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은 2004년 5월 대선 자금 수사결과를 발표하면서 삼성이 2002년 대선을 앞두고 800억원 가량의 무기명채권을 구입했으며, 이 중 300억원어치는 이회창 후보 캠프에, 15억원어치는 노무현 후보 캠프에, 15억4000만원어치는 김종필 당시 자민련 총재에게 각각 전달됐다고 밝혔다. 검찰은 나머지 500억원에 대해 “채권의 일련번호를 알아야 추적이 가능한데, 이를 알고 있는 최 씨와 김 모 씨가 해외에 있어 더 이상 추적이 불가능하다”며 내사 중지 처분을 내렸었다. 당시 검찰은 한나라당에 건네진 300억원대의 삼성 채권 일련번호는 거의 다 밝혀냈다. 그러나 노무현 캠프 쪽으로는 안희정 씨를 통해 건네진 현금 15억원과 채권 15억원을 찾아낸 것이 전부였다. 때문에 정치권 일각에서는 삼성 채권 500억원중 일부가 노무현 캠프 쪽으로 흘러간 것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했다. ■ 30억 뿐 아니면 나머지 배달사고? 대선자금이 한나라당에 비해 10분의 1밖에 안 될 것이라는 대통령의 ‘10분의 1’ 발언에 맞추느라 노무현 캠프 쪽으로 흘러간 돈을 검찰이 제대로 밝히지 않았다는 의혹도 있다. 문제는 검찰이 500억원의 사용처를 밝혀낼 수 있을지 여부다. 검찰은 “최 씨의 주소지에 수사관을 4번이나 보냈지만 종적을 찾을 수 없었다”고 말했으나 3개월간 별다른 수사의지를 보이지 않았다는 지적도 나온다. 특히 최 씨가 삼성채권에 대한 검찰 수사가 시작된 작년 1월 출국해 이학수 부회장이 특별사면된 지 일주일 지난 올 5월 귀국했다는 점 때문에 최 씨가 삼성측과 모종의 교감을 지속해왔다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이미 삼성측과 입을 맞췄을 가능성이 크다는 얘기다. 검찰은 최 씨와 함께 채권 구입을 담당했던 김 모 씨도 최근 불러 조사했지만 별 다른 혐의점을 찾지 못했다고 덧붙였다. 한편 삼성 관계자는 “최 씨는 2000년 하반기 삼성증권을 퇴사한 뒤 삼성과는 관련이 없다. 삼성에서 최 씨와 접촉한다거나 교감이 있다는 의혹은 사실무근”이라고 해명했다. 2002년 대통령 선거 때 삼성(회장 이건희)이 여론조사에서 밀리고 있던 야당후보측엔 300억원을 주고 1등을 달리고 있던 노무현 후보측엔 그 10분의 1밖에 안주었다고 믿는 국민들이 4900만명 중에 있을까? 여기서 이건희-노무현 유착설이 나오지 않을 수 없다. 검찰이 500억원어치 무기명채권의 용도를 밝히지 못한 것이 아니라 밝히지 않았거나 알면서도 발표를 안한 것이라고 의심할 권한과 의무를 가진 것이 국민이다. 검찰의 현직대통령 감싸기 수사와 낙선된 야당후보 때리기 수사는 2004년 4월 국회의원 선거에서 급조된 열린당이 다수당이 되고, 그 한 달 뒤 盧대통령에 대한 탄핵안이 헌법재판소에서 기각되도록 하는 데 공을 세웠다. 국민들이 한나라당을 “차떼기당”이라고 여기도록 하는 데도 공을 세웠다. 이건희의 삼성은 검찰 수사에 협조함으로써, 또는 협조하지 않음으로써 노무현정부를 살린 셈이다. ■ 이건희는 비판하고 삼성은 보호해야 이 사실을 덮고 넘어간다면 한국의 검찰·언론·정치·국민들은 백주의 암흑을 깨부술 용기가 없으니 언론자유와 자유민주주의를 누릴 자격도 없다. 국민이 아니라 왕조시대 백성 수준의 의식밖에 갖지 않은 셈이 된다. 삼성은 위대한 기업임으로 당연히 보호받아야 한다. 그렇다고 삼성 경영자의 부정까지 기업수준의 보호를 받아선 안된다. 이건희 씨는 치외법권(治外法權) 지대에 살고 있지 않다. 좌파정권의 생존에 결정적 기여를 한 것으로 의심을 받을 수밖에 없는 삼성 무기명 채권 500억원의 행방에 대해서 이건희 회장이 직접 국민들에게 고백해야 한다. 그는 좌파정권이 천년만년 계속될 것이라고 보고 침묵하는 모양인데 지금 고백하지 않으면 고백당할 날이 올 것이다.
