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 전남도립미술관 기증작품전 'A Legacy of Giving' 개최

정기용 컬렉션, 김영덕 유작

안용호 기자 2026.01.30 13:21:52

포스터. 이미지=전남도립미술관

전남도립미술관(관장 이지호)은 1월 23일부터 3월 8일까지 2026 기증작품전 《A Legacy of Giving》, “정기용 컬렉션: 플럭서스에서 모더니즘까지, 김영덕: 시대의 염원”을 개최한다.

이번 전시는 2025년 12월, 원화랑 故정기용 대표 유족이 기증한 작품 99점과 2025년 6월, 김영덕 작가 유족이 기증한 작품 10점을 중심으로, 개인의 수집과 창작이 어떻게 공공미술관의 소장품으로 전환되어 공공의 문화자산으로 활용되는지 조망하는 전시다.

개인의 미술품 수집은 단순한 취향의 수집을 넘어, 한 시대의 미술사적 흐름과 시대적 맥락을 기록하는 행위로 평가된다. 실제로 현대 미술관의 역사 역시 개인이 오랜 시간 축적해 온 작품들이 공공의 자산으로 편입되며 형성되어 왔다. 이번 전시는 이러한 기증의 과정을 통해 예술이 사적 영역을 넘어 공공의 유산으로 확장되는 지점을 집중적으로 다룬다.

故정기용 대표는 1978년 원화랑(서울 인사동, 1980년대 명동화랑, 동산방화랑과 함께 한국의 3대 화랑)을 설립한 이후 한국 모더니즘을 재조명하고, 백남준을 비롯한 국제 전위 예술과 해외에서 활동하던 한국 작가들을 국내에 소개하며 한국 현대미술의 발전을 도모했다. 그가 평생에 걸쳐 수집한 작품들은 상업적 흐름을 따라가기보다 동시대 미술의 가능성과 방향을 읽어낸 안목의 결과물이다. 이번 기증을 통해 그의 수집품은 개인이 소장하던 공간을 떠나 전남도립미술관의 소장품으로 기증되었다.

마르크샤갈(Marc Chagall), Geburt from Mein Leben, 1922, 종이에 에칭, 16x19.5, ed. 91-110, 전남도립미술관소장, 정기용 컬렉션. 사진=전남도립미술관

원화랑 기증작품, 정기용 컬렉션 99점은 한국 추상미술, 백남준과 플럭서스, 프랑스 쉬포르 쉬르파스(Support Surface), 국내외 사진 컬렉션 이외에 마르크 샤갈(Marc Chagall), 앙리 드 툴루즈 로트레크(Henri de Toulouse Lautrec) 판화 작품 등이 포함된다.

박서보, 무제, 1983, 종이에 수채, 38x70cm, 전남도립미술관소장, 정기용 컬렉션. 사진=전남도립미술관

한국의 추상에는 한국 현대 미술사의 중추를 이루는 거장들, 고암 이응노(1904-1989), 수화 김환기(1913-1974), 박서보(1931-2023) 작품들을 비롯하여 1980~90년대에 제작된 회화(문미애, 차우희, 황호섭), 조각(이형우, 박종배, 민균홍, 최기석), 판화(강승희), 드로잉(정현) 등이다. 이번 기증 작품들은 ʻ재현(Representation)’을 넘어 ʻ추상(Abstract)’으로 이행한 한국 미술사의 중요한 변화와 발전성을 품고 있다는 점에서 그 가치가 크다.

이번 정기용 컬렉션의 핵심은 99점 중 33점에 이르는 플럭서스 관련 예술가들(백남준, 요제프 보이스, 존 케이지)의 작품들이다. 백남준을 국내 미술계에 소개한 사람은 바로 정기용 대표였다. 그는 1984년 2월 원화랑에서 백남준의 국내 첫 전시를 열며 그를 세계 미술계에 알리기 시작했다. 정기용 대표는 백남준이 1984년 신년에 펼쳐진 세계 최초의 위성중계 예술 프로젝트《굿모닝 미스터 오웰》이 열릴 수 있도록 미리 2만 달러의 작품을 사주며 후원했다. 이번 기증에 포함된 요제프 보이스(Joseph Beuys)와 존 케이지(John Cage)가 함께 제작한 <보이스 복스(Good Morning, Mr. Orwell)>로 명명된 작품과 백남준의 판화 20점은 이번 기증의 백미라 할 수 있다.

