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현장] 한국 첫 개인전 에드워드 호퍼, 서울시립미술관 데이비드 호크니 영광 재현할까?

서울시립미술관, 휘트니미술관과 ‘에드워드 호퍼: 길 위에서’ 공동 기획…회화·드로잉·판화·아카이브 등 270여 점 선보여

김금영 기자 2023.05.18 09:45:52

한 관람객이 에드워드 호퍼의 작품을 감상하고 있다. 사진=김금영 기자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이 재임 시절 백악관에 걸어두고 감상했던 그림 2점 중 하나가 최근 뉴욕에서 열린 소더비 현대미술 이브닝 경매에서 약 97억 원에 팔렸다는 소식이 전해져 눈길을 끌었다. 작가는 에드워드 호퍼.

‘미국의 국민화가’로 불리는 호퍼(1882~1967)는 20세기 초 현대인이 마주한 일상과 정서를 독자적인 시각으로 화폭에 담아낸 현대미술 작가다. 시공을 초월하는 예술성을 지닌 그의 작품은 오늘날까지 미술을 포함한 문화 전반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에드워드 호퍼의 자화상. 사진=김금영 기자

아내 조세핀 호퍼가 호퍼 사후인 1968년에 작품 2500여 점을 기증하면서 휘트니미술관은 미국에서 호퍼 컬렉션을 가장 많이 보유한 미술관이 됐다. 그 작품들이 이번엔 국내 관객과 만나고 있다.

 

서울시립미술관이 해외소장품 걸작전 ‘에드워드 호퍼: 길 위에서’를 마련했다. 2019년부터 휘트니미술관과 협의를 시작해 공동 기획한 이번 전시는, 한국에서 열리는 호퍼의 첫 개인전이기도 하다.

전시 첫 섹션은 '에드워드 호퍼'는 호퍼의 삶과 궤를 함께하는 자화상과 드로잉 등 일련의 작품을 통해 학생 때부터 단계별로 성장해 가는 그의 모습을 살핀다. 사진=김금영 기자

전시는 호퍼의 전 생애에 걸친 드로잉, 판화, 유화, 수채화 등 작품 160여 점과 호퍼의 이웃이었던 산본이 기증한 아카이브의 자료 110여 점을 7개 섹션으로 나눠 소개한다. 특히 ‘파리’, ‘뉴욕’, ‘뉴잉글랜드’, ‘케이프코트’ 등으로 구성된 각 섹션은 작가가 영감을 받아 그림을 그렸던 곳으로, 호퍼의 65년 화업을 돌아본다.

이승아 서울시립미술관 학예연구사는 “앞서 지난해 휘트니미술관에서도 호퍼 전시가 열렸는데, 휘트니미술관의 전시가 뉴욕에 집중했다면, 서울에서의 전시는 뉴욕을 비롯해 파리, 뉴잉글랜드 등 작가 작업세계의 확장성에 주목했다”며 “호퍼가 선호한 장소를 따라가다 보면 도시의 일상에서 자연으로의 회귀를 거듭하며 작업의 지평을 넓혀간 그의 행보를 엿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에드워드 호퍼가 애착한 키워드 7가지

에드워드 호퍼가 파리에서 봤던 여러 풍경을 기억하며 그린 '푸른 저녁'이 전시된 모습. 사진=김금영 기자

첫 섹션은 ‘에드워드 호퍼’다. 호퍼의 삶과 궤를 함께하는 자화상과 드로잉 등 일련의 작품을 통해 학생 시절부터 단계별로 성장해 가는 그의 모습을 살핀다. 호퍼의 예술세계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어릴 때의 경험과 기억을 표현하는 작품도 함께 살펴볼 수 있다. 미국 뉴욕주 허드슨강 인근의 나이액 고향집에서 예술가의 꿈을 키운 작가는 문명과 자연의 대비에 관심을 가졌다. 대표적으로 나이액의 집을 떠올리며 작업한 후기작 ‘계단’의 구도는 문명의 상징적 공간인 집에서부터 수풀이 우거진 문밖 미지의 풍경으로 시선을 이끈다.

