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의 동세 좇는 박철호 작가, 가나아트서 개인전

신작 ‘Overlap(중첩)’ 연작 등 선보여

김금영 기자 2026.01.15 16:25:12

박철호 작가의 개인전 ‘오버랩(Overlap)’ 현장. 사진=가나아트

가나아트가 박철호 작가의 개인전 ‘오버랩(Overlap)’을 연다고 12일 밝혔다.

박철호는 1990년대 판화 작업을 출발점으로, 자연의 형상과 그 이면에서 작동하는 자연의 내적 원리를 지속적으로 탐구해 왔다. 초기 작업에서는 자연의 외형을 비교적 직접적으로 다루었으나, 점차 재현적 접근에서 벗어나 자연이 만들어내는 흐름과 운율을 추상적 화면으로 전환하는 데 주력해왔다.

본 전시는 초기 판화와 드로잉 작업을 비롯해 회화 연작 ‘Ripple(물결)’과 신작 ‘Overlap(중첩)’에 이르기까지 주요 작업을 아우르며, 서로 다른 매체와 형식 속에서 지속돼 온 작가의 조형적 실험과 그 사유의 궤적을 조망한다. 이를 통해 자연을 인식하고 사유하는 작가의 태도가 화면 위에서 어떻게 변주되고 축적돼 왔는지를 작업의 전개를 중심으로 선보인다.

박철호의 예술 여정은 30대 초반 미국 유학 시절을 기점으로 본격화됐다. 새로운 가능성을 모색하기 위해 뉴욕의 판화 공방에서 작업하던 시기, 그는 방향을 잃은 채 방황했다. 그러던 어느 날, 서로의 깃털을 다정하게 골라주는 비둘기 두 마리를 목격한 경험은 그의 작업에 중요한 전환점이 됐다.

박철호 작가의 개인전 ‘오버랩(Overlap)’ 현장. 사진=가나아트

이를 계기로 새에 대한 관찰을 시작한 그는 1990년대에 발표한 ‘Bird(새)’ 연작을 통해 당시 자신이 느꼈던 좌절감과 희망이 교차하는 내면의 상태를 거칠고 검은 형태의 새로 형상화했다. 날카로운 선을 겹겹이 그은 드로잉과, 오목판화 및 석판화로 표현한 검은 잉크의 거친 질감은 그의 실존적 고뇌를 직접적으로 드러낸다.

이후 작업을 지속하며 그의 관심은 개인의 실존에서 점차 자연으로 확장된다. 동식물에 대한 꾸준한 관찰과 유년 시절 자연 속에서의 경험은 그의 작업 세계를 지탱하는 중요한 토대가 됐다. 이러한 관심은 2000년대 초 ‘Leaf(잎)’ 연작을 시작으로 ‘Hive(벌집)’, ‘Flower(꽃)’ 연작으로 이어지며 자연을 박철호 작업 세계의 핵심적인 탐구 대상으로 확고히 자리매김하게 했다.

박철호 작업의 또 다른 특징은 판화와 회화를 분리하지 않는 제작 방식에 있다. 초기의 석판화와 에칭 작업은 날카로운 선과 매체 실험을 중심으로 전개됐고, 스퀴지는 점차 붓과 같은 도구로 체화됐다.

이러한 경험은 그로 하여금 2010년 무렵부터 판화의 제작 방식을 회화로 끌어들이는 실험을 시도하게 했고, 이는 곧 작업 형식의 확장으로 이어졌다. 이미지가 표면에 옮겨지고, 사라졌다가 다시 드러나는 단일한 형상을 완성하기보다 시간에 따라 축적되는 흔적과 변화에 주목하게 했다.

박철호 작가의 개인전 ‘오버랩(Overlap)’ 현장. 사진=가나아트

이러한 인식의 전환 속에서 작가가 자연을 다루는 방식은 점차 대상의 재현을 넘어, 그 안에서 발생하는 움직임과 중첩을 탐구하는 방향으로 이동했다. 이는 ‘Forest(숲)’ 연작을 거쳐 2020년대의 ‘Ripple(물결)’ 연작으로 이어지며, 자연의 흐름을 다양한 농도의 선으로 풀어내는 방식으로 드러난다.

작가는 이러한 선들의 움직임을 ‘결’이라 명명하는데, 이는 물결의 파문이나 바람에 흔들리는 나무처럼 끊임없이 변화하는 자연의 상태를 가리킨다. 그는 ‘결’이 자연 전반에 스며들어 있으며, 그 안에서 인간 또한 하나의 선으로 존재할 뿐이라는 사유를 통해 존재에 대한 성찰로 나아간다.

