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가 다카하시 츠토무의 대표작 <지뢰진>, 조인성을 주인공으로 국내에서 드라마가 제작될 예정이란 소식이 알려져 마니아들의 관심을 얻고 있다. 세상이 모두 무너져 내린 듯한 어두운 악마의 거리. <지뢰진>은 인간의 내면에 숨어있는 악마적인 본능이 이끌어내는 다양한 범죄와, 그에 정면으로 맞서는 형사 ‘이이다 쿄야’의 이야기를 그려나간다. “인간에게 가장 이상적인 자살 방법은 굶어죽는 것”이라거나, “다른 사람의 영혼을 너무 많이 짊어져 내 그림자는 내 것이 아닌 것 같고, 그 색도 어떤지 모르겠다”는 이이다 쿄야. 그는 보통의 캐릭터가 아니다. 수사를 위해서라면 살인도 마다하지 않는 비정한 형사지만, 그 비정함에는 인간을 향한 쓸쓸한 눈물과 안타까움이 배어있다. 게다가 언뜻 봐서는 감정이 일체 배제된 메마른 인물로 그려지지만, 그가 피우는 담배의 이름 ‘HOPE’를 통해 많은 것을 말하는 인물이기도 하다. 희망을 찾고 싶어 하지만, 한편으로 그 ‘희망’이라는 것은 한 줌의 재라는 것을 담배를 통해 말할 줄 아는 멋이 있는 인물. ‘이이다 쿄야’는 그렇듯 메마른 감성과 독사와 같은 지독함과 치밀함, 깊은 피의 향기를 내뿜을 줄 아는, 오직 만화에서만 맛볼 수 있는 캐릭터다. 영악하기 이를데 없는 어느 초등학생의 “당신은 형사이니 나를 보호해야 하지 않느냐”는 질문에, “오후 5시까지는 형사지만, 지금은 오후 11시니까 상관없다”고 이야기하는 장면도 있다. 그에 대해서는 이 대사 한마디면 잘 알 수 있을 것이다. 알려진대로라면, <지뢰진>의 국내 드라마판은 (주)iHQ의 드라마 제작본부인 sidusHQ가 제작하며, 각색은 <피아노>, <봄날>, <닥터 깽>의 각본을 맡은 적이 있는 김규완 작가가 맡았다고 한다. 가장 중요한 주인공 ‘이이다 쿄야’의 역을 맡은 배우는 앞서 이야기한대로 조인성이며, 성유리가 출연한다는 이야기도 있다. <지뢰진>의 골수팬들은, 주연 배우 선정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조인성이 과연 ‘이이다 쿄야’라는 캐릭터를 제대로 소화할 수 있을지, 그리고 ‘이이다 쿄야’의 여성 파트너 형사로서 점차적으로 그를 닮아가는 ‘아이자와’ 역을 맡을 것으로 보이는 성유리, 뭐라 대답하기 어려운 캐스팅이라 대단히 난감하다. <지뢰진>같은 하드보일드 형사만화가 드라마화된다는 것은 엄청난 도박이다. 이 도박은 성공하면 그야말로 한국 드라마의 혁명을 이끌어낼 수 있지만, 실패하면 본전은커녕 “그럴 줄 알았다”는 냉소와 비난을 한 몸에 받아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이 도박에 내포된 불안요소와 반드시 기억해야 할 요소를 정리하는 것도 의미있는 시도라고 생각한다. ■ 시청률에 대한 관념은 아예 지워라 상당수의 젊은 시청자들은 미드와 일드를 선호하면서, 한국 드라마의 뻔한 요소들을 비판한다. 못사는 집안에서 자란 며느리에 대한 시어머니의 도를 넘어선 구박, 불륜, 불치병, 우연, 출생의 비밀, 신데렐라 등, 수십 년 넘게 지속된 레퍼토리들을 여전히 구태의연하게 써먹는 드라마들이 여전히 제작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현상을 짚어보기 위해서는 <하얀 거탑>이 인터넷에서의 열광적인 인기와는 반대로, 시청률 자체는 크게 부각되지 않았다는 점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앞서 이야기한 징글맞은 전형적 요소들이 범람하는 이유는, 일부 젊은 시청자들이 그에 대해 아무리 비난해도 그것을 봐주는 시청자들이 더 많기 때문이다. 방송국은 광고수입으로 운영되는 곳. 