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더&CEO] 최태원 SK그룹 회장, 소형모듈원전(SMR)에 과감히 베팅하다

빌 게이츠 설립 ‘테라파워’ 손잡고, 글로벌 SMR 생태계 구축

정의식 기자 2025.09.11 17:21:41

기후 위기와 AI 시대의 전력 수요 폭증 속에서 소형모듈원전(Small Modular Reactor, SMR)이 글로벌 에너지 시장의 총아로 떠오른 가운데, SK그룹의 최태원 회장과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 빌 게이츠가 최근 서울에서 만나 SMR와 바이오 분야 전략적 파트너십을 한층 강화하기로 합의했다. 두 사람은 왜 SMR에 집중하고 있을까? SMR은 과연 에너지 산업의 미래가 될 수 있을까?

 

최태원 SK 회장(오른쪽)과 빌 게이츠 게이츠재단 이사장이 8월 21일 서울 종로구 SK서린빌딩에서 악수를 하고 있다. 사진=SK그룹
 

소형모듈원전(SMR)은 전통적인 대형 원자로(1000MW 이상)에 비해 출력이 작은(보통 300MW 이하) 모듈형 원자로를 말한다. 기존 원전과 달리 공장에서 미리 제작되어 현장으로 운송·조립되는 건설이 가능해 건설 기간이 단축되고 비용을 절감할 수 있다.

장점으로는 낮은 초기 자본 투자, 빠른 건설 시간, 향상된 안전성, 그리고 다양한 위치에서의 설치 유연성이 꼽힌다. 또, 작은 규모로 인해 환경에 미치는 악영향이 적고, 재생에너지와의 보완적 역할도 가능하다.

 

테라파워의 나트륨 SMR과 통합 에너지 저장장치. 사진=테라파워
 

반면, 단점으로는 초기 개발 비용이 높고, 규제 및 공급망 구축이 어려우며, 경제적 규모 효과가 부족할 수 있고, 핵 폐기물 관리나 확산 위험성이 있다는 점 등이 지목된다.

최근 들어 SMR이 주목받는 건, 이 기술이 단순한 전력 생산뿐 아니라 수소 생산, 담수화, 지역 난방 등 다양한 분야에 활용이 가능해 AI 데이터센터와 산업단지의 전력 수요를 충족하는 데 최적화된 기술로 평가되고 있기 때문이다.

SMR 선두 ‘테라파워’…SK가 2대 주주

한편, 테라파워(TerraPower)는 2008년 빌 게이츠가 기후 변화와 에너지 빈곤 해결을 위해 설립한 미국의 차세대 원자력 기술 개발 혁신 기업이다. 뉴스케일 파워, X-에너지, 홀텍 인터내셔널 등과 함께 SMR 분야에서 가장 앞서가는 기업 중 하나로 꼽힌다.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이자 게이츠재단 이사장으로 현재 테라파워 이사회 의장을 맡고 있는 빌 게이츠는 “SMR은 탄소 배출이 없는 안정적 에너지원”이며, “기후 위기를 가속화시키지 않는 유일한 해결책”이라고 단언할 정도로 이 기술에 높은 신뢰를 보내고 있다.

 

테라파워의 설립자 겸 이사회 의장인 빌 게이츠가 와이오밍 나트륨 플랜트 착공식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테라파워
 

테라파워는 첨단 원자로 기술인 소형모듈원전(SMR)과 소듐냉각고속로(SFR)를 중심으로 탄소중립 에너지 혁신을 선도하고 있는데, 특히 나트륨(Natrium) SMR 기술로 주목받고 있다. 지난해 10월 미국 와이오밍주에서 세계 최초의 상업용 SMR 플랜트 건립을 위한 공사가 시작됐다. 완공 목표 시점은 2030년이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이전부터 SMR을 그룹의 탄소중립(넷제로) 비전과 신성장 동력의 핵심이라 강조해왔다. 지난 2021년 넷제로 선언 후, 2022년 테라파워에 2억 5000만 달러를 투자하며 2대 주주가 된 것도 그 일환이다. 2023년 3월에는 SK이노베이션, 한수원, 테라파워가 차세대 SMR 개발 및 사업화를 위한 업무협약을 체결, 4세대 SMR의 실증과 상업화에 나섰다. 2024년 열린 경영전략회의에서 최 회장은 “SMR은 AI만큼 큰 기회를 가진 에너지 솔루션”이라고 밝혔다.

