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나아트, 유근영의 ‘엉뚱한 자연’ 들여다본다

가나아트 한남서 15일 개막

김금영 기자 2025.10.14 13:50:43

유근영, ‘엉뚱한 자연’. 캔버스에 오일, 130x162cm. 2006. 사진=가나아트

가나아트는 대전 지역 미술계의 중추적 인물로 자리 잡아온 유근영의 개인전 ‘엉뚱한 자연 (The Odd Nature)’을 15일 개막한다고 14일 밝혔다.

작가는 홍익대학교 서양화과와 동 대학원 미학과를 졸업한 뒤 1970~80년대 대전 현대미술의 태동과 전개에 중요한 역할을 한 ‘르뽀 동인회’, ‘대전 78세대’, ‘19751225’ 등의 그룹을 이끌어가며 지역 미술 발전에 이바지했다. 이러한 유근영의 작품은 미술사적 가치를 인정받아 국립현대미술관 미술은행(서울), 대전시립미술관(대전), 서울시립미술관(서울), DTC 아트센터(대전), 천주교 목동성당(대전) 등 국내 주요 기관에서 소장하고 있다.

이번 전시는 1990년대 초반 시작된 그의 대표 연작 ‘엉뚱한 자연’의 초기작부터 근작에 이르기까지, 30여 년간 확장된 작가의 조형 세계를 총체적으로 조망한다. 단순히 한 작가의 조형적 성취를 되짚는 데 그치지 않고, 한국 현대미술의 흐름 속에서 주변부로 밀려날 수도 있었던 목소리가 어떻게 독창적인 언어로 형성되고 그만의 정체성을 확립해왔는지를 보여주는 자리다.

유근영은 1960년대 후반부터 1970년대 초반, 한국 미술계가 국제 미술 조류와 맞물려 새로운 가능성을 탐색하던 시기에도 주류 담론에 휩쓸리지 않고 독자적인 예술세계를 펼쳤다. 그가 수학하던 시절인 1960년대 후반에는 옵아트(Op Art)와 기하학적 추상이 국내에 소개되며 시각적 착시와 반복적 패턴을 실험하는 흐름이 나타났다.

이어 1970년대에 접어들면서 단색화가 점차 주도적 흐름으로 자리 잡으며 반복적 행위와 재료의 물성, 정신적 몰입을 강조하는 담론이 형성됐다. 화면을 비워내고 덧칠하며 시간과 신체의 흔적을 남기는 단색화는 수행적 태도와 긴밀히 결부됐고, 곧 한국 현대미술을 대표하는 얼굴로 국제무대에서도 주목을 받게 됐다.

유근영, ‘엉뚱한 자연’. 캔버스에 오일, 162x130cm. 2025. 사진=가나아트

이러한 상황 속에서 유근영은 주류의 질서에 안착하기보다 자신만의 조형 언어를 구축해 나갔다. 그가 첫 개인전에서 선보였던 ‘우주적 공간(Cosmic Space)’(1986)은 풀잎을 연상시키는 직선의 선들이 서로 교차되거나 겹쳐져 장식적이면서도 복합적인 층위로 배치한 독창적 풍경화의 예시다.

 

1990년대에 들어서며 유근영의 예술 세계는 본격적인 전환점을 맞이하며, 그는 대표 연작인 엉뚱한 자연을 시작했다. 작가는 이 연작을 시작한 계기로 1970년대 후반 친구가 보내온 화분에 적혀 있던 ‘신농백초(神農百草)’라는 글귀를 떠올린다. 신농백초는 고대 중국 삼황제 중 한 명인 염제신농이 100가지 풀을 직접 맛보며 식용과 약용을 가려냈다는 고사에서 비롯된 말로, 유근영은 “백가지 풀을 그려보고 싶었다”며 우연히 마주한 문구와 사소한 경험이 자신만의 엉뚱한 세계를 구축하는 출발점이 됐다고 말한다.

그는 작품의 제목이 시사하듯 정형화된 자연관을 배제하고, 점·선·면·색·빛과 같은 회화의 가장 기본적인 요소들조차 자유롭게 변주된 이성과 논리의 질서로 환원되지 않는 또 다른 자연을 제시한다. 예컨대 엉뚱한 자연에는 풀, 나무, 꽃, 산 등 자연의 요소들이 등장하지만 이는 우리가 일상에서 접하는 자연과는 다른 작가 특유의 ‘엉뚱한’ 자연이다. 형태는 비틀리고 색은 예상과 다르게 배치돼 그 속에서 유근영은 현실과 상상의 경계를 자유롭게 넘나든다. 이렇듯 유근영의 자연풍경은 사실적 재현의 대상이라기보다 관찰과 기억, 상상과 내면적 심상이 교차하며 형성된 그만의 회화적 세계다.

가나아트 측은 “관습적 경계를 넘어선 유근영의 작품은 디지털 문명이 지배하는 오늘날의 일상과 대조적으로 자연 속에 잠재된 자유와 순수성을 일깨운다. 화면을 가득 메운 강렬한 색채와 자유로운 필치로 구성된 작가의 엉뚱한 풍경은 단순 재현의 차원을 넘어, 그 속에서 느꼈던 자연의 원형과 내면의 심상을 담아낸 것”이라며 “이번 전시가 그의 예술적 여정을 다시 살펴보며, 예술이 어떻게 우리 삶 속에서 순수성과 자유의 통로가 될 수 있는지를 성찰하게 하는 기회가 되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전시는 가나아트 한남에서 다음달 26일까지.

< 문화경제 김금영 기자 >

맨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