 

당대 예술의 수도로 여겨졌던 ‘파리’는 두 번째 섹션으로 등장한다. 호퍼는 예술가로서 보다 성장하고자, 20대였던 1906~1910년 파리를 3회에 걸쳐 방문했는데, 작업실을 벗어나 야외 작업을 하며 빛의 효과에 대해 눈을 떴다. 이때부터 화폭을 사선이나 평행으로 가르는 대범한 구도의 작품을 시도하기 시작했다. 파리에서 봤던 여러 풍경을 기억하며 그린 ‘푸른 저녁’도 이 섹션에서 볼 수 있다. 일상에 대한 관찰과 인물 묘사에 기억과 상상력이 더해지며 완성된 호퍼의 리얼리즘적 특성이 본격화된 작품이다.

휘트니미술관의 최근 소장작인 '도시의 지붕들'. 사진=김금영 기자

‘뉴욕’ 섹션에서는 화려함이 가득한 장소가 아닌, 평범한 일상을 담은 도시로 뉴욕을 바라본 호퍼의 시선을 느낄 수 있다. 특히 그가 20세기 초반 그린 미국의 소도시 풍경엔 사람 없이 건물만 등장하고, 사람이 나오더라도 서로 마주하지 않고 제각각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리고 있어 사뭇 차가운 느낌이다. 호퍼가 삭막한 도시 속 현대인의 고독을 표현한 작가로 평가받는 지점이다. 휘트니미술관의 최근 소장작인 ‘도시의 지붕들’에서도 이 분위기가 감지된다.

 

또, 호퍼는 고층 건물의 수직성보다 수평구도에 관심을 가졌다. 항해사가 되기를 꿈꿨던 그는 자연스레 이동에 관한 모티프에 끌렸고, 고향에서 뉴욕으로 통학하며 받은 느낌은 도시와 자연에 대한 자각으로 이어졌다.

길 위에서 얻은 인상을 바탕으로 에드워드 호퍼가 그린 '철길의 석양'. 사진=김금영 기자

‘뉴잉글랜드’와 ‘케이프코드’ 섹션은 앞선 파리, 뉴욕 등의 도시를 벗어나 광활한 자연과 마주한 호퍼의 작업세계를 보여준다. 앞선 섹션에서 지배적이었던 무거운 톤에서 벗어나 자연의 빛과 푸른 바다와 녹음이 우거진 풍경이 등장한다. 아내 조세핀과 여행하기를 즐겼다는 그는 변화무쌍한 자연을 화폭에 담았다.

 

케이프코드는 호퍼에게 제2의 고향과도 같다. 케이프코드 반도 남단에 위치한 트루로의 매력에 빠진 호퍼 부부는 이곳의 우체국장인 벌리 콥의 집을 빌려 휴가를 보냈고, 1934년부터는 작업실까지 마련했다. 여기서 탄생한 작품이 ‘벌리 콥의 집, 사우스트루로’로, 소더비 경매에서 1점이 낙찰됐고, 쌍둥이 그림인 나머지 1점을 이번 전시에 소개 중이다. 30여 년 동안 매해 머물던 이곳과 관련된 작품들에서 평범한 장소에 대한 호퍼의 독특한 감수성을 엿볼 수 있다.

'뉴잉글랜드' 섹션에선 광활한 자연이 등장한다. 사진=김금영 기자

호퍼의 예술세계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또 하나의 존재, ‘조세핀 호퍼’는 이번 전시에서 하나의 섹션을 차지했다. 아내 조세핀은 뉴욕예술학교에 등록해 로버트 헨라인의 수업을 수강하고, 1914년엔 스튜어트 데이비스, 찰스 데무스 등 미국 모더니스트들과 함께 그룹전을 가질 정도로 촉망받는 예술가였다. 수채화에 두각을 보이던 조세핀의 영향으로 호퍼는 1923년 매사추세츠주 글로스터에서 함께 야외 작업을 하며 수채화를 시도하기도 했다.

