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현장] 조이스틱을 조종하고 DDR을 즐겼다…미술관에서

국립현대미술관, 게임이 미술관에 어떤 경험 전달·공유하는지 살피는 ‘게임사회‘전

김금영 기자 2023.05.22 14:11:52

2012년 미국 뉴욕현대미술관(MoMA)이 이와타니 토르의 비디오 게임 '팩맨'을 정식 소장품 목록에 등록하면서 ‘과연 게임을 예술의 영역으로 볼 수 있는가?’에 대한 논제는 계속돼 왔다. 사진=김금영 기자

이 얼마 만에 느껴보는 감각인가. 많이 둔해졌지만, 시선을 화면에 두고 발을 동동 굴렀다. 박자를 놓치자 식은땀도 났다. 90년대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댄스댄스레볼루션(DDR)에 학창시절 이후 오랜만에 다시 몸을 실었다. DDR은 화면에 나오는 발자국 방향에 따라 발로 버튼을 누르는 댄스 리듬게임이다.

달라진 점이 있다면 과거 오락실이 아닌 미술관에서 이 게임을 마주했다는 것. 또, 오락실에서 했던 DDR 화면이 발자국 방향, 즉 게임 진행에 집중됐다면, 미술관에서 마주한 DDR 화면은 시각미를 한껏 강조한 영상과 독특한 음악이 흘러나와 게임을 하는 동시에 화면을 하나의 단편 영화처럼 구경하게 되는 점이 색달랐다. 이 작품은 일본 애니메이션, 컴퓨터 게임, 공상과학적 이미지를 작업에 끌어들여 실제가 아이러니하게 삽입된 가상의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루 양의 손에서 탄생한 ‘루 양의 댄스댄스레볼루션’이다.

 

국립현대미술관이 기획전 ‘게임사회’를 연다. 2012년 미국 뉴욕현대미술관(MoMA)이 이와타니 토르의 비디오 게임 ‘팩맨’을 정식 소장품 목록에 등록하면서 ‘과연 게임을 예술의 영역으로 볼 수 있는가?’에 대한 논제는 계속돼 왔다. 당시 MoMA의 큐레이터 파울라 안토넬리는 게임의 미학적 디자인을 비롯해 시나리오, 프로그램, 코드, 그리고 이것을 경험하는 행위자까지 모두 예술의 범주 안에 포함시켰다.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열리는 '게임사회'에 마치 오락실과도 같이 보이는 공간이 꾸려져 있다. 이곳엔 90년대 유행했던 DDR도 눈에 띈다. 사진=김금영 기자

이번 전시 또한 게임을 단순 놀이의 영역이 아닌, 현대미술의 관점에서 바라본다. 전시를 기획한 국립현대미술관 홍이지 학예연구사는 “게임은 코로나 팬데믹 시기 특히 폭발적으로 성장하며 우리의 일상에 깊이 스며들며 삶과 강력하게 동기화됐다”며 “외부 활동이 제약받으며 어쩔 수 없었던 측면도 있었지만, 게임의 문법과 미학은 동시대 예술과 시각 문화, 더 나아가 우리의 삶과 사회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홍 학예연구사는 게임 캐릭터의 삶을 살아가는 형태의 ‘심즈’, 도시경영 시뮬레이션 ‘심시티’ 등 인간 사회를 표현한 게임들이 등장해 인기를 끈 현상을 예로 들기도 했다. 그는 “현대미술 시각 언어로서 게임을 활용하는 사례도 늘고 있다”고 짚었다.

이번 전시는 MoMA의 비디오 게임 소장품을 비롯해 국내 게임 등을 포함한 9점의 게임과 함께 비디오 게임의 문법과 미학에 영향을 주고받은 현대미술 작가 8명의 작품 30여 점 등 총 40여 점의 작품들을 소개한다. 이를 통해 ‘게임이 미술관에서 어떤 경험을 전달하고 공유할 수 있을지’에 대해 함께 생각해보는 자리를 마련한다.

