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문정 평론가의 더 갤러리 (95) ‘SM Smash’] “물질 없는 메타버스에서 물성을 경험하거나 부정하거나”

이문정 미술평론가, 연구소 리포에틱 대표 기자 2022.12.30 09:20:31

(문화경제 = 이문정 미술평론가, 연구소 리포에틱 대표) 메타(meta)와 유니버스(universe)의 합성어인 메타버스(Metaverse)는 닐 스티븐슨(Neal Stephenson)의 SF 소설 ‘스노 크래시(Snow Crash)’(1992)에서 처음 등장했다. 이 소설에서 메타버스는 컴퓨터가 만들어 낸 현실과는 다른 가상의 장소, 고글과 이어폰을 통해서 경험할 수 있는 세계로 묘사된다. 과학기술의 발달과 함께 실제로 다양한 메타버스 플랫폼들이 개발되고 있는데,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인한 비대면 소통의 증가로 오늘날 메타버스는 더 대중화되었다. 관련해 미술에서도 다양한 시도가 있었다. 더 갤러리 95회는 메타버스 플랫폼 디센트럴랜드(Decentraland)에서 전시를 선보인 쉐마미술관 한영애 실장과의 인터뷰를 싣는다.

- ‘SM(Schema Art Museum) Smash’는 쉐마미술관이 디센트럴랜드에서 기획한 전시 및 아카이브 프로젝트이다. 이는 시대적 변화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인 것이자 미술의 대중성을 염두에 둔 것이다. 관련해 총 3개의 이벤트가 진행되었다. 디지털 회화와 조각을 선보인 ‘SM–Smash#1-Data Material’, 참여형 프로젝트와 퍼포먼스의 공간을 만든 ‘SM–Smash#2-We are Happening’, 아카이빙과 이벤트를 진행한 ‘SM–Smash#3–Smash-Archive’이다. ‘회화와 조각, 퍼포먼스를 마주할 때의 경험이 다를 텐데, 가상 세계에서 그 차이를 확실히 경험하지 못할 수도 있지 않을까?’란 질문을 하는 관객이 있을 수 있다. 메타버스의 유저(관객)들은 그 차이를 어떻게 경험할 수 있었는가?


분명 차이가 있지만, 실재하는 현실만큼 느껴지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기술이 발전해 가상 세계에서 전시를 기획할 수 있는 시대가 되었지만 아직은 초창기이기 때문에 한계가 있다. ‘SM–Smash#2-We are Happening’의 퍼포먼스는 메타버스 플랫폼에 맞는 방식을 찾아 절충하다 보니 관객이 서사를 풀어나가는 게임 형식이 되었다. 그래서 결과적으로 ‘SM–Smash#1-Data Material’에서는 아바타가 메타버스 속 회화와 조각을 감상하는 방식, ‘SM–Smash#2-We are Happening’에서는 관객이 보기만 하지 않고 인터랙션을 끌어내는 방식으로 차이를 갖게 되었다.
가상 세계에서 영토를 확보하고, 미술관 건물을 세우고, 그 안에서 전시를 진행하는 실험이 획기적인 것은 사실이지만, 메타버스에서 가능한 영상의 화질이나 용량, 재생 방식에 맞춰 구현하다 보니 일부는 포기해야 했다. 영토를 많이 가질수록 업로드할 수 있는 용량도 커지고 자연히 화질도 좋아진다. 그러나 무제한으로 영토를 살 수 없으니 그 역시 한계가 있다. 예를 들어 ‘SM-Smash#1’에 참여한 강재원 작가의 하이폴리곤(High Polygon) 3D 조각은 로우폴리곤(Low Polygon)으로 전부 다시 제작해야 했다. 그래서 ‘SM–Smash#2-We are Happening’은 디센트럴랜드를 게이트로 사용해 메타베리(Meta Berry)로 연결시켰다.

