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문화재단. 역사의 길 시리즈 제12집으로 발간

역사지리학자가 들려주는 인천의 길 이야기

안용호 기자 2025.11.27 17:26:41

표지 사진. 사진=인천문화재단

전근대 인천에서 가장 중요한 길은 어디일까? “인천도호부의 읍치인 문학동에서 출발한 인천로는 인명여자고등학교, 중앙어린이교통공원, 구 구월동농수산물도매시장, 만수동을 지나 성현을 넘는다. 이후 무네미로 448번길(부평구 구산동), 부천로, 원미로, 소사로를 지나 곰달래고개(고음달내현)를 넘어 신월동, 목동을 거쳐 철곶포에서 강화로 본선을 만난다. 이후 강화로는 양화도(楊花渡)를 건너 도성으로 들어간다.”

인천문화재단(대표이사 직무대행 허회숙)이 역사의 길 시리즈 제12집 《역사지리학자가 들려주는 인천의 길 이야기》를 발간했다. 저자는 강원대학교 사회과학연구원 연구교수 김종혁이다.

 

서울서 태어나 30년을 서울서 산 필자는 30년 전 인천에서 살기 시작하면서 자신이 그동안 얼마나 중앙(서울)중심적 사고에 빠져 살았는지를 깨닫고는 고심 끝에 인천에서의 지역 활동을 결심한다. 이 책은 역사교통지리학을 전공한 필자가 인천 지역 활동의 일환으로 쓴 인천의 길 이야기이다.

 

인천은 한국에서 가장 먼저 근대 문물을 받아들인 대표적인 도시이다. 지금도 세계인은 하늘길과 바닷길을 통해 한국에서 인천을 가장 먼저 만난다. 이는 인천이 600년 이상 한국의 수도로 기능하는 서울과 직결되는 지리적 위치를 점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필자는 18세기 후반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서울과 인천을 잇는 교통로를 중심으로 인천의 길에 새겨진 층층의 역사와 지리를 추적한다.

이 책은 일상생활과 밀접한 도로와 철로를 중심으로 인천 길의 역사적 변천을 다섯 가지 핵심 주제로 나눠 얘기한다. ‘길의 기원과 발전’을 도입부에서 기술하고, 1장 ‘인천의 영역 변동’에서 시대에 따라 다른 인천의 영역(인천도호부, 부평도호부, 인천부, 부평군, 인천광역시)을 복원하여 인천 길의 공간범위를 먼저 제시해 준다. 이 행정구역 복원 자체가 인천의 매우 중요한 역사지리적 성과가 될 것이다.

2장 ‘조선 도로망’에서는 신경준의 『도로고』(1770)와 김정호의 『대동지지』(1864) 등 고문헌과 지도에 수록된 인천로와 부평로의 노선을 현재의 지형도 위에서 복원, 조선시대 경인로의 모습을 구체적으로 제시한다.

3⋅4장 ‘개항기의 도로망’과 ‘일제시기의 도로망’에서는 1883년 개항 이후 인천의 중심지가 문학동 읍치에서 제물포로 옮겨가면서 인천로가 어떻게 변화했는지를 추적한다. 일제시기에 나타난 가장 큰 변화는, 이른바 경인신작로 경로가 조선시대 내내 한남정맥을 넘겨주던 성현[별고개, 만수동] 대신 경인철도 옆 원통이고개로 옮겨간 것이다. 우리는 막연하게 일제시기의 신작로를 ‘이때 새로 만든 길’로 알고 있지만, 필자는 신작로라는 용어는 조선시대에 쓰였으며, 이때의 신작로라 해도 새로 만든 길이 아니라 기존 길을 정비한 것이라는 사실을 밝혀낸다.

5장 ‘인천, 조선의 철도시대를 개창하다’에서는 한국 최초의 철도 경인선의 역과 경로를 개통한 1899년 9월 18일부터 복원한다. 가장 논란이 되는 영등포임시정거장 또는 노량진가설정거장에 대한 진실을 찾아가는 필자의 역사지리적 방법론은 놀랍고 신기할 정도이다. 이밖에 한국의 대표적인 협궤철도였던 수인선, 지금은 터만 남아 있는 주인선 등 사라진 철로와 역에 대한 생생한 이야기의 재미가 쏠쏠하다.

6장은 교통로와 ‘인구와 취락’ 간의 관계를 기술한다. 교통로의 발달이 인구 분포 및 취락의 확산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분석하며, 인천의 주요 취락을 조선시대부터 추적함으로써 인천 도시 발달사의 기저에는 길이 있었음을 증명한다.

결론부(에필로그)에서는 교통로를 좀 더 잘 이해하기 위해서는 역사지리적 관점을 강조한다. 그 길이 언제부터 그러한 노선을 갖고 그러한 기능을 수행했으며, 언제 어떤 이유로 노선이 바뀌었다거나 기능이 확대⋅축소됐다거나 하는 식의 변화상을 기술해야 하며, 그리고 언제 어떤 이유로 소멸하여 지금은 그 길이 없어졌다거나, 반대로 확장되어 지금은 어디서 어떤 기능을 수행하고 있다는 식의 기술을 통해 그 변화상을 현재까지 끌고 와서 끝을 맺어야 한다고 역설한다.

이 책은 단순한 제도사나 과학사 관점에서의 교통사가 아닌, 길 자체에 대한 역사지리학적 접근을 시도한다. 길의 위치, 형태, 분포, 기능 등 길 자체가 시간의 흐름에 따라 어떻게 변화해왔는지를 규명하여, 우리가 무심히 걷는 길 속에 담긴 역사적 함의를 생생하게 복원한다. 이 책에서는 본격적으로 다룰 수 없었지만, 특히 교통로와 취락의 관계가 곧 도시 발달사의 키가 될 수 있다는 관점도 돋보인다.

이 책의 전반에 작동하는 키워드의 하나는 ‘복원’이다. 조선시대로부터 경인로의 노선 복원이 현재의 지도 위에서 상세하게 재현되고 있어 이 책을 들고 걸어서 시대별 경인로를 답사할 수 있다. 필자는 마지막에 인천 시민은 물론 다른 일반 독자들이 인천을 이해하는데, 혹은 이들에게 인천을 알리는데 작으나마 도움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이 책을 쓴다고 밝힌다. 이 점에서 특히 길에 관심이 있는, 인천의 역사와 지리를 깊이 있게 이해하고자 하는 시민, 학생, 전문 연구자, 여행가들에게 이 책은 충분히 추천할 만하다.

역사의 길 시리즈는 인천의 역사와 문화유산을 시민들에게 보다 많이 알리기 위해 대중서로 발간하는 사업이다. 시리즈는 온라인 또는 시중 서점에서 구매할 수 있다.

 

<문화경제 안용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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