깁니다. 그루밍 브랜드팀은 어떤 일을 하나요?

 

"저희 팀은 남성 헤리티지 스킨케어 브랜드 ‘오디세이’와 20대 남성 스킨 케어 브랜드 ‘브로앤팁스’, 그리고 메이크업과 스타일링 영역의 ‘비레디’ 등 3개 브랜드를 담당하고 있습니다. 이 가운데 비레디 브랜드를 성장시키는 것이 저희 팀의 1순위 과제죠.


비레디는 2019년 사내 스타트업으로 시작했는데요. 당시 남성 메이크업 시장이 성장세를 보이며 중소 업체를 중심으로 신생 브랜드들이 등장했습니다. 아모레퍼시픽에서도 남성 특히, 20대 초반 남성들을 타깃으로 하는 메이크업 브랜드가 필요하다는 니즈가 나오던 때였죠. 이때 저희가 제안했던 스타트업 제안서가 이 니즈와 잘 맞아떨어졌고, 사내 스타트업으로 선정돼 탄생한 브랜드입니다."

아모레퍼시픽 그루밍 브랜드팀. 앞줄 왼쪽부터 박수빈 팀원(메이크업 제품 개발 담당), 허도윤 그루밍 브랜드팀 팀장, 이정훈 팀원(헤어 및 퍼품 제품 개발 담당), 뒷줄 왼쪽부터 황인규 팀원(스킨케어 제품 운영), 박민선 팀원(브랜드 커뮤니케이션 담당), 김중용 MC 파트장(브랜드 커뮤니케이션 담당). 사진=김예은 기자

- 남성들에게 이미 익숙한 화장품 브랜드가 많았을 텐데, 어떤 차별화 전략을 가지고 접근했나요?

 

"당시 기존 남성 메이크업 시장에서는 ‘티 안 나게’, ‘쓰기 편하게’와 같은 메시지가 보편적인 화두였어요. 그런데 저희는 5가지 컬러의 파운데이션을 출시하며, 남자들이 제대로 메이크업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방식으로 접근했습니다. ‘티가 안 나는’ 또는 ‘부끄러운’ 등과 같은 남성 화장품의 보편적 관념에서 벗어나 본인에게 맞는 컬러를 찾아 당당하게 ‘자신의 개성을 표현’하는 수단으로 전환시키는 전략이었죠. 또한 이상적인 남성상보다는 좀 더 편안하게 다가갈 수 있는 친근한 남성상을 내세우는 커뮤니케이션을 통해 남성 메이크업 시장을 넓히고자 했습니다.


남성 쿠션을 론칭했을 때 첫 주에만 1억 5천만 원이 넘는 매출이 발생했어요. 사실 여성 브랜드 메이크업 제품을 론칭해도 단기간에 억 단위의 매출이 나오기가 쉽지 않습니다. 신생 브랜드라 더 놀라운 성과였고요. 당연히 회사 내부 반응이 좋았고, 남성 메이크업 제품에 대한 잠재적 욕구와 관심, 가능성을 일깨워주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허도윤 팀장은 다양한 컬러 라인업을 갖춘 비레디 쿠션을 통해 남성 화장품을 당당하게 자신의 개성을 표현하는 수단으로 전환시키고자 했다고 밝혔다. 사진=아모레퍼시픽

- 스킨도 아닌 쿠션을 남성 고객들에게 알리기가 쉽지 않았을 텐데요.

 

"비레디 쿠션 론칭 시점이 코로나가 한창 심했을 때였어요. 일상에서 마스크를 쓰면서 여성들도 메이크업을 잘 안 하던 시절이었죠. 메이크업 시장 전체가 위축되는 상황에서 새 메이크업 제품을, 그것도 남성용 화장품을 출시한다는 게 큰 도전이었어요.


이러한 상황에서 저희의 차별화 포인트는 ‘마스크에 묻지 않는 쿠션’이었습니다. 당연히 제형이 굉장히 얇을 수밖에 없었죠. 결과적으로 티 안 나고 얇고 가벼운 쿠션이라는 점이 고객들에게 부각되었고 남성 고객들의 소비 욕구를 자극하는 핵심 포인트가 되었습니다.


당시 한국 시장에는 발랐을 때 마스크에 거의 묻지 않고, 내 피부같이 얇고 자연스러운 제형이 많이 없었어요. 보통 여성 쿠션들은 커버가 안 되면 굳이 쓰지 않는 편이라 고커버용 제품에 집중되어 있었고요. 남성용 쿠션도 마찬가지였어요. 그런 점에서 비레디의 얇은 제형은 중요한 차별화 포인트였죠.


컬러의 경우에도 기존 남성용 쿠션은 하나 혹은 두 개의 컬러로 구성되어 있어서 내 피부톤과 맞지 않으면 피부에 진흙을 바른 것처럼 어둡게 되는 실패 사례가 많았어요. 그런데 비레디는 쿠션의 컬러를 5개로 다양화해, 남성들이 밝은 피부부터 어두운 톤의 피부까지 자신의 피부톤에 맞는 자연스러운 메이크업을 선택할 수 있도록 도왔습니다.