전시는 ‘예술게임, 게임예술’, ‘세계 너머의 세계’, ‘정체성 게임’ 3개의 파트로 구성된다. 일부 공간은 거대한 오락실에 들어간 듯 사뭇 어둡고, 또 어떤 공간은 전시장 바닥부터 벽까지 오락적 요소가 가득한 그림이 채워져 과연 내가 지금 있는 곳이 미술관인지 묘한 느낌을 받는다.

게임을 현대미술로 볼 수 있는가?

홍이지 학예연구사가 작품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사진=김금영 기자

‘예술게임, 게임예술’ 파트는 ‘아트게임(Artgame)’의 개념을 소개하고, 예술적 표현 매체로서의 게임을 다룬다. 특히 전시의 시작 지점엔 게임을 현대미술로 볼 수 있는지에 대한 논제의 시발점이 된 MoMA를 비롯해 스미소니언미술관의 게임 소장품 ‘플로우’, ‘플라워’, 그리고 ‘헤일로 2600’을 설치했다. 이 작품들을 같은 공간에서 운용할 수 있도록 구성함으로써 게임의 예술적 속성을 다각도로 살피는 점이 특징이다.

홍 학예연구사는 세계 유수의 미술관이 게임을 동시 소장하는 현상에 대해 “게임은 사운드, 디자인 프로그래밍, 캐릭터 디자인 등 다양한 요소로 구성되는데, 미술관은 이 중 하나의 요소를 ‘개념’으로서 소유한다고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대표적인 고전 게임의 상징인 ‘슈퍼 마리오’를 재구성한 코리 아칸젤의 작품도 눈에 띈다. 잘 알려진 비디오 게임을 해킹하거나 소프트웨어를 새롭게 코딩하는 방식을 이용해 디지털 기술과 오늘날의 대중문화 사이의 관계성을 탐구해온 그는, 이번엔 예술가 집단 페이퍼 라드와 손잡고 닌텐도 오리지널 게임 ‘슈퍼 마리오 브라더스’의 카트리지를 해킹했다. 그래픽과 음원을 조각내 화면을 재조합하고 배경 음악도 작곡해 뭔가 익숙한 것 같으면서도 또 색다른 결과물이 탄생했다.

도시 건설 시뮬레이션 '심시티'와 관련된 작품이 설치돼 있다. 사진=김금영 기자

하룬 파로키의 ‘시리어스 게임Ⅰ-Ⅳ’는 인간의 인지, 감각 능력을 뛰어넘을 정도로 기술이 발전한 시대에, 전쟁 및 군사 활동에 적극적으로 사용되는 컴퓨터 가상시뮬레이션 기술을 살핀다. 이를 통해 기술의 발전이 인간의 세계관을 어떻게 확장하고 있는지 질문을 던진다.

이어지는 ‘세계 너머의 세계’ 파트는 게임을 통해 미래적인 상상력과 새로운 세계를 구축, 탐구하길 제안하는 공간이다. 로렌스 렉의 ‘노텔(서울 에디션)’은 가상 기업 ‘노텔코퍼레이션’의 특급 호텔을 그려낸다. 홍보 영상과 게임 컨트롤러를 통해 가상의 공간을 살펴보는 비디오 게임이 포함된 멀티미디어 설치 작업이다. 플레이어는 이 작품 앞에 앉아 기기를 사용해 노텔 공간 이곳저곳을 둘러볼 수 있다. 노텔은 모든 것이 AI(인공지능)로 자동화된 미래의 생활방식을 제안하며, AI로 대체된 노동과 초호화 삶 사이 미묘한 경계를 그려낸다.

어린 시절부터 즐겨하던 심시티, 마인크래프트 같은 게임을 통해 자신이 속한 사회와 세계를 재구성하고 새로운 서사를 부여하는 작업들을 선보여 온 재키 코놀리는, 팬데믹 기간 중 겪었던 고립, 분열, 연대, 폭력 등에 대한 자전적인 이야기를 ‘지옥으로의 하강’ 영상에 담아 보여준다.

로렌스 렉의 '노텔(서울 에디션)'은 가상 기업 ‘노텔코퍼레이션’의 특급 호텔을 그려낸다. 사진=김금영 기자

게임과 사회의 강력한 동기화는 ‘정체성 게임’ 파트에서 급속하게 전개된다. 현재 게임업계뿐 아니라 엔터테인먼트, 유통 등 다양한 업계에서도 활용도가 높은 ‘가상현실 세계’의 확장성을 보여준다.