 

조세핀은 호퍼의 전시 이력, 작품 판매 등 상세한 정보가 적힌 장부 관리를 30년 이상 지속하는 등 매니저의 역할도 수행했다. 인생의 동반자이자 조력자였던 조세핀은 호퍼의 그림에 모델로도 등장했다. 이번 전시에 나온 ‘햇빛 속의 여인’과 ‘이층에 내리는 햇빛’엔 나이 든 여인과 젊은 여인이 등장하는데 모두 조세핀을 그린 것이다.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이 재임 시절 백안관에 걸어두고 감상했던 그림 2점 중 하나인 '벌리 콥의 집, 사우스트루로'. 사진=김금영 기자

마지막으로는 휘트니미술관의 소장품과 산본 호퍼 아카이브가 함께 어우러진 ‘호퍼의 삶과 업’이 자리한다. 사진, 작가의 말과 글, 다큐멘터리 등 다양한 자료가 마련됐다.

 

특히 삽화가 눈길을 끈다. 호퍼는 전업화가로 먹고살기 힘들어 뉴욕에서 삽화가로서도 활동했다. 38세가 돼서야 첫 전시를 열고, 42세가 돼서야 비로소 생계를 위한 상업화 그리기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그만큼 그에겐 삽화가 고달픈 작업일 수도 있었겠지만, 이를 통해 인물의 개성을 빠르게 포착해 그림에 표현하는 능력을 키울 수 있었다. 삽화가로서의 활동은 호퍼가 뉴욕의 도시 풍경과 뉴요커의 일상을 관찰하며 미국의 당대성을 예리하게 포착하는 계기도 됐다.

에드워드 호퍼의 아내 조세핀 호퍼는 작품에 모델로 종종 등장했다. 사진은 '햇빛 속의 여인' 작품이 설치된 모습. 사진=김금영 기자

개막 2주 만에 6만 명 다녀가…최은주 관장 “세계 미술관 도약 과정”

에드워드 호퍼는 삽화 작업을 통해 인물의 개성을 빠르게 포착하는 능력을 키웠다. 사진=김금영 기자

이번 전시는 규모면에서도 주목받고 있지만, 서울시립미술관에서 2019년 열렸던 영국의 팝아트 작가 데이비드 호크니 전시의 영광을 뛰어넘을 수 있을지도 관심사다. 당시 약 37만 명의 관람객이 찾은 호크니 전시는 서울시립미술관이 보다 대중적인 문화예술 장소로 발돋움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호퍼의 전시 또한 연초부터 관심을 받으며 얼리버드 티켓 10만 장을 포함한 티켓 13만 장이 개막 전 모두 팔렸고, 개막 2주 만(5월 7일 기준)에 6만 명이 다녀간 것으로 전해졌다. 이 추세라면 호크니 전시의 흥행을 넘볼 수 있다는 관측이다.

'조세핀 호퍼' 섹션을 관람객들이 둘러보고 있다. 사진=김금영 기자

최은주 서울시립미술관 관장은 “앞서 데이비드 호크니 전시가 주목받았고, 지난해 키키 스미스, 장 미셸 오토니엘 전시 등의 전시가 흥행했는데, 더불어 이 전시들이 서울시립미술관 정체성과 맞는 것인지 비판을 제기하는 의견도 있었다”며 “하지만 미술관이라는 기관도 성장한다. 35주년을 맞아 한 세대를 겪은 이 미술관이 진정으로 세계 미술관과 동반자가 되려면 그 과정에서 어떤 일들을 할 수 있을 것인가 생각해봐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15~20년 전부터 국립현대미술관은 덕수궁관을 중심으로 블록버스터 전시들을 전개했고, 현재는 자체적으로 또는 세계적인 미술관과 공동 기획한 전시를 세계무대나 미술관으로 보내는 단계까지 성장했다”며 “서울시립미술관이 단숨에 그 단계까지 갈 수는 없지만, 휘트니미술관과 공동 기획한 호퍼 전시가 발전 단계의 중간 과정으로서, 서울시립미술관의 미래 전략에 충실하게 접근해 있다고 생각한다. 이를 바탕으로 서울시립미술관의 다음 프로젝트를 큐레이터들과 계속 고민해나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최은주 서울시립미술관 관장. 사진=연합뉴스

마지막으로 “서울시립미술관이 준비한 이번 전시는 호퍼라 하면 떠오르는 현대인의 고독을 그린 작품뿐 아니라 작가가 평생 쏟은 예술에 대한 열정과 노력, 그의 삶을 전체적으로 조망하고 이해하는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전시는 서울시립미술관 서소문본관 전 층에서 8월 20일까지.

< 문화경제 김금영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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