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갤러리는 3월 19일부터 5월 10일까지 한옥과 K3에서 한국계 캐나다 작가 로터스 강(Lotus L. Kang)의 개인전 ‘코라(Chora)’를 개최한다.
한국에서의 첫 개인전인 이번 전시에서 작가는 ‘유산(inheritance)’의 개념을 하나의 체현된 조건으로 바라보고, 특히 개인의 유산을 비단 혈통이라는 사적 서사의 맥락에 국한하지 않고 건축과 환경, 그리고 기억의 차원으로 확장한다. 이에 한옥이라는 전통 건축물과 현대 건축물인 K3를 함께 아우르는 전시 구성을 통해 과거와 현재가 위계 없이 공존하는 공간을 구현하고자 한다.
로터스 강 작가는 조각, 사진, 영상 그리고 장소 특정적일 뿐만 아니라 장소 반응적이라고 할 수 있는 설치 작업들을 시도해 왔다. 그러면서 취약성과 불안정성 그리고 비연속성에 대한 화두를 꾸준히 제시해 왔다. .그리고 이런 매체의 가변성을 통해서 신체, 기억 그리고 공간이 어떻게 서로 침투하고 또 변해가는지를 매우 감각적인 조형 언어로 표현하고 있다.
이번 전시는 ‘코라(Chora)’라는 핵심적인 개념을 바탕으로 하고 있고 동시에 갤러리의 한옥 공간과 K3, 이 서로 다른 두 공간을 독자적으로 해석한 작업들을 선보이고 있다. 이는 의미나 형상이 고정되기 전 원초적인 부정형의 공간이다.
작가는 코라에 대해 “줄리아 크리스테바라는 철학자의 개념에서 채용을 한 것이다. 이 개념은 일종의 유동적인 전개의 단계, 말하자면 태아와 엄마의 몸 관계 안에서 형태가 없고 혼돈에 휩싸여 있는, 언어 이전의 어떤 혼돈의 단계와 같은 것을 가리키는 단어이다”라고 설명했다.
크리스테바는 이 코라 개념을 더 확장적으로 생각해 모든 의미가 만들어지는 과정이 사실은 언어가 존재하지 않고 구조가 존재하지 않는 것 안에서 구조가 탄생하는 것이라고 여긴다. 또한 이 코라라는 공간은 예술가를 위한, 시인을 위한 공간이라고 이야기한다.
로터스 강 작가는 한국계 캐나다인으로서 한국에 뿌리를 두고 있지만 자라지 않은 입장에서 이 개념을 통해 돌아올 수 없는 것들로 다시 돌아오는 것, 말하자면 형체가 없는 것으로 돌아오는 것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었다. 그래서 작가는 비어 있는 것, 한옥 마당을 출발점으로 삼고자 했다.
한옥 마당에 있는 배가 고파 먹이를 달라는 듯 보이는 아기 새 조각은 일방적으로 주거나 받는 관계가 아니라 끊임없이 무언가 전달되고 있는 중간의 어떤 상태라고 할 수 있다.
한옥 작품 중에는 바닥의 작품이 벽에 걸려 있는 작품에 비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루미노그램이라고 부르는 작품은 이름(빛이라는 의미의 루미나)에서 알 수 있듯이 암실에서 빛을 활용해서 만드는 작업이다. 일반적인 사진과 다르게 흔히 우리가 암실에서 지켜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들을 오용하거나 잘못 사용하는 식으로 만들어지는 작업이다. 감광지 위에 나일론 장바구니를 올려 확대해 포착한 이미지들은 몸의 세포 혹은 힘줄과 닮아 있다. 작가는 이를 시냅스라고 부른다. 시냅스라는 것은 신경과 신경 사이에서 어떤 기억과 같은 것을 전달하는 역할을 한다.