현재 SK그룹은 2023년 출범한 민관 합동 ‘SMR 얼라이언스’의 회장사로 국내 SMR 생태계를 주도하고 있다. 석유화학 중심의 그룹 이미지를 친환경 에너지 기업으로 탈바꿈한다는 전략이다.

최태원·빌 게이츠 “글로벌 시장 함께 이끌자”

그렇다면, 과연 SMR은 에너지 산업의 게임체인저가 될 수 있을까? 일단은 긍정적인 전망이 우세하다. SMR이 기존 원전과 비교할 수 없는 경제성과 안전성으로 에너지 산업의 새 시대를 열 가능성이 크다는 것.

국제에너지기구(NEA)는 SMR이 재생에너지를 보완하며 2050년 탄소중립의 핵심이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가장 큰 강점은 다목적 활용성이다. 최근 전기 사용량이 급증한 데이터센터는 물론, 스마트팜, 산업 공정 열 공급 등에 적합하며, 지역별 분산 전원으로도 최적이라는 것.

글로벌 시장 전망도 밝다. 2050년까지 SMR 시장은 1000억 달러를 초과할 전망이다. 미국·중국·EU가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는 가운데, 한국은 2035년 한국형 SMR(i-SMR) 상용화를 목표로 이 시장 선점을 노리고 있다.

 

2023년 7월 4일 출범한 '민관 합동 소형모듈원전(SMR) 얼라이언스'. SK(주)가 의장사를 맡았다. 사진=SK그룹
 

물론, SMR의 상용화까지는 넘어야 할 산이 많다. 첫째는 규제 장벽이다. 안전 인증 과정이 복잡하고, 국가별 규제가 달라 상용화가 지연되고 있다. 둘째는 초기 자본 부담이다. 모듈화로 비용이 절감된다지만, 여전히 수십억 달러의 투자가 필요한 거대 사업이다. 셋째, 핵폐기물 처리의 어려움은 여전히 논란거리다. 여기에 더해 최근에는 태양광 등 순재생에너지의 가격도 하락되는 추세여서 SMR의 경쟁력을 위협하고 있다.

SK그룹과 테라파워는 양측의 기술력을 결합하고, 전략적 파트너십을 한층 발전시켜 이 문제들의 해법을 찾아내겠다는 전략이다. 지난 8월 21일 서울 종로구 SK서린빌딩에서 열린 만찬에서 최태원 회장과 빌 게이츠 이사장은 차세대 SMR 기술 개발과 상업화 전략을 집중 논의했다. 양측은 SMR 프로젝트를 통해 핵심 장비 공급망을 확보하고, 관련 중소기업의 성장 기회를 창출하는 방안과, 한국의 다른 대기업(삼성, HD현대)과 함께 핵 반응기 개발 공동 프로젝트를 추진하는 것 등을 논의했다.

이날 최 회장은 “한국과 SK그룹이 테라파워의 SMR 상용화 과정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할 수 있다”며, “SMR의 안전성, 효율성, 친환경성을 바탕으로 글로벌 시장에서의 수용성을 높이기 위해 함께 노력하자”고 강조했다.

이에 빌 게이츠 이사장은 “한국 정부의 규제 체계 수립과 공급망 구축이 SMR의 빠른 실증과 확산에 필수적”이라며, “SK와 테라파워가 협력해 글로벌 시장을 선도할 수 있을 것”이라고 화답했다.

< 문화경제 정의식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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