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수림의 현대사진산책+] 강의 권리

세바 칼푸케오, 솜 수파파린야

천수림(사진비평) 기자 2025.10.10 09:48:46

아시아를 가로지르는 메콩강은 ‘어머니의 강’(Mae Nam Khong, 메남콩)으로 불리며, 신성한 존재로 여겨진다. 칠레의 마푸체 원주민도 마찬가지다. 물(Ko)을 영토, 치유, 생명의 근원으로 여긴다. 전 세계적으로 생태문제가 심각해지는 요즈음 우리는 이런 질문을 던질 수 있다. 강도 인간처럼 법적 인격체로서 권리를 가질 수 있을까? 산(아미산)과 강(낙동강 하구), 바다(남해)가 만나는 부산 사하구 다대포에서 진행 중인 2025 바다미술제에서 진행 중인 ‘Undercurrents(언더커런츠):물 위를 걷는 물결들’전에서 볼 수 있는 세바 칼푸케오(Seba Calfuqueo), 솜 수파파린야(Som Supaparinya) 작가가 이 질문에 대답하고 있다.

세바 칼푸케오, ‘TRAY TRAY KO’, ‘KOLLOF 시리즈’

세바 칼푸케오, ‘뛰어오르는 물’. 2022, 비디오 퍼포먼스, 4k, 6분 14초. (촬영: 세바스티안 멜로)

이번 2025 바다미술제(9월 27일~11월 2일)에서 선보이는 세바 칼푸케오의 ‘TRAY TRAY KO(큰 폭포, Big Waterfall)’(2022)는 작가의 핵심 주제인 마푸체 정체성, 생태학적 저항, 그리고 신체와 물의 관계를 깊이 탐구하는 단채널 비디오 퍼포먼스 작품이다. ‘TRAY TRAY KO’는 마푸체어로 ‘큰 폭포’를 뜻한다.

이 푸른 천은 물줄기(강)를 시각적으로 상징하며, 트라옌코의 생명력이 숲을 따라 멀리까지 흐르고 영향을 미친다는 마푸체(Mapuche)족의 세계관을 은유적으로 표현한다. 짙은 코발트 블루 드레스를 입고 숲으로 들어가는 한 사람이 있다. 뒷모습을 보면 마치 강의 여신을 연상시키지만 성별은 중요치 않다. 퍼포먼스의 후반부에서 작가는 천을 끌고 흐르는 강물로 직접 들어간다. 마침내 폭포 아래에서 몸을 담그며 사라진다. 작가는 물(Ko)을 영토, 치유, 생명의 근원으로 여기며, 코발트 블루 드레스는 강을 상징한다.

이 성스러운 의례를 통해 작가는 인간의 신체가 자연 및 생명의 순환과 연결돼 있음을 시사한다. 세바 칼푸케오는 칠레 산티아고에서 태어난 마푸체 출신의 시각 예술가이자 활동가로 설치, 도예, 퍼포먼스, 사진, 비디오 등 다양한 매체를 통해 현대 칠레 사회와 라틴 아메리카에서 마푸체 원주민이 지니는 사회적, 문화적, 정치적 지위에 대해 비판적인 시각을 제시하며, 탈식민주의적 관점을 취한다. 마푸체족 출신이기도 한 작가는 기후변화와 물 부족문제, 사유화되는 점에 대해 꾸준히 발언해왔다.

세바 칼푸케오, ‘죄책감’. 비디오 퍼포먼스, full HD, 9분 11초. 2023. (촬영: 디에고 아르고떼)

물의 사유화와 환경 파괴에 대한 비판적 메시지를 담은 이 작품은 작가의 대표적인 작업 중 하나로 마푸체족의 전통적인 우주론과 원주민의 생태학적 지혜를 오늘날의 문제에 대한 대안으로 제시하고 있다. 특히 트라옌코 주변에서 자라는 약초인 라우엔(lawen)도 깊이 연결돼 있다는 것을 말한다. 낙동강 하구와 해수가 만나는 생태적 경계 지점인 다대포 일대에서 선보인 세바의 작품은 ‘물’과 ‘경계’에 대해 숙고하도록 만든다.