 

‘SM-Smash#3-Smash-Archive’(2022), 전시 전경, 도판 제공=쉐마미술관
‘SM-Smash#1-Data Material’(2022), 외부 전경, 도판 제공=쉐마미술관

- 코로나 이후 미술관들은 웹사이트에서 전시 동영상을 제공하거나 교육 프로그램 등을 진행했다. 온라인상의 전시도 기획되었고 버추얼 갤러리(virtual gallery)도 늘어났다. 물론 메타버스에서 기획된 전시와 근본적으로 다르다는 건 알고 있다. 다만 화질이나 접근성 등에서 메타버스 속 전시인 ‘SM Smash’가 경쟁력을 갖는 지점이 무엇인지 설명해주면 좋겠다.

메타버스의 가장 큰 매력이자 차이점은 기존 웹사이트나 SNS와는 다르게 아바타로 소통한다는 것이다. SNS가 누군가에게 끝없이 보여주는 피드(feed)의 개념이라면 메타버스는 아바타를 통해 즉각적인 소통과 반응이 일어난다. 공간 자체의 기능이나 효과보다는 소통의 즉각성에 근거해 시각적인 측면이 부각되는 세계인 것이다. 또한 경제적 교류 가능성까지 갖고 있다. 이렇게 즉각적인 소통이 가능한 전 세계의 유저들이 그 세계 안에서 활동하기 때문에 쉐마미술관은 디센트럴랜드라는 메타버스 공간에 접근했다. 쉐마미술관에 직접 전시를 보러 올 수 없는 관객들, 미술관의 웹사이트를 굳이 찾으려 하지 않는 다양한 관객들에게 미술관을 노출해서 한국의 현대 작가들을 소개하고, 최종적으로는 메타버스 밖의 세상에서도 쉐마미술관을 찾게 하려는 목적이었다. 현실적으로 메타버스는 비트코인(Bitcoin)과 긴밀하다 보니 비트코인의 상황에 따라 주목도와 활성화가 바뀌는 것 같다. 그러나 미술관은 상업적인 목적으로 운영되지 않기 때문에 상황을 주시하고 고민하되 지속성을 가져야 한다. 개인적으로 현재 메타버스에서 기획되는 전시는 초기 단계라 생각한다. 실험들이 계속되다 보면 ‘SM Smash’를 진행하며 발견한 한계 상황들이 개선될 것이다.
 

‘SM-Smash#3-Smash-Archive’(2022), 2층 전경, 도판 제공=쉐마미술관
‘SM-Smash#3-Smash-Archive’(2022), 3층 전경, 도판 제공=쉐마미술관
‘SM-Smash#2-We are Happening’(2022), 내부 전경, 도판 제공=쉐마미술관

- ‘SM–Smash#2-We are Happening’에서 플럭서스(Fluxus)를 연결한 것이 흥미로웠다. 이전까지의 예술을 벗어난 플럭서스에서는 매체/장르적 경계를 해체하려는 많은 시도가 있었다. 전시 설명에 적혀 있던 “플럭서스의 해프닝을 메타버스에서 구현 가능한 형태로 보여주려 한 시도”는 어느 정도 실현되었다고 생각하는가? 퍼포먼스 기록 영상을 감상하는 방식과 어떻게 달랐는지도 궁금하다.

현재 메타버스의 조건에 맞추다 보니 결국은 비디오 영상을 보여주는 형식이 되었다. 다만 불특정 다수의 유저들이 디센트럴랜드라는 매표소를 찾고, 이 매표소에서 링크로 연결된 메타베리 공간으로 이동해서 퍼포먼스 영상들을 감상함으로써 마치 플럭서스의 해프닝을 현장에서 보듯 아바타를 통해 경험하길 바랐다. 또한 그냥 퍼포먼스 영상을 보는 게 아니라 아바타가 32개의 비디오 영상을 하나하나 발굴해서 감상하는 방식으로 체험할 수 있게 했다. 과거는 언어 중심적인 블로그의 시대였고, 이후 사람들은 이미지와 짧은 글을 올리기 시작했다. 지금은 스토리를 중심으로 한 짧은 영상인 숏폼(short-form contents)의 시대이다. 이런 채널과 형식의 변화를 인식하며 또 다른 해프닝의 시대를 반영하려 했다.
 

