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현장] ‘일시적 개입’에서 시작된 ‘지속적인 연대’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아르코미술관, 팬데믹 이후의 지역 재정의에 주목

김금영 기자 2022.11.24 10:09:41

코무니타스 구부악 코피 작가는 오늘날의 지역 문제를 다루기 위해 포스 론다라는 공간을 활성화하는 과정을 기록했다. 사진=안용호 기자

전시장 바닥에 설치된 QR코드를 스마트폰으로 찍으면 조선소 영상이 펼쳐지며 관람객을 거제 지역으로 이끌고 간다. 그런가하면 이주자의 불안을 빨래 퍼포먼스로 달래던 사람들의 이야기는 독일에서 시작돼 한국까지 다다랐다. 이 다양한 이야기들에 관람객의 개입을 허용한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아르코미술관이 마련한 주제기획전 ‘일시적 개입’의 풍경이다. 코로나19로 인한 전 세계적 팬데믹 이후 지역의 재정의에 접근하는 자리다.

11월 18일 기자간담회에서 '지속적인 연대' 전시의 취지를 나누는 임근혜 아르코미술관 관장. 사진=안용호 기자

전시 간담회에서 임근혜 아르코미술관 관장은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사회적 의제를 제안하는 전시를 마련했다. 팬데믹으로 자유롭던 국가 간 이동이 불편해지면서, 닿을 수 없는 먼 곳보다 바로 우리의 주변 지역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미술 생태계 또한 지역 작가에 주목하는 흐름이 생겼다”고 짚었다.

특히 전시는 연대에 주목해 지역을 재정의한다. 전시를 기획한 차승주 큐레이터는 “팬데믹 이후 안전에 대한 염려가 높아지면서 지역 공동체와 소통, 결속하는 것이 중요해졌다. 사람들은 코로나19 사태로 격리 상황에 놓이면서도 온라인 등을 통해 주변과 관계 맺는 것을 놓치지 않았다”며 “상황이 이렇다보니 더 이상 지역을 기존의 행정구역 중심으로 바라보는 건 무의미해졌다. 거주지가 위치한 장소보다 다양한 방식의 연대가 더 중요해졌다”고 말했다.

코무니타스 구부악 코피 작가가 작업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사진=안용호 기자

이번 전시는 국내외 작가 및 기획자 14명(팀)의 작품 및 아카이브 자료, 참여 프로젝트 60여 점을 선보인다.

 

작가들은 거주지가 아닌 다른 지역 사람들의 삶과 문화, 그리고 지역 문제에 예술적 활동으로 개입하기도, 지역에 기반을 두고 서로의 이웃과 새로운 만남과 연대를 작업의 근간으로 삼는 프로젝트를 소개하기도 한다. 특정 매체를 통해 지역의 문화적 가치 보존을 도모하기도 하며, 상상적 공동체를 일시적으로 형성해 지역사회의 문제를 예술 활동으로 고찰해보기도 한다.

거제 섬도 작가가 작업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사진=안용호 기자

전시장 도입부는 코무니타스 구부악 코피의 ‘포스 론다 프로젝트’가 장식했다. 오늘날의 지역 문제를 다루기 위해 포스 론다라는 공간을 활성화하는 과정을 기록했다.

 

구부악 코피 작가는 “과거 포스 론다는 범죄를 예방하기 위한 장소로 활용됐는데, 현재는 이민자의 모임 등 지속 가능성에 대한 장소로 기능하고 있다”며 “실제 거주민이 직접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과정을 대화, 놀이, 미팅룸을 재현하는 방식으로 보여주고자 했다”고 말했다. 이를 통해 관람객 또한 포스 론다와의 새로운 사회적 관계가 시작된다.

5 전시장 바닥에 설치된 QR코드를 스마트폰으로 찍으면 조선소 영상이 펼쳐지며 관람객을 거제 지역으로 이끌고 간다. 사진=안용호 기자

옆엔 거제 섬도의 ‘두 번째 파도: 쇠로 만든 방주, 표류하는 아고라’ 작업이 설치됐다. 거제 섬도는 한반도의 동남권에 있는 부산, 울산, 경남 마산 등 무역항 세 곳을 돌며 인간이 바다에 개입하며 만들어온 삶과 산업의 이력을 기록해왔다.

