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문화예술위원회(위원장 정병국 이하 아르코(ARKO)), 아르코미술관(관장 이한신)은 2025년 11월 20일부터 2026년 1월 18일까지 아르코 예술창작실 작가전 ‘인 시투 In Situ’를 개최한다.
‘인 시투 In Situ’는 올 6월 평창동에 개관한 아르코 예술창작실에 입주한 1, 2기 작가들의 작업을 소개하고 작가들이 입주 후 탐색해 온 ‘현장’의 의미를 입체적으로 경험할 기회를 만들고자 한다.
아르코 예술창작실은 국내외 예술 생태계의 지속적인 발전 및 동시대 미술 현장과의 교류를 확장하기 위해 국내뿐만 아니라 아시아, 유럽, 아프리카 등 다양한 지역에서 활동 중인 작가들을 선정했다. 창작자와 큐레이터 및 전문가를 연결하는 맞춤형 프로그램을 강화하고 아르코미술관 전관에서 본격적인 전시를 두 달간 개최함으로써 입주 작가를 다각도로 조명한다.
6월부터 9월까지는 1기 입주 작가 5명, 10월부터 또 내년 2월까지 2기 작가 5명이 함께하고 있다. 아르코 예술창작실은 작가와 전문 비평가를 맞춤형으로 매칭하는 부분을 고려해, 다양한 방문 프로그램들을 운영한다. 레지던시에 대한 전문적인 운영과 또 전시 기획을 위해 국내외 미술계에서 굉장히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전문 기획자 신보슬 씨가 디렉터를 맡았다.
이번 전시는 1기(‘25.6월~9월) 손수민(한국), 윤향로(한국), 발터 토른베르크(핀란드), 부이 바오 트람(베트남), 유스케 타니나카(일본). 2기(‘25.10월~‘26.1월) 박정혜(한국), 서희(한국), 카타즈나 마주르(폴란드), 크리스티앙 슈바르츠(오스트리아), 우고 멘데스(모잠비크) 작가가 참여했다.
전시 제목인 ‘인 시투 In Situ’는 ‘본연의 장소, 현장에서’라는 뜻의 라틴어로, 작업실로부터 전시장까지 이어지는 작가들의 창작활동, 그 현장성에 주목한다. 그리고 장소는 아르코미술관, 아르코 예술창작실(평창동), 예술가들의 고유한 장소이며 이번 전시는 이 세 장소가 미술관이라는 하나의 창 안에서 겹쳐고 이어지는 구조로 구성되었다. 이를 통해 과거와 현재, 실제와 상상의 장소가 한 공간 안에서 만나는 순간을 포착해, ‘예술가의 현장’을 입체적으로 경험할 수 있는 장을 마련했다.
입주작가들이 아르코 예술창작실에서 펼친 사유와 실험, 관계 맺음을 보여주는 이번 전시는 창작실의 설립 취지와도 그 맥락을 함께한다. 단기 체류와 창작이 결합된 레지던시의 특성상 창작실은 완성된 결과를 보여준다기보다는 머무름과 변화를 끌어내는 장소이다. 이러한 과정이 일어나는 창작실이라는 현장은 작가들에게 아카이브이자 장소 기반적 사유의 전환점으로 작용한다.
먼저 윤향로 작가는 ‘얕은 물’ 연작을 전시한다. 작품은 아르코 작업실과 집을 오가는 길, 평창동에서 부암동으로 이어지는 물길과 산길을 따라 바라본 얕은 물의 표면에서 출발한다. 얕은 물을 바라보면서 느꼈던 여러 가지 심상들 그리고 생각들을 작가는 회화로 표현했다. 윤향로 작가는 “대중문화나 미술사의 이미지들을 촬영하며 작업해 왔는데 최근 몇 년 동안 개인적인 이미지들을 다루면서 작업을 하게 돼서 개인적인 것이 어떻게 회화에서 이야기될 수 있는가를 고민하며 작업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유스케 타니나카(일본) 작가는 IPS 세포의 재생 원리와 동아시아 의학의 세계관을 결합해 치유와 재생을 시각화한 대형 다이어그램을 보여준다. 작품을 회복과 재생의 상상력을 통해 동시대의 치유 미학을 제시한다.
부이 바오 트람(베트남) 작가는 우리나라 민속박물관에서 ‘호적도’를 보고 우리 민속에서 호랑이와 까치의 관계를 바탕으로 호랑이의 땅에서 까치만이 남아 도시 생태에 적응한 풍경을 상상한다.