게임을 통해 현실 세계의 문제점을 바라보기도 한다. 다니엘 브레이스웨이트 셜리는 ‘젠장, 그 여자 때문에 산다’를 이번 전시에 내놓았다. 이 작품은 관람객이 직접 화면에다 장난감 총을 쏘는 게임 형태를 취했다. 화면엔 ‘쏘지 말라’는 문구가 꾸준히 등장하지만, 오락실의 총 게임에 익숙한 사람들은 자신도 모르게 자꾸 방아쇠를 당기게 된다. 그때마다 눈앞의 존재들이 쓰러지는데, 게임 내용의 소재는 흑인 트랜스젠더다. 이 공간을 나오면 바로 다음 공간에서는 CCTV와 같은 화면 속 방금 전 자신이 화면을 향해 총을 쏘던 모습을 발견한다. 이를 통해 작가는 관람객에게 자신의 선택과 행동이 다른 사람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질문한다.

람한은 개인적 경험을 VR 신작 ‘튜토리얼: 내 쌍둥이를 언인스톨하는 방법’에 풀어놓으며 현실과 가상을 넘나든다. 실제로 쌍둥이 자매를 두고 있다는 작가는 쌍둥이라서 더 크게 느꼈던 사랑, 질투, 경쟁의 감정을 바탕으로 시나리오를 쓰고 VR 게임의 형식을 차용한 영상 작품을 만들었다.

람한, '튜토리얼_내 쌍둥이를 언인스톨 하는 방법'. VR앱, 25분. 2023. 국립현대미술관 제작 지원. © 람한

관람객이 VR 헤드를 쓰면 작가가 만든 가상의 세계가 눈앞에 펼쳐진다. 게임 속 주인공은 안구의 기능 오류로 인해 불편을 겪는 여학생으로, 한 사기업에서 진행하는 임상 실험에 피실험자로 참여하게 된다. 관람객은 이 이야기의 주인공이 돼 치료를 받고 이야기를 따라가며 전시 공간과 게임 공간 사이의 경계를 넘나든다. 쌍둥이 자매간의 심리와 관계를 통해 개인적인 실제 이야기와 게임적 설정 사이의 모호함도 드러난다. 이밖에 MoMA의 소장품 ‘포털’과 ‘팩맨’도 이 파트에서 만날 수 있다.

전시의 마지막은 미술관 중앙 공간인 서울박스에 설치된 김희천의 ‘커터 3’가 장식한다. 높은 천장에 닿을 정도로 커다란 규모의 화면에서는 국립현대미술관을 배경으로 한 영상 설치 작업이 등장한다. 관람객은 이 화면 앞에 설치된 의자에 드러누워 화면 속 한 캐릭터의 발자취를 약 40분 동안 함께 따라간다.

이 공간엔 35개의 CCTV가 설치됐는데, 40분의 영상 시간 동안 단 5초 동안 CCTV 중 한 장면이 화면에 랜덤으로 등장한다. 이를 통해 현실과 가상, 존재와 비존재, 리얼타임과 이미지 사이를 유영하며 실존의 문제를 물리적으로 가시화한다. 이 작품은 8월 13일까지만 운영된다.

게임과 사회가 주고받은 영향을 시각미술로

다니엘 브레이스웨이트 셜리는 '젠장, 그 여자 때문에 산다'를 이번 전시에 내놓았다. 사진=김금영 기자

이번 전시에 소개되는 비디오 게임들은 국립재활원의 연구개발기구인 보조기기 열린플랫폼이 기획·개발한 게임 접근성 보조기기 및 마이크로소프트사 엑스박스의 접근성 게임 컨트롤러를 지원받아 장애·비장애인 모두 편하게 게임할 수 있도록 했다.

