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도립미술관(관장 이지호)은 3월 18일부터 6월 14일까지《直軒 허달재, 삶을 품다》전을 개최한다. 이번 전시는 전통 수묵의 동시대적 가치를 재조명하고 그 예술적 지평을 넓히고자 마련된 자리로, 직헌(直軒) 허달재 화백을 초대해 전통에 대한 깊은 사유를 현대적 감각으로 풀어낸 그의 예술세계를 조명한다.
직헌 허달재(1952~ )는 남종화의 거장 의재(毅齋) 허백련(1891~1977)의 손자이자 소치(許鍊) 허련(1808~1893)의 후손이다. 호남 화단의 유서 깊은 예술적 맥락 속에서 성장한 그는 어린 시절부터 조부 의재의 곁에서 한문과 회화의 기초를 배우며 문인화의 정신적 토대를 체득했고, 자연스럽게 삶과 예술에 남도 문인화의 맥이 이어졌다. ‘바른 마음가짐’을 뜻하는 호 직헌(直軒)처럼 그는 전통의 근간 위에 현대적 감각을 더하며 한국화의 새로운 지평을 열어왔다.
1980년대에는 뉴욕주립대학교와 스토니브룩대학교 객원교수를 역임했으며, 1996년 파리 피에르 가르뎅 미술관 초대전 등 미국과 유럽 주요 무대에서 활동하며 한국 미술의 가치를 알렸다. 그의 국제적 활동은 서구에 한국화를 소개하는 데 그치지 않고, 동양화의 본고장인 중국 화단으로 확장되었다. 2011년 북경 화원미술관을 비롯해 심천, 상해 등지의 주요 공공미술관에서 개최된 초대전은 현대 한국화의 예술적 위상을 드높이며 해외 미술계에서 큰 주목을 받았다.
이처럼 세계 무대에서 활약해 온 그는 남도 문인화의 전통에 현대적 감각을 조화시킨 ‘신(新)남종화’라는 독자적 예술세계를 이루었다. 사실적 묘사에 치중하는 북종화와 달리, 작가의 내면과 상징성을 중시하는 남종화의 정수를 오늘의 언어로 재해석한 그의 작품은 국립현대미술관, 청와대, 중국미술관, 상해미술관 및 아부다비 왕족 컬렉션 등 국내외 유수 기관에 소장되어 그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그간의 전시가 작가의 예술 형성과 정신적 근원을 조명했다면,《直軒 허달재, 삶을 품다》전은 섬, 매화, 모란, 돌 시리즈 등을 소재별로 구성해 작품 세계를 보다 밀도 있게 보여준다. ‘매화’ 시리즈는 정중동(靜中動), 곧 고요함 속에 응축된 생명력의 움직임을 보여주는 허달재 수묵 미학의 정수이다. 전통의 깊은 필력과 현대적 감각이 만나는 그의 매화도는 선비의 엄격함 대신에 내면의 품격을 마주하게 한다. ‘돌’ 시리즈는 만물을 순환시키는 자연의 근본이자 침묵 속에서 오랜 세월을 견뎌온 산수(山水)의 원형으로, 관조를 통해 본 아득히 먼 선경(仙境)을 보여준다.
이번 전시에서 처음 공개되는 ‘섬’ 시리즈는 허달재 예술의 새로운 지평을 제시한다. 그의 산수화는 관물취상(觀物取象)의 태도로 자연을 재구성한 풍경으로, 자연을 사유와 정신의 원천으로 바라본다. 이는 실재와 사유가 교차하는 가운데 마음으로 노니는 ‘와유(臥遊) 산수’의 경지를 구현한다.
이처럼 전시에서 소개되는 매화와 모란, 돌과 섬 시리즈 등은 고요 속의 움직임, 절제 속의 생명력, 전통 속의 새로움이라는 역설적 조화로 오늘날의 수묵이 나아갈 방향이기도 하다. 허달재 화백의 예술은 우리가 의식하지 못했던 내재적 생명을 자각하고 표현하는 행위인 그의 삶 자체를 담고 있다. 이것은 오랜 전통을 삶 속에서 체화하고 이를 동시대적 언어로 다시 길어 올림으로써 과거와 현재를 잇는 창조적 계승의 길로 이끈다.
전남도립미술관 이지호 관장은 “허달재의 예술세계는 전통 한국화의 선비적 품격과 장인적 필력을 바탕으로 고아하고 화려한 기운 속에서 격조 높은 예술의 경지를 보여준다”며, “묵향 속에 피어난 봄의 생동감과 거장의 깊은 철학을 많은 분들과 함께 했으면 한다”고 밝혔다.
한편, 이번 전시의 개막식은 3월 18일(수) 오후 3시에 개최될 것이며 전시 연계 프로그램으로 4월 중 아티스트 토크를 진행할 예정이다. 이를 통해 전시에 대한 이해를 심화하고, 작가의 작업 세계를 관람객과 보다 깊이 공유하는 장을 마련한다.
<문화경제 안용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