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금융시장은 지난 1998년 IMF체제 아래에서 사실상 개방됐다. 당시 외국인 투자가들은 우리나라 은행들의 지분을 상당부분 사 모으기 시작해 지금은 전체 은행권의 지분 절반가량이 외국인들의 손에 들어간 상태. 이 과정에서 정부는 이왕 우리나라 금융시장의 완전 개방에 대비하기 위해 동북아 금융허브 프로젝트를 추진해 왔다. 그러나 우리 금융시장이 국제금융의 허브 역할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국제 금융사업에 최적의 환경 마련과 함께 국내 토종 금융사들의 국제경쟁력 제고가 선행돼야 하는 것. 이에따라 정부는 금융시장의 국제경쟁력 제고를 위한 계획의 일환으로 자본시장통합법을 추진 중에 있다. 그러나 자본시장의 국제경쟁력 제고를 위해 도입을 추진중인자본시장 통합법이 삼성 금융소그룹의 우회적 은행권 진입의 창구로 변질되고 있다는 주장이 나와 귀추가 주목된다. 정부는 속칭 자본시장통합법을 ‘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이하 자통법)’이라는 이름으로 작년 12월 29일 국회에 제출했다. 이 법안은 지난 1998년 이후 동북아금융허브 프로젝트에서부터 추진돼 온 (가칭)금융통합법의 전 단계로 은행·보험권을 제외한 자본시장의 모든 시스템을 통합한다는 의미를 가진다. 이 법이 시행되면 증권·선물·신탁·자산운용사들은 각자의 권역을 막론하고 모든 투자금융상품을 취급할 수 있게 될 뿐 아니라 타 금융업을 자회사 등의 형태로 영위할 수 있게 됐다. 이는 미국의 글로벌 금융기관인 모건스텐리와 같은 토종 거대 금융사를 육성하여 궁극적으로 세계 금융시장 경영에 참여한다는 원대한 포부에 따른 것이다. ■금융 발전 위한 자통법, 私慾위해 악용되나 자본시장통합법은 미국·유럽 등 선진금융강국의 금융시장 질서 및 관련 법규를 참조해 우리나라 금융시장의 각종 규제들을 철폐 및 통합하기 위한 것이다. 이를 통해 국내 금융 생산자들은 소비자들의 권익이 침해되지 않는 범위 내에서 타 업종과의 자유롭고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이를 통해 국내 금융회사들이 국제적 수준으로 커진다는 것. 이를 위해 자본시장통합법은 신탁업법·증권업법·선물업법·자산운용업법 등 관계법을 통합했을 뿐 아니라 각 업법이 정하는 권역의 경계를 완화해 각 타 업종의 사업을 영위할 수 있도록 했다. 하지만 자본시장통합법은 은행업법과 보험업법은 통합 대상에 포함하지 않고 있다. 이는 제2금융권이 은행의 기능을 보유하거나 은행을 겸업할 경우 산업자본과 금융자본의 분리원칙에 위배되고 증권사에서 보험형 상품을 판매·개발 할 경우 보험업의 기반이 흔들릴 수 있다는 우려 때문. 이에 따라 재정경제부는 작년 초 이 법안의 문구를 작성할 당시까지만 해도 금융업계와 학자들의 의견을 받아들여 증권업계의 증권계좌에 한해 소액 지급결제기능을 부여하되 이를 계열 회사 등에 우회적 자금지원을 할 수 없도록 통제장치를 걸어놓는 방안도 거론됐다. 또한 최악의 경우 원금을 보장할 뿐 아니라 사망·파산·상해 등 투자자 개인적 사고 시 이를 보장해 주는 보험기능이 포함된 파생상품도 ELS 등과 같이 이를 제한키로 중지를 모은 바 있다. 하지만 재정경제부가 타 부처와의 협의를 거치기 전 작성된 자통법에 대한 초안에는 증권회사의 CMA계좌로 타 금융기관의 이채 및 공과금 수납을 자유롭게 할 수 있도록 규정했을 뿐 아니라 신탁업을 영위하기 위해 걸어야 하는 공탁금도 면제하고 있다.(법안 제326조). 그러나 동 법 제107조는 신탁회사가 신탁업을 영위하기 위해서는 자본금의 1/10을 예금보험공사 등에 공탁할 것을 규정하고 있다. 특히 이 법안에서 가장 논란이 되는 것은 증권사가 잘못된 투자 운영 등으로 부실화 될 경우 한국은행이 긴급 유동자금을 지원할 수 있도록 규정한 것. 이와관련 권오규 경제부총리는 “지금까지는 증권사가 부실화 되더라도 한국은행이 이를 도울 방법이 없었으나 이제는 도울 수 있는 법적 장치를 마련해 준 것”이라며 “하지만 한국은행에서 유동자금을 지원할 수 없다고 판단한다면 안 해줘도 된다”고 말했다. 이와관련 열린우리당의 박영선 의원은 “이 조항이 법제화 될 경우 한국은행은 부실 증권사에 긴급 유동성 자금을 지원하지 않을 도리가 없게 된다”며 “하지만 증권사가 부실화 되지 않도록 은행 수준으로 감독 및 조사할 수 있는 어떤 제도적 장치도 규정돼 있지 않다”고 지적했다. 또 한국은행측은 “작년 6월 재경부로부터 법안을 받은 후 우리는 이 조항의 부당성을 조목조목 지적했으나 재경부에서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고 말했다. 실제로 재경부는 “부실증권사에 긴급 유동자금을 지원해야 한다”는 조항을 ‘지원할 수 있다”는 말로 살짝 바꾼 후 12월 29일 국회에 상정한 상태. 이와관련 박영선 의원은 지난달 임시국회 재경위 상임위원회에서 “자통법이 삼성의 입김에 의해 금산분리 원칙을 깨는 쪽으로 가고 있다”고 성토했다. 박 의원측은 “삼성이 작년 초 삼성금융연구소에서 내부자료로 작성된 보고서 내용을 최대한 반영해 자통법이 만들어지도록 재경부와 국회에 지속적인 로비를 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삼성금융硏 내부 보고서, “은행을 확보하라” 실제로 삼성금융연구소는 지난 2005년 3월 31일 ‘CMA 활성화를 위한 전략적 방안’이라는 연구보고서에서 증권사의 소액지급결제 기능 확보, 공과급 납부 대행, 예·적금과 연결된 복합금융상품 개발, 원금보장형 투자금융상품 개발, MMF외 CP등의 직접 투자 허용 등이 필요하다고 역설하고 있다.