홍 학예연구사는 “게임 속엔 레벨업을 통해 점차 완성형으로 업그레이드되는 슈퍼 히어로가 등장한다. 하지만 현실엔 소외되는 존재가 분명히 있고, 게임 속 캐릭터가 화려해질수록 오히려 현실에서 그 캐릭터를 조종하는 인간의 삶은 피폐해져가는 경우도 있다”며 “이번 전시는 디지털트윈(현실세계의 사물 등을 컴퓨터 속 가상세계에 구현한 것) 가능성도 이야기하는데, 누락되거나 소외되는 존재가 없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누구나 이번 전시를 즐길 수 있게 또, 게임사회의 이야기를 접근성 문제로도 확대시킬 수 있게 특별히 신경썼다”고 말했다.

이번 전시는 뉴욕 현대미술관(MoMA)를 비롯해 스미소니언미술관의 게임 소장품 '플로우', '플라워', 그리고 '헤일로 2600'을 선보인다. 사진=김금영 기자

게임 중독 등 게임의 역기능에 대한 우려는 이번 전시를 통해 지켜보고 싶은 반응이라 한다. 홍 학예연구사는 “스마트폰이나 게임기로 팩맨 등 게임을 했을 때와, 예술작품을 전시하는 공간이라고 인지된 미술관 안에서 똑같은 게임을 마주했을 땐 분명 다른 감정과 감각을 느낄 것이라 예상된다”며 “MoMA의 게임 소장 때부터 이 논제는 격렬하게 이어져왔지만, 정작 국내에서는 이 이야기를 풀어놓을 장이 흔하지 않았다. 관람객이 어떤 경험을 하고 미술관을 나가게 될지, 어떤 피드백을 줄지 궁금하다”고 말했다.

실제로 오락실에서 신나게 즐겼던 팩맨이 미술관에 전시된 모습은 이색적이다. 특히 미술관의 높은 천장에 맞닿은 김희천의 ‘커터 3’은 현실에서 가상세계로 바로 이어지는 느낌을 주고, 벽면은 화려한 그림, 내부는 오락실 게임기계를 잔뜩 들여놓은 것처럼 꾸려진 아케이드 공간은 시각적 화려함으로 눈길을 빼앗는 동시에 단순 게임기인줄 알았던 설치작품들의 존재를 확인하게 한다. 관련해 홍 학예연구사는 “미술관 측에서 정교하게 만든 게임기 형태의 작품들이 곳곳에 설치됐다”고 설명했다. 이 설치작품들에는 조이스틱이 따로 설치돼 있지 않다.

김희천의 '커터 3'는 국립현대미술관을 배경으로 한 영상 설치 작업이다. 사진=김금영 기자

미술관에서 게임을 하는 것이 주목적이 아니다보니 조이스틱 등의 사용이 다소 매끄럽지 않은 부분이 있다. 그렇기에 게임만 즐기러 온다면 만족스럽지 못할 수도 있다. 또, 첨단기술을 사용하는 전시인 만큼 운영부분이 아쉬운 측면도 있었다.

전시 개막 전날 진행된 간담회에선 일부 시스템 등이 마무리 점검 중이라 람한의 ‘튜토리얼: 내 쌍둥이를 언인스톨하는 방법’, 김희천의 ‘커터 3’를 제대로 체험할 수 없었다. 관람객이 직접 체험하는 형태의 작품들이 다수이기에 시스템, 기기 점검이 전시 기간 내내 철저하게 이뤄져야할 듯하다. 이런 부분들만 보완된다면 이번 전시는 충분히 게임과 사회의 관계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는 과감한 시도이자 흥미로운 자리다.

박종달 국립현대미술관 관장 직무대리는 “어린 시절 문방구 앞에서 쪼그려 앉아 해지는 것도 모르고 테트리스 등에 몰두하고, 20대 대학시절엔 스트리트파이터에 열광해 최고수 반열에 오르기도 했다. 비디오 게임이 세상에 등장한 지 50년이 지난 지금, 우리는 현실과 가상의 이야기를 넘나드는 오늘을 마주하고 있다”며 “이번 전시는 아이부터 어른까지 전 세대가 공감가능한 게임이라는 매체를 통해 게임 속 사회적 삶의 가능성을 짚어보고, 현대미술과 게임의 흥미로운 접점을 찾아보고, 예술적 실천으로서의 게임을 사유하는 기회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전시는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에서 9월 10일까지.

< 문화경제 김금영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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