이와관련, 노무현 캠프에서 홍보위원장을 맡았던 민주당 김경재 의원은 지난 2004년 3월 국회 긴급 현안 질의에서 「노무현-삼성」 관계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제가 삼성의 모 임원(이학수 구조본부장을 지칭)에게 「우리에게 자금을 제공할 용의가 있습니까」라고 물었더니 「대통령 후보가 사람을 지명해 주십시오. 그러면 우리가 정치자금 여부를 결정하겠습니다」고 했다. 그래서 제가 당시 명륜동에 있는 노무현 후보 댁을 방문했습니다. 보고 드렸더니 저보고 「해 보실 의향이 있으십니까」라고 해서, 「할 생각이 없습니다. 다른 사람을 천거하시지요. 저는 여기서 끝내고 말겠습니다」라고 했다. 삼성에서 돈을 한 푼도 안 보냈다고 하는 것은 울고 가는 까마귀도 웃을 이야기입니다』 ■차기정부,삼성=노무현 관련 수사가능(?) 노무현 대통령은 지난 2004년 3월11일 대국민 기자회견에서 『김경재 의원께서 「삼성의 누군가가 사람만 지명해 주면 돈을 주겠다고 해서 대통령께 그렇게 보고했다」고 폭로한 일이 있는데 사실이다』고 시인한 다음, 『보고를 한 김경재 의원이 「저를 지명해도 좋습니다」라고 해서, 면박 주기가 싫어 「두고 봅시다」하며 묵묵부답했다』고 하면서 사실은 맞는데, 정황 묘사에서 차이가 있다고 밝혔다. 노무현 캠프와 삼성 간에 정치자금 제공 이야기가 있었고, 삼성이 노무현 캠프에 「돈 받을 사람」을 지정해 달라고 요청한 것도 사실이다. 그렇다면 돈을 받은 사람은 누구였을까. 이와 관련, 40년 가까이 「김영삼의 돈」을 관리한 홍인길 전 청와대 총무수석의 말은 시사하는 바가 많다. 홍인길 씨는 월간조선과의 인터뷰(2004년 2월호)에서 『재벌들이 정치자금을 내면서 보스와의 대면 접촉을 반드시 원한다면서』라는 질문에 이렇게 대답했다. 『절 모르고 시주 안 한다는 말이 있어요. 주지 스님이 내가 시주했다는 걸 알아야 나중에 나를 위해 염불해 줄 것 아닙니까. 주지 스님과 얼굴 마주치지 않고 큰 돈 시주하는 사람이 있나요. 보스를 못 만나면 그 다음 실력자라도 만나야 돈을 냅니다. 사무총장이 당의 살림을 맡는 2인자라고는 하지만 그건 잠깐 2인자예요. 서정우(이회창 후보의 법률 특보)가 왜 감옥에 갔느냐, 서정우 씨가 이회창 후보와는 떼려야 뗄 수 없는 사이니까, 평생을 함께 갈 사람이니까 재벌들이 마음 놓고 돈을 건넨 겁니다. 혹시 무슨 일이 있을 때 서정우를 통하면 반드시 이회창에게 연결될 테니까. 재벌들이 노무현 후보를 싫어한 측면도 있지만, 눈을 씻고 둘러봐도 노후보 주변에 믿고 큰 돈을 줄 2인자가 없는 거야. 자기들끼리는 이광재·안희정이를 「왼팔·오른팔」이라고 하지만 재벌들이 그런 어린 친구들을 어떻게 믿고 돈을 주겠어. 그래서 이광재·안희정이가 대선자금이라고 받은 돈이 몇 천만원, 몇 억 정도밖에 안되는 거요』 -김원섭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