손수민 작가는 그동안 작업을 통해 사회에서 어떤 가치가 획득되고 그 가치가 작동하는 방식에 대해 조명해왔다. 이번 전시에서는 ‘캐치볼’이라는 투 채널 영상을 통해 대화 같아 보이지만 영원히 만나지 않는 평행선 같은 상황을 보여준다. 영상 안에서 각자 듣고 있는 상황들이 조금씩 세팅을 변주함으로써 변화하는데 그 퍼포먼스를 담았다. 또한 ‘인터벌 스터디즈’는 한때 한국 중산층 가정의 필수품이던 피아노의 생애주기를 매개로 한국 사회가 발전이라는 이름으로 추구해 온 가치와 동시에 소외시켜 온 삶의 풍경을 담아낸다.
발터 토를베르크(핀란드) 작가의 ‘재난 인덱스’는 제도와 언어와 행정적 형식을 해체하며, 그것이 생산하는 불일치와 균열의 장면을 드러내는 설치 작업이다. 특히 땅바닥에 의미 없이 놓여진 소화기들은 마치 재난이 벌어지길 기다리는 오브제처럼 보인다. 작가는 한국에서 어디를 가도 비치된 소화기를 보고 깊은 인상을 받았다.
폴란드인과 한국인의 사진을 전시한 카타즈나 마수르(폴란드) 작가는 개인적 기억과 국가적 서사를 교차시키며, 사진을 통해 집단적 정체성과 역사적 기억의 층위를 탐구한다. 진행 중인 프로젝트 ‘에덱의 아카이브’는 1970~80년대 폴란드 사회주의 시기의 아마추어 가족 사진과, 같은 시기 국사 독재 아래 있던 한국의 역사적 이미지를 병치해 개인과 국가, 사적 삶과 정치적 통제의 관계를 시각화한다.
우고 멘데스(모잠비크) 작가는 아프리카의 모티브를 동시대의 언어로 치환시킨다. 구전으로 내려오는 설화를 목판화로 보여준다. 또한 모잠비크의 포르투갈 식민지 시대의 서사를 공유한다.
불안정한 정서를 공간적 장면으로 시각화한 설치 작업을 선보이는 서희 작가는 유학을 목적으로 떠났던 독일에서 현재까지 오랫동안 지내오면서 느꼈던 불안정한 감각과 일상에서 느끼는 사물과 자신의 관계를 조형 언어로 번역했다. 작가는 움직이는 바닥, 낯설게 느껴지는 차가운 감각의 바닥, 사물 안에서 불편함을 느끼는 상황을 통해 이동 가능성을 품은 임시적 삶을 표현했다. 결국 언제나 불안하고 언제 떠날지 모르는 삶을 사는 한 개인의 정착할 수 없는, 넘어설 수 없는 감각을 펼쳐 보인다.
박정혜 작가에게 작업실은 물질적 작업의 상태와 조건을 넘어, 현실계와 가상계를 연결하는 정신적 차원의 헤테로토피아로 기능한다. 작가는 작업실 공간에서 의식하고 있는 벽지, 바닥, 포스트잇 등이 그 공간 안에서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상상한다. 그리고 시스템 내 존재하는 중의적 사물과 그것이 상징하는 것 사이의 관계를 탐색한다.
크리스티앙 슈바르츠(오스트리아)의 ‘다목적 타워’는 도시의 무선 통신 인프라가 만든 ‘보이지 않는 구조’를 드러낸다. 작가는 지난 10여 년간 급증한 이동통신 네트워크가 도시 경관을 어떻게 재편했는지 주목하며. 옥상과 가로등, 교회 첨탑 위에 자리한 셀타워의 위장된 형태 ‘스텔스 인프라스트럭처’를 탐구한다. 작가는 “우리 각자가 자신만의 핸드폰을 손에 들고 핸드폰이 만들어내는 데이터에 둘러싸여 사는 게 아닌가 싶다”라고 말했다.
한편, 전시 연계프로그램으로 입주작가들이 자신의 작업에 대해 관객들과 이야기하는 ‘작가와의 대화’(11.21)와 국내 레지던시의 현황과 미래를 레지던시 운영자의 시각으로 논의하는 라운드테이블(‘26.1월)이 진행된다
전시를 기획한 신보슬 예술창작실 프로그램 디렉터는 아트센터 나비, 서울국제미디어아트비엔날레, 의정부디지털아트페스티벌, 대안공간 루프 등에서 다양한 프로젝트에 참여했다. 예술을 배움의 장으로 확장하는 활동을 이어왔으며, 현재는 중앙대학교 대학원과 토탈미술관에서 예술과 교육을 연결하는 여러 실험을 계속하고 있다.
이한신 관장은 “아르코 예술창작실 사업이 국내외 예술가들의 창작과 교류를 지원하는 플랫폼으로서 기능하는 것을 한자리에서 확인할 뜻깊은 기회”라고 밝혔다.
전시는 대학로 마로니에공원에 소재한 아르코미술관에서 화-일 오전 11시부터 오후 7시까지 관람할 수 있고 입장료는 무료다.
<문화경제 안용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