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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도착 시각’ 탓 빚어진 ‘조문 참사’와 ‘한영 정상회담 참사’ … 전용기는 왜 더 일찍 출발 못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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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최영태⁄ 2022.09.20 12:08:06

윤석열 대통령이 19일 엘리자베스 2세 여왕 장례식에 참석한 뒤 조문록을 작성하고 있다. (사진=영국 외교부)

조문 외교 참사가 발생했다. 조문을 하겠다고 윤석열 대통령 내외가 영국까지 날아갔지만 조문을 못하고, 장례식을 마친 뒤 조문록에 사인하는 것으로 그쳤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이에 대해 19일(현지 시간) 브리핑에서 “비행기가 저희가 일정을 조정하면서 더 일찍 도착하면 좋았겠지만 그렇지 않았던 불가피한 상황이 있었기 때문에 어제 이른 오후까지 도착했던 정상은 조문을 할 수 있었고, 런던의 여러 복합한 상황으로 인해서 어제 이른 오후 이후, 즉 한 오후 2-3시에 도착하신 정상은 오늘로 조문록 작성이 안내가 됐다. 따라서 윤석열 대통령은 오늘 조문록을 작성한다”고 해명했다. 긴 문장을 짧게 정리한다면 ‘늦게 도착했기 때문에 조문을 못했다’가 된다.

민항기를 이용한 것도 아니고 전용기로 출발한 것인데 왜 “비행기가 저희가 일정을 조정하면서 더 일찍 도착하면 좋았겠지만 그렇지 않았던 불가피한 상황이 있었”던 것일까?

도대체 왜 전용기 출발은 오전 9시였나?

탁현민 직전 청와대 의전비서관은 20일 tbs ‘김어준의 뉴스공장’과의 인터뷰에서 “대통령의 전용기가 뜰 때는 최소한 며칠 전에 항공통제관이 현지 출-도착을 확인하고 돌아온다”고 청와대 시절의 절차를 설명했다.


만약 이런 절차가 지금도 지켜지고 있다면, 도대체 왜 처음부터 서울공항 출발 시점이 오전 6~7시 아닌 오전 9시였는지, 항공통제관은 런던 공항을 미리 다녀왔는지 않았는지 등이 점검돼야 할 것 같다. 영국 측이 온갖 배려를 한국 대통령을 위해 해줬는데도 불구하고, 한국 대통령 전용기의 도착이 ‘더 일찍 도착했으면 좋았겠지만’란 이유 탓에 문제가 발생했다면 그 책임은 전적으로 한국에 돌아오는 것이기 때문이다.

윤석열 대통령 내외가 지난 18일 성남 서울공항에서 대통령 전용기에 탑승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대통령실 관계자의 설명(“왕실 차원에서 총리가 함께 했던 차량을 제공을 했고, 그리고 경호 인력을 추가 배정해서 윤석열 대통령 부부의 보다 확실하고 안전한 그런 경로를 뒷받침하고자 했다. 콘보이가 4대, 5대 정도 붙었는데, 사이드카가 보통은 250여 명 정상들에게는 이 정도 규모로는 배치가 되지 않는다”)에 따르면 영국 정부는 윤 대통령의 영국 방문에 대해 최대한의 우대를 베풀었다. ‘모든 정상이 버스 편으로 조문식장에 도착한다’는 원칙을 깨고 한국 대통령에게는 차량과 콘보이 경찰까지 붙여줬기 때문이었다.

이에 대해 탁 전 비서관은 “이런 사항을 공개적으로 말하면 안 된다. 그러면 다음부터는 영국 측이 한국에 특혜를 주고 싶어도 다른 나라의 항의 때문에 못 베풀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영국 왕실이 윤 대통령 부부를 위해 '특별히' 제공했다고 대통령실이 밝힌 차량. (사진=대통령실)

“조문 안 하고 육개장 먹은 뒤 방명록 사인한 격”

영미식 장례식에서 가장 중요한 절차는 고인에게 예를 표하고 유족과 간단한 대화를 나누는 ‘조문’이다. 한국에서도 중요 인사가 장례식장에 참석한다면 조문 모습을 TV 화면이 보여주는 것도 마찬가지 이유다. 그런데 윤 대통령은 탁 전 비서관의 말에 따르면 “조문에 참석하지 않고 육개장 먹은 뒤 발인식이 끝난 후에 방명록에 사인한 모양새”가 된다.

영국 측이 이렇게 한국 대통령을 우대한 것은 영국에게 한국이 ‘굉장히’ 중요한 나라이기 때문이다. 작년 6월 영국 콘월에서 G7(선진 7개국) 정상회의가 열렸을 때 당시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가 문재인 전 대통령을 일본 같은 G7 정식 회원국보다도 더 우대한 데서도 이런 점은 잘 드러났다.