백남준, 11.-20. März 1963, 1992, 종이에 실크스크린, 54.5x74x4cm, ed. 70, 전남도립미술관소장, 정기용 컬렉션. 사진=전남도립미술관

더불어 백남준과 플럭서스 계열의 작품들이 ʻ개념과 행위의 기록’을 보여준다면, 프랑스의 실험 미술 그룹인 쉬포르 쉬르파스(Support Surface) 작가들의 작품들은 ʻ회화란 무엇인가?’라는 근원적인 질문을 던지며, 컬렉션의 의미를 한층 두텁게 만든다. 이 외에도 튀르키예의 서구 표현주의와 초현실주의, 이슬람 신비주의 전통 등을 융합한 현대작가 에르긴 이난(Ergin Inan)의 작품들, 중국 작가 후샹동(Hu Xiang Dong)의 회화, 쉬용(Xu Yong)의 사진 등 이번 컬렉션의 폭이 꽤 넓다. 이처럼 故정기용 대표는 국내 미술계에서 백남준, 김환기, 김종영 등 주요 작가들을 가장 먼저 알아봤고, 그들의 대표작을 선별해 내는 남다른 감식안을 지닌 화랑주였고, 뛰어난 컬렉터였다. 이번 기증으로 그의 대표 컬렉션이 전남도립미술관에 안착하게 된 것은 미술관과 이 지역민들의 커다란 영광이다.

김영덕,우리시대의 인왕제색도, 1993,캔버스에 유채, 91x116.8cm, 전남도립미술관소장, 김영덕 컬렉션. 사진=전남도립미술관

故김영덕(1931–2020, 충남 서산生) 화백은 전쟁과 분단, 인간 존엄의 문제를 평생의 화두로 삼아온 한국 구상 회화의 대표적인 작가로 유족들에 의해 10점의 작품이 기증되었다. 그는 1950년 일본 미술대학 진학을 준비하던 중 한국전쟁이 발발해 부산에 머물게 되었고, 이 시기 국제신보(현, 국제신문) 기자로 활동하며 전쟁의 참상을 직접 목격한다. 기자로서 마주한 현실은 이후 그의 회화 세계를 규정하는 핵심적 토대가 되었으며, 그의 회화는 현실을 증언하는 수단이 되었다. 1960년에는 서울로 이주한 뒤 ‘구상전(具象展)’ 창립회원으로 작품을 발표했고, 최인호의『별들의 고향』, 박경리의 『토지』등 신문 연재소설 삽화를 맡아 대중과의 접점을 넓혔다.

그의 작품은 한국 근현대 구체적인 역사적 사건뿐만 아니라 다양한 소재로 역사의식과 민족의식을 보여주며 우리의 산천, 민중의 한과 염원을 표현한다. 이번에 기증한 <국토기행> 연작과 <인탁> 작품은 김영덕 화백의 대표작들로 평생에 걸쳐 인간의 실존과 전쟁의 아픔을 무겁게 다루었던 그의 후기 화업의 대서사시라 할 수 있다.

요제프 보이스(Joseph Beuys), Herman Hendrikter Balkt, 1978, 종이에 스크린 프린트(세리그래프), 70x50cm, ed. 40, 전남도립미술관소장, 정기용 컬렉션. 사진=전남도립미술관

정기용 컬렉션과 김영덕 유작으로 마련된《A Legacy of Giving》전은 기증을 단순한 작품 이전이 아닌, 한 시대의 예술적 판단과 가치가 다음 세대로 전달되는 문화적 행위로 바라본다. 이번 기증은 그동안 지역 미술사 중심으로 형성되어 온 미술관 소장품에 백남준, 존 케이지, 요제프 보이스 등 플럭서스 실험미술사의 한 획을 그은 작가들의 작품이 새롭게 더해진 사례이다. 이를 통해 미술관이 수행하는 학술 연구와 공공 서비스의 질적 성장을 가능하게 했다는 점에서 그 가치가 크다.

전남도립미술관 이지호 관장은 “작품의 판매나 시장적 가치보다는 훌륭한 작가를 향한 애정과 신뢰에 기반해 묵묵히 지원하는 일을 기쁨으로 여겼던 故정기용 선생의 컬렉션은, 화려한 치장보다는 엄격한 안목과 깊이 있는 내용으로 구성되어있다”며, “이는 한 개인의 미적 판단과 축적된 시간이 어떠한 기준과 책임을 통해 공공의 자산으로 전환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전쟁의 참혹함 속에서 훼손된 인권을 다룬 대표작 ⟨인탁⟩과 조국의 통일을 기원하며 제작한 ⟨국토기행⟩ 연작을 비롯해 유화 작품 총 10점을 기증해 준 故김영덕 화백님의 유족들에게 깊은 감사의 뜻을 전했다.”고 밝혔다.

 

<문화경제 안용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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