‘자연’을 대하는 작가의 태도

박철호 작가의 개인전 ‘오버랩(Overlap)’ 현장. 사진=가나아트

이번 전시의 중심을 이루는 신작 ‘Overlap(중첩)’ 연작은 작가가 30여 년 전 수행했던 작업 방식과 긴밀하게 맞닿아 있다. 당시 작가는 석판 위에 안료를 붓고 알코올이나 용제를 더해, 순간적으로 발생하는 화학적 반응 속에서 즉각적으로 도상을 그려냈다.

이러한 과정에서 체득된 신체적 감각은 여전히 그의 작업에 내재해 있으며 초기의 매체 실험은 시간을 가로질러 오늘날의 신작으로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액체 상태의 아크릴 물감과 달리, 분말 형태의 안료는 전혀 다른 물성과 반응을 캔버스에 남긴다. 종이의 색감을 연상시키기 위해 채색된 캔버스 바탕 위에는 먹의 농담을 떠올리게 하는 선들의 미묘한 농도 차와, 얇지만 깊이 있는 ‘결’의 표현이 두드러진다.

분말 안료 특유의 빠른 건조 속도와 번짐의 성질은 즉흥적인 행위와 오랜 시간 축적된 기술이 공존하는 화면을 만들어낸다. 작가는 선을 보다 자유롭게 풀어내기 위해 캔버스를 세운 상태에서 안료를 붓고 흘려보내는 행위를 반복한다. 이 과정에서 선은 일방적인 통제의 대상이 되기보다, 중력과 물성에 반응하며 스스로 생성된다.

그 결과 화면 위에는 의도와 우연이 겹쳐진 흔적들이 시간의 층위처럼 축적된다. 작가는 자신의 개입을 최소화한 채 재료와 과정이 작동하도록 함으로써, 작품을 하나의 열린 장으로 남겨둔다. 그 안에서 30여 년 전의 작업 방식은 현재와 병치되고, 시간의 흔적은 화면 위에 축적되어 ‘중첩(overlap)’의 상태에 이른다.

박철호 작가의 개인전 ‘오버랩(Overlap)’ 현장. 사진=가나아트

신작에서 주로 사용되는 흑과 백은 박철호의 시각 언어를 구성하는 핵심적인 색채다. 이는 물결의 이미지를 직접적으로 환기했던 이전의 푸른 색조에서 벗어나, 해석의 여지를 확장해 보다 추상적인 장을 구축하려는 시도와 맞닿아 있다. ‘Overlap(중첩)’에서 흑과 백은 극적인 대비로 작동하기보다, 농담의 미세한 차이로 나타나며 결의 움직임과 흐름을 한층 선명하게 부각한다.

회화 연작과 함께 제시된 조각 작품은 ‘Ripple(물결)’ 연작에서 이어진 형식을 바탕으로 하되, 외부 표면에만 흑색을 입히고 내부의 목재 결은 그대로 드러낸 상태로 제시된다. 이는 재료가 지닌 고유의 성질과 작가의 개입이 공존하는 지점을 시각화하며, 외부의 흑색은 초기 작업의 색채를 환기하는 동시에, 시간에 따라 축적된 조형적 선택들이 하나의 형태 안에서 중첩되는 순간을 만들어낸다.

가나아트 측은 “박철호의 작업은 자연을 추상화하는 형식적 실험에 머무르지 않는다. 그의 회화는 인간의 삶 또한 자연 일부로서 순환한다는 인식에서 출발하며, 존재의 위치를 사유하는 과정이 축적된 결과”라며 “개인의 실존에 대한 질문에서 시작된 그의 작업은 시간이 흐르며 작가라는 주체를 전면에 드러내기보다는 자연의 움직임 속으로 스며드는 방향으로 전개돼 왔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특정한 해석이나 감정을 요구하기보다, 작업이 만들어내는 밀도와 리듬이 각자의 시선 안에서 생동하기를 바란다”며 “지난 30여 년에 걸친 예술 여정은 자연의 동세를 좇아온 작가의 현재를 형성하며, ‘Overlap’은 그 여정이 이른 하나의 지점을 담아낸다”고 밝혔다. 전시는 가나아트 한남에서 이달 16일부터 다음달 19일까지.

< 문화경제 김금영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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