 

결과적으로 남성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남자들의 입문 쿠션은 ‘비레디’라는 인식이 정착됐고, 매출 면에서도 확실하게 자리를 잡았습니다."


- MZ 고객들 사이에서 인플루언서 마케팅이 대세인데요. 어떤 전략으로 접근하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비레디가 고수하고 있는 전략은 타기팅을 명확하게 하는 것입니다. 폭넓게 타기팅하다 보면 어떤 고객에게 우리 제품이 갈지 불명확해지기 때문이죠. 초기 니치(niche) 전략을 통해 설정했던 비레디 제품의 주요 타깃은 남성 화장품 고관여자들이었습니다. 이들 안에서 확실한 보이스를 만들어, 이를 점차 바이럴화하는 것이죠. 


남성 뷰티 분야의 인플루언서들과 협업할 때도, 메가 유튜버들보다는 MZ 고객들이 믿고 신뢰할 수 있는 10만 이하의 뷰티 인플루언서들을 전략적으로 선별했습니다.

 

비레디 제품은 인플루언서나 고객과 함께 만드는 걸 원칙으로 하죠. 누가 기획하고 누가 만들지, 어떤 콘텐츠를 생산할지 사전 계획을 합니다. 이후 특정 인플루언서가 최소 몇 달 전부터 개발에 참여해 여러 차례 테스트를 거치고 의견을 내며 제품을 함께 완성합니다. 그 과정을 모두 스토리로 만들어 콘텐츠화하고 인플루언서가 직접 판매까지 담당하죠.

메이크업 제품 개발을 담당하고 있는 박수빈 팀원(가운데)은 현재 개발 중인 신제품을 자신의 얼굴에 직접 테스트하며 피부표현과 밀착도를 확인하고 있다고 말했다. 사진은 비레디 쿠션을 이정훈 팀원에게 시연하는 모습. 사진=김예은 기자

즉, 제품 노출을 위한 콘텐츠를 일회성으로 올리는 게 아니라, 제품 기획부터 제작, 이후 제품 판매까지 연결하는 퍼널(Funnel)형의 협업을 진행해 그 과정을 콘텐츠로 구독자들에게 보여주는 방식입니다. 이를 통해 구독자들의 신뢰를 쌓아 구매까지 이어지도록 하는 거죠. 함께하는 크루형 인플루언서가 현재 5명인데, 매월 새로운 인플루언서를 최소 2명씩 발굴하는 작업을 하고 있어요.


최근에는 제품에만 국한하지 않고 저희 제품과 브랜드에 맞는 컬처 코드를 붙여보려고 노력하고 있는데요. 예를 들면 음악, 패션 등 MZ 고객들이 요즘 많이 즐기고 소비하는 다른 컬처 코드를 찾고 관련 브랜드나 그 분야의 인플루언서들과 협업하는 방식으로 운영하고 있습니다."


- 남성 화장품 시장에서 MZ만의 특성이 있다면?

 

"화장품에 대한 고관여자 비율이 점점 늘고 있습니다. 내가 어떤 피부이기 때문에 어떤 제품을 써야 하는지 기준이 명확하고, 자신의 피부와 원하는 성분에 초점을 맞춰 화장품을 선택하는 고객들이 늘고 있습니다. 전에는 올인원 제품 하나를 쓰는 남성들이 많았다면 현재는 기초 화장품은 더마 제품을 찾아 쓰고, 메이크업할 때는 비레디를 쓰는 식으로 다양한 제품을 선택해 사용하는 추세입니다. 스킨, 로션, 선크림을 사용할 때도 하나의 브랜드만 선택하지 않고, 남성용 화장품만 고집하지도 않습니다.


또한 메이크업에 대한 거부감이 생각보다 없는 편이고, 피부에 아무것도 안 바르는 것이 오히려 부자연스럽다는 인식이 강해지고 있어요. 특히 Z세대의 경우, 쿠션이나 파운데이션까지 바르는 소비자가 10%, 선크림 정도 바르는 소비자들은 약 70% 가까이 됨에 따라 아무것도 사용하지 않는 남성들이 오히려 적어지는 추세입니다."

현재 비레디는 쿠션, 파운데이션, 선베이스부터 아이 팔레트와 립밤, 퍼퓸까지 남성 스타일링에 집중한 제품 라인업을 갖추고 있다. 사진=아모레퍼시픽

- 블루, 화이트, 블랙 등 남성 화장품은 용기 컬러가 단순한데 이유가 있나요?

 

"시대가 변했지만, 여전히 남성 고객들은 내가 쓰는 제품의 컬러가 너무 튀는 걸 부담스러워하는 것 같아요. 그래서 저희 비레디도 남자의 컬러로 일반화된 블루라는 컬러를 쓰고 있습니다.