 

거제 섬도 작가는 “조선 산업은 폐쇄적 성격이 강해 주변의 개입을 잘 허용하지 않아왔다. 그렇기에 인문학적, 예술적 접근을 시도하면 보다 의미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고 말했다.

실험실 C는 도시와 자연의 경계를 걸으며 관찰한 부산의 근대도시 성장사를 보여준다. 사진=안용호 기자

실험실 C는 도시와 자연의 경계를 걸으며 관찰한 부산의 근대도시 성장사를 보여준다. 민둥산이 가득하던 공간이 푸른 숲이 되고 마을이 되는 과정, 주민이 들려준 이야기 등을 통해 부산은 한 공간의 역사, 개인의 서사, 자연의 순환이 맞물린 장소로 재배치된다. 실험실C 작가는 “지역의 서사를 관찰하고 그곳의 생태적 이야기들을 들여다보며 사람들과 새롭게 가치를 만들어보고자 했다”고 말했다.

 

오버랩은 온라인 가상공간을 통해 서로 관계를 맺는 사람들의 이야기에 집중했다. 이를 통해 세계적 팬데믹 상황에서 향후 국제 예술 교류의 방법에 대해서도 고민해본다.

오버랩은 온라인 가상공간을 통해 서로 관계를 맺는 사람들의 이야기에 집중했다. 사진=김금영 기자

오버랩 작가는 “워크숍에서 시작해 레지던시로 이어진 작업에서 많은 작가들이 3년여의 시간 동안 비대면 교류를 가졌다”며 “무수한 정보가 연결되는 가상공간에서는 간혹 소통의 오류가 생기기도 한다. 이 또한 재해석의 관점에서 바라봤다”고 말했다.

오버랩이 온라인 가상공간을 만들었다면, 노뉴워크는 가상의 페미니스트 아티스트 레지던시를 위한 안전망을 상상으로 만들었다.

 

작가는 가부장제 자본주의 사회 내 페미니스트 아티스트에게 여전히 부족한 안전망과 연대의 불안정성, 그리고 수도권 중심 정책의 소외에 대항하고, 발화하는 가상의 네트워크를 마련했다.

노뉴워크는 가상의 페미니스트 아티스트 레지던시를 위한 안전망을 상상으로 만들었다. 사진=김금영 기자

행정구역 중심→다양한 지역 유입 인구가 예술로 관계 형성

차별 없는 연대를 꿈꾸는 다이애나랩의 작업이 설치됐다. 이들의 작업엔 수어, 자막, 음성해설이 존재한다. 벽엔 문구와 함께 점자도 설치했다. 사진=김금영 기자 

2층 공간에서는 차별 없는 연대를 꿈꾸는 다이애나랩의 작업이 설치됐다. 이들의 작업엔 수어, 자막, 음성해설이 존재한다. 벽에 ‘우리가 보는 세계를 당신도 볼 수 있을까?’란 문구가 적혔는데, 이 아래 점자도 설치됐다. 각자 다른 감각을 갖고 경험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온전히 뜻을 전달하고 연대할 수 있을지 생각할 거리를 던진다.

수많은 상처와 억울한 상실로 점철된 이주 공동체를 향한 치유의 가능성엔 브레이크워터(최영숙X태이), 권은비가 개입한다.

 

‘켜켜이 꽃’은 서구 노예제도의 폐지로 인한 노동력의 수요를 감당하기 위해 도입된 8년 단위의 계약노동제, 이처럼 과거부터 현재까지 이어지는 착취구조 내에서 주로 희생당한 이주노동자의 상처를 소환하는 작품이다. 하지만 단지 아픔을 드러내는 데 그치지 않고, 마음의 병을 치유하는 상징으로 노란 민들레꽃을 화면 곳곳에 활짝 피어 놓았다.

브레이크워터(최영숙X태이)의 '켜켜이 꽃'은 과거부터 현재까지 이어지는 착취구조 내에서 주로 희생당한 이주노동자의 상처를 소환, 치유하는 작품이다. 사진=김금영 기자

권은비는 분단의 아픔을 공감하는 독일에서 만난 타인들과 함께 빨래를 하고, 전쟁의 상처를 겪은 구소련국가의 이주민과 비누를 만드는 퍼포먼스를 풀어놓았다.