작년 영국 G7 정상회의 때 화제가 됐던 사진. 당시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는 자신의 왼쪽에 바이든 미국 대통령, 오른쪽에는 문재인 전 대통령을 앉혔고 ‘코로나19 방역을 가장 잘한 나라’가 화제가 오르자 바이든과 함께 문 전 대통령을 가리켰다. (사진=연합뉴스)

왜 영국은 한국을 우대하는가? ‘해양국’ 영국은 대륙 세력(과거엔 프랑스-독일, 지금은 중국-러시아 등)과 싸워온 역사를 갖고 있다. 그렇기에 해양 접근이 가능한 나라들과 좋은 관계를 맺으며 대륙 세력을 봉쇄하기 위해 노력해왔고 그 성과로 ‘해가 지지 않는’ 대제국을 건설할 수 있었다.

사실 영국은 개화기에 한반도에 참 못된 일을 많이 한 나라였기도 하다. 조선이 일본의 식민지가 된 것은 영국이 일본과 영일동맹(1차 1902년, 2차 1905년)을 맺었기 때문이다. 당시 영국은 지금의 미국 같은 세계 최강대국이자 기축통과국으로서 그 어떤 나라와도 동맹을 맺지 않은 도도한 나라였는데, 갑자기 변방 아시아의 경제 소국(당시 기준으로)과 느닷없이 동맹을 맺는 바람에 “왕자님이 왜 방앗간집 딸과 결혼하냐”는 비아냥을 받았다. 어쨌든 세계 최강대국의 지원 덕분에 일본은 마음놓고 조선 반도를 차지할 수 있었다.

일본에서 제작된 영일동맹 만화, 엄청난 덩치의 영국과 일본이 무기를 든 채 작은 중국, 그보다 더 작은 조선을 내려다보고 있다.

일본이 20세기 초반에 영국의 ‘아시아 해양 동맹국’ 역할을 맡아 부흥의 발판을 삼을 수 있었다면, 현재의 영국은 그 대상을 한국으로 보고 있는 듯하다. 일본을 대체할 나라가 바로 대한민국이기 때문이다. EU(유럽연합)에서 탈퇴한 영국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야기된 경제난에서 EU 소속국보다 훨씬 심대한 경제적 타격을 받고 있음을 여러 수치(인플레이션율, 파운드화의 평가절하)가 보여주고 있다.

 

영국에게 ‘과거의 일본’은 이제 대한민국인데…

대통령실 관계자는 19일 현지 브리핑에서 “영국 신임 총리 또한 어제 한영 양자회담 개최를 희망했으나 저희의 도착 시간 관계로 부득이하게 앞으로 시간을 조율을 해서 (앞으로) 함께 만남을 희망함을 말씀 드렸다”고 전했다. 한국 대통령이 런던으로 날아온다니 지난 6일 취임한 신임 리즈 트러스 영국 총리는 윤 대통령을 ‘꼭’ 만나고 싶었을 것이다. 영국 입장에서는 한국과 경제적으로 할 얘기가 굉장히 많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한국 측의 ‘도착 시각 관계로’ 일이 틀어졌다니 비단 ‘조문 외교 참사’일 뿐 아니라 ‘경제 외교 참사’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영국 총리와의 정상회담은 미루면서도 윤 대통령은 영국의 6.25 참전 군인에 대한 국민포장 전달식은 19일(현지 시간) 치렀다. 한국의 자유를 지킨 영국의 한국전 참전용사협회 회장에게 국민포장을 전달하는, 즉 ‘과거’를 기리는 행사도 중요했겠지만, 그 시간에 단지 30분이라도 영국 총리와 만나 정상회담을 하는 게 경제난에 시달리는 ‘현재’의 한국인 전체에게는 더 중요하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이번 영국 여왕 장례식의 백미는 조문식과 조문록 사인이었다. 영국 BBC 뉴스는 바이든이 조문록 서명 뒤 느긋하게 인터뷰하는 장면과, 조문식장까지 걸어가 화제가 된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 조문록 서명 장면을 뉴스로 내보냈다. 현재의 영국 경제 사정에 비춰보면, 멀리 한국에서, 일정까지 조율해가며 온 ‘첨단 경제 강국’ 한국 대통령의 조문과 조문록 사인 모습은 상당한 보도 가치가 있었을 것이라고 필자는 생각해본다. 그래서 이번 ‘도착 시각 관련’ 문제는 더욱 아쉽다.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의 조문록 사인 장면을 영국 BBC 방송은 방영했다. (사진=유로뉴스 화면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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