단, 비레디는 블루 내에서도 컬러 코드를 고도화해 컬러명을 위시 블루라는 이름으로 명명하고 관련한 리브랜딩 활동을 계획하고 있습니다. 이를 통해 즐거움, 행복함이라는 새로운 코드를 만들어 소통할 예정입니다. 디자인과 로고 역시 이에 맞춰 변화를 줄 예정이고요."

- 남성 화장품의 인식 변화와 새로운 문화를 형성하기 위해 계획하고 있는 활동이 있다면?

 

"아직도 남성들은 화장품 하면 아이돌 같은 예쁘장하고 부담스러운 이미지나 인식이 있는 것 같아요. 그 편견을 깨고자 저희가 11월부터 브랜드 엠배서더들과 대대적인 캠페인을 진행할 계획입니다. 일상 속에서 친숙한 아티스트, 딱히 화장품을 안 쓸 것 같은 이들과 협업해 남성 화장품의 인식의 전환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캠페인을 본격적으로 시작합니다. 이 캠페인이 남성 메이크업의 대중적 확산을 위한 신호탄이 될 것이라 생각합니다.

 

과거에도 남성성이 돋보이는 조준, 만재 등과 같은 헬스 유튜버와 함께 협업한 적이 있는데요. 이를 통해 남자들이 피부를 관리하고 가꾸는 행위가 부끄러운 것이 아니라는 인식 전환을 유도하고자 했습니다. 자신을 관리하고 사는 남성들이 몸만 관리하는 게 아니라 피부까지 신경 쓰고 중요한 날에는 쿠션도 바르는구나, 이런 사고의 전환이 점차 이루어지는 것 같아요.


최근에는 침착맨과 라이브 방송을 진행했습니다. 침착맨은 메이크업과는 거리가 먼 이미지에 실제로 화장을 안 하기 때문에 화장을 처음 해보는 경험에 대해 라이브로 ‘썰’을 푸는 콘텐츠를 만들었죠. 이런 부조화가 사람들 사이에서 회자되었는데, 다양한 협업을 통해 인식의 변화를 조금씩 만들어내고 있습니다."

- 입대 후 화장품에 관심을 가지게 됐다는 남성들도 있어요. 군 장병 대상 마케팅을 따로 하나요?

 

"사회공헌 활동의 일환으로 판매 수익의 일부를 군 장병들의 피부 보호를 위한 선크림과 클렌저 등을 기부하는 데 사용하고 있습니다. 장병들이야말로 저희의 잠재 고객이죠. 제품을 사용해보고 좋으면 계속 사용할 확률이 높아요.


깔끔한 모습으로 휴가 나가길 바라는 장병들의 욕구를 겨냥해 비레디 쿠션을 사용하는 군인 콘텐츠를 제작하기도 했어요. 동료의 관물대에서 발견한 비레디 쿠션을 바르고 휴가 나온 장병과 그를 본 여자친구의 재미난 반응을 표현했죠."

비레디는 11월 21일부터 코드 쿤스트-그레이-로꼬를 브랜드 앰베서더로 발탁하고, 남성 토탈 스타일링 브랜드로 전환하기 위한 리브랜딩 캠페인 'BOYS BE READY'를 전개한다. 사진=아모레퍼시픽

- 쿠션, 파운데이션 외에 MZ 남성 고객들을 위해 준비하고 있는 새 제품이 있다면?

 

"남성 메이크업에 관심이 적은 저관여자를 위해 좀 더 쉽게 접근할 수 있는 남성 메이크업 제품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쿠션이 아닌 로션 같은 제형을 차용했죠. 화장품을 바른 건가 싶을 정도로 자연스럽게, 피부가 좋아 보이는 효과를 연출하면서 동시에 사용이 쉬운 제품입니다.


또한 비레디 메이크업 제품 가운데 파운데이션의 리뉴얼 제품이 12월에 출시됩니다. 신규 파운데이션은 좀 더 빈틈없이 결점 없는 피부를 연출하도록 해 화장품 고관여자에 적합한 제품을 출시할 예정입니다. 현재 판매되고 있는 제품과 신규 2종을 아울러 3가지 메이크업 타입 안에서 선택할 수 있도록 해 다양한 고객층을 만날 예정입니다.


앞으로 비레디는 모든 남성 그루밍 스타일링을 아우를 수 있도록 헤어스타일링까지 포괄해 제품 포트폴리오를 좀 더 공격적으로 확장해 나갈 예정입니다. 요즘 남성들은 헤어 관리에 비용을 상당히 많이 쓰고 있어요. 청담동 살롱이나 바버샵에 가는 이들이 늘고 있는데 이런 분들이 저희 잠재 고객이라고 볼 수 있죠. 헤어에 관심 있는 남성, 옷에 관심 있는 남성, 운동하는 남성 등 외적으로 보이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이들일수록 남성 메이크업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질 확률이 높기 때문이죠. 따라서 라인업을 다양화하고, 이런 잠재 고객들이 좀 더 메이크업을 친숙하게 생각할 수 있도록 다각적인 커뮤니케이션을 진행할 계획입니다."
 

<문화경제 김예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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