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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에는 시효가 없다

다시 돌아온 4·3, 그리고 현기영 장편소설 <지상에 숟가락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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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12호 ⁄ 2007.07.03 10:50:35

그 섬에 가본 적이 있건 없건, 우리는 그 섬을 너무나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우리의 망막 속에 그 섬은 사계절 풍광 좋은 휴양지 그 이상은 아닌 경우가 허다하다. 4월 2일, 한미FTA 협상이 우여곡절 끝에 ‘결국’ 타결됐다. 그리고 하루가 지난 4월 3일, 한국사회 전체는 한미FTA로 들끓는다. 찬성과 반대를 논하자는 것은 아니다. 다만, 우리가 잊어서는 안될 어떤 날이 현안에 묻혀 지나가는 것에 대한 안타까움이 있을 뿐이다. 4·3. 우리 현대사에서 결코 잊을 수도, 잊어서도 안되는 날의 이름이다. 지난 80년대와 90년대 초반까지 우리는 이 날을 ‘폭동’이라고 배워야 했다. 마치 그 이전 그 섬에서 타올랐던 민중의 봉홧불을 아직껏 ‘이재수의 난(亂)’이라고 부르듯이. ■ 진실과 화해 MBC의 인기 프로그램이었던 ‘느낌표’의 권장도서로 선정되기도 했던 현기영의 장편소설 <지상에 숟가락 하나>는 현기영이라는 작가가 아니면 쓸 수 없고, 또 그만이 흥건한 심성으로 노래할 수 있는, 지나온 삶의 여정과 상처 그리고 그 안에 내재한 ‘은밀한 희망’을 말하고 있다. 하나의 역사적 진실이 밝혀질 때마다, 그 밥에 그 나물처럼 엮여져 나오는 말이 있다. 수구세력들의 단골 레퍼토리이기도 한 그 말은 “이제 와서 그 사실을 밝힌다 한들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이다. 또 하나 있다. “경제도 어려운데 웬 과거사 규명인가”도 있다. 지난 1990년대 중반, 역사상 가장 아둔한 지도자였던 김영삼 전 대통령은 12 ·12 및 광주민중항쟁을 언급하며 이런 표현을 인용했다. “용서하자, 그러나 잊지는 말자”라고.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 말은 애초 말이 되지 않는다. 용서한다면 그 일은 쉽게 잊는다. 그리고 잊지 않고 있다는 말은 용서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불과 20~30여 년 전의 일조차 거론하기 싫어하는 사회는 모든 논의로부터 닫혀있는 사회이다. 그렇다면 ‘그 섬’ 이외의 지역에서 나고 자란 사람들에게는 교과서 안의 내용 외에는 알려진 바가 거의 없는 ‘사건’으로 기억되는 4·3은 과연 우리가 용서하거나 잊었단 말인가. 제주도 사람들(그곳 출신이거나, 현재 살아가고 있는)과 한 번이라도 진지하게 말을 나눠본 사람은 잘 알 것이다. 그곳에서 4·3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또한 미래진행형이기도 하다. ■ ‘그때 그 사람들’을 노래한 사람들 4·3을 다룬 영화가 ‘레드 헌트’ 단 하나뿐인데 반해, 4·3을 다룬 문학작품은 얼마간 존재한다. 대부분 어린 시절 직접 겪은 엄청난 충격이 그들의 영혼에 박힌 제주출신 작가들에 의해서다. 1978년에 발표된 현기영의 연작소설 <순이삼촌(창작과비평)>은 30년 동안 묻혀 있던 4·3의 진실을 거의 최초로 공론화한 소설이다. 이 소설로 인해 작가는 보안사에 끌려가 끔찍한 고문을 당하고, 책도 발매 금지되는 고초를 겪었지만, 이 작품이 지닌 문학사적·역사적 의의는 그로 인해 더 한층 분명해지는 아이러니를 겪기도 했다. 현기영은 한참 뒤인 1989년 한겨레신문에 연재한 <바람 타는 섬(창작과 비평)>에서 32년 ‘잠녀 항일투쟁’으로 시작되는 4·3 이전의 역사를 다뤘다. 그는 잠녀들의 생활을 통해 4·3의 근원적 이유를 규명해 보자는 것 외에 도 자연과 수탈자에 대한 인간의 원초적인 투쟁의 모습을 묘사하고자 시도했다. 역시 같은 제주 출신인 현길언의 <한라산(문학과지성사)>은 2차 세계대전이 끝나기 전 일본이, 본토사수를 위해 제주도를 전쟁 교두보로 설정하고 약 7만의 대병력을 제주섬에 배치하던 시기부터 시작해, 해방 혼란기와 47년 3월 1일 일어났던 제주 3·1 사건, 그리고 4·3으로 이어지는 역사를 다룬 장편소설이다. 현길언은 <한라산>을 통해 ‘4·3이 한 지역의 문제로 끝나지 않고 인간 역사의 한 전형으로 의미를 지닐 수 있다’는 확신까지 언급하고 있다. 