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 한국전쟁에서 싸운 일본인 - 일급비밀 공개로 드러난 일본인의 한국전쟁 참전 기록

최영태 기자 2023.06.08 11:35:27

후지와라 가즈키 지음, 박용준 번역 / 소명출판 펴냄 / 389쪽 / 2만 7500원

‘한반도의 전쟁에서 싸운 일본인’이란 말은 그 자체로 한국인을 섬뜩하게 만든다. 일본 열도에서의 전쟁에 한국인이 참전한 적은 거의 없지만, 삼국시대 말의 나당 연합군과 백제-일본 연합군의 전쟁 때부터 임진왜란, 그리고 최근세사의 식민지화까지 일본이 한반도의 전쟁에 참전한 적은 한두 번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 현실에서 1950년 한국전쟁에 일본인 70명이 ‘몰래’ 투입됐으며, 이들은 미군과 동행하면서 실탄을 지급받아 북한군 및 중국군과 직접 싸우기까지 했다는 비밀 문서가 공개됐다. NHK 보도국의 후지와라 가즈키는 이 문서를 바탕으로 생존한 일본인 요원 또는 유가족들을 취재했고, 그 결과가 이 책으로 엮어졌다.

1950~1953년 한국전쟁의 참전국은 남북한과 미국-중국 4개국으로 알고 있지만, 소련은 북한군복을 입힌 소련 공군 비행사들을 위장 참전시켰다는 기록이 나왔고, 이 책에서 드러났듯 일본인들도 참전했다.

그러나 웬일인지 미군 당국은 이들 일본인 참전 요원들을 나중에 심문했고, 이들의 존재 및 활동을 극비에 부쳤다. 그 과정에서 미군 당국은 1033쪽에 달하는 방대한 일급비밀 문서를 남겼는데, 기밀에서 해제된 이 문서를 일본계 호주인 교수가 그 존재를 파악해 햇볕을 보게 됐다.

태평양전쟁으로 패망한 일본인들에게 한국전쟁은 그야말로 하늘이 준 기회였고, ‘조선 특수(朝鮮特需)’라 불리며 전후 일본 부흥 서사의 시작점이 됐다. 그들은 패전 뒤 이른바 ‘평화 헌법’을 만들었기에 옆 나라의 전쟁에 대한 참가는 불가능했음에도 불구하고 70명의 참전이 이뤄졌다.

또한, 광복 이후 오늘날까지도 일제 강점기의 개인적, 집단적 기억이 지속되고 있는 한국인들에게, 한국전쟁의 기억은 국군과 유엔군의 분전에 주목하는 견해, 아니면 동족 상잔에 주목하는 견해로 양분되어 있다. 이와 같은 여건에서 일본인 요원들에 초점을 맞추는 것은 어렵다. 그것이 한국전쟁을 둘러싼 주요 논쟁으로부터 동떨어져 있기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민족주의적인 입장에서 볼 때 일본인들은 그저 한국전쟁을 이용하기만 했을 뿐이어야 하며, ‘희생’되기까지 했다는 것은 한국전쟁의 ‘숭고하거나’ 혹은 ‘가슴 아픈’ 서사를 ‘더럽히는’ 것으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인들이 한국전쟁의 지상전에 참가했다는 사실은 오늘날의 우리에게 의미를 지닐 수 있다. 이들 일본인을 바라보는 관점을 정립하기도, 그에 따른 평가를 내리기도 곤란하지만, 그것이 바로 한·일 관계의 복잡함을 상징하는 것은 아닐까?

일본인들의 한국전쟁 참가는 전후 일본 정부가 미군의 점령 상태 아래에서 미국에 적극 협력하던 상황에서 이루어졌다. 과거 한국은 미국과만 상호방위조약을 맺고 일본과의 군사 동맹은 철저히 거부해왔다. 그러나 이제 한미일 동맹 체제가 공고해지면서 중국을 봉쇄한다는 이른바 ‘인도·태평양 전략’의 한 축으로 한국이 편입된 상태다. 타이완 해협에서 군사적 위기가 일어날 경우 한국의 자동 참전이 논해지고 있는 상태다. 한국전쟁 당시 미국과 일본의 관계 때문에 한반도의 전쟁터에 내던져졌던 일본인 70명의 삶은, 어쩌면 21세기 미-중 갈등의 한쪽 편에 몸을 맡겨버린 한국인의 현실이 될지도 모른다는 견해가 나오는 형편에서 참고가 될만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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