‘SM-Smash#2-We are Happening’(2022), 외부 전경, 도판 제공=쉐마미술관

- 우리가 생각하는 퍼포먼스를 메타버스의 성격에 맞게 구현하려면 작가의 아바타가 퍼포먼스를 하면 관객 아바타가 감상하거나 반응하는 방식이어야 할 것 같다. SF 영화에 나오는 것처럼 작가와 아바타가 어떤 장치로 연결되거나 하는 방식이면 더 좋겠다.

재미있는 상상이다. 만약 그런 퍼포먼스가 가능하다면 메타버스 세계는 성공한 것이다. 시간이 걸리겠지만 미래의 언젠가 가능할 것 같다. 관련해 AI 소설이나 미술도 생각해볼 수 있겠다. 참고로 쉐마미술관의 전시 ‘궤적들’(2021)에 참여한 김현석 작가는 몇 개의 키워드를 바탕으로 적은 문장을 제공받은 AI가 쓴 소설을 전시했다.

- 전시 기간에 진행된 아티스트 토크 때 한계와 아쉬운 점을 가감 없이 공유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획기적이고 참신한 시도이고 앞으로 더 발전하겠으나 아직 아바타와 사용자가 완전히 하나라는 느낌을 온전히 받기 힘들 수 있다. 현실과 구별이 불가능한 가상현실이 아니라 그 간극을 보완하기 위한 노력도 있었을 것 같다.

한계를 명확히 인식하고 공유해야 다음 프로젝트에서 더 높은 완성도를 보일 수 있다고 판단했다. 메타버스 환경과 실제 환경의 차이는 분명히 있다. 다만 현 상황을 받아들이면서 새로운 형식을 만들어갔기 때문에, 즉 메타버스 플랫폼에 적응해 그 환경에 맞는 작품을 제작했기 때문에 극복하려 하지도 않았고 극복하는 게 현실적으로 가능하지도 않았다. 한정된 시간과 자본으로 메타버스 전시를 준비한 것 자체가 극복 과제였다고 말할 수 있겠다. 그러다 보니 서사를 더 만들어내려 노력했다. 앞서 언급한 ‘SM–Smash#2-We are Happening’은 단순히 작품을 발굴하는 게 아니라 아바타(관객)들이 죽은 자들의 영혼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방식이었다. 또한 한계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2022년에 ‘SM Smash’를 세 번 진행하면서 매번 미술관 건물을 새로 세웠다. 전시의 개념과 성격에 따라 전시 공간부터 구축할 수 있고, 그것을 언제든 다시 사용할 수 있다는 점은 매력적인 장점이다. 모든 건축을 다 없애고 야외 전시를 할 수도 있다.
 

‘SM-Smash#1-Data Material’(2022), 강재원 작가, 1층 야외 전경, 도판 제공=쉐마미술관
‘SM-Smash#1-Data Material’(2022), 강주형 작가 2층 실내 전경, 도판 제공=쉐마미술관

- 초기 단계여서 더욱 플랫폼의 발전에 영향받는 것 같다. 한편 메타버스를 비롯해 과학기술의 발전으로 일어나는 변화가 미술에 영향을 주는 것을 목격할 때마다 SF 소설을 떠올리게 된다. 때때로 SF 소설가가 미래학자나 예언가 같다고 느낄 때도 있다.