시청률 잘 나오는 드라마를 통해 돈을 벌려 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렇듯 <하얀 거탑>조차도 시청률 자체에서는 동시간대에 방영되는 사극을 이겨내기 어려웠다. <지뢰진>이 언제 어느 시간대에 방영될지는 모르겠지만, 경쟁해야 할 상대는 어쨌든 멜로극이나 사극일 것이다. 하드보일드 형사만화는 한국인의 일반적인 취향과 거리가 있으며, 여성들의 일반적인 취향과는 전혀 맞지 않는 장르다. 이런 작품을 드라마화 한다면, 시청률에 대한 관념은 일찌감치 지우는 것이 마음편한 일일 것이다. “선배님은 형사 안 그만두세요?” “그만 두지 않아. 나한테 형사라는 직업은 호흡 그 자체니까. 물론 그 호흡은 언젠가는 멈출 테지.” “당신에게 죽음이란 뭐죠?” “패배다.” 조인성과 성유리는 싸늘한 정적 속에서 <지뢰진> 특유의 어둡고 쓸쓸한 분위기를 연출하며 이런 대화를 나눠야 한다. 필자는, 제작자 측이 설마 하니 조인성의 여성팬들을 시청자로 묶어두고자 <지뢰진>을 트랜디 드라마로 ‘개조’하는 일을 벌이지는 않을 것이라고 믿고 싶다. 드라마화를 걱정하는 원작의 팬들이 성유리의 출연설을 민감하게 받아들이는 이유 중 하나이기도 하다. ■ 조인성, 이이다 쿄야를 소화할 수 있을까? 단언컨대, 이이다 쿄야를 완벽하게 소화할 수 있는 배우는 있을 수 없다. 이이다 쿄야는 그 정도로 만화적인 캐릭터이며, 삼중 사중으로 겹쳐진 내면 연기를 동시에 소화할 수 있어야 한다. <지뢰진>의 드라마화가 보도된 기사에서, 누리꾼들은 그의 캐스팅을 우려하면서 ‘이이다 쿄야’에 대해 대단히 인상적인 캐릭터 평을 했던 것으로 알고 있다. 감정을 배제한 메마름, 보통을 넘어서는 뱀과 같은 지독한 잔인함, 얼어붙은 심장, 피냄새와 더불어 날카로운 은색과 검은색을 동시에 지닌 캐릭터. 이이다 쿄야가 어떻게 묘사됐으며, 어떻게 독자들을 사로잡았는지 제대로 알 수 있는 평들이다. 조인성은 드라마 시리즈 <피아노>를 계기로 비약적인 연기력의 발전을 이끌어냈으며, <비열한 거리> 등의 작품에서도 자연스러운 조폭 연기를 소화해 호평을 듣기도 했다. 하지만, 이이다 쿄야는 한국의 드라마나 영화와는 전혀 다른 양상으로 연출되는 캐릭터다. 어떤 독자는 “이이다 쿄야의 ‘간지’를 70%만 소화해도 조인성은 할리우드 진출감”이라는 이야기를 남겼다. 필자도 적극 동의한다. 조인성은 그야말로 자신을 버리고, 이이다 쿄야로 살아야만 하는 것이다. ■ 처절해지되, 말랑말랑해지지 말아야 <지뢰진>의 열성팬들은, 상대적으로 한국의 대중문화 전반의 문제점을 제대로 파악하고 있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들이 <지뢰진>의 드라마화를 걱정하는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말랑말랑해질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어느 누리꾼의 말대로 “말랑말랑한 <지뢰진>은 더 이상 지뢰진이 아니다.” <지뢰진>은 인간의 추악한 본능이 그대로 투영된 어둠의 세계에서 벌어지는 헛된 탐욕과 범죄의 세계를 담은 작품이다. 제목 자체도 “인간이 설치한 것(지뢰)에 의해 인간이 막을 수 없는 것(지진)”이라는, 다카하시 츠토무가 이야기하는 범죄의 의미로부터 비롯된 것. 이런 색깔의 작품이 ‘말랑말랑해진다면’, 다시 한 번 어느 누리꾼의 말대로 ‘괴작’이 탄생할 가능성이 큰 것이다. <지뢰진>의 드라마화는 드라마 장르의 외연을 넓힐 수 있다는 측면에서는 더없이 반갑다. 하지만 외연을 넓히기는커녕, 한국 드라마의 전형적인 틀 아래 갇힐 가능성도 만만치 않다는 것이 많은 사람들의 공통의 우려다. 혁명이냐, 패배냐. <지뢰진>의 드라마화는 이미 시작부터 그 거대한 갈림길에 서 있는 것이다. -박형준 영화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