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에는 ‘악플’이라는 용어가 있다. 이는 특정한 기사나 글 아래에 달리는 악성 댓글을 일컫는 말이다. ‘무플’이라는 용어도 있다. 악성 댓글조차 달리지 않는 상황을 가리키는 말이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 네티즌들은 종종 ‘무플방지위원회’라는 것을 만들어 의무적으로 댓글을 달아주기도 한다. 욕을 먹는 것보다 더 불쌍한 게 무관심의 대상으로 전락하는 것이기 때문이라는 게 이들의 주장이다. 이번 4·25 재보선에서 범여권의 핵심 축인 열린우리당은 ‘참패’라는 악플을 얻는 대신, ‘당선자 없음’이라는 무플을 선사받았다. <편집자 주> ■ 지고도 이겼다는 이상한 열린우리당 4·25 재보선에서 열린우리당의 성적은 그야말로 ‘참담’ 그 자체다. 3곳의 국회의원 선거구 중 유일하게 후보를 냈던 경기 화성에서 두 배 이상의 표차로 자당의 후보가 낙선했음에도, 열린우리당은 “승리했다”는 표정이다. 열린우리당 서혜석 대변인은 25일 밤 논평에서 “불패 신화가 부패 신화로 무너졌다”며 “한나라당 독주를 막고 범 개혁민주 세력의 대통합을 바라는 국민의 요구가 확인되었다”고 주장했다. 서 대변인은 “오만과 자만에 빠져 기득권에 안주하는 정치세력에 대해 국민들이 준엄한 경고를 한 것”이라며 “돈정치, 부패정치의 부활을 절대 허용할 수 없다는 국민의 의지를 보여준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3곳의 국회의원 재보선에서 열린우리당이 유일하게 후보를 낸 경기도 화성에서 한나라당 고희선 후보가 57%를 얻어 당선되었고, 열린우리당의 박봉현 후보는 30.8%를 얻는데 그쳤다. 이에 대해 열린우리당은 “패배했지만 승리보다 더 값진 투혼과 선전을 보여주었다”고 자화자찬했다. 아울러 열린우리당은 대전 서구 을에서 심대평 국민중심당 후보, 전남 무안·신안의 김홍업 민주당 후보 등 이른바 ‘비(非) 한나라당’ 후보가 당선된 점에 의미를 부여하면서 ‘범여권 대통합론’확산에 주력하는 모습이다. 정세균 의장은 “열린우리당은 ‘통합이 가능한 세력 vs 한나라당’ 구도로 선거를 치르는 노력을 했는데 실질적 통합세력이 성공함으로써 그 여세를 몰아서 대통합을 잘 추진한다면 올해 대선에서 한나라당을 누를 수 있을 것이며 그 가능성을 보여준 선거가 아닌가 생각한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이번 재보선에서 열린우리당은 민주당과는 공개적으로 선거 연합을, 국민중심당에 대해서는 자체적으로 후보를 내지 않는 방식으로 연대를 시도했다. 이 과정에서 김홍업 후보 선거에는 당 지도부를 비롯해 호남에 연고가 있는 의원들과 과거 동교동계 출신 의원들이 현지에 들어가 물밑 지원을 했고, 대선 서구 을 선거에는 오래 전부터 이 지역 재보궐 선거에 대비해온 청와대 비서관 출신의 박범계 변호사를 설득해 출마를 만류했다. 박 변호사는 “한나라당의 독주를 막기 위해서”라는 이유로 심대평 후보의 지지를 선언하기도 했다. 또 이낙연 민주당 의원은 경기도 화성의 열린우리당 후보 지원유세에 나서기도 했다. 장영달 원내대표는 이에 대해 “이번 보궐선거의 교훈은 부패한 정당은 문을 닫게 되어 있다는 것과 범여권은 능력을 보이라는 뜻으로 받아들였다”며 “이낙연 의원을 비롯해 우리당 소속 의원들 39분이 지원에 나섰는데 경기 화성의 박봉현 후보가 30.9%를 얻었고 이는 39분의 지원 의원 수와 맞아떨어졌다”고 주장했다. 송영길 사무총장도 “한나라당의 일방독주를 견제하고 대통합의 계기를 만드는 선거가 되어야 한다는 취지하에 국회의원 선거 세 군데에 각 정당이 이심전심으로 내부적 합의를 통해서 각자 단일 후보를 내는 것으로 추진을 해 왔다”고 말했다. 한 마디로 이번 재보선 결과를 토대로 열린우리당이 중심이 되는 ‘범여권 대통합신당 추진’에 가속도를 붙이겠다는 게 열린우리당의 속셈이다. ■우리당이 공들인 심대평은 정작, “구여권 대통합에 관심 없다” 이번 재보선에서 열린우리당이 가장 신경을 많이 쓴 곳은 다름 아닌 대전 서구을 지역이다. 