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계묘년 토끼 마케팅, 다시 돌아온 긍정의 리추얼

코로나19가 초래한 리추얼의 종말... 공동체 다시 묶으며 3년 만에 부활

안용호 기자 2023.02.07 16:04:10

의례, 의식, 축제, 잔치 등의 여러 의미를 포괄하는 리추얼(Ritual)은 반복적·관습적으로 행해지던 종교의식에서 비롯되었습니다. 이후 리추얼은 유럽의 카니발(catnival)과 같은 이교도적 축제로 변해 자유, 본성을 마음껏 드러내며 삶에 생기를 북돋는 반복적, 관습적인 행사로 변모하기도 했습니다. 음력에 따라 매년 돌아오는 정월대보름 음식과 쥐불놀이, 부럼깨물기도 우리 전통의 리추얼이라 할 수 있습니다.

재독학자 한병철의 저서 ‘리추얼의 종말’(김영사)은 리추얼이 소멸해간 역사를 서술합니다. 저자는, “정처 없는 삶을 정박할 수 있게 해주는 닻, 언제나 드나들고 거주할 수 있는 집처럼 리추얼은 일정한 형식과 규칙에 몰두하게 함으로써, 자아를 탈 내면화하고 타자와 주변의 사물들과 세계와 관계 맺게 한다”고 서술합니다. 늘 어김없이 같은 곳, 동일한 시간에 열리던 공동체의 안정감 있는 의식이 사라지고, 그 자리를 디지털·데이터가 차지하면서 벌어지는 신자유주의 세계의 개별화, 소외를 목도한 저자는 새로운 삶의 방식을 찾아 나서자고 조용히 설득합니다. 그것은 “자아의 저편, 소망의 저편, 소비의 저편에서 이루어지며 공동체를 조성하는 새로운 행위와 놀이의 형태를 발명하는 일”입니다.

코로나19가 기승을 부리던 2020년 봄 이 책은 스페인에서 뜨거운 이슈가 되었습니다. 종교의식은 물론 악수와 포옹조차 할 수 없는 싸늘한 팬데믹을 거치며 독자들은 ‘리추얼의 종말’을 온몸으로 느꼈을 것입니다.

팬데믹 이후 ‘리추얼’이라는 말이 다시 유행하기 시작했습니다. 미라클 모닝, 명상, 헬스, 달리기, 독서 등 SNS에는 자신만의 ‘리추얼’,‘루틴’을 소개하고 자랑하는 글이 넘칩니다. 하지만 이 리추얼은 서로에 대한 ‘응원’,‘독려’를 빼고 나면 공동체는 없고 결국 소외된 ‘나’만 남게 됩니다.

이번 호 문화경제는 새해를 맞은 기업들의 계묘년 리추얼 마케팅을 소개합니다. 해마다 바뀌는 띠는 기업 입장에서 가성비 높은 마케팅 수단입니다. 2023년은 계묘년으로 검은 토끼의 해입니다. 새해 롯데백화점 본점 앞에는 10미터 높이의 ‘초대형 토끼’ 조형물이 설치돼, 사람들에게 희망의 기운을 전했습니다. 계묘년을 상징하는 토끼를 활용한 상품 출시도 활발합니다. 아성다이소는 토끼를 모티브로 한 캐릭터를 상품에 입혀 문구용품, 팬시용품, 리빙용품 등 40여 종을 선보였습니다. 커피 프랜차이즈 엔제리너스는 마시마로와 과일 딸기를 활용한 신제품을 출시하며 한정판 굿즈도 판매합니다.

주류업계에서는 ‘토끼소주’, 버번위스키 ‘래빗홀’이 매대에 오르고, 칭따오·오비맥주도 토끼 캐릭터를 앞세운 특별 에디션을 내놨습니다. 구찌, 버버리, 돌체앤가바나 등 패션업계는 토끼해 컬렉션을 속속 내놓고 있습니다. 이들은 단순한 토끼 그림에서 벗어나 토끼의 의미와 형상에서 새로운 디자인 모티브를 발견하고 브랜드의 시각과 독자적인 패턴 조합으로 새로운 디자인을 해석합니다. 화장품 시장에서는 토끼 캐릭터에 ‘비건’의 의미를 담기도 합니다.

토끼띠를 모티브로 한 계묘년 마케팅 외에도, 본격적인 엔데믹을 맞아 그동안 ‘실종됐던 리추얼’이 하나 둘 다시 모습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지난 1월 7일부터 29일까지 열린 세계적 겨울축제인 화천산천어축제는 131만 이상이 다녀갔을 정도로 대성공을 거뒀습니다. 매년 열리던 화천의 리추얼이 3년이란 ‘실종’의 시간을 견뎌내고 흥행 신화를 다시 쓴 것입니다.

리추얼의 일종인 축제는 공동체를 형성하고 묶어주는 역할을 한다. 사진은 3년 만에 재개된 서울 노원구 '정월대보름 민속축제한마당'의 달집태우기 행사. 사진=김응구 기자 

서울 노원구는 지난 4일 오후 4~9시 당현천 하류에서 ‘정월대보름 민속축제한마당’을 펼쳤습니다. 이날 축제에선 ‘줄불놀이’, ‘쥐불놀이’, ‘달집태우기’ 등의 행사가 진행됐습니다. 메인 행사로는 ‘줄불놀이(낙화놀이)’와 ‘달집태우기’가 마련됐는데, 줄불놀이는 옛 선비들이 즐기던 풍류문화 중 하나로 공중에 설치한 70미터짜리 줄에 숯가루가 든 봉지를 매달아 불을 붙이자, 불꽃이 줄을 따라 비처럼 떨어지는 장관을 연출했습니다. 이번 정월대보름 축제는 주민들이 3년 만에 다시 한 자리에 모여 서로에게 복을 기원할 수 있었다는 점에서도 의미가 큽니다.

기업 마케팅의 일환이든 지자체 축제든 3년 만에 다시 돌아온 ‘리추얼’이 반갑습니다. 제례, 종교의식으로 시작된 리추얼이 엔데믹 시대에 부활해 우리 경제의 작은 활력소가 되고 누구에게는 삶의 소소한 즐거움이 되고 있으니 말입니다. 부활한 리추얼이 코로나19로 해체됐던 공동체를 다시 묶어주며 우리의 삶을 지속하게 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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