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현대미술관, MMCA 다원예술 2026 ‘탐정의 시간’… “예술가, 아이들, 혹은 관객이 탐구하는 느린 시간”

2개년 프로젝트의 1부 ‘신체적 관찰과 추적’… 동시대 음악가 료지 이케다, 박민희, 크리스토퍼 놀란 등의 예술 세계를 탐구할 수 있는 기회

안용호 기자 2026.04.01 16:48:48

리시버에 의존해 다른 연주자가 아닌 오로지 자신의 연주에만 집중하는 앙상블 모데른. 사진=문화경제 안용호 기자 

국립현대미술관은 다원예술 2026 《탐정의 시간》을 4월 1일(수)부터 12월 6일(일)까지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에서 개최한다.

MMCA 다원예술은 2018년부터 장르의 경계를 허물고 예술의 영역을 확장하며 미술관의 역할과 예술의 가능성을 모색하는 다학제·융복합 프로그램이다.

다원예술 2026 《탐정의 시간》은 지난 2년간 다뤄온 ‘공간’에 대한 탐구를 ‘시간’의 차원으로 전환하며 질문의 깊이를 더한다. 2024년 《우주 엘리베이터》가 수직적 상상력과 지구 밖의 감각을, 2025년 《숲》이 인간과 비인간이 공존하는 생태적 공간을 다뤘다면, 2026년은 이러한 공간들을 관통하는 시간의 층위를 이야기한다.

《탐정의 시간》은 2026-27년 2년에 걸쳐 전개되는 장기 프로젝트다. 올해 열리는 1부는 탐정의 끈질긴 ‘신체적 관찰과 추적’에 집중하며 2027년에 이어질 2부는 ‘지연된 이탈과 느린 탈주’를 주제어로 인간의 갈망과 도달할 수 없음을 다룰 예정이다.

기자간담회에서 인사말을 전하는 김성희 국립현대미술관 관장. 사진=문화경제 안용호 기자

김성희 국립현대미술관 관장은 “지난 2년간은 공간에 대한 탐구의 시간이었다고 한다면 올해 다원 예술은 시간의 차원으로 전환했다. 탐정의 시간이라는 주제 아래 다양한 프로그램을 월별 순차적으로 공개한다. 탐정의 시간이라는 아주 재미있는 타이틀을 달고 있지만 내용은 인공지능이 즉문 즉답하는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의 삶을 한 번쯤 성찰하게 만든다.

모든 것에 안성맞춤한 답변이 제공되는 시대, 알고리즘이 태우는 확진 편향이 심각한 사회 문제가 되는 시대에 우리 모두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관찰자의 시선, 스스로 탐구하는 시간이 아닌가 하는 화두를 던진다. 이러한 주제 의식을 담아 다원예술 2026의 첫 시작으로 동시대 대표 전자 음악 작곡과 료지 이케다와 현대 음악 공연팀 앙상블 모데른의 협업을 현장에서 직접 만나보실 수 있다”라고 소개했다.

다원예술 2026년 《탐정의 시간》 1부는 지난 2년간 다뤄온 공간에 대한 탐구를 시간의 차원으로 전화하며 질문의 깊이를 더한다. 2024년 ‘우주 엘리베이터’가 수직적 상상력과 지구 밖의 감각을, 2025년 ‘숲’이 인간과 비인간의 공존을 수평적 생태 공간에서 다뤘다면 2026년은 이러한 공간들을 관통하는 시간의 층위를 이야기한다.

탐정의 시간은 ‘길을 잃은 탐정의 느린 시간’이라고 할 수 있다. ‘탐정’은 AI시대에 예술이 제안하는 인간 고유의 태도이다. AI가 방대한 데이터로 즉각적인 답변과 최적화를 추구한다면, 탐정은 정반대의 길을 걷는다.


이 프로그램이 제안하는 탐정은, 동시대 예술가, 아이들, 혹은 어떤 관객들이이자, 답을 복기하고 새롭게 사유하는 존재들, 불현듯 지나간 관람과 감상을 다시금 생각하는 존재들이다. 탐정의 시간은 심원한 시간, 무한에 가까운 시간이지만 그 시간의 층위에는 변화와 에너지의 흔적이 켜켜이 쌓여있다. 누군가를 유심히 살펴보고 그 사람의 흔적을 의아하게 생각하는 존재는 이제 탐정 외에는 많지 않다

정여름 Imgae by the artist. 이미지 제공=국립현대미술관

아티스트들도 마찬가지이다. 자신의 과거에 있었던 여러 가지 기억들이나 사건들이나 혹은 경험들을 현대화시키는 것이 이번 다원예술에서 중요한 부분이다. 그것을 리스테이지라고 얘기하거나 혹은 리폼 또는 리플렉션 같은 작업이나 어떤 예술의 방향성이라고 생각해 볼 수 있다.

다원예술 2026은 4월부터 11월까지 다양한 프로그램을 월별로 순차 공개된다. 4월에는 동시대를 대표하는 전자음악 작곡가 료지 이케다(Ryoji Ikeda)와 현대음악 공연단체인 앙상블 모데른(Ensemble Modern)이 협업한 <현악기를 위한 음악>을 개막한다. 30년간 전자음악과 디지털 작업에 집중한 이케다가 수학적 정밀성을 어쿠스틱으로 번역한 도전적인 작업으로, 4월 1일(수) 공연 이후 료지 이케다의 아티스트 토크가 진행된다.

