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김건희 여사의 ‘조명-반사판’ 논란 유감 … 필요한 것은 ‘비공개 뒤 사후공개’ 아닌 현장 공개

최영태 주필 기자 2022.11.21 10:34:50

미국의 커뮤니티 사이트 '레딧'에 올라왔다고 보도된, 김건희 여사 사진에 대한 조명 사용 분석 그림. 김 여사의 뒤쪽 위, 왼쪽 옆 중간 높이, 앞쪽 중간 높이에 3개의 조명이 사용됐다며 '이 사진은 연출 사진이다!'라고 규정했다.   

월드컵 시즌이 밝았다. 주요 방송사들은 경기 생중계에 바쁘다. 스포츠의 생명은 현장 직관 또는 생중계이다. 경기의 마지막 1초에 역전골이 터지기도 하기 때문에 끝까지 눈길을 뗄 수 없는 데 축구 같은 스포츠 경기를 보는 맛이 있기 때문이다. 만약 월드컵 경기가 생중계 없이 ‘비공개 뒤 사후 공개’라는 식으로 진행된다면 아무리 멋진 골이, 아무리 환상적인 킥을 통해 만들어졌다 해도 그 인기는 하루아침에 지하로 꺼질 듯하다.

손흥민 경기가 끝난 뒤 유튜브로 하이라이트 장면을 보기도 하지만 그건 생중계를 보지 못했기 때문에 할 수 없이 그렇게 하는 것이지, 국가대표 경기를 “생중계는 반드시 건너뛰고 사후에 하이라이트로만 보겠다”를 원칙으로 삼는 사람은 있기 힘들다.

정치도 마찬가지다. 20세기 활자 시대에는 정치인의 말과 행동이 오로지 신문기자의 펜 끝을 통해서만 유권자에게 전달됐기에 정치인들은 기자를 상전 모시듯 했다. 오죽하면 “선거 끝나면 정치부 기자에겐 집 한 채씩이 생긴다”는 말이 정치부 기자 입에서 나왔겠는가.

그래서 ‘유튜브 이전’ 시대에는 활자 기자의 펜 끝이 정치인의 당락을 갈랐지만, TV 시대 특히 유튜브 이후 시대가 되면서 동영상 앞에 숨김없이 생생히 드러나는 정치인의 실태가 당락을 가르는 변수가 됐다. 가히 정치 역시 축구처럼 생중계의 시대가 된 셈이다.

더불어민주당 장경태 최고위원이 최고위원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그런데, 카타르 월드컵 생중계가 시작된 21일 월요일 아침부터, 장경태 민주당 의원이 거론했다는 ‘김건희 여사의 캄보디아 현지에서의 조명-반사판 사용’이 언론을 뜨겁게 달구고 있다.

이에 대해 대통령실은 20일 서면 브리핑을 통해 “김건희 여사의 캄보디아 환아 방문 시 조명을 사용했으며 이는 국제적 금기사항을 깬 것이라는 민주당 장경태 최고위원의 주장은 전혀 사실이 아니다. 김 여사 방문 당시 조명을 사용한 사실 자체가 없다”며 “거짓 주장을 반복하며 국격과 국익을 훼손한 데 대해 장경태 최고위원에게 책임을 묻지 않을 수 없음을 분명하게 밝힌다”고 전했다.

그러나 이에 대해 장 최고위원은 “외신과 사진 전문가들은 김 여사의 사진이 자연스러운 봉사과정에서 찍힌 사진이 아니라, 최소 2~3개 조명까지 설치해서 사실상 현장 스튜디오를 차려놓고 찍은 콘셉트 사진으로 분석한다”며 “최소 2개의 별도 조명을 활용해 찍었을, 전형적인 목적이 분명한 ‘오프-카메라 플래쉬(Off-camera flash) 사진’이라는 외신과 사진 전문가의 분석을 인용했을 뿐”이라고 맞섰다.