부산 다대포해수욕장 모래사장과 낙동강과 바다가 만나는 지점에 사진 설치작업인 ‘KOLLOF 시리즈’를 선보인다. 인물과 풍경, 실로 구성된 설치작업인 ‘KOLLOF’는 마푸체어(Mapudungun)로 칠레와 아르헨티나의 원주민 언어인 KOLLOF콜요프(코차유요 Durvillaea Antarctica)는 칠레에서 자라는 갈색 해조류를 가리킨다. 쇠미역과 비슷하게 생긴 대형 갈조류, 칠레 마푸체 지역에서는 ‘코차유요(Cochayuyo)’로 불리는데 원주민의 삶과 생태적인 저항을 의미하며 식민주의적 착취를 연결하는 상징적인 매개체 역할로 쓰인다.

이 시리즈는 칠레 해안에서 흔히 발견되는 코차유요를 중심으로 설치, 사진, 영상 등으로 표현됐다. 마푸체족을 포함한 원주민 문화에서는 식량자원 뿐만 아니라 전통적인 운반이나 저장 용기를 만드는 데 사용됐다. 작가는 해저에서 떨어져 나온 이 해조류가 먼 거리를 떠돌며(rafting) 번식하고, 상처가 났음에도 곧 회복되는 치유적 능력을 통해 마푸체족의 끈질긴 저항과 생존력에 대한 상징으로 삼았다. 이 밖에도 세바 칼푸케오, 비디오 퍼포먼스 작품 ‘뛰어오르는 물’과 ‘폭포 같은 흐름’ 작품도 함께 볼 수 있다.

솜 수파파린야, ‘달의 양면’

솜 수파파린야, ‘달의 양면’. 비디오 설치, 싱글채널 비디오, 5.1 사운드 시스템, 흑백, 31분 15초. 2021.

다대포해수욕장 모래사장 위에 설치된 컨테이너 박스에 들어가면 태국 치앙마이 기반으로 활동하는 솜 수파파린야 작가의 ‘Two Sides of the Moon(달의 양면)’(2021) 다큐멘터리 영상 작품을 만날 수 있다. 달의 양면은 2024 방콕 비엔날레를 비롯한 주요 전시에서 선보였다.

달의 양면은 인공 댐인 팍 문 댐으로 인해 변모한 지역인 문 강 양안 어부들의 대조적인 삶을 추적한다. 작가는 태국과 라오스 국경에 위치한 메콩강과 합류하는 문강의 시작과 끝에서 어부들의 삶을 기록했다. 강변의 풍경과 낚시 도구 등 어부들의 노동하는 모습과 인공댐으로 인해 변화된 환경과 지역민들의 이야기를 흑백 화면에 담았다.

댐 건설과 수력 발전으로 인해 불안정해진 수로를 따라 불안정한 생계를 유지하는 사람들의 모습과 그들의 증언을 통해 지역 공동체의 삶과 생계에 미치는 부정적인 영향을 드러낸다. 한 어부는 “예전에는 건기에 물은 없었지만 물고기가 많았다”는 증언을 통해 평범했던 일상을 되돌릴 수 없음을 짐작케 한다. 한 공동체는 낚시하는 법을 배우기 시작하고, 다른 공동체는 사라진 물고기와 도구들의 이름을 헤아리고 있다. 작품 제목처럼 달의 빛과 그림자라는 은유를 통해 두 공동체의 불평등과 상반된 운명을 드러낸다.

앤드류 앨런 존슨은 ‘메콩 드림: 변화하는 강을 따라 살아가고 죽어가는 삶’(2020)에서 “댐이 건설된 이후, 강과 함께 살아가는 방식은 실패로 끝난다. 그리고 강이 지녔던 익숙한 특성들이 사라지면서 물은 이제 읽을 수 없는 무엇, 먼 힘의 지배 아래 놓인 무엇으로 재등장한다”고 썼다.

