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제1회 공모를 시작으로 신진 작가의 개인전을 지원해온 금호미술관이 제23회 금호영아티스트 지원전을 지난 6일부터 열었다. 이번에 선정된 작가는 강동훈, 문주혜, 박현진, 서원미, 정수정, 최지원이며, 전시는 1부와 2부로 나뉘어 진행된다. 1부(3.6—4.12)에서는 강동훈, 문주혜, 서원미의 개인전을, 2부(4.24—5.31)에서는 박현진, 정수정, 최지원의 개인전을 선보인다.
1부에 참여하는 서원미는 ‘낮’과 ‘밤’이라는 구조적 장치를 통해 외부 세계의 서사와 내면의 감각이 교차하는 회화적 장면을 제시한다. 문주혜는 종교화와 게임에서 차용한 이미지를 재구성하여 이미지가 의미 이전의 감각으로 인식되는 순간을 경험하게 한다. 강동훈은 20세기 중반 한국 사회에서 라디오라는 청각 매체가 형성한 청취의 경험과 이를 둘러싼 정치·사회적 맥락을 사운드 설치 작업으로 구현한다
삼청동 금호미술관 3층 전시장에는 서원미 작가의 작품이 전시되고, 2층에 문주혜 작가, 1층에는 강동훈 작가의 작품을 만날 수 있다. 지하에는 이번 전시의 아카이브가 전시되어 있다.
먼저 서원미 작가는 이번 전시를 ‘대극장’이라는 타이틀로 시작한다. 타이틀처럼 전시 공간은 하나의 사건이 벌어지는 무대로 구성된다. 서 작가는 낮과 밤이라는 구조적인 장치를 통해 외부 세계의 서사와 내면의 감각이 맞물리는 회화적인 장면을 연출한다.
서 작가는 그동안 개인의 불안이나 트라우마를 주제로 삼아 왔는데, 이번에는 개인적인 경험이나 일상적인 소외를 작업으로 담아냈다.
서 작가는 자신의 그림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3층의 두 공간에서 제가 생각하는 시간의 규모나 제가 느꼈던 이야기, 상상을 그림으로 풀어냈는데, 바깥 전시실은 낮의 무대라고 생각하고 그림을 그렸고, 안쪽 전시실의 작품은 밤의 무대라는 생각으로 그림을 그렸습니다. 안쪽 방의 4개의 큰 그림들은 계절들이라는 제목으로 인생의 봄, 여름, 가을, 겨울을 그려봤어요. 예를 들어 겨울 그림은 환상의 이미지들이 위에 비춰져 있고 아래에 얼어 있는 호수를 그려, 커다란 얼굴의 형상처럼 표현했습니다. 가을 같은 경우에는 중년의 모습을 생각하면서 저도 이제 곧 맞이할 시간을 생각했어요. 주변에 있는 작가들을 관찰하며 그림을 그렸는데 겉으로 보기에는 너무 잘하고 있지만 그들만의 고민이 많고 그래서 마치 나무들처럼 꽉 막혀 있는 것 같은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면서 앞이 꽉 막힌 나무들이 하나의 길처럼 보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낮의 무대가 외부 세계에서 발생하는 사건의 양상을 드러낸다면, 밤의 무대는 내면으로 회귀한 작가의 심리적 풍경을 표상한다. 바깥 전시실은 외부 세계의 서사가 촘촘히 쌓인 낮의 무대로 구성되어 밀도 높은 공간감을 형성한다. 반면 안쪽 전시실은 사적 감각이 확장되는 밤의 무대로 제시되며, 순환하는 시간의 리듬 속에서 보다 느슨하고 열린 공간으로 작동한다. 두 무대는 동일한 하루의 양면이 각각의 세계가 교차하는 구조로서 ‘사건’ 중심에서 ‘감각’ 중심으로 옮겨간 작가의 변화한 태도를 드러낸다.
문주혜 작가는 종교화나 게임에서 두드러지게 드러나는 상징성과 내러티브가 확실히 드러나는 이미지에 관심이 많다. 그래서 그런 이미지들을 모아 재구성하는 방식의 작업을 한다. 작가의 이번 전시 제목이 ‘크로스헤어 플러스 플러스 플러스’인데 혼란스러운 세상 속에서 작가가 어떤 것을 바라보고 어떤 것을 좀 조준하며 나아가야 될지에 대한 ‘조준선’이라는 키워드를 가져 왔다. 게임을 좋아하는 게임에서 조준선에 대한 키워드를 따왔고 바닥의 카페트도 게임 속 베이스 캠프에서 가져온 것이다.
문 작가는 이미지에 대한 탐구와 더불어 색이 지닌 상징성에 주목한다. 게임에서의 파랑은 마법이나 에너지 같은 긍정적인 의미를 지니는 반면, 빨강은 체력의 소진이나 위험을 알리는 징후로 코드화되어 있다. 이처럼 ‘색’은 이미지가 지닌 관습적 의미를 강화하고 세계관을 직관적으로 감각하게 하는 장치로 기능한다. 하지만 작가는 색의 상징 체계를 교란함으로써 이미지의 위계를 무력화하고, 색이 지닌 신호를 다른 방식으로 읽어내도록 요청한다.
