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설사가 도서관을 세운다? 그렇다. ㈜한화 건설부문 얘기다. 짓는 데는 도가 튼 건설사니 그럴 수 있겠다. 허나, 한두 개가 아니다. 100곳이 넘는다. 도서관 이름은 한화 건설부문의 아파트 브랜드 ‘포레나(Forena)’를 딴 ‘포레나 도서관’이다. 도대체 무슨 사연이 있길래 도서관을 이처럼 많이 세운 걸까.
취지는 간단하다.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의 경영철학이 ‘함께 멀리’다. 이를 바탕으로 한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경영의 일환이다. 한화 건설부문의 대표적인 사회공헌활동인 셈이다. 도서관 장소는 주로 장애인 복지시설 같은 사회복지시설의 유휴공간을 활용한다.
한화 건설부문에 따르면, 지금까지 임직원들이 도서관 조성에 참여한 시간만 대략 5000시간이 넘는다. 이들이 기증한 도서 역시 수만 권에 달한다.
성금이나 후원 물품을 모아 기부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값어치 있는 일이다. 하지만 건설업 특성을 살려 필요한 곳에 알맞은 건물을 짓고 그 안을 채울 도서까지 전달하는 건 이곳저곳에 소문내야 할 일이다. 가장 잘할 수 있는 일을 가장 필요한 곳에 해주는 일, 이것이 얼마나 소중하고 보람된 일인지 한화 건설부문이 잘 보여주고 있다.
12년 전 서울 홍은동에 1호점 문 열어
포레나 도서관의 시작은 12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2011년 3월 24일 서울 서대문구 홍은동의 미래형 직업재활시설 ‘그린내’에 1호점을 개관했다. 이곳은 10년이 훨씬 지난 지금까지도 꾸준히 관리되고 있다. 도서관으로서 역할뿐만 아니라 중증장애인이나 직원들에게 편안한 휴식공간이 돼주고 있다.
2015년 12월에는 서울시 구로구 에덴장애인종합복지관에 50호점을 오픈했다. 이곳은 서울시 장애인복지협회와 함께 만들었으며, 한화 건설부문은 1000여 권의 도서도 기증했다.
2021년 10월 29일에는 꿈만 같던 100호점이 문을 열었다. 장소는 인천광역시 미추홀구의 주민 쉼터공간 ‘시민협력플랫폼 공감’. 인천의 구도심 이미지가 강했던 미추홀구를 새롭게 바꿀 열린 공간에 한화 건설부문의 손길이 더해져 더욱 알찬 공간으로 만들었다.
포레나 도서관 101호점은 사연이 남다르다. 화재로 폐쇄된 작은 도서관을 지역사회와 함께 번듯한 도서관으로 탈바꿈시켰기 때문이다. 2021년 12월 9일 청주시 서원구 사창동의 소나무작은도서관이 불에 탔다. 아이들이 뛰놀며 공부하던 이곳은 순식간에 잿더미로 변했다. 가정집을 도서관으로 만들었지만, 아이들과 주민들에겐 꽤 알찬 공간이었다. 실내 스포츠와 영어‧미술 교실로 연일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던 곳이었다.
아이들의 웃음은 화재 후 걱정으로 바뀌었다. 친구들과 보드게임을 즐기고 공부도 했던 곳이 흔적도 없이 사라졌으니 당연한 일이다. 지역사회라고 가만있지 않았다. 현장 실습차 종종 찾던 인근 대학교나 새마을회 등에서 고마운 손길을 보내왔다. 하지만 모든 걸 원래대로 돌리기에는 한참 모자랐다.
이 사연이 포레나 청주매봉 공사현장 직원들의 귀에 들어갔다. 이들은 회사 측에 “개개인의 도움은 한계가 있으니 회사 차원에서 돕자”고 제안했다. 그리고 회사 측은 이를 기꺼이 받아들였다. 곧 공사가 시작됐다. 설계‧시공 등에 들어간 비용은 한화 건설부문 임직원들이 평소 모은 ‘밝은세상기금’ 5000만 원과 회사 기금 8000만 원을 활용했다.
마침내 지난해 3월 18일 포레나 도서관 101호점이 문을 열었다. 이곳을 찾은 아이들의 얼굴에는 다시 웃음이 번졌다. 이날 개관식에 참석해 아이들의 환한 웃음을 바라본 임직원들은 “화마가 빼앗아간 꿈과 희망의 공간을 이곳 아이들에게 되찾아 줄 수 있어서 정말로 행복하다”고 입을 모았다.
지난 2월 1일에는 경기도 안산시 상록구의 안산평화의집에서 포레나 도서관 개관식이 열렸다. 102호점이다. 이 도서관은 카카오와의 협업으로 만들어졌다.
카카오와의 인연은 한양대에서 시작됐다. 카카오는 최근 안산의 한양대 에리카 캠퍼스에 첨단 데이터센터와 산학협력시설을 세웠는데, 당시 이 공사를 담당한 건설사가 한화 건설부문이다. 이 같은 인연으로 한화 건설부문과 카카오는 지역사회 공헌 활동을 함께 모색했고, 취약계층을 위한 도서 공간이 필요하다는데 뜻을 모아 도서관 건립으로까지 이어졌다.
포레나 도서관이 들어선 안산평화의집은 발달장애인 생활시설이다. 일상생활훈련과 직업체험훈련 등으로 입주자들의 사회적 자립을 지원한다. 그런 이들에게 도서관은 세상과 자신을 잇는 또 다른 연결 통로로서 역할을 한다. 더불어 수많은 간접경험으로 세상과의 단절을 깨부수게도 한다. 두 회사는 이 점에 착안해 공간 리모델링을 진행했다.