앙상블 모데른의 연주 장면. 사진=문화경제 안용호 기자

료지 이케다와 현대음악 공연단체 앙상블 모데른의 만남은 2017년부터 시작되어 약 7년이 되어 열매를 맺었다. 기자간담회 후 공개된 리허설에서는 연주자들이 서로를 바라보면서 어느 정도 커뮤니케이션을 하는 보통의 연주와는 달리, 연주자들이 모두 직선으로 앉아 평소와는 다른 연주 방식으로 진행됐고 또 관객들도 아주 다른 느낌을 받았다. 이러한 특별한 배열 때문에 연주자들은 서로의 음악을 들을 수 없고 각각의 연주자는 귀에 리시버를 끼고 연주했다. 리시버에만 집중 하다보니 언제 내가 연주해야 할지를 생각해야 하고 서로를 볼 수도 없고 커뮤니케이션을 할 수도 없게 된다. 료지 이케다는 이러한 특별한 방식으로 관객들과 연주자들이 조금 더 순수하게 한 악기의 소리 그 자체에 집중하길 바랐다. 또한 료지 이케다는 의도적으로 연주자들에게 신체적 움직임을 자제해달라고 이야기하기도 했다고 한다.

마말리안 다이빙 리플렉스 Photo by John Lauener. 사진 제공=국립현대미술관

5월에는 캐나다의 참여형 퍼포먼스 단체 마말리안 다이빙 리플렉스(Mammalian Diving Reflex)가 <아이들의 헤어컷>을 선보인다. 8~12세 어린이들이 마말리안 다이빙 리플렉스와 브랜드 차홍의 헤어 아티스트로부터 워크숍과 전문교육을 받은 뒤 미술관 마당에서 대중에게 무료로 이발 서비스를 제공하는 프로젝트다. 아이가 성인을 관찰하고 미용을 제공하면서 전통적 권력 관계를 뒤집는 유쾌한 실험을 시도한다.

엘 콘데 데 토레필 Photo by Andrea Macchia. 사진 제공=국립현대미술관

7월에는 바르셀로나 기반 연극 듀오 엘 콘데 데 토레필(El Conde de Torrefiel)의 <호수의 빛>이 무대에 오른다. 2036년을 배경으로 인공지능이 만든 오페라의 초연 등 4편의 서로 다른 시공간이 중첩되고 시각적으로 겹치는 작업을 통해 현대사회의 삶과 예술을 다룬다.

9월에는 네덜란드 작가 3명(리타 후프와이크, 살로메 무이, 샘 쇼이어만)과 한국 작가 2명(신서, 위성희)이 참여하는 《MMCA 다원예술 쇼케이스 서울》이 개최된다. 이 세 명의 네덜란드 작가는 광주비엔날레 네덜란드 파빌리온에 참여하면서 서울에서의 퍼포먼스를 설치와 퍼포먼스 그리고 워크숍 등으로 확장한다.

10월 박민희의 신작 <내청內聽의 무대(가제)>는 소리와 신체로 쓴 탐정의 보고서라고 말할 수 있다. 단어와 음절에 깃든 공간을 다 표현하려는 가곡의 시간 감각은 짧은 구절을 반복하는 시대와 어긋나 있다. 이번 작업은 외부를 위한 빠른 노래가 아닌, 부르는 자와 듣는 자의 내부의 미세한 소리와 마음의 흔적을 듣고자 하는 탐정의 경청이다. 박민희는 자신의 프로젝트를 “가곡이라는 음악의 감상은 타인의 노래를 듣는 것으로 하는 것이 아닌 행위자의 내면에서 그것이 발생할 때 그리고 행위자의 정신이 깨끗하게 비워져 있을 때, 신체 안에 어떤 정신적인 무대가 마련되어 있을 때 비로소 감상이 가능하다는 생각을 퍼포먼스로 구성해 보려한다”라고 소개했다.

12월에는 주로 영상매체를 활용해 ‘장소’에 얽힌 기억과 권력의 구조를 탐구하는 정여름의 첫 공연을 선보인다. 신작 <목교木橋(가제)>는 일본의 연쇄 살인범이자 작가였던 나가야마 노리오(1949~1997, Nagayama Norio)가 쓴 텍스트와 주체성 변화를 관찰하며 그가 사용한 ‘인칭’의 변화를 집요하게 추적하며 가해자와 피해자, 그리고 이를 바라보는 사회의 시선을 해부한다.

크리스토퍼 놀란 Film still . 사진 제공=국립현대미술관

집요한 관찰과 추적의 미학을 독특한 시간감각으로 보여주는 감독 크리스토퍼 놀란의 영화 <미행(Following)>은 2027년에 예정된 2부 ‘지연된 이탈과 느린 탈주’로 나아가는 가교가 된다. 이 영화는 어떤 예술가가 행하는 무목적적인 관찰과 추적이 어떻게 대상의 세계에 개입하고 관찰자 자신을 변화시키는지를 보여준다.

<문화경제 안용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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