 

“나의 조상은 고려인이지만, 나는 러시아에 태어나고 살았다. 어머니에게 왜 나만 러시아 사람처럼 안 생겼냐고 자주 물었다. 성인이 돼서 한국에 왔는데 여기도 마찬가지로 나만 다르다는 느낌이다”는 한 참여자의 고백은 어느 집단에도 제대로 속하지 못하는 사람들의 상처와 불안을 여실히 느끼게 한다.

 

이 불안을 해소하기 위해 작가는 제의적 퍼포먼스로 빨래를 시도하고, 불안을 씻어줄 것이라는 희망을 담은 비누를 만들었다.

권은비는 분단의 아픔을 공감하는 독일에서 만난 타인들과 함께 빨래를 하고, 전쟁의 상처를 겪은 구소련국가의 이주민과 비누를 만드는 퍼포먼스를 풀어놓았다. 사진=안용호 기자

김현주X조광희의 작업은 전시에 관람객의 개입을 유도한다. 일제 강점기에 일본군이 주둔했다가 한국전쟁 이후 미군 2사간 포병여단 본부인 캠프스탠리가 들어서면서 형성된 정착촌인 의정부 빼뻘에 주목해 온 이들은 2019년 이후 이곳 주민의 구술을 담아 왔다. 관람객은 낭독의 방을 통해 이들의 이야기를 직접 낭독하는 화자가 되기도, 청자가 되기도 한다.

스몰 바치 스튜디오, 예페 하인의 작업도 적극적 개입을 유도한다. 스몰 바치 스튜디오의 ‘서울 로컬리티 레시피’는 각자의 삶 속에 쌓인 레시피를 공유하며 자연스럽게 시대와 지역, 삶의 방식과 가치관, 그리고 정체성까지 교류하게 돕는다. 예페 하인은 다음달 24일 관람객이 천천히 숨을 내쉬며 만드는 파란색 붓질로 하얀 벽을 물들일 예정이다.

아르코미술관에서 열리는 '일시적 개입'전 현장. 사진=안용호 기자

이밖에 쿠르드족의 전통민요로 억압에 저항한 사람들의 연대를 보여주는 로자바 필름 코뮨, 사람들의 삶과 환경을 연결하는 물에 주목한 우말리X밤부 커튼 스튜디오, 다양한 캠페인 도구를 통해 사람들이 서로를 인지하는 과정에 주목하는 젤리장의 작업도 볼 수 있다.

전시를 다 둘러보니 문득 전시명 ‘일시적 개입’이 눈길을 끌었다. 전시에 참여한 작가들은 각자가 속한 곳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연대를 이야기했다. 그런데 연대라 하면 지속성의 가치가 중요시된다. 또, 어딘가에 불쑥 끼어드는 개입보다는 조화가 중요시되는 분야다. 관련해 차 큐레이터는 “모든 지속적인 일들의 첫 시작엔 일시적 개입이 있었다”고 짚었다.

스몰 바치 스튜디오의 '서울 로컬리티 레시피'는 각자의 삶 속에 쌓인 레시피를 공유하며 자연스럽게 시대와 지역, 삶의 방식과 가치관, 그리고 정체성까지 교류하게 돕는다. 사진=김금영 기자

그는 이어 “어느 지역 토박이에서 태어나고 자란 사람이 아니라면, 새로운 관계는 다른 곳으로부터의 유입 인구가 일시적으로 개입해오면서 비로소 시작된다”며 “처음엔 하나의 이벤트처럼 시작된 일시적 개입으로 시작된 관계는 점차 지속적으로 이어지며 새로운 이야기와 연대를 꾸리고 조화를 이뤄간다”고 말했다.

이처럼 이번 전시는 지역에 대한 새로운 정의를 내리고, 전시를 통해 또 다른 새로운 관계를 이어갈 수 있는 기회의 장이라는 점에서 눈길을 끈다. 전시는 아르코미술관에서 내년 1월 21일까지.

차승주 아르코미술관 큐레이터. 사진=김금영 기자

< 문화경제 김금영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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