한옥의 내부에는 실리콘, 포토그램(photogram), 주물 등으로 만든 평면 콜라주 연작 〈중배엽(Mesoderm)〉이 위치한다. ‘중배엽’이란 배아가 근육과 뼈, 결합 조직으로 분화하기 이전의 상태를 가리키는 용어로, 완성된 형상을 묘사하기보다 생성의 과정을 나타낸다. 이러한 생물학적 연상은 암실에서 카메라 없이 빛과 물성만으로 감광물에 이미지를 생성하는 루미노그램(luminogram)을 활용한 〈Synapse〉 연작으로 이어진다. 감광지 위에 나일론 장바구니를 올려 확대해 포착한 이미지들은 몸의 세포 혹은 힘줄과 닮아 있다.
한편, K3에서는 한옥의 마당을 현대 건축물 안에 번안한 〈Chora Chora〉(2025–2026) 설치작을 선보인다. 이번 전시를 통해 처음 공개되는 이 작품은 연근의 다공성 구조를 연상시키는 강철 조이스트(joist) 구조물을 기반으로 한다. 작가는 구조물 위에 반투명 천을 덮고 이를 거울 바닥 위에 설치함으로써 무한히 확장되는 공간성을 부여한다.
이는 구조적 안정성에 대한 개념을 뒤흔드는 동시에, 더 나아가 작가 자신의 정체성을 이해하는 방식을 드러낸다. 완전히 차 있지도, 완전히 비어 있지도 않은 상태의 〈Chora Chora〉 안에서 마치 아기 새가 어미의 소화를 거친 먹이를 통해 생존하듯, 작가 또한 본인에게 주어진 역사를 자신만의 해석으로 소화하여 전유한다. 선형적인 시간의 흐름을 따르기 보다는 서로 다른 시간성을 하나의 공간에 중첩시키는 것이다.
구조물의 크기는 한옥 마당의 크기와 정확히 일치한다. 금속 재료 구멍이 뚫려 있고 빈 칸이 있는 보이드가 있는 재료를 써서 만들었는데 구조물을 덮은 패브릭은 스크린으로도 기능한다.
전시장에 새로 마련된 이 ‘마당’(스크린) 위로는 두 편의 영상이 상영된다. 첫 번째 영상은 전라도 갯벌을 방문한 여정을, 두 번째 영상은 작가가 마흔 번째 생일을 맞아 수행한 의식 기반의 퍼포먼스를 담고 있다. 특히 후자의 작업에서 작가는 해변을 49바퀴 도는 자신의 모습을 기록했는데, 이는 삶과 죽음, 그리고 회귀를 사유하는 몸짓이다. 이는 새로운 터에 복을 기원하고 영혼을 맞이하고자 마당 이곳저곳에 설치한 술병들과도 공명한다. 영상의 속도가 2분의 1 속도로 재생이 되고 있는데, 이 안에서는 시간이 느려지고 어쩌면 작품을 보는 관람객의 시간도 늦어지게 되기를 바라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또한 K3의 마당 구조물 주위에는 알루미늄 및 청동으로 캐스팅한 수백 마리의 멸치를 엮은 풍경(風磬) 구조물이 설치되어 있으며, 그 그림자가 영상 위로 나타났다 사라지기를 반복한다.
마당 뒤편에 매달린 일련의 필름 설치작 〈Molt (Woodridge-New York-Seoul-)〉(2024–2026) 역시 시간을 기록하고 있다. 분홍, 보라, 노랑의 색조를 띤 이 대규모 필름을 두고 작가는 ‘피부’라 칭하며 내부와 외부의 경계를 흐린다. 피부란 본래 신체의 내부와 바깥 세상을 구분하는 역할을 하지만, 이 작품에서는 오히려 그 경계 자체가 지워진다. 이 필름 연작은 뉴욕 스튜디오 및 뉴욕 북부에 위치한 작가의 온실에서 제작되는데, 작가는 필름이라는 재료를 그곳의 햇빛과 같은 자연 환경에 노출시키는 과정을 두고 ‘태닝(tanning)한다’고 표현한다.
이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물 자국, 곤충의 흔적, 습기 등이 흡수되어 필름에 새로운 연쇄반응을 생성함과 동시에 필름이 본래 지니고 있던 이미지 생성의 기능은 상실된다. 작품이 설치된 전시장 내에서도 필름은 주변 환경에 지속적으로 반응하며 작가가 구축해온 시공간의 흔적을 품고 또 축적한다.
<문화경제 안용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