작가는 태국 발전청이 관리하는 두 장소를 기록한 ‘필요가 지구를 움직일 때(When Need Moves the Earth)’(2014)에서도 칸차나부리 주 스리나가린 댐의 터빈실, 통제실, 변압기 등을 보여줬고, 람팡 주 매모 갈탄 광산의 육체노동과 폭발음을 들려줌으로써 환경적 인 문제를 다뤄왔다. 비디오 설치 작품은 ‘도쿄의 열 곳(10 Places in Tokyo)’(2016)에서도 전력 소비량이 많은 곳을 다뤘다.

2025 바다미술제 전시장소 다대포해수욕장 전경.

달의 양면에서는 한 어부가 녹슨 지프에 올라타는 장면이 나온다. 그는 오랫동안 이 차를 몰고 박문댐 반대 시위에 참여해온 인물이다. 그 인물의 눈빛을 통해 물에 대한 주권에 대해 질문하게 된다. 작가의 또 다른 작품인 ‘모래와 섬의 분리(A Separation of Sands and Islands)’(2018)에도 이런 질문은 이어진다. 댐으로 인해 고통 받는 메콩강 하류 여러 지점에서 포착한 물줄기, 다리, 제방의 이미지는 강이 마치 거대한 관찰자처럼 증언하고 있다.

태국 불교와 토착 신앙이 결합된 전통 사상 속에서 강은 정령 또는 신성한 힘이 깃든 공간으로 인식되는 곳이다. 지역 주민들에게 댐 건설은 단순히 강을 막는 물리적 행위를 넘어선다.

어부들의 일상 외에 바다를 표현하는 흑백의 화면은 마치 수묵화처럼 평온해 보인다. 이런 느린 시각적 묘사는 문강의 시간적 리듬을 반추하게 만든다. 작가는 ‘물’을 단순한 자연 환경이 아닌, 정치적 영토이자 생명의 근원이라고 말한다.

<작가 소개>

세바 칼푸케오(Seba Calfuqueo, b. 1991)는 칠레 산티아고에서 거주하며 작업한다. 세바 칼푸케오는 영상, 사진, 퍼포먼스를 넘나드는 다학제적 예술가로 총체적 예술가라는 개념을 작업에 적극적으로 구현한다. 그녀의 작품은 테이트 모던(영국), 퐁피두 센터(프랑스), 덴버 미술관(미국), 말바 미술관(아르헨티나), 티센-보르네미사 미술관(스페인), 카디스트 컬렉션(프랑스), 리우그란지두술 현대미술관(브라질), 국립미술관(칠레), 현대미술관(칠레)의 소장품으로 포함돼 있다. 칼푸케오는 베니스 비엔날레(2024), 휘트니 비엔날레(2024), 제34회 상파울루 비엔날레(2021), 제12회 메르코수르 비엔날레(2020), 제22회 파이즈 비엔날레(2020)에 초청 작가로 참여했다. 그녀는 FAVA 재단(2018), 아이빔의 프랙탈 펠로우십 프로그램(2020), 아마 아모에도 재단의 FAARA(2023), 조나 마코의 쿠에르보 상(2024)을 수상했다.

솜 수파파린야(Som Supaparinya, b. 1973)는 치앙마이를 기반으로 활동하는 예술가다. 솜 수파파린야는 시각 예술가, 다큐멘터리 영화 제작자이자 교육자로, 비디오, 설치 미술, 사진 등 다양한 매체를 통해 역사, 인간이 풍경에 미치는 영향, 검열 등의 주제를 탐구한다. 그녀는 2013년 지역 예술계 활성화를 위해 ‘치앙마이 아트 컨버세이션(CAC)’ 콜렉티브를 설립했으며, 광주비엔날레와 방콕 아트 비엔날레를 비롯한 국제적인 전시에서 작품을 선보였다.

글: 천수림
이미지 제공: 부산비엔날레/부산바다미술제 2025

맨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