그는 “허위사실 유포? 이제는 인용도 문제인가? 언론과 야당에 재갈을 물리고, 걸핏하면 압수수색으로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는 참 잔인한 정권”이라며 “야당 정치인으로서 진실을 밝히고, 권력에 맞서는 데 주저함이 없도록 노력하겠다”고 나섰다.

'고양이뉴스'의 원재윤 PD가 20일 유튜브에 올린 사진들. 김 여사의 눈동자에 비친 네 사람들을 지적하며 “김 여사님, 여기 반사판 들고 있는 네 사람에게 물으시면 될 것 같습니다”라고 썼다.

이와 관련해 사진-동영상 분석으로 인기를 끌고 있는 유튜브 고양이뉴스 채널의 운영자 원재윤 PD는 논란 속 사진의 김 여사 눈동자에 비친 네 사람의 실루엣 사진을 제시하면서 “김 여사님, 여기 반사판 들고 있는 네 사람에게 물으시면 될 것 같습니다”라며 ‘충성’ 구호를 외쳤다.

마치 여배우 촬영하듯 반사판이 동원돼 촬영된 사진이라는 사실을 김 여사 눈동자에 비친 영상으로 증명했다는 소리다.

한편 미국의 인터넷 커뮤니티 레딧(reddit.com)에도 김 여사의 사진에 대해 ‘3개의 조명을 김 여사의 앞-뒤와 왼쪽 옆에 사용한 연출 사진’이라는 영문 글이 올라와 주목을 끌기도 했다.

이 레딧 글에서 눈에 확 들어오는 것은 연출 사진(staged photo)이라는 문구다. 보도 사진(photojournalism)은 연출 사진과 다르다. 연출 사진이란 특정한 장면을 작가가 기획해 만들어내는 것으로, 예술적인 가치는 있을지언정 보도 사진으로 분류해선 안 된다. 보도 사진을 연출 사진으로 대체할 수 있다면 종군기자는 필요없다. 가짜 총칼을 '연출'하면 되는데 진짜 총칼 앞에 목숨을 노출시키는 것은 바보 짓이기 때문이다.   

'종군 사진'으로는 아마 가장 유명할 로버트 카파의 스페인 내전 현장 사진을 토대로 한 조각 작품. 카파의 사진 속 모습을 연출하지 못할 이유도 없으며, 만약 그 사진이 '연출 사진'이었다면 큰 주목을 절대로 받지 못했을 것이다.  

사진을 분석할 줄 아는 이들 중 일부는 ‘김 여사 사진엔 분명히 조명 사용의 흔적이 남아 있다’고 주장하고 있으며, 대통령실은 절대로 아니라며 책임을 묻겠다고 나서고 있다. 김 여사의 사진이 예술 사진이 아니라 보도 사진의 자격을 갖겠다면 이는 반드시 규명돼야 할 문제다.

보도 사진 영역에서도 조명이 사용될 때가 있긴 하다. 그러나 그건 현장의 생생함을 조명 사용으로 더 명확하게 알리기 위함이지, 즉 플래시 사용 등으로 현장을 선명하게 보여주기 위한 것이지, 어떤 상황을 마치 무대에 올리듯 연출(staging)하기 위한 용도는 아니다.

따라서 김 여사의 캄보디아 사진에서도 논점은, 조명을 사용했느냐 아니냐 여부가 아니라 연출된 사진이냐 아니냐에 맞춰져야 한다.

그간 김 여사의 많은 봉사 활동 등이 ‘일단 비공개 뒤 사후 공개’ 식으로 이뤄져 대통령실 출입기자단, 특히 영상기자단의 원성을 샀는데, 과연 이런 식의 ‘비공개도 아니고, 공개도 아닌’ 형태의 김 여사 노출이 바람직한 것인지에 대해서는 분명한 정리가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생중계 시대에 ‘無중계’는 맞지 않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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