그렇다. 앞으로 이 플랫폼이 어떻게 발전하는가에 따라서 메타버스에서의 전시도 변화할 것이다. 나는 메타버스를 ‘즉각적으로 반응하는 확장적 세계’라고 말하고 싶다. 실제로 전시를 준비하면서 작가들이 아직은 메타버스에 아주 큰 기대를 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메타버스가 일시적인 유행처럼 지나가는 것 아닌가 걱정하는 작가도 있다. 아마 현실 속 작품을 그대로 구현하거나, 자신의 머릿속에 있는 기획을 온전히 실현하기엔 아직 제약이 있기 때문인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의 발전이 새로운 미술의 형식을 탄생시킬 것이라는 예견은 공통적으로 하고 있다. 그동안 작가들은 대부분의 물질로서의 작품을 남겼다. 그런데 메타버스에서는 물질을 남기지 못하니 호기심과 불신, 불안이 공존한다. 그럴수록 메타버스의 가능성을 보여주는 프로젝트들이 더 진행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 메타버스 전시가 미술의 대중성에 크게 기여할 수 있는 통로라는 점에 공감한다. 미술관에 직접 방문하기 어려운 관객들에게도 전시를 감상할 수 있는 기회가 열린 것이다. 그러나 컴퓨터에 익숙하지 않고 여건이 안 되는 사람들에게는 접근 자체가 불가능한 영역이다. 기존의 인터넷보다 전시 공간을 찾는 것이 복잡하다고 느끼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혹시 타깃으로 삼은 관객층이 있는가?

해외에 거주하는 불특정 다수라는 것 외에 특별한 타깃은 없었다. 앞서 말했든 쉐마미술관을 전혀 모르는 유저들이 메타버스 공간에서 활동하다가 ‘여기는 뭘 하는 곳인데 이렇게 북적거리나?’ 궁금해하며 관심을 가지고, ‘SM Smash’에 들어와 전시를 경험하고, 최종적으로는 오프라인 세계에 존재하는 미술관을 검색하고 찾아오게 만드는 게 목적이었다.
 

‘SM-Smash#1-Data Material’(2022), 한재열 작가 4층 야외 전경, 도판 제공=쉐마미술관 
‘SM-Smash#2-We are Happening’(2022), DIORAMA VIVANT THEATRE, Juho Song, ‘history hysterie’, Video, 3D Graphic, Multi Channel, 2022(Decentraland, Metaberry Ver.), 도판 제공=쉐마미술관

- 참여작가 선정 기준이 궁금하다. 워낙 디지털 작업을 진행하던 작가들인 것 같다.

가상 세계에서 전시를 준비해야 하니 컴퓨터 데이터에 대한 접근이 용이한 작가를 선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대부분 디지털이 갖는 물성을 이용하는 작업을 보여줬거나, 이해하는 작가들로 구성했다. 한편 퍼포먼스로 참여한 디오라마비방씨어터(Diorama Vivant Theatre)는 디지털 아트와는 다른 맥락에 위치하는 작가였지만 새로운 도전을 하고 싶어 했다.

- 보통 디지털은 비물질적이라 생각하는데, 인터뷰 중에 ‘디지털 물성’이란 표현을 반복해서 사용하고 있어 흥미롭다.

나는 디지털 세계에서만 경험할 수 있는 물성이 있다고 본다. 데이터로 존재하지만, 그 자체의 물성이 있다. 그것을 이해하는 작가들은 앞으로 메타버스 공간에서 작업을 시도할 것이다. ‘물질이 없는데 어떻게 물성이 있을 수 있고 작품을 만들 수 있는가?’라는 생각으로 그것을 부정하는 작가들은 또 다른 작업을 보여줄 것이다. 모두 관점이 다르기 때문에 다른 결과물이 나오는 것은 당연하다.

- ‘SM Smash’ 프로젝트가 마무리된 지금 디센트럴랜드 속 쉐마미술관은 어떻게 유지되고 있는가?

전시는 끝났지만 ‘SM-Smash#3-Smash-Archive’를 볼 수 있다. 우선 내년 초에는 미술관 소장품전이 진행된다. 또한 메타버스 프로젝트를 더 확장해나가는 다음 전시를 기획 중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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