그리고 제주출신 재일동포 작가 김석범은 1948년 2월에서 1949년 6월 4·3항쟁의 지도자 이석구가 최후를 맞을 때까지를 배경으로 하는 대하소설 <화산도(실천문학사)>를 65년 일본 문학잡지에 연재, 95년 9월 끝을 맺었다. 하지만, 이들 제주 출신 작가들 외에는 4·3을 다룬 작품은 거의 내지 못하고 있다. 4·3은 그만큼 우리 현대사에서 감추어진 부분이기 때문이다. ■ 지상에 숟가락 하나 현기영의 성장 과정에서 기억하기 싫을 정도로 상처 깊은 곳을 서사 구조로 엮은 <지상에 숟가락 하나>는 현기영의 이름 앞에 어찌하여 ‘4·3’과 ‘저항’과 ‘민족’이란 말이 붙어 다니는가를 잘 일러준다. 그의 고향 척박한 땅, 화산도 제주는 아득한 수평선으로 둘러싸인, 오래전부터 ‘귀양섬’으로, 외세 강점기에 수탈의 섬으로 천대받아온 오지 변방이었다. 그러나 역사의 질곡마다에서 민중들이 억압과 수탈에 맞서 분연히 들고 일어나 ‘이재수의 난’, ‘해녀 항일운동’, ‘4·3항쟁’의 섬이기도 했다. 현기영이 해방기부터 6·25 때까지의 격동기 파란을 몸소 겪으며 유·소년기를 보낸 이 섬은 우리들의 마음속에서 ‘신혼여행’과 ‘낭만’ 등의 이미지로 남아 있는데 반해, 현기영을 비롯한 ‘그때 그 사람들’의 마음에는 ‘학살’과 ‘서북청년단’의 이름으로 더 쉽게 다가선다. 특히 2만 5000명 이상의 희생자를 낸 1948년 4·3 당시 현기영은 일곱 살 나이로 고향인 제주시 노형동 ‘함박이굴’에서 해변마을인 삼도2동 ‘무근성’ 외가댁으로 피란가야 했고, 그가 직접 접한 봉화봉기·가택수색·토벌작전, 그리고 ‘함박이굴’의 초토화와 살육 등이 그의 어린 눈에 여과 없이 수렴되면서 후일 그의 작품세계의 근간이 되었다. 현기영의 이러한 음울한 체험은 “고향마을의 초토화 장면은 검게 타버린 폐허를 배경으로 한 완벽한 구도의 목탄화로 내 의식에 자리 잡게 되었다”는 술회와 “인간의 경험, 상상력을 훨씬 능가해 버린 그 엄청난 살육과 방화를 놓고 어떻게 무자비하다, 잔인무도하다 하는 따위의 빈약한 말로 설명할 수 있을까?”라는 그의 목소리에 나지막하고도 잔인하게 담겨 있다. ■The Day After 이제 그의 생가가 있던 ‘함박이굴’은 4·3으로 불타 없어졌지만, 고향 노형동은 제주 최고의 상권지로 우뚝 커졌고 그가 친구들과 벌거숭이로 물장구치던 병문천은 지금 말끔히 복개돼 왕복 5차선도로와 상가 주차장으로 변했다. 다이빙질을 하던 용연에서는 매년 음력 4월 보름 ‘용연야범 축제’가 열리고, 동에서 서로 현수교식 구름다리도 놓아졌다. 친구들과 탄피 주우러 다녔던 도두봉까지의 현무암 해안길은 어느새 야간 조명시설까지 갖춘 해안도로로 단장돼 영화나 TV에 나올 정도로 세련된 카페촌으로 둔갑했다. 이 책을 읽어 내려가는 동안 나는 이런 외적 치장들이 내내 불편했다. 그래서인가 현기영은 이 책(지상에 숟가락 하나)에서 “아름다운 풍광의 배후에 아직도 진혼되지 않은 수만 원혼들이 음산한 기운으로 깃들어 있고, 그 검은 현무암지대가 그 시절의 초토화 불길에 타버린 숯더미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라고 고백한다. 그리고 “이제 나는 용두암 근처 현무암의 바닷가에서 부산스레 들락날락하는 호사한 관광객 무리를 밀어내고 거기에서 놀던 옛 아이들을 다시 등장시켜 놓아야 하겠다”고 진술한다. 이 책을 읽은 사람들 중 상당수는 한 공중파 방송의 인기 있는 프로그램의 소개가 직접적인 동인(動因)이 된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지상에 숟가락 하나>는 일반적인 독자들이 읽기에 그리 편한 책이 아니다. 또 현기영 자신도 책을 읽는 독자들을 위한 어떤 장치도 하지 않았다. ■진실에는 시효가 없다 그러나 이 책을 접한 대부분의 사람들은 아직 이 책을 읽지 않은 주위의 사람들에게 기꺼이 <지상에 숟가락 하나>를 권한다. 그것은 우리가 아직 한국 현대사의 그늘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까닭이며, 거짓된 신화의 허구를 ‘진실’이라 믿고 있는 시대의 망령들과 싸우고 있기 때문이다. ‘이승만과 박정희가 애국자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은 하나다. 그들은 영구한 집권이라는 틀에 동의하는 사람들에게만 ‘애국자’라는 칭호를 붙였고, 심지어 민족지사라고도 했다. 이제 그들의 허상(虛想)의 소멸시효가 진행되고 있다. 이 작품을 읽고도 이 작품이 여전히 ‘따뜻한 어린 시절을 그린 가족사적 소설’일뿐이라고 믿는다면, 아마도 우리는 우리의 현대사를 다시 써야 할지도 모른다. 이 작품은 소설인 동시에 역사이기 때문이다. -유성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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