도서관은 이 건물 1층 휴게공간을 활용했다. 특히, 포레나 블루컬러를 포인트로 한 내부 인테리어에 여기저기 카카오프렌즈 캐릭터로 친근함을 더했다.
한화 건설부문 박세영 건축사업부장은 “건설회사가 가장 잘하고 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 일이 바로 ‘짓는 일’”이라며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의 경영철학인 ‘함께 멀리’ 정신을 바탕으로 포레나 도서관 사업을 계속해서 이어갈 것”이라고 말했다.
카카오 오지훈 자산개발실장은 “카카오는 데이터센터를 통해 안산 지역사회와 뜻깊게 연결됐고, 또 의미 있는 관계를 만들어가고 있다”며 “앞으로도 산학협력을 추진하고 지역경제 활성화에 기여하는 등 다양한 활동을 모색할 것”이라고 전했다.
멀고 먼 연평도 유일의 초등학교에도 들어서
지난 4월 19일에는 103호 도서관이 개관했다. 가장 최근의 일이다. 들어선 곳은 인천광역시 옹진군 연평도. 지금까지 사연 없는 곳이 어딨을까마는 이곳은 좀 더 특별하다. 우선, 들어선 곳이 연평도 유일의 초등학교인 연평초등학교다. 전교생이 43명밖에 되지 않는 아주 작은 학교다. 교내에 도서관이라고는 한 곳이 있었지만 여기서 유치원생과 초등학생, 그리고 중고등학생까지 함께 이용해야 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나이 어린 유치원생이나 초등학교 저학년생들은 점차 도서관과 멀어졌다. 학교 측도 이런 현실을 모른 체할 수만은 없었다. 하지만 아이들을 위한 도서관 건립은 예산 등의 문제로 늘 미뤄졌다.
한화 건설부문의 103번째 프로젝트는 연평초등학교였다. 이번엔 한국중부발전과 손을 잡았다. 도서(島嶼) 지역은 내륙보다 문화공간이 부족하니 최대한 이곳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춰 책을 편하게 읽을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들자고 뜻을 모았다.
우선, 초등학교 건물 3층의 빈 교실 하나를 도서관으로 꾸미기로 하고 리모델링에 들어갔다. 며칠 후 이 공간은 각종 도서로 꽉 채워졌고, 한쪽엔 소회의실까지 마련됐다. 한화 건설부문 임직원들은 내부 인테리어 공사는 물론 붙박이 책장을 조립하고 책상과 의자를 배치했다. 도서관 이름은 포레나에 한국중부발전 캐릭터인 ‘에코미‧세코미’의 이름을 더해 ‘포레나‧에코세코미 도서관’으로 지었다.
4월 19일, 연평초등학교 포레나‧에코세코미 도서관에 사람들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조희군 연평면장, 한성욱 연평초등학교 교감, 한화그룹과 한국중부발전 자원봉사자들, 그리고 이 도서관의 주인공인 학생들과 지역 주민들이 참석해 새로운 모습으로 탈바꿈한 도서관을 축하했다.
이날 한성욱 연평초 교감은 “그동안 도서관 설립을 위해 계속 노력해왔는데, 한화 건설부문과 한국중부발전이 숙원을 풀어줘 감사하다”고 했다. 이어 “이제부터 어린아이들이 즐겁고 편하게 사용하는 작은 도서관으로 가꿔나갈 것”이라고 약속했다.
한화 장혁 부장은 “연평도에 분 따뜻한 봄바람처럼 포레나‧에코세코미 도서관이 아이들을 포근하게 감싸주길 기대한다”며 “한화그룹의 경영철학인 ‘함께 멀리’ 정신을 바탕으로 연평도와 좋은 인연을 계속 이어가고 싶다”고 말했다.
‘서울사회공헌대상’ 우수프로그램으로 선정
한화 건설부문의 포레나 도서관 조성사업은 그 노력을 인정받기도 했다. 2021년 ‘서울사회공헌대상’ 우수프로그램으로 선정돼 서울시장상을 받았다. 서울시복지재단이 주관하는 서울사회공헌대상은 서울의 지역사회문제 해결을 위해 비영리·민간·공공 등이 협력하며 지속적으로 수행한 사회공헌 우수프로그램을 시상하는 대회다.
한화 건설부문은 임직원과 일반인이 함께 참여하는 ‘포레나 도서 나눔 캠페인’도 진행 중이다. 이를 통해 전국 방방곡곡에 세워질 포레나 도서관을 꽉꽉 채우게 함은 물론, 국내에 기부문화가 더욱 확산하도록 하려는 목적이다.
한화 건설부문 관계자는 “많은 분의 정성으로 모은 도서를 기부함으로써 따뜻한 기부문화가 널리 전파되길 기대한다”며 “많이 어려운 시기지만 슬기롭게 극복하도록 앞으로도 다양한 활동을 이어갈 것”이라고 말했다.
어릴 적 마음을 움직인 한 권의 책은 미래의 나를 만드는 훌륭한 선생님이 된다. 포레나 도서관 조성사업은 건설 대기업이 행하는 일종의 사회공헌활동이다. 하지만 다른 공헌들과 분명한 차이가 있다. 도서관 조성사업은 10년, 20년, 30년 후의 아이들까지 혜택받도록 하는, 미래형 사회공헌활동이다.
이곳에서 책을 읽고 여러 사람과 소통하며 자라난 아이 중 어느 한 명은 대한민국을 빛낼 어른으로 성장한다. 또는 더 넓은 세상으로 나아가 대한민국을 알릴 어른이 된다. 도서관이 책을 읽는 공간뿐만 아닌 미래의 인재를 키워내는 요람이라고 생각하면, 한화 건설부문의 포레나 도서관 조성사업은 더 많이 알려져야 할 일이다. 고마워해야 할 일이다.
<문화경제 김응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