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민미술관, 건축 100년 기념 2026년 상반기 기획전 개최

동시대의 혼란과 오류, 시행착오에 주목하는 국내외 작가 7인(팀) 참여

안용호 기자 2026.04.01 15:24:34

전시실 전시 전경. ⓒ 사진 제공: 일민미술관.  사진: 스튜디오 오실로스코프(Studio Oscilloscope)

일민미술관(관장 김태령)은 건축 100년을 맞아 4월 1일부터 5월 31일까지 《기.기.기(奇.己.氣): 동시대와 시행착오》(이하 《기.기.기》)를 개최한다. 미술관 건축 100주년을 기념해 연말까지 이어지는 릴레이 프로그램의 첫 순서다. 일민미술관은 1926년 완공된 동아일보 사옥에서 비롯한다. 한국 근현대의 격랑을 통과하면서 우연과 필연이 한 데 쌓인 이 장소는 무엇도 완전히 같거나 새롭지 않은 우리 시대의 상황과 공명한다. 《기.기.기》는 이러한 감각을 동시대가 지속되는 방식으로 이해하며, 견고한 체계 ‘바깥’을 상상하는 출발점으로 삼는다.

2전시실 전시 전경. ⓒ 사진 제공: 일민미술관.  사진: 스튜디오 오실로스코프(Studio Oscilloscope) 

《기.기.기》의 세 가지 ‘기’는 같은 소리에 여러 가지 뜻을 담고 있다. 정상의 범주를 벗어나는
기이함(奇), 자기 자신의 의미를 고정하지 않고 혼란을 증폭시키는 상태(己), 잔향·기류·진동처럼 측정하기 어려운 분위기(氣)를 미술의 형식으로 다루는 7인(팀)의 작가가 전시에 참여한다. 이들의 작업은 마치 ‘시행착오’처럼 보이지만, 정답을 도출하기 위한 개선 과정이 아니라 매끈히 마감된 현실로부터 각성하려는 오류의 수행이다.

2전시실 전시 전경. ⓒ 사진 제공: 일민미술관.  사진: 스튜디오 오실로스코프(Studio Oscilloscope)

아그네스 퀘스천마크(Agnes Questionmark)는 MTF(Male-to-Female, 남성에서 여성으로 성전환) 과정의 의료적 개입을 영상 설치와 조각으로 전치한다. 진단과 수술을 통제의 정치 행위로 읽고 규정 불가능한 존재로 머무르는 변형을 시도한다. 유지오의 작업은 권력 교환과 유희의 시스템을 차용하기 위해 오히려 정해진 프레임이나 경로에 구속된다. 그의 조각은 힘의 체계를 전유하는 동시에
출처와 기능이 불분명한 물질을 엮어 개인의 정동을 표현한다. 홍은주에게 현대 기술은 인간의 욕망과 결핍을 비추는 돋보기이다. 기술과 체제에 관한 무성한 소문 속에서 발견되는 감정과 물질에 주목한다.

3전시실 전시 전경. ⓒ 사진 제공: 일민미술관.  사진: 스튜디오 오실로스코프(Studio Oscilloscope)

 

3전시실 전시 전경. ⓒ 사진 제공: 일민미술관.  사진: 스튜디오 오실로스코프(Studio Oscilloscope)

오웬 라이언(Eoghan Ryan)은 15년간 아버지가 보낸 신문 스크랩과 역사적 아카이브를 엮어 기이한
우화를 만든다. 신작 〈지독한 단순화들 Terrible Simplifiers〉( 2026)은 전시실 내부에서 미술관 옥상과 동아미디어센터의 대형 미디어 파사드로 이어져, 시각 기호가 권력을 행사하는 방식에 대한 의구심을 전시 바깥으로 확장한다. 제니퍼 칼바료(Jennifer Carvalho)는 과거의 종교화와 현대 영화의 스틸컷을 참조해 예술이 우리 시대에 남긴 이념과 약속을 ‘발굴’하는 고고학적 회화를 선보인다. 과거를 복원하는 것을 넘어 작가에 의한 오독과 변질의 가능성을 실험한다.

3전시실 전시 전경. ⓒ 사진 제공: 일민미술관.  사진: 스튜디오 오실로스코프(Studio Oscilloscope)

언메이크랩은 인공지능이 쏟아내는 부산물로부터 인간의 문화적 과오가 증폭되는 과정을 추적한다. 송민정은 우리 시대 특유의 분위기를 다룬다. 의도적으로 고양된 스펙터클과 특별한 사건 없이 이어지는 평범한 이미지를 교차하면서 견고하면서도 무른 동시대의 속성을 포착한다.

 

일민미술관의 《기.기.기》는 세계 혹은 체제 어딘가에 초월적인 출구가 있다고 가정하기보다,
현실 곳곳의 균열과 삐걱거림 속에서 불현듯 찾아드는 외부의 감각에 주목하는 전시다. 이러한 시도는 아무것도 완전히 새로워지지 않는 루프에서 ‘끝나지 않는’ 동시대의 저주를 조건으로 삼는 미술 특유의 실천이다.

 

개막 첫 주에는 연계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4월 4일(토)에는 언메이크랩의 렉처 퍼포먼스 〈기계의 우화〉가 열린다. 4월 5일(일)에는 오웬 라이언의 아티스트 토크 〈광장과 개소리〉가 이어진다.

 

<문화경제 안용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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