이 보고서는 초기 자통법을 통해 CMA 즉 증권계좌의 지급결제기능과 원금보장성을 포함한 은행기능을 확보하고 CMA를 통해 유입되는 자금의 투자대상을 MMF 외에도 국공채·CD·CP 등으로의 다양성을 확보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를 통해 삼성증권은 전 증권업계와 힘을 합쳐 CMA를 우선 지급결제(계좌이채 및 입·출금) 기능이 부가된 투자상품 쪽으로 국민들에게 적극 홍보해 인식을 제고하고 그룹 차원에서는 생명·화재·투신 등 계열사의 결제 창구를 삼성증권의 CMA계좌로 일원화 하는 방안을 추진할 필요가 있다고 역설했다. 다음단계는 각 금융권역간 고객정보 공유 및 타 금융사와의 교차판매를 쟁취해야 한다는 것. 이를 통해 삼성은 증권의 CMA계좌를 중심으로 생명·화재·투신 등 각 금융그룹 내 고객의 모든 계좌를 통합하는 종합금융관리계좌를 개발해 시너지 극대화를 이룬다는 설명이다. ■삼성증권, 자통법 업고 은행이 되다 삼성금융연구소의 최우석·이우백 연구원이 작성한 CMA 활성화를 위한 전략적 방안 보고서는 결국 삼성의 우회적 은행업 진출을 위한 전략 방안이다. 실제로 삼성그룹은 금융 소그룹의 방점을 위해 은행업 진출을 다각적으로 추진했다. 하지만 금산분리 원칙과 사회적 역풍에 걸려 삼성의 은행소유는 불가. 이에 따라 삼성은 삼성생명을 통한 어슈어뱅킹과 삼성화재의 네로우뱅킹 등 우회적 소유방안을 다각적으로 추진해 왔다. 이미 삼성은 2005년 금융감독원과 보험업계가 함께 작성한 보험산업 발전을 위한 중장기 방안을 통해 어슈어뱅킹의 공론화를 시도했지만 거센 역풍에 밀려 백지화 됐었다. 그 다음으로 추진한 것이 자통법을 통한 내로우뱅킹. 실제로 자통법이 재경부의 원안대로 통과된다면 삼성증권은 사실상 내로우뱅킹으로서의 위상을 차지하게 된다. ■삼성의 목표 내로우뱅크란 무엇인가? 내로우뱅크(Narrow Bank)는 시중은행의 주요 기능 중 지급결제기능만을 전문적으로 담당하는 은행이다. 지급결제의 안정성을 보장하기 위하여 내로우뱅크는 예금을 단기 국·공채 등 안전하고 유동성 높은 자산에만 운용하는 한편, 대출 등 위험자산을 취급하는 기능은 불허된다. 이 시스템을 도입하게 되면 국가 금융시스템은 결제기능과 위험자산을 취급하는 중개기능을 분리함으로써 불안정성을 제거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하지만 예금업무의 융합을 허용하지 않아 자금이 원활히 공급되지 못할 경우 신용경색과 실물경제 위축을 야기할 수도 있다. 또한 내로우뱅크가 산업자본에 소유될 경우 철저한 관리감독에도 불구하고 우회적인 방법 등을 통해 계열사 지원 등의 문제가 발생 할 수도 있다. 실제로 삼성금융연구소의 내부 보고서에서는 “각 금융계열사들은 업법에 따라 부분적으로 고유업무·부수업무·겸영업무를 영위하고 있으나 핵심적인 은행기능은 확보되지 않은 상태”라며 삼성증권의 사실상 내로우뱅킹화가 자통법의 최종 목표임을 명확히 하고 있는 것. 이에 따라 경제정의실천연합과 참여연대 등 시민단체들과 열린우리당 박영선 의원, 민주노동당 심상정 의원 등 정치권 일각에서는 이번 자통법을 강하게 반대하고 있다. 이와관련 박 의원측의 한 보좌관은 “자통법이나 금융통합법은 우리나라 금융산업 발전에 필요한 것”이라면서도 “하지만 문제는 이를 통해 산업자본의 금융지배 금지 원칙을 무너트리려는 일부 세력이 있다는 것”이라고 밝혔다. -박현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