‘The Last Supper’(2025)는 검정을 주조색으로 삼아 ‘최후의 만찬’(1495-1498)의 구도를 재현하며, 그 위로 부유하는 노란 박쥐와 붉은 비둘기의 형상은 원작의 상징적 질서를 벗어나 이미지의 위계와 의미망을 새롭게 엮어낸다.
문 작가는 “이미지를 바라볼 때 해석하는 사람에 따라 내용이 바뀌고 상황이나 어떤 시간에 따라 내용이 바뀐다고 생각했고 이미지들은 오히려 고유하게 화면 안에서 존재한다고 생각합니다”라고 말했다.”
네 마리의 말이 관람객의 눈을 사로잡는 ‘가버나움으로 가는 길’은 물 위를 걷는 베드로를 말로 형상화했다. 말은 생명력과 힘을 상징하지만 죽음의 이미지도 중첩되어 있다.
한편 작가는 동양화의 재료인 장지와 안료를 사용해 거친 표면 위에 옅은 물감을 겹겹이 쌓아 올린다. 종이 속으로 스며든 색의 층은 화면에 축적된 시간과 흔적을 고스란히 드러내며 새로운 감각적 표면을 구축한다.
마지막으로 강동훈 작가는 사운드 아티스트가 아니다. 작가는 음악적인 언어와 다양한 매체를 결합해서 작업을 한다는 점에서 다원예술의 방식으로 작업을 확장하는 작가이다. 강동훈 작가의 작업은 서양음악을 다루는 동양인이라는 자기 인식에서 출발해, 우리가 음악이라 부르는 체계가 역사와 정치적인 조건 속에서 형성된 구성물이라는 문제의식으로 확장된다. 이러한 인식은 근대 이후 시각 중심의 지식 체계가 청각을 부차적인 감각으로 종속시켜 온 역사와 맞물리며, 작가는 이와 같은 위계적 구조를 비판적으로 되짚는다. 그 결과 그의 작업은 시각 언어를 최소화하고 소리를 중심으로 감각 경험을 확장하려는 시도로 이어진다.
이번 전시에서 작가는 직접 작사 작곡한 창작극을 뮤지컬 형식으로 선보이는데, 배우가 직접 등장하지는 않고 조명과 소리로만 구성된 비어 있는 공간에서 작품을 감상한다는 점에서 일반적인 공연과는 다르다.
이번 전시 ‘트라이글로시아 Triglossia’는 냉전 시기 대한민국 방송사의 시작과 그에 얽힌 정치·사회적 맥락을 다루며, 전시와 출판물 형태로 전개되는 연작 『동서』와 『남북』 가운데 ‘남·북’을 다루는 장에 해당한다.
전시 제목인 ‘트라이글로시아(Triglossia)’는 하나의 공동체 안에서 서로 다른 세 언어가 정치·사회적 이유로 동시에 사용되는 사회언어학적인 현상을 가리킨다. 작가는 이 개념을 이론적 틀로 삼아 근대화와 식민지화의 과정 속에서 핵심 대중매체였던 라디오가 개인과 공동체에게 어떤 방식으로 기능해왔는지 질문한다. 전시된 라디오 중 하나는 1959년 출시된 금성사의 첫 제품이다.
작가는 일제강점기의 식민 통치 아래 여러 이념이 교차하던 혼란한 시기를 배경으로 한 가상의 드라마 대본을 집필하고, 배우 및 연주자들과 협업한 사운드를 통해 극적인 공간을 구성하였다.
뮤지컬 배우 남경욱이 참여해 노래를 부른 25분 분량의 작품은 라디오 드라마, 뮤지컬, 사운드 작품이 될 수 있는 작품으로 5.1채널을 사용해 영화관 같은 효과를 낸다.
관람객은 다채널의 음향을 통해 전해지는 음악과 가사, 극의 흐름, 인물 간의 대화를 청취하며 당대의 분위기를 입체적으로 감각하게 된다. 이를 통해 작가는 소리가 역사적인 맥락에서 구성되어 온 조건을 드러내고, 비가시적인 청각 매체의 조형적인 가능성을 확장한다.
이번 전시를 통해 관람객은 세 작가가 감각을 조직하고 경험을 구조화하는 방식을 서로 다른 경로로 탐색할 수 있다. 소리로 감각하는 청취의 무대, 지속과 유예가 순환하는 화면, 익숙한 인식의 틀을 흔드는 이미지는 전시 안에서 함께 제시되며, 각자가 세계와 접속하는 방식의 차이를 선명하게 드러낸다. 이들은 서로 다른 감각의 길을 열어 세계와 주체의 관계를 재구성하고, 우리가 보고, 듣고, 믿어왔던 규칙들을 잠시 느슨하게 풀어놓는다.
<문화경제 안용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