이유는 의외로 간단하다. 범여권 대통합에 소극적인 국민중심당을 통합 논의에 끌어들이고, 충청권 민심을 다시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또한 ‘반한나라당 전선 구축’이라는 당면 과제를 챙기겠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필수적인 것은 충청권에서 상당한 영향력을 가지고 있는 심 당선자에게 일종의 부채감을 갖게 할 필요가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정작 당사자인 심 당선자는 열린우리당에 대한 부채의식을 갖고 있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심 당선자는 선거 기간 내내 “특정인과 특정 정당의 도움을 받아 선거를 치를 생각이 전혀 없다”며 열린우리당의 손길을 매몰차게 뿌리쳤다. 정운찬 전 서울대 총장도 이번 재보선에서 어떠한 발언이나 역할도 하지 않았다. 사실 정 전 총장 영입에 ‘목숨을 건’ 쪽은 국민중심당이나 민주당이 아닌, 열린우리당이다. 그러나 정 전 총장이 재보선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이상, 충청권의 유력 인사들에게 열린우리당이라는 빚을 지울 방법은 없다. 심 당선자는 그간 “내가 국민중심당을 끌고 나가는 한, 당 대 당 통합 등에 휩쓸리는 일은 없다”고 누누이 강조해 왔다. 여권대통합 논의에 대해서도 “인위적 정계개편의 한 부분으로 구태정치의 산물”이라고 강도 높게 비판한 바 있다. 4·25 대전 서구 을 국회의원 보궐선거에서 당선된 심대평 국민중심당 공동대표가 “범여권 통합논의에 참여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이는 당선 직후인 26일 심 당선자의 발언에서도 분명히 읽을 수 있다. 그는 이날 “선거 시작부터 끝까지 연대와 연합은 없다고 다짐해왔고 이 약속을 지킬 것”이라며 “구 여권이 헤쳐 모여와 이합집산을 반복하는 것은 부정적인 이미지가 아주 많다”고 비판했다. 심 당선자는 같은 당의 신국환 의원이 민주당 등과의 통합 논의에 참여하고 있는 것에 대해서도 “당론이 아닌 개인의 소신으로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라며 “제가 중앙당에 올라가면 새로운 국면을 맞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심 당선자는 ‘이번 선거에서 열린우리당의 무공천이 도움이 됐을 것인가’에 대해서도, “한나라당이 타당의 부정적인 이미지를 저에게 뒤집어 씌워 얻은 것과 잃은 것이 함께 있었다”며 “하지만 대전시민들이 당적을 떠나 인물을 선택한 만큼 이를 평가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답했다. 심 당선자의 그간의 관심은 ‘대선에서 충청권의 새로운 결집을 통한 주도적 역할’과 이를 위한 ‘독자적인 정치세력화’였다. 결국 열린우리당은 헛물을 켜고 있는 셈이 된다. 따라서 열린우리당은 ‘지역주의에 기댄 정치 세력의 부활을 도왔다’는 비판으로 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벌써부터 열린우리당 일각에서는 “반(反)한나라당을 이유로 지역주의에 기반한 정치세력을 키우는 것이 새 정치고 정당개혁이냐”고 볼멘 소리가 나오고 있는 실정이다. 결국 ‘여당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한’ 열린우리당이 4·25 재보선에서 얻은 결과물은 ‘여권 분열의 책임을 묻는 국민의 심판을 운좋게 피했다는 것’과 ‘대통합 논의에 대한 명분이 조금 더 커졌다’는 정도에 그칠 것이라는 게 정치권